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무렵
봉평의 '허브나라'이다
십여년 전에 왔었다
그때보다 규모와 컨셉이 많이 달라졌다
이태리의 요새처럼
도무지 있을 법한 곳이 아닌
산길을 굽이굽이 돌아 들어가면
왕궁처럼 나타나는 곳이다
비가 왔다
만약, 해볕 쨍쨍한 오후였다면
허브향에 취했을 것이다
윌컴투 허브나라
한련을 보면
괜히 기분이 좋다
새싹 비빔밥 위에
한련 두어송이 얹어 밥을 먹고 싶다
어린 사내아이 천사가 책을 보는 것도 좋다
돼지도 꽃 돼지다
요 녀석의 줄타기도 귀엽다
청동 구리의 장식도 그럴싸하다
드라이 플라워
프로방스 지역 라벤더의 고장 소오처럼
온 안팎이 꽃이다
이곳에 팬션이 있다
허브를 넣어 만든 음식들과 허브차와
허브향이 향기로운 곳에서
하룻밤 '한여름 밤의 꿈'도 괜찮을 성 싶다
가는 날이 장날 이라고
우산도 없는데 비가 온다
서양식 정자에 들어가 비를 피했다
곳곳에 몸을 가릴만한
작은 공간들이 있는데
20대의 아베크 족들은
내가 카메라를 들고 빤히 쳐다보는 데도
대놓고 뽀뽀를 한다
'참, 이쁜 모습이다'
오십대도 아직 틀니는 없으니
위험하지는 않다
훗닥! 쪽 한번하고
아닌 척,
우린 나란히 앉는 것으로 마무리
나는 '병'이다
가는 곳마다 감동할 것이 많다
쓰레기통이 이 정도면
국제적인 유엔에서 만방에 알려야 하는 것 아닌가
내가 버리는 쓰레기도 대접받는 기분이다
걷다가 비가오면
또 아무 곳이나 들어간다
문 안에서 "까꿍" 하고 내다보면
내 짝지는 "또 이쁜척!" 이라며 놀린다
내가 이쁜척이 아니라
그대가 이쁘게 보는 거다
착각은 자유다
그때 그시절 처럼
그냥 돌아 나오지 않고
따뜻한 허브차를 마시고 싶었다
연인들은 차값의 격이 아무리 높아도
반드시 어느 곳에 가면 그 분위기를 마신다
자판기 말고
자리에 앉아 메뉴보며 주문넣고 ...
나는 내 짝지에게 차 한잔 사달라고 했다
내가 밥은 살 수도 있지만
차 값은
꼭 그러고 싶었다
드디어
짝지가 차 한잔 주문했다
에구머니나! 민망해라
내것만 딱 한잔!
나는 마주앉아
그대의 눈빛을 바라보며 건배를 하고 싶은 거다
나의 그대는 차 마시는 나만 바라본다
아~ 2%
차 향기는 어디에서 찾을꼬?
나는 왜
매번 남편에게서 연인을 꿈꾸는가
부부는 그냥 가족이다
근친이다
허브나라의 허브는
마주 앉은 그대의 향기다
일상이 아닌
여행만큼은 연인들처럼 하고 싶다
터키식 전등이다
어둑어둑 저녘무렵
추적추적 내리는 비
봉평의 불빛
허브나라 불빛
아직 다 켜지 못한 내 가슴속의 불빛
내가 또 봉평을 찾게 된다면
나는 그 불빛을 찾아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