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7월 29일 금요일
전날, 루브르에서 압도 당했던 분위기
아마도 처음해보는 장거리 여행과 시차적응
누적된 피로감이었던 것 같다
어제의 원수를 갚는 마음으로
다시, 루브로로 갔다
아예, 문을 여는 첫새벽에 갔다.
대충 몇층 몇층에 무엇이 있는지
동선을 어찌 움직여야 하는지
화장실은 어디에 있으며
식당은 어디에 있고
어느 곳에 가면 쉴수 있는 벤치가 있는지 안다
사실 차분하게 한 작품씩 보려면
루브르만 일주일 코스로 잡아야 한다지 않던가
중세 성채의 유물을 지나
거대 오리엔트 이슬람 미술을 반지하층에서 보고
1층으로 올라가 유럽 조각 작품도 본다
일단, 사람을 바보로 만들던 '오디오 가이드'를 빌리지 않았다
오디오가 지시하는 대로 가지 않고
내 마음 내키는 대로
유명하든 안하든
내눈에 좋은 그림 앞으로 가니
시간도 공간도 구애받지 않고,
세상에 좋다
장 오귀스트 도미니크 앵그르 < 발팽송의 목욕하는 여인>
장 오귀스트 도미니크 앵그르 <터키탕>
우유빛 피부의 우아한 여인도 만나고
마음에 여유가 생기니
인심도 쓴다
"여보, 저 여자들 중에 한사람 찍어요"
어느 여자가 가장 괜찮으냐며
농담까지 한다
여유있게 벽면에 기대어
카메라도 들이댄다
마리 기유맹 브누아 <흑인 노예의 초상> 앞에도 서본다
샤를멜랭의 <로미의 자비>
딸이 아비에게 젖을 먹이는 성스러운 모습도 설명해준다
알브레히느 뒤러 <엉겅퀴를 든 화가의 초상>
자화상중 걸작이라 한다
관람하다가 눈도 피로하고 다리도 아프면
창가로 가고 밖도 내다보고
햇볕도 쬔다
하루 사이에 정신이 돌아왔다
르느아르가 루브르에 있는 작품중 가장 걸작이라 했다는
얀페르메이르 <레이스 뜨는 여인>
작품크기가 아주 작다
조각 공원에 나와 바람도 쐰다
아이와 엄마도 예쁘다
장례식 풍경 조각도 장엄하다
내가 여행중 가장 부러워하는 모습이다
선명한 카메라에 담지않고
곧 잊혀질 희미한 마음에 담지않고
손끝으로 그려내고
머리 속에 각인하는 스케치
그들이 여행중에 가장 부럽다
프랑스는 곳곳마다 어린아이들이 많다
아이만 나으면 돈을 주는 나라다
'아이가 희망'이다
가슴은 푹 파이고
머리는 한 갈래로 땋고
다리는 젓가락처럼 긴 여자와
빡빡머리 조리슬리퍼를 신은 남자
그냥 그들의 젊음도 부럽다
이 정도 객기쯤이야,
저 유럽여인들 한 트럭인들,
무에~ 대수냐?
조르주 드리루르 <속임수>
표정이 압권이다
풍텐블로 화파
<바브리엘 데스트레와 그 자매, 빌라르 공작부인으로 추정되는 초상>
앞에서 사진찍기 민망하지만
젖꼭지를 만지는 것은 임심을 했다는 뜻이라고 하니
그 또한 숭고하다
루이 14세 초상앞에 앉으니
루이 14세는 죽은 귀족이요
나는 살아있는 귀족이다
프란시스코 데고야 이루시엔테스 <카르피오 백작부인, 솔라나 후작부인>
이름이 길다
검은드레스, 흰쇼올
연어빛 살색
머리 위의 리본이 아름답다
그중 그녀의 시선,
친근감이 돈다
그녀는 나에게 시선을 고정시키고 바라본다
그 시선은 차갑고 따듯하다
무엇에 홀린듯, 거울보듯
차마
다른 방으로 발길을 옮기지 못하고 한동안 멈춰있었다
반나절은 그 안에서 그녀와 함께 놀았다
오히려 다른 관람객들이 나를 관람하고 있다.
관람객뿐 아니라 큐레이터도 구경한다.
서있는 자태
손모양 발모양
패션감각
기쁘지도 슬프지도 ...
도도하지만 결코 교만하지도 아니한
부인의 표정
그녀 앞에 매료되었다
그녀는 에스파냐의 역사와 민족성에 관한
희곡을 쓰는 '작가'이기도 했다
그녀의 병세로 인한 연약한 모습은
오히려 기품이 있다
아름답다
내가 본 루브르,
그 루브르 안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이었다
내가 닮고 싶은 여인이다
그녀와 함께 할 수 있어서
나를 압도했던 루브르의 횡포에서
비로소 벗어날 수 있었다
루브르가 내게 보상해준 선물이다
아~~~~~~~~
진정 말하고 싶다
루브르에 가면, 오디오가이드 따위는
절대 빌리지 않았으면 좋겠다
내멋대로
보이는 대로
발길 닿는대로
감상이 가장 속 편한 것 같다
작품에 대해 모르면 무슨 상관이야
내가 보는 것이 내 감상법이다
루브르, 구경 두번 잘했다
버스타고 돌아오며
바게트 빵 하나 사니
이제 부러울 것이 없다
가장 붐비는 카페에 들려 저녘식사도 했다
오늘은 밥을 안해 먹어도 된다
여자는 안이나 밖이나 밥걱정 안 할때
비로소 자유롭다
배도 부르고
해도 지고
파리는 10시가 넘어야 해가 진다
파란 잔디가 보이고 환한 것 같지만
밤늦은 시간이다
맥주까지 한캔 들이키니
만사가 다 귀찮다
에펠탑 앞에 벌렁 누웠다
술에 취하고... 파리에 취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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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7월 29일 금요일
7/29 금 <실용 낭만>
루브르
밥을 해먹기 시작. 식사 후, 바게트 사과 견과류, 비상초콜릿 등 싸가지고 다님
에펠 타워 잔디광장에 앉아 수다. 밤 10가 넘어 해가지는 나라, 낮이 길어 피곤한 나라.
새벽이 조용하고 거리카페에 비몽사몽 몽상가들이 부스스 앉아 있을 만하다.
전날 밤에 취했기 때문이다.
나는 지금 젊은 날의 사랑이 그리운 것이 아니라,
마음대로 산책하고 쇼핑하고 말하고
무덤덤한 맹물 맛의 사랑 있는 듯 없는 듯 자연스런 사랑, 편안함이 그립다.
'실용과 낭만 사이’
젊은 날에 안 오길 얼마나 다행인가.
아마, 그대로 그곳에 머물렀을 것 같다.
나이 들어 오길 얼마나 다행인가.
지팡이 짚고 어정어정 뒷걸음쳤을 것이다.
지금 여기 와서 얼마나 다행인가.
아직, 체력도 낭만도 돈도 말랑말랑 감성도 달콤하지 않은가.
아 ~ 아~ 좋다. 같은 에펠탑이라도 아침에 보는 것과 저녁에 보는 것이 다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