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귀족들이 살았다던 마레지구
보주광장을 나오며
이제, 여행 수첩을 가방에 넣을 시간이 다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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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주광장의 작별


여행, 파리는 여태까지 살아온 날의 보너스다.
내가 꿈꾸던 삶보다 꿈이 높은 곳에 도달했다.
‘축복’이라고 말하고 싶다.


집 떠나온지 19일,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하루라도 내가 없으면 안될 것만 같았던 집,
도서관, 나의 두 아들들, 연세 많은 우리아버님,
단 하나밖에 없는 란 화분.
그 무엇보다 대소가의 가족 구성원들.


여전히 하늘은 파랗고
나뭇잎들도 반짝반짝
수채화 빛 초록을 보여준다.


보주 광장 잔디밭에 내 옆에 누운 처자,
연인들의 기타소리, 책을 읽는 사람들,
이제는 익숙하여 어느 시선에서도 자유로울수 있다.


빅톨위고의 자료관은 문을 닫았다.
들리는 언어가 들을 수도 짐작할 수도 없는 불어라서 더 좋다.
만약 간간이 영어 단어라도 들렸다면
난 어쩜 또 소심하게 눈치를 봤을지도 모른다.


작별을 하기에 가장 적절한 곳,
이곳으로 많은 작가들이 문학기행을 온다.



사하로 몇 구역에서 ‘몽마르트르를’를 썼듯이
어디서건 글을 쓸 것이다.
공자에 머물지 않고
도서관에 머물지 않고
수필에 머물지 않고
‘3박4일’의 스케치라도
언저리 글이라도 완성할 것이다.
플로로그에서 에필로그까지.



오후 7시, 교회 종소리 잠시 후,
파리에서의 저녁 식사를 하고
나는 한동안 식탁에다 척척 추억을 발라먹을 것이다.
후식으로 파리의 향기 듬뿍 품은
 커피도 한잔하면서.


빅톨위고 자료관,
글을 쓰는한, 절대 잊지 못할 것이다


간판이 요란하거나 화려하지 않다.
그래도 세계사람들은 대문호 빅톨위고의 이름을 부르면서 찾아온다.
어디서든 진실은 진가는 숨어 있어도 빛이 난다.


다 벗어던지겠다.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또 뜬금없이 위대한 작가가 된 양,
가슴이 넓어진다.

뭔 놈의 호연지기가 이렇게 시시각각 발동을 한단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