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스 인터라겐에서 제네바 가는길
아침에 일어나니
우리 텐트 앞 표지석 앞에
화관과 마타리 꽃이 비에 다 젖었다
아~ 머리야!
어쩌지?
아침부터 비가 온다
여행객에게 비는
발길을 주춤거리게 하는 비다
손발을 묶어놓을 수 있다
일단, 비에 젖은 텐트가 문제다
빛깔도 고운 주황색 텐트
샤모니와 몽블랑을 거쳐 왔다는
산악용 사이클 동호회팀,
우리나라 충주사람들이라 했다
물론, 우리나라 말을 한다
얼마나 반갑던지 인사하고 또 하고, 묻고 또 묻고
ㅋㅋㅋ
몇번의 여행에서 얻은 처세술인데
외국에서 만나는 우리나라 여행객끼리는
아이들까지 딸린 진짜 가족이 아니라면
서로 친절한 관심은 '금물'이다
같이 여행하는 사람과의 관계,
지역, 목적, 직업 등의 질문은 서로 하지 않는다
어제 어느 곳에서 숙박했냐?
오늘은 어느 방향으로 떠날 건가?
그곳에서 뭘 봤나?
여행 정보 외에 것은 서로 '불문'이다
우리는 현재 정식 부부이지만,
너무 지나치게 다정해도 의심받는다
그분들은 산에서 가스버너와 코펠만 이용하여
식사해결을 하였다고 한다
우리 가스버너에 맞는 가스를 구하지 못하여
빗소리에 삽시간에 텐트를 걷어 떠난다
내일이면 출국한단다
손발이 척척
삽시간 십여분만에 완전 철수한다
기발한 순발력이다
비가 와도 나는 쪼그리고 앉아 밥을 한다
아침 식사라고 해봐야 빈약하다
밥은 밥솥이 하고
계란과 소세지 고추장 짱아찌 정도
나중에 커피와 과일
그리고 낮에 먹을 감자나 계란 등을 삶아 도시락을 준비한다
나의 남편에게 가장 어울리는 팻숀이다
짝지는 관리사무실에 가서 우비를 빌려입었다
20유로를 내고 빌리고, 떠 날때 20유로를 돌려받는다
우리 텐트만 대궐이다
다른 집은 기어들어가 잠만 자고 기어나와 떠난다
우리는 완전히 한 살림 차린 대들보가 튼튼한 집이다
철수할 때, 그리고 텐트칠 때마다
나의 짝지 한 두시간은 고생한다
텐트 다 걷고
빨래끝!
이제 우리도 제네바를 향하여 떠난다
제네바로 넘거가는 길
고속도로 휴게소를 들렸는데
아직도 비가 온다
또 중요한건 마트가 보이면
일단 예측할 수 없는 상황을 위해 장부터 본다
ㅎㅎㅎ 럭셔리 휴게소
이런 곳에서는 식사와 차와 휴식이 고프다
안에 없는 것이 없다
무엇이든 다 돈을 내야하는 곳이기는 하다
그중, 가장 불편한 건
다른 유럽나라들은 유로존으로 유로를 사용하는데
스위스는 스위스 유로만 쓰니
오줌한번 해결하는 화장실 앞에서
스위스 동전이 없어 급하던 기억이다
휴게소 뒷편 전망대에 오르니
가을 들녘처럼 황금들판이다
줌으로 당겨 찍어보니
ㅎ ㅎ
어릴 때 보았던 밀밭이다
빵을 주식으로 먹어야 하는 이유
한없이 밀밭이 넓다
이 순간,
남편은 산길을 올라 알프스를 넘자하고
나는 불빛보이는 마을로 내려가 숙소를 찾자하고
부부의 압은 폭발 일보직전이다
농가 벽에 살짝 차를 주차해 놓고
산그림자 짙어지는
어둠을 맞이하는 시간
아름다워, 잠시 냉전을 휴전하고
길바닥에 앉아 간이 식사를 했다
그리고 밤에 도착한 야영장
질척한 언덕배기 아슬아슬한 공간 밖에 없다
그래도
천지신명 일월성신께 고맙다
옆 텐트 불빛을 이용하여 텐트를 쳤다
옆텐트에 기거하는 여행객에게
전기좀 잠깐 빌려달라고 하니
등치가 산만한 유럽놈이 야박하게 거절한다
아침에 덜 마른 텐트를 싣고 와서
아무래도 추운데 밥도 커피도 전기장판도 불도...
그래도 텐트칠 자리가 있어 다행이다
자리가 우리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비용을 낮춰주는 것도 아니다
내 짝지 어떠한 상황에서도
최선의 환경을 만들기 위해 고뇌하며 발품을 판다
---------------------
7/29 월
인터라켄 - 제네바
자동차 렌트여행
목적지만 있다. 주위경치, 감흥 생각할 틈이 없이 내비게이션만 쳐다보고, 듣고, 차간거리, 주행선, 추월선, 앞차 뒤차만 있다. 할 짓이 아니다.
내가 운전했느냐고? 운전하는 것보다 더 힘들다. 조수를 한다는 것이. 좌회전 우회전 벗어날까 봐 신경 쓰고, 운전사 졸음 신경 쓰고, 그중 운전사 기분 컨디션 신경 쓰며 비위를 맞춘다는 것. 차라리 내가 운전하면 속도감, 도착 성취감, 재미라도 있지. 이게 뭔 짓이고? 목적지만 있는 여행. 사업협상 계획서 도장 찍으러 가는 것도 아니고…. 여행객이 아니, 나같이 고품격 에세이스트가 할 짓이 아니다.
운전 중 컨디션 조절을 대신한다는 것. 나는 베터리가 되어 무제한 쾌적한 환경과 친절을 충전 유지해야 한다. 큰소리치고 짜증 내더니 1분도 안 되어 코 곤다. 피로가 풀리면 좀 나아질 것이다.
유럽은 동네 사람들끼리 개인주의가 그렇게 발달하여 있다면서, 자동차는 유리마다 썬텐을 안 했다. 안이 훤히 들여다보여 할 짓이 아니다. 잠시 의자 재끼고 다리 치켜 올려놓고 휴식의 자유도 없다. 길가에 차를 세워놓아도 남의 시선에 노출된다. 사람뿐 아니라 차 안에 들어 있는 소지품도 문제다. 왜 사람들이 지하주차장을 선호하는지 알 것 같다. 휘발유와 경유 기름을 바꿔 넣어 오바이트 하듯, 부부 사이 기름 코드가 안 맞은 날이다.
제네바 가는 길.
나는 그랬다. 이왕 스위스를 지나니, UN 본부를 가보고 싶다. 영어도 모르고 정치도 모르고 외교도 모르지만, 우리나라 대한민국이 낳은 UN사무총장이 아닌가. 그리고 언제 또 스위스에 다시 올것인가.
남편의 여행계획에 애초부터 제네바는 없었다.
내가 중간에 즉흥적인 발언을 한것이다.
"나는 몇개월 걸려 프로그램을 짰는데, 니는 3분만에 입으로 결정한다."며 심사가 뒤틀렸다.
UN사무총장 부인을 TV에서 본 적이 있다. 생머리를 뒤로 가지런히 핀으로 고정하고 무채색 원피스를 입고 총장 옆에서 엷은 미소만 띠고 서 있는 장면이다. 귀고리 목걸이 장신구 없는데도 끌림이 있다. 보석박힌 왕관 영국 황실의 여인 같은 기품하고는 다르다. 저 분위기는 뭔가. 사뭇 격이 다르다. 지금 그곳으로 가는 길 고속도로 위에서 문득, 떠오르는 생각이다. 남편이 하는 일을 참견하지 않고 시시콜콜 잔소리하지 않고 우아하고는 조금 다른 분위기. 남편을 존중하는, 남편의 능력을 존경하는 단정한 포스. 같이 나란히 결혼생활을 시작하여 해로하는 모습. 남편의 지위 남편의 후광에 돋보이는 여인. 그 이름은 영국의 다이애나비가 아닌, ‘사모님’, 그래, 바로 내가 바라는 사모님이다. 그 후광이 문득 떠오른다.
나는 왜, 남편 곁에 사사건건 수선스러울까. 한번 시도해보자. 남편 곁에서 믿고 의지하는 단정한 자세로 바라보고 끄덕이고 엷게 미소 지어보자.
UN 본부, 꼭 반기문 총장을 뵙는 듯, 자긍심. 피그말리온효과 ‘꿈은 이루어진다.’
앙시, 뺑글뺑글 로터러 찾아 시내만 들어오면 발가락에서 쥐가 나려고 한다. 나는 계속 브레이크를 밟았기 때문이다. 한순간도 내비의 그림과 앞차와의 거리 남편의 운전대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남편이 길을 벗어났을 때, 투에서 돌아나와야 하는데 쓰리에서 벗어 나오면, 나는 숨을 참고 있다가 아구! 또는 에이~ 휴우~ 말은 못하고 감탄이나 탄식을 토해낸다. 남편은 “나는 안 보인다!” 라며 화를 낸다. 모르거나 순간 놓친 거지 분명히 안보이지는 않았다. 나나 남편이나 거의 같은 속도로 노안(老眼)을 맞이하고 있다. 내가 한 일곱 살 연하의 부인이라면 그 말에 수긍할 것이다.
⋆⋆⋆ 별 세 개 짜리 캠핑장 두 군데나 갔는데도 자리가 다 없다.
니스로 넘어가는 길, 내비게이션이 외길 용수철이다. 산 그림자 깊은 곳에서 어둠은 정수리에 붙는데 당최 우리가 찾아야할 야영장은 나타나지 않는다. 마음은 조급하고 몸은 피로하고 남은 것은 서로의 능력을 한탄하며 비아냥거리는 일이다. 서로 얼굴 마주 볼 여유도 없이 불안하다. 화장실도 가고 싶으나 도로다. 도로도 딱 차 한 대가 비켜갈 길이다.
그 와중에 한적하고 예쁜 마을이 계속 나타난다. 푸른 잔디 내려다보는 길. 남편은 니스를 알프스로 넘어가자 한다. 나는 불빛이 보이는 마을로 가서 모텔이라도 찾아보자고 하는데, 표지판도 가로등도 없다. 편편한 곳으로 빠져나오니 풍광이 그림엽서다. 너무 아를다워 돗자리 펴놓고 앉았다. 야영장이 없으면 호텔 가면 되고, 호텔 없으면 차 안에서 자면 되고….
저 멀리 무지개가 떴다. 환호가 저절로 나온다. 쳐다볼 여유 없이 길 위에서 긴장하고 남편과 아내 사이 서로의 마음을 다치지 않으려고 촉을 숨겼다. 어쩜, 여태까지 살면서 바로 옆으로 비켜가는 무지갯빛 인생을 외면하고 살았을지 모른다. 멋모르고 지금처럼, 길 모르는 곳으로 들어가 10년 20년 어둑한 길에서 헤맸을 것이다. 에라이~ 모르겠다. 그리고 내일 아침용 바게트 빵과 요플레 과일 등을 하나 하나 꺼냈다. 어디서 생긴 여유와 배짱인지. 차 안에서 오가던 신경전을 접고, "여보야! 너무 아름답다. 여보야, 아름답지?" 카메라를 꺼내 들고…. 아 아름답다. 이런 곳에서 우리가 속을 썪이고 있었다니. 무슨 바보 같은 짓인가.
결국, 알프스 산맥으로 올라가지 않고 산 그림자 짙은 마을 쪽으로 불빛을 기대하며 내려갔다. 9시 넘어 옆 캠핑가족의 식탁 위의 전등 빛에 의지해 텐트를 치고, 수면제 한 알을 넘기고……. 에구~ 오랜만에 보는 별, 별빛을 놓치고 컴컴한 잠속으로 몸과 마음이 잠적했다. 인생은 잠자는 가운데 어둠 속에서 희망이 발효하고, 잠깨는 가운데 새로운 희망이 다시 일어난다.
춥다. 몹시 춥다. 야영장에 늦게 들어가 전기를 쓸 수 없어 전기장판도 기능발휘를 하지 못한다. 하나밖에 없는 슬리핑백에 혼자 들어가며…, 운전 숙소 절차 다 어쩌지. 나만의 안위를 걱정하며…. 어, 이 남자 아프면 안 되는데…, 그래도 아마 견딜 수 있을 거야. 내가 아프면 더 골치 아프지. 양심까지 슬리핑 백 속에 처넣어 나는 '별 하나, 나 하나' 별 둘 도 세지 못하고 잠들었다.
2013년 7월 29일 월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