가족의 두 얼굴

최광현 / 부키

 

 

 

 

 

 

 

 

 

 

가족이라고 하면 편안함보다 굴레처럼 생각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가족은 나의 힘이 되기도 하고 짐이 되기도 하며, 친밀함 뒤에 미묘한 갈등이 숨어 있기도 하고, 한없이 사랑하다가도 한없이 미워지기도 한다. 가족은 이처럼 두 얼굴을 지니고 있다.

 

 

대형마트에 가면 1+1 행사물건이 많다. 마케팅인데 힘든 부부와 가족에게도 1+1 이 적용된다.

 

 

어린 시절의 나를 돌아보다.

홀로 있어 외롭기도 하지만, 사랑하는 사람들 가운데 있어도 외로움을 느낀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다시 홀로 될 것을 두려워하는 마음이다.

 

 

가족관계는 우리의 인간관계를 찍어 내는 ‘붕어빵 틀’이다.

결혼에 대한 잘못된 신화 가운데 하나는 결혼하면 외롭지 않을 것이라는 환상이다. 결혼은 오히려 더 깊은 외로움을 가져다줄 수 있다.

몸은 마음을 비춰주는 거울과 같으며, 몸은 우리의 마음속 트라우마를 기억하고 있으며 어느 순간 그 기억을 재생시킬 수 있다.

상처를 경험한 사람이 더 아프다. 반면 부모의 따뜻한 보살핌을 받고 상처를 적게 받으며 자란 사람이 스트레스에 잘 대처한다.

 

 

중독의 특성은 반복이다.

불안 때문에 가까운 사람에게 지나치게 매달리다 보면 상대방은 질리게 된다.

신혼 초에 치약 사건은 사실 단순한 싸움이 아니다. 결혼 이전의 서로 다른 가족 문화가 부딪힌 ‘문화충돌’이다. 우리는 모두 자신이 성장한 가족으로 회귀하려고 한다. 설령 그 가족이 비참했고, 늘 외로웠으며 불안했을지라도. 그것은 너무나 익숙한 곳이기 때문이다.

 

 

주인이 두 번 이상 바뀐 경험을 한 애완견은 더는 애완견 역할을 하지 못한다. 버림받은 충격으로 지나치게 우울하거나 공격적인 성향이 있기 때문이다.

 

 

 

 

배우자

두 사람이 서로에게 강한 호감을 갖는 것은 호감보다는 자기 자신들의 모습을 상대에게서 보았기 때문이다. 나르시시즘, 즉 자기애라고 말한다.

우리는 익숙하고 친숙한 것에 편안해하고 이끌린다. ‘귀향 증후군’이다.

어린 시절 가족의 경험이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우리는 종종 어린 시절에 경험했던 곳과 비슷한 상황을 재연해 줄 고향 같은 사람을 찾는다.

 

 

어린 시절 상처를 직시하면 그 속에 상처 입은 내면의 아이가 있다.

아들은 아내를 사랑해서 결혼하였지만, 무의식 속에는 여전히 분리되지 못한 어머니와 관계가 있다.

 

 

마마보이는 무엇보다 건강한 남성의 정체성을 확립하지 못한다. 어머니가 아들을 손아귀에 꽉 쥐고서 남자로 성장하기보다는 여전히 아들이기를 바라는 느낌을 전달하기 때문.

 

 

‘엄친아’ 외형적으로는 좋은 스펙으로 남들보다 훨씬 앞선 것처럼 보인다. 스스로 의지와 목표에 따른 노력의 결실이라기보다는 부모의 결과물이다.

 

 

아버지에게 지나치게 정서적으로 의존된 딸, 즉 파파걸이다. 딸은 아버지에게서 벗어나 독립적인 삶을 살고 싶은 마음이 뜰 때마다 죄의식을 갖는다.

 

 

 

 

분리와 독립은 결혼의 전제 -

아들을 떠나보내지 못하는 어머니

열쇠는 부모가 쥐고있다.

부모는 건강한 부부관계를 갖고

자녀가 떠나서 독립하는 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가족은 하나의 시스템이다 -

가족은 분명히, 조각 하나를 건드렸을 뿐인데 전체가 움직이는 ‘모빌’이다. 끊임없이 상호작용하며 살아간다.

 

낮에는 근엄한 법관이지만 밤이 되면 야수의 모습으로 돌변한다. 아버지가 옆방에 있는 여동생방에 들어가면 그 밤은 다행이다. 아버지는 두 딸을 대상으로 근친상간을 범했던 것이다.

 

 

어린아이에게 근친상간은 최악의 아동학대다. 가족의 은밀한 비밀과 손을 마주 잡고 있다. 가족의 비밀은 현재의 가족 시스템을 유지하기 위해 변화에 저항한다. 이런 가족 시스템은 ‘항상성’이다. 가족의 붕괴를 두려워하고 갈등은 증폭된다.

 

 

가족 안에는 자연발생적인 위계질서가 존재한다. 한 사람이 판단을 내리고 결정을 하며 상대 배우자는 거기에 수긍하고 복종하는 ‘종속적 관계’와 은밀하고 드러나지 않는 방법으로 한쪽 배우자를 왕따시키는 ‘대칭관계’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와 가족의 질서

 

 

 

 

문제가족 안에는 희생양이 있다.-

부모가 이루지 못한 꿈을 실현하는 의사, 법관, 교수, 성직자, 스포츠스타 등 꿈을 완성하는 사명을 안고 파견되는 사절단. 가족 희생양은 가족 중 한 사람의 희생으로 가족 구성원 전체가 평화와 안정을 유지하는 것을 일컫는다.

 

 

가정에 충실한 남편이 외도하는 이유, 외도를 하고 집에 들어온 날 아빠로서 남편으로서 역할에 더 충실한 경우가 많다. 지능적이거나 상습적이어서가 아닌 아내와 아이들을 잃고 싶지 않은 바람 때문이다.

 

 

아내는 가족일 뿐이다. 결혼 이후, 남자들에게 아내는 가슴을 설레게 하는 여성이기보다는 편안한 가족이 된다. 아내에게 미안함과 죄책감을 갖지만, 이것은 마치 청소년 시절 어머니를 속이고 친구들과 약간의 일탈을 할 때 느끼는 죄책감과 비슷하다. 한편으로는 아슬아슬한 스릴을 즐긴다. 남자들은 이처럼 단순하고 어머니와 아내의 구분조차 제대로 못 하는 존재들일 수 있다.

 

 

천생연분이라고 느끼고 살아가지만, 잠자리에서는 만족을 느끼지 못할 수도 있다. 이는 아내가 남자의 성적 욕구를 채워주지 못하기 때문이 아니라, 남자 스스로 무의식적으로 아내를 성적 대상에서 제외한 결과이다. 아내는 단지 가족이다. 어떤 일이 있어도 헤어질 수 없는 사이지만 성적인 부분에서는 예외다.

 

 

 

 

 

멋지고 매력적인 남자들의 공통점

 

너무 뛰어나서 도저히 넘어서기 어려운 아버지를 둔 아들은 절망한다. 아들은 무기력하고 게을러 진다. 그리고 아버지가 이룬 성공의 그늘 밑에 안주해 버린다. 아들에게 아버지는 언제나 승리욕을 자극하는 경쟁자다. 아들은 아버지에게 사랑받고 인정받고 싶어한다. 아들은 아버지에게 인정받을 때 가장 큰 만족감을 갖는다.

 

 

어린 시절부터 어떤 일을 해도 잘 인정해 주지 않은 아버지 밑에서 자란 아들은 아무리 노력해도 아버지의 눈에 들 수 없다는 사실을 자각하는 순간 아버지에 대한 분노로 변한다.

 

 

 

나를 사랑하는 것이 먼저다.

자기애는 어떤 슬픔도 이겨 내게 한다. 모든 인간에게는 건강한 나르시시즘, 즉 자기애가 필요하다.

 

‘나는 괜찮은 사람이야.’라는 기분 좋은 느낌이 드는 상태는 어머니를 통해 형성된다. 태어나서 3년 동안 아기에게 주는 사랑이다. 그 결핍은 어떤 사람에 의해서도 채워지지 않는다. 갓난아이에게 자기가 누구인지를 알려주는 거울은 바로 엄마다. 아이는 엄마라는 거울을 통해 자신의 모습을 본다. 즉 아기는 엄마의 표정을 통해 자신에 대한 정체성을 갖는다. 엄마가 웃으면 아기는 자신이 사랑스러운 존재라고 여긴다.

 

 

 

 

 

홀로서기를 잘할수록 가족이 행복해진다.

 

독일 아내가 화장하는 시간은 주로 남편이 퇴근하기 직전이다. 결혼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부부간의 사랑이다. 한국 가정에서 아내의 화장은 외출 준비일 뿐이다. 반면 독일 가정에서는 아이가 태어나면 약 열흘 정도만 부모 곁에 두고 그 뒤로는 아기 방에서 따로 잠을 재운다.

 

 

사람의 관계란 묘한 것이어서 한쪽이 지나치게 주기만 해도 위태로워질 수 있다. 받기만 한쪽은 고마움은 알지만, 관계를 청산함으로써 마음의 부담을 털어내고픈 유혹에 시달린다. 따라서 진정으로 상대방을 사랑한다면 내가 가진 모든 것을 상대에게 주어서는 안 된다. 사랑하는 이에게 조건 없이, 아낌없이 베풀어 주되 상대가 다시 내게 돌려줄 수 있는 범위를 생각하는 현명함이 필요하다.

 

 

만성적인 부부 갈등 속에서 불안과 두려움을 느끼는 엄마들은 대개 자녀에게 집착한다. 이럴 때 자녀가 보이는 반응에는 순응하거나 반발하는 것이다. 불안이 심해질수록 자녀에 대한 집착도 강해진다. 여기서 자녀와 부모 사이에 극단적인 행동이 나온다. 자살을 시도하기도 하고, 자녀를 정신병원에 억지로 수용시키기도 한다. 불행한 부부관계와 힘든 자녀관계를 푸는 열쇠는 상대방에게 있지 않다. 나 자신에게 있다.

 

 

수소 신드롬, 독일어권에서 만들어진 개념으로 즉각적인 만족을 얻으려는 세대를 일컫는다.

은둔형 외톨이, 이들은 캥거루처럼 부모에게 의존하며 매사에 무관심하고 조금이라도 불편하고 괴로운 일은 피하면서 자기만의 작은 세계 속에 고치를 틀고 산다.

 

요즘 아이들은 좌절의 경험이 너무 적다. 아이들을 위한 치료법이 많이 개발되고 있는데, 적정한 수준의 괴로움이다.

 

 

 

 

노력하는 만큼 행복해지는 가족

어린 시절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모르고 결핍과 아픔을 들여다보지 못함으로써 충돌이 생긴다.

가장 힘든 고통과 아픔을 주는 사람들 또한 가족이다. 그러나 가족은 쉽게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 삶에서 가장 의미 있는 노력일 것이다.

“왜, 가족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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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쥐고 있는 특권>

 

재작년에 작은아들이 결혼했다.

큰아들이 결혼을 앞두고 있다.

가족의 ‘울타리’와 ‘분리’에 대해서 생각한다.

 

 

아들들을 내 가족 안에 넣어야 할지,

아니면 친척이나 이웃으로 분류를 해야 할지….

 

 

내 편리한대로 잣대를 갖다 댄다.

그러면서도 원칙은 반드시 지키고 싶다.

적어도 젊은 시절, 내가 힘들어하던 일들을

되풀이하지는 말아야지 다짐한다.

 

분리와 독립의 열쇠

내가 가지고 있는 특권이다.

‘가족의 두 얼굴’은 그런 의미로 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