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디터 > 서옥선 코퍼레이션 > 김울프
The Winner of Creative Spirits
Kim, Wolf
지난 달, 에너지 넘치는 서퍼들의 사진을 보내왔던 김울프는 다양한 독립 문화를 좋아한다. 그것들을 즐기고, 또 즐기는 사람들의 사진을 찍고 있다. 단순한 ‘촬영자’가 아닌 문화를 이해하는 사람의 눈과 손으로 기록된 이미지들은 독창적이고 고유한 힘을 가지고 있다.
문화적으로 어떤 것을 좋아하고 어떤 것에 영향을 받았나요?
고등학교 시절, 부산에서 스케이트 보드를 타면서 많은 친구들을 알게 됐습니다. 당시 부산대학교 앞에 카시나라는 스케이트 보드 샵을 통해 외국의 스케이트 보드 비디오 테입들을 접하게 되었는데, 정말 충격적이었습니다. 그 속에는 권위에 대한 저항(아나키즘, 반달리즘 등)이 있었고, 그러한 성향의 펑크 음악이 있었지요. 그 때 ‘인디’라는 단어로 불리우는 독립적인 성향의 여러 움직임들이 있었고, 저는 그러한 움직임에 꽤 가까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스케이트 보드를 타면서 펑크 음악을 하는 친구들을 만났는데, 그게 제 일생 최고의 행운이었던 것 같아요. 홈비디오(8mm) 카메라로 친구들과 스케이트 보드를 타면서 악동스러운 모습을 촬영하고, 합주실에서 MD 플레이어로 친구들의 음악을 녹음하고, 집에 와서 비디오 플레이어로 편집을 해서 뮤직비디오 비슷한 것들을 만들어냈어요. 방송 심의도 필요 없었고, 이윤 추구를 위한 것도 아니었으니, 사회적인 평가도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친구들끼리 돌려보는 게 다였지만 참 재미있었습니다. 문화 소비자로만 살다가 문화 생산자의 기쁨(?) 같은 것을 처음 느꼈는데, 누군가의 도움을 받지 않고도 꽤나 재미있는 무엇인가를 우리끼리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한 계기로 조금 더 자주적으로 살게 되었습니다. 지금까지도 저는, 작지만 강한 독립적인 문화들에 매료되어 있고 영향을 받고 있습니다.
서핑과 관련된 사진을 소개했는데 서핑과는 어떤 인연을 가지고 있나요?
햇수로는 8년이 되어가네요. 바다 속에서 파도와 서퍼를 촬영하게 되면서 많은 서퍼들을 알게 되었습니다. 제게 있어서 서핑 사진은 스포츠 사진의 범주가 아닌 미학적인 관점으로의 개인 작업의 범주 안에 있습니다. 지금도 방향을 찾아가는 과정이라 대외적인 작업량이 많진 않아요. 그동안 다큐멘터리적인 속성으로 잡지나 TV 등 매체를 통해 서핑의 대중화에 일정 부분 기여했다고도 생각합니다. 지금은 그러한 움직임에서 한발 물러나 있지만, 서핑과 관련된 많은 움직임들을 관심 있게 지켜보고 있습니다. 자연스러운 흐름이겠지만, 발 빠르게 자라나고 있는 서핑과 관련된 대기업의 상업적 흐름과 각종 협회와 같은 거대한 권력에는 적극적으로 편승하고 싶지 않아요. 거대 이익집단이 문화를 지배할까봐 두렵고, 그에 일조하기보다는 순수 작업자가 되고 싶습니다. 평소에 여러 분야에서 우르르 몰려다니는 것을 불편해 하기도 하고, 저의 바다 사진은 스스로가 좋아서 하는 개인 작업의 일부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이유로 서핑과 관련된 인연은 갈수록 좁고 깊어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한국의 파도로 서핑을 할 수 있냐고 의아해하는 사람들도 있어요. 주로 어떤 곳에서 어떤 날 서핑을 하나요?
한국에서 서핑이 가능하다는 것은 현존하고 있는 수많은 서퍼들이 증명하고 있습니다. 3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우리나라는 생각 외로 서핑을 탈만한 장소가 많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어느 곳에서 언제든 서핑을 탈만한 큰 파도가 생기는 것은 아니고요. 파도는 너울의 방향, 조수간만의 차, 바람의 방향 등에 영향을 받기 때문에. 국내외의 각종 일기예보 사이트를 보고 움직이게 되면 좋은 파도를 만날 확률은 높아지겠지요.
사진으로 서핑 기록을 남기기 시작한 건 어떤 이유 때문인가요?
2006년, 서핑을 처음 하러 간 날, 서핑보드 대신 바디보드와 DSLR카메라, 그리고 독일에서 주문한 카메라용 방수케이스를 들고 해운대 해수욕장으로 갔어요. 장르를 가리지 않고 사진에 집착하고 있었던 시기라 자연스러운 시도였죠. 그때 사진을 찍으러 들어갔다가 카메라를 몸에 연결하는 끈에 오른손 엄지가 돌아가고 인대가 끊어지는 부상을 당했어요. 걸어서 병원에 갔는데, 전신마취 수술을 두 번 하고 두 달간 입원 치료를 받았습니다. 전공이 시각디자인이라 손을 이용하는 일이 많은데 한순간에 불구가 된 거죠.(몇 년간의 재활을 통해 지금은 많이 괜찮아졌습니다.) 입원해 있으면서도 다치기 직전에 보았던 크고 멋진 파도의 모습을 찍지 못한 게 너무 아쉬웠습니다. 이후에도 크고 작은 사고는 있었지만, 포기하면 너무 바보 같잖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핑 사진을 찍는다’는 것이 제가 서핑 사진을 계속해서 찍는 이유입니다.
서핑 이외의 다른 기록물도 많은 걸로 알아요. 소개해 주세요.
처음으로 작업적인 부분으로 접근했던 것이 그래피티와 하드코어 음악이었어요. 누구도 기록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 안타까웠습니다. ‘나중에 뭔가가 되겠다’라는 마음보다 그냥 보고만 있자니 아까워서 촬영을 시작했습니다. 제가 중학생 때, 요트선수를 했었고, 동생이 계속해서 요트선수로 활동하고 있는데 그 문화를 기록하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 안타까워서 요트 촬영도 시작하게 되었구요. 대부분의 개인 작업들은 강하고 멋진 문화들이 그냥 이야깃거리로 사라져 버리는 것이 너무 아까워서 촬영하게 된 것 같네요. 제가 빛을 발할 수 있는 것보다는 제가 좋아하는 문화를 지지하기 위해 촬영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사진은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나요?
고등학교 시절, 스케이트 보드를 같이타던 친구가 근사한 카메라를 들고 왔는데, Nikon FM2였어요. 그게 너무 멋있어 보였죠. 집에 있던 오래된 카메라를 들고 찍기 시작했어요. 한 달에 슬라이드 필름 20롤은 썼던 것 같아요. 친구들은 아르바이트를 해서 해외 배낭여행을 가고 중고차를 살 때 사진으로 아르바이트 해서 사진에만 돈을 썼는데, 지금까지도 자동차 운전면허도 없지만 사진은 계속해서 찍고 있네요.
작업 과정이 쉽지 않은 사진을 찍고 있어요. 특별히 소개하고 싶은 기억이 있나요?
최근 하와이에서 세계적인 파도 사진가 클라크 리틀(Clark Little)을 만나 함께 촬영했습니다. 영웅 같은 사람과 해변 바로 앞에 10피트 이상 크기의 파도에 뛰어 드는 것은 모험 그 자체였습니다.
2011년, 플래툰에서 작가 지원을 받기도 했어요. 어떤 작업들을 했나요?
마이너리티-리포트라는 서브 컬쳐 리서치 계획이었는데요. 비슷하면서도 다른 역사를 가진 각 문화들을 함께 이야기하면서 조금 더 큰 틀의 이야기로 만드는 것이 목적이었는데, 방향을 잡기 위한 과정을 겪는 중에 방향을 잃어버렸어요. 많은 사람들이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을 하고 있는데, 행여나 제가 벌인 하나의 프로젝트로 많은 사람들이 그 문화를 평가하게 될 수도 있었기 때문입니다. 많은 독립 문화들이 내외부적인 상처를 딛고 다시 제 자리를 찾고 있는데, 더 지켜봐 주고 더 지지해 주는 것이 모두에게 훨씬 이롭다는 것을 뒤늦게 알게 된 거죠. 진행되었던 인터뷰들은 나중을 위해 아껴두기로 하고, 반성문을 제출한 뒤, 마이너리티-리포트라는 큰 계획을 정리하게 되었습니다.
최근 문화적으로 가장 관심 있는 것은 무엇이고, 올해 어떤 계획을 가지고 있는지도 궁금해요.
최근에는 혼자서 세상과 부딪히며 세상을 바꾸고 있는, 초강대 개인들에 대해 관심이 있습니다. 혼자서 인공위성을 쏘아 올리고자 하는 OSSI의 송호준, 피규어 아티스트 쿨레인, 레드불 BC one 2012에서 준우승한 B-Boy Differ 등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제작해보고 싶어요. 바다에 대한 사진으로 개인전을 여는 것도 목표 중의 하나구요.
우리나라 문화 씬에서 어떤 역할을 하고 싶나요?
다양한 시도들을 모두 존중한 채로, 한 명의 관찰자로서 남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