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랑주리 미술관>
이름이 예뻤다
"오랑주리" "오랑주리"
밑줄 친 부분을 옮기자면
'1927년 개관한 이래 약 50년간,
모네의 <수련>연작을 상설 진시한 것을 제외하면
오랑주리는 단기간의 임시 전시관으로 일반 공개되어 왔다.'
아마 서울 성북동의 <간송미술관> 처럼
꼭 보고자 하는 마니아 아니면
일부러 찾아 가지는 않는 곳이었던 것 같다.
'원래 오랑주리는
모네의 연작을 위해 지어진 미술관이다.
모네는 1918년 제1차세계대전의 종결을 기념하여
필생의 작으로 그려온 수련 그림 2점을 국가에 기증하게 된다.'
15구 우리가 머물고 있는
에펠탑 근처 버스정류소 앞이다.
시가지 도로가 시멘트로 되어있지않고
곳곳마다 돌을 깔아 놓았다
구 시가지의 운치가 고스란히 보인다
아침 햇살이 비추기전까지 선들하여 춥다
미술관이 있을 것 같지 않은 분위기이다
사진 몇장으로 표현할 수 없다
숨이 막혔다고나 할까
나만 그런 것이 아니라
1층 전시실에 들어서는 사람마다
소리없는 감탄
'~~~~~~'
감탄이 수면위로 물결친다
모네는
'장식이 없는 하양 공간을 통해 감상하게 할 것'을
조건으로 <수련>을 제작 했다고 한다
동쪽 전시실에는 아침 햇살 아래에서 감상해야 할 4작품
서쪽 전시실에는 석양 아래에서 감상해야 할 4작이 있다
지하 전시실로 내려왔다
르누아르 세잔 모딜리아니 마티스 피카소 드랭 수틴 위트릴로
이름 있는 미술가의 작품이 다 있다
루브르나 오르세처럼
사람에 건물에 작품에 기죽이지 않는다
조촐하다
그래서 편안하다
사과같이 오동통 발그레한 소녀들
르누아르 작품들을 보면 행복하다
포근하다
<피아노 앞의 소녀들>
이 그림을 보면
생각나는 사람이 있다
나는 멈춰서서 그녀에게 문자를 보냈다
기념품 숍에 들어가
모네 그림의 엽서와 몇가지 소품을 샀다
그중 실크에 수련이 프린트된
물빛 스카프를 샀다
일단 목에 두르고
다시 수련 전시실로 갔다
처음의 숨막히던 감동을 조금씩 내쉬며 돌았다
인물로 인해 작품이 가려지고
격이 떨어지지만
나의 메니저는
모네 작품보다 아내가 소중하다니 어쩌겠는가
--------------------------------------- 2011년 7월 30일 토요일
<오랑주리 미술관>
미술관에 들어서는 순간 숨이 멎을 듯하다.
모네의 ‘수련’ 쿵쿵거린다.
아마 그 광경을 어디선가 미리 보았다면
그렇게 숨이 차오르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곳에서 발걸음을 멈췄다.
한동안 앉았다가 섰다가
쿵쿵거리는 가슴을 쓸어내기다가
마음과 몸을 털버덕 앉아
숨 고름을 하고 나서 걸음을 옮길 수 있다.
세상을 다 살았다고, 세상을 다봤다고 말할 수 없다.
루브르나 오르세 같이 방대하거나 유명세로 붐비지 않는다.
아침 햇살에 보는 수련과
오후 햇살에 보는 수련의 방이 따로따로 있다.
자연광이다.
수련을 바라보는 사람들,
숨을 참았다가 내쉬고 내 쉬었다가 다시 참는다.
모네의 수련으로
아침의 맑고 신선한 공기를 들이마신다.
나만 그런가.
얼굴빛과 나이와 성별이 다른 사람들도
조용히 아주 고요하게 한동안 멈춰 섰다.
이 사람 저 사람 여행코스로 발자국 찍고 가는 곳이 아니다.
일부러 찾아오는 마니아들이다.
두 번째 방, ‘수련’ 석양인가. 좀 어둡다.
청색 느낌의 타원형 방. 네 개의 작품이 있다.
여기, 안 왔으면, 어쩔 뻔했을까
<수련> 앞에서
우리 아이들, 아니 우리 아이들의 짝지들 모두 보고 싶다.
그림을 지키는 검은 큐레이터 여인,
사실 썬그라스를 끼고 있어
지키는지 자는 건지 모르겠다.
오랑주리는 플래시만 터뜨리지 않으면
사진찍기가 가능하다.
한국 ‘리움’의 사진찍기 철통 방어는
프랑스보다 최첨단 최고다.
여기는 리움이 아니라 천만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