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선뎐

김점선 지음

 

점선뎐

 

 

파란만장, 엽기 만발, 독야청청 살아온 우리 세대의 화가 김점선

 

고통을 물감 삼아 인생의 환희를 그려낸 화가가 글로 그린 자화상

 

점선은 자신의 삶이 곧 예술이라고 온통 소리친다. - 신수정

 

김점선의 글과 그림은 단순하고 거침이 없다. 그 사람의 삶과 생각과 느낌에는 큰 긍정의 힘이 있다. 김점선, 나 잘났다. 라는 큰소리 뒤에 작은 결핍들과 옅은 그늘과 그리움과 외로움과 스스로 부과한 엄격한 삶의 조각들과 깊은 지혜가 고여 있다. - 김방옥

 

어떤 여자가 자기는 매우 개인적이며 독자적인 인생을 산다고 생각하면서 살았다.- 김점선

 

본문>

나는 처음부터 ‘유니섹스’하게 키워졌다. 돌잔치 상을 받고 붓을 치켜드는 사진 속의 나는 남자 옷에 남자 머리모양을 하고 있다. 나는 성이 혼돈되게 자라온 것이다.

 

배추와 인간의 나체는 뭐가 다른가? 배추는 태어나서부터 죽을 때까지 벌거벗고 있다. 사람 나체도 배추도 그저 용도와 디자인이 다른 두 물체일 뿐이다. 아주 어릴 때부터 인간들의 이상한 의식을 경멸하느라 나는 바빴다.

 

왜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죄에 물들어 나오고 수치스러워하는가? 한 번도 내 몸 자체의 디자인이나 내 생명체의 구조에 대해서 죄의식에 잠겨본 적이 없다. 허무는 느끼지만, 본연의 수치심은 없다.

 

한산섬 수학여행, 배가 심하게 흔들렸다. 나는 토한다.

진해 벚꽃 그들은 아름다운 꽃 구름을 보고 웃는다. 나는 토한다. 꽃나무 밑을 걷는다. 이 세상에서 흔들리는 걸 제일 싫어한다. 누운 채 구름 같은 꽃 무리를 바라본다. 메스꺼움이 평생 이어진다. 아무 데서나 메스껍다. 힘들기만 하면 그렇다. 흔들리는 배에서 이 세상의 모든 걸 흔들면서 토악질을 하고 있었다. 절대 고독을 느끼면서 가족 속에 앉아 있었다. 그것이 권태라는 걸 쉰도 넘어서야 알아차렸다. 늘 비슷한 정서에 잠겨서 일생이 흘러간다는 것도.

 

진한 분홍색 채송화가 듬성듬성 피었다. 굴뚝 뒤 내 채송화 밭으로 간다. 거기서 엉엉 울었다. 충격이 갑자기 온 것이다. 이겨낼 수가 없다. 그래서 나의 꽃밭에 가서 울었다. 고향 떠나서 처음으로 맞는 그 봄에. 그 엉성한 내 밭에 꽃이 폈다. 아주 짙은 붉은색이 나타났다. 나는 기뻤다. 내 꽃밭이 자랑스러웠다. 나는 색감을 중요시한다. 이 세상의 누구도 그 어린아이가 자부심에 가득 차서 ‘자뻑’하고 있다는 것을 눈치채지 못했다. 그것이 내 인생에서 첫 번째 성공이었다. 건강이나 번식, 번영을 밀어젖히고 선택한 짙은 색채. 탐미주의적인 예술지상주의적인 의식, 이런 복합적이고도 다면적인 정신 작용이 다섯 살의 인간에게서도 발견된다는 체험적 사례다.

 

경남여고쯤 다니는 우수한 학생들은 마땅히 슬픔도 뛰어넘는 냉철한 지성을 갖춰야 한다.

 

외할머니는 시집갈 때까지 밥 짓는 일이나 허드렛일을 배운 적이 없었는데도 시집가서 사니까 다 되더라고 했다. 그래서 우리 어머니를 키울 때도 집안일을 전혀 시키지도 가르치지도 않고 유쾌하게 행복하게 어린 시절을 보내라고 자꾸 말씀하셨다고 한다.

 

어머니는 조용히 나만 방으로 불러 내가 스스로 차근차근 자신이 한 일을 얘기하도록 했다. 처음에는 잘못을 뉘우치고 인간으로서의 수치심을 느끼다가, 나아가서는 잘못한 그 점만 고치면 나는 아주 훌륭한 사람이 될 수 있다는 자신감 때문에 울고 또 울었다.

 

어머니는 내가 원하는 것을 주저 없이 승낙했다. 어머니는 우리를 키우는데 아무것도 아낀 것이 없다.

 

내가 다 자라 바람이 나서 집 나가 어딘가에서 아이 낳고 살고 있는데 어머니가 몇 년 걸려 수소문해서 나를 찾아오셨다. 내 아이가 돌이 다 되었을 때였다. “아이고, 예뻐라!” “참 좋지?” “응”

 

나는 아직 내 양친의 생일을 기억하지 못한다. 어머니는 틈만 있으면 말했다. “나한테 효도할 시간 있으면 공부해라. 커서도 공부해라. 자신의 일을 열심히 하는 것이 내가 바라는 효도다.”

 

사춘기를 거치면서 여러 나라 시인들이 쓴 시를 읽고 그들의 생애를 알게 됐다. 수많은 시인이 후대가 없이 죽었다는 것을 알고 놀랐다. 죽은 시인들이 한없이 가엾게 느껴졌다. 그중에서도 아르투르 랭보가 제일 불쌍했다. 그러던 어느 해, 아버지 몰래 불어와 한자가 뒤섞인 지방을 썼다. 식구들 몰래 차례상 뒷다리, 안 보이는 곳에 붙였다.

 

나의 어머니는 내가 환갑을 무사히 넘기는 것을 보시고 나서, 안도의 한숨을 쉬시면서 눈을 감으셨다. 어머니의 시선을 평생 느끼면서 내가 살았다는 것이 나의 행운이었다.

 

어느 날 엄마가 날 조용히 불렀다. 자기는 시어머니가 되는데 시집 안 간 시누이가 집에 있으면 며느리에게 떳떳하지 못하다고 했다. 얼마후 나는 집을 나왔고 지금까지 집에 안 들어갔다.

 

대학시절 나는 늘 자신에게 질문하고 명확하게 대답하는 습관을 가지고 있었다. 나는 영웅주의적인 행동으로 꽉 차 있었다. 그런 생활은 대학을 졸업하고 대학원에서 제적당하면서 끝났다. 나는 무능해 보이는 데다가 오만하기까지 한 비호감의 대표주자였다.

 

대학을 졸업할 무렵부터 나는 머리에 빗질을 안 했다. 머리를 감고는 그냥 말리고 다녔다. 물론 미장원에도 안 갔다. 목욕탕에서 되는 대로 머리카락을 잘랐다.

 

그때까지 여자는 여자답고 남자는 모두 남자다웠다. 나는 누가 봐도 그들과 다른 세계의 사람이라는 걸 단박에 알 수 있게 옷을 입고 다녔다. 어쩌다 떼 지어 몰려가는 여고생들 속을 혼자 걷게 되었다. 그들은 끊임없이 재잘거리며 나를 두고 다투었다. “여자야!” “아냐, 남자라니까!” “일본 남자 아닐까?” 나는 유니섹스 모드의 가장 성공적인 표본이었다.

 

뛰어나게 못생긴 데다 성격마저 강해서 혹시 결혼을 해도 곧 쫓겨날 것이라고 부모님은 내가 어릴 때부터 걱정하셨다. 그래서 내가 전문직업을 갖도록 준비시켰다.

 

여자를 성공하게 못 하게 막는 장애물은 스스로 여자다움이다. 남자와 여자가 대등하게 사랑해도 여자만 임신하고 여자만 육아의 책임을 지게 된다.

 

내식으로 결혼하고 내식으로 산다

 

- 나이 서른이 넘도록 작가 지망생이라는 어설픈 이름으로 자신을 부르면서 집에서 빈둥댔다. 김상유 선배가 당신들 중에 돈 벌어서 물감 산 사람 있소? 자기 배를 자신이 번 돈으로 채운 사람이 있소? 나의 몸을 쓰고 책임지고 독립해서 스스로 사는 것이다. 서로 거울처럼 비춰보며 우리끼리 사는 것이다. 결혼은 씩씩하고 힘찬 생활의 시작이다.

 

내가 먼저 한 청혼 - 나는 초등학교 때부터 ‘선택의 기쁨’을 느꼈다. 필통이나 연필, 손수건 같은 걸 직접 내가 골라서 샀다. 나는 내 물건들에 긍지를 느끼면서 사랑했다.

 

드디어 첫 번째 노래가 끝났다. 순간 내가 큰 소리로 외쳤다.

“결혼하자, 나하고 결혼하자!”

그러자 그도 나만큼 큰 소리로 즉각 외쳐댔다 “좋다!” 장내는 아수라장이 되어서 소리 지르고 웃고 난리가 났다. 현장에서 청혼하고 그날 밤 가장 가까운 여인숙에서 같이 잤다. 그 후 20년 동안 함께 살았다. 그 청년의 성이 김가라는 것은 자고 나서 일주일쯤 후에 알았다. 나이가 나보다 세 살이 어리다는 사실도 그때야 알았다. 그래도 그가 가난하고 집도 절도 없다는 것은 자기 직전에 알았다. 그 사실만으로 그는 내가 찾던 나의 동반자이다. 어느 날 아무 말 없이 집 나와서 거리의 청년과 결혼했기 때문에 집에서도 나를 미친 사람으로 여겼다. 아무도 동정하지 않았다.

 

“그 사람은 누가 말려도 듣지 않아요. 자기가 하기 싫을 때까지 그냥 놔둬야 해요. 그냥 놔두세요.” 남편이 이렇게 나에 대해서 달관하기까지는 10년이란 세월이 필요했다. 그러나 나도 나이가 들어, 내 생명의 한계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하면서 가능하면 나의 힘을 내 그림에다 쏟으려고 애쓰게 되었다. 남편과 아들은 친구가 되어 어울려 놀고, 헤엄치고 여행을 한다. 그들이 따로 시간을 보내는 동안 나는 내 마음대로 내 시간을 쓴다. 그들이 오랫동안 바다로 헤엄치러 가도 나는 집안에서 그림을 그린다. 혼자 뒹군다. 혼자 산속을 걸어 다닌다. 그들이 바다에서 돌아와 상쾌하게 얘기를 한다. 나는 신나게 떠드는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그들의 체험을 공유한다.

 

집안 생활에서 그들이 결코 내게 커다란 짐이라고 할 수는 없다. 채 열 살이 안 된 아들도 빨래할 줄 알고 설거지도 하며 사과도 깎을 줄 안다. 우리는 세 명의 독신자가 한 집에 모여 있는 것처럼 누가 정하지 않았는데도 각자가 해야 할 고유한 일을 하면서 살고 있다.

 

단, 자기 담당이 아닌 일에는 완전히 무관심하다. 남편이 긴 여행 중에 고양이가 화분을 떨어뜨렸다. 산산조각이 났다. 그런 일은 남편의 일이다. 남편이 여행만 떠나면 우리 짐은 엉망이 된다. 무엇이든지 밟고 넘어다닌다. 그런 와중에 손님이 와도 우리들의 태도는 변하지 않는다. 깨진 화분이 널려 있지 않은 구석에 앉아서 손님과 얘기한다. 그는 매일 세수하고 면도하고 머리 빗고 목욕하고 집 안을 정돈하고 보이지 않는 곳까지 정리한다. 그는 옷을 단정히 입고 손님과 고분고분 얘기한다. 그래도 나더러 머리를 빗으라든지 옷을 바꿔 입으라든지 등의 얘기는 하지 않는다.

 

나는 내가 힘들어할 때, 스스로 즐거워하면서 나와 어울려 나를 행복하게 만들어준 사람들만 기억한다. 임신한 나는 부적응 무서움 정서적인 거부현상 등으로 평형을 잃고 있을 때, “우리 강아지 기르자!”라고 그가 말했다. 나는 웃었다. 나는 나에 대한 두려움에서 벗어나 금방 강아지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다.

 

아이에게 ‘맘마’‘찌찌’같은 유아어를 쓰지 않았다. 그냥 사람으로서 대했다.

 

아이가 만약 내가 그림 그리는 현장을 보면 당장 덤벼들어 엉망이 되리라고 생각했다. “이건 네 거다. 너는 거기다 그려라. 이건 엄마 거다. 나는 여기다 그린다.” 그 후 나는 무심한 척하며 그림을 그려나갔다. 그랬더니 저도 막 붓질을 해댄다. 아이는 노예처럼 아이 주변을 맴돌며 시중이나 들어주고 얘기 상대나 되어주는 엄마를 원치 않을 것이다.

 

결혼해라

- 드디어 상욱이가 대학에 들어갔다. 새벽 1시 반인데도 자기 방에서 전화로 여자친구와 얘기하고 있다. 벌써 며칠째 그러고 있다. “10분 내로 전화 끊고 거실로 나와라!” “더 얘기하고 싶지?” “응.“ ”밤새고라도 얘기하고 싶지?“ ”응.“ ”개도 내일 학교 가야 되지?“ ”응.“ ”낮에도 쭉 걔하고 있었지?“ ”응.“ ”안 되겠다. 걔도 잠 못 자고, 너도 그렇고. 니들이 떨어져 산다는 건 비극이다. 내일 당장 결혼해라.“

 

상견례라는 델 한 번만 나와주면 평생 아무것도 내게 원하지 않겠다고 애걸을 해서 거길 갔다. 결혼식도 한단다. 뭘 그런 걸 하나. 신부가 면사포 쓰는 게 평생소원이라나 뭐라나. 나는 30년 전에도 식을 안 하고 애 낳고 살았는데, 세월이 흘러도 지겹게 안 변하는 게 있구나. 나는 자랑스러운 미혼모였는데…. 동대문 시장가서 레이스를 샀다. 앙드레 김이 말했다. “우리 가게에 가져오세요. 꿰매 드릴게요.” 만삭인 며느리와 함께 세브란스 병원에 문병 갔다. 장영희가 소리쳤다. “그래! 윌리엄! 윌리엄!” 손자이름을 윌리엄이라고 지었다.

 

‘생각하지 마라! 오로지 그리기만 하라! “이것이 젊은 날의 김점선이 미래의 김점선에게 내린 지령이다. 자연사할 때까지 열심히 그림을 그리는 것이다. 이것이 나의 인생이다. 이미 나이 서른이 이르기 전에 이렇게 자신에게 정언명령을 내렸다.

 

책이 나를 품어주었다

 

- 나는 아주 성질이 나쁜, 항상 불만에 찬 아이였다. 맘에 차지 않으면 먹지고 입지도 않았다. 어른들이 아무리 잘해주어도 고마워하기는커녕 불평을 해대는 그런 아이였다. 어디서든 만족을 찾지 못했다.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부터 달라졌다. 성격이 확 바뀌었다. 조용해졌다. 사람들에게 무엇을 요구하지도 않았다. 책만 읽었다. 열두어 살 적 일이다.

 

나는 저항한다. 그리고 작업한다

- 창의성의 밑바닥에는 기존의 것들에 대한 저항. 기존의 사고체계에 대한 반항이 있어야 한다.

 

암 덩어리들이 내 몸속에 생겼다. 곧 그것은 나의 정신과 일치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생애는 저항과 반항으로 점철된 생애다. 예술가는 얼핏 보면 멋지고 훌륭해 보이기도 하지만 정신의 바닥은 반항과 저항으로 가득 차 있다. 마피아, 범죄자, 노숙자와 예술가가 일치하는 면이 있다. 기존의 예술을 완전히 긍정하면 새로운 예술이 생겨나지 않는다. 환갑을 넘겨서야 제대로 된 인간이 된 것이다. 이런 내 몸에 경의를 표한다.

 

꼬치꼬치 묻는 사람을 대하면 힘들고 싫어진다. 이를 대할 때도 그렇다. 그래서 그림물감을 살 때나 캔버스를 주문할 때면 경건하게 대한다. 절대로 값을 깎거나 하지 않고 신을 대하듯이 경건하게 처리한다.

 

안 캐묻기, 모른 체하기, 안 쳐다보기가 시작되었다. 원래 우리나라 예절에는 어른을 빤히 뚫어지게 쳐다보는 일은 예의에 어긋난다. 그래서 왕의 얼굴을 아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 서양사람들은 상대방의 눈을 주시하면서 말하는 것을 좋은 사람이라고, 솔직하고 당당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나 자신을 몰아갈 뿐이다

- 아무것이나 조용히 한참 쳐다보고 있으면, 난 그걸 그리고 싶어한다. 무겁고 큰 성질 사나운 황소를 몰아가듯이 나는 나 자신을 몰아갈 뿐이다.

 

변종하 화백의 부인은 맑고 깨끗했다. 욕심에 짓눌린 여자가 아니었다. 흔히 유명한 화가의 부인들은 남편이 해외에 드나들며 마누라의 코트와 장신구까지 사 들고 다닌다.

 

그래서 부인들은 희번덕거리는 잡색으로 혼란스런 모습이 되어버린다.

 

“지난겨울에 베게트가 죽었지요. 아무에게도 알리지 말하고 유언해서 아주 단순한 장례 절차만 밟았지요.”ㅋㅋ 이순신 “

 

“나도 그럴 거야. 나는 그저 손에 들꽃만 한 움큼 쥐여주면 좋겠어.“

 

“르누아르는 장미를 그리다가 잘 안 되면 장미꽃잎을 하나씩 따서 먹었대. 그렇게라도 하면 행여나 잘 그려질까 해서….” 그 그림 잘 그리는 그림쟁이도 장미를 먹으로써 혹시 손끝으로 장미가 나오지 않을까 기대했을까.

 

추상미술 “추상은 저절로 그렇게 되어가는 거야. 글씨를 아주 많이 쓰면 초서가 되듯이. 팔십에 이른 운보 김기창이 추상으로 접어드는 것 같이, 난 추상 그 자체가 이즘, 즉 어떤 운동일 수는 없다고 생각해. 처음부터 추상으로 출발하는 건 머리만 가지고 그림을 그려대는 일이지.”

 

암은 밖에서 보기엔 어머어마하다. 그런데 무섭지는 않았다. 암은 병균이 감염된 게 아니다. 내 몸속에서 스스로 돋아난 종유석이다. 그래서 나는 내 암조차도 사랑한다. (사리) 내 삶의 궤적이다. 피곤할 때 풀지 않은 피로가 쌓인 석회석이고, 굶고 또 굶으면서 손상된 내 내장 속에 천천히 새겨진 암벽화다. 수십 년에 걸쳐서 몸의 소리를 무시한, 야망과 과욕, 인문주의적인 편식에서 나온 독들이 저절로 만들어낸 퇴적층이다.

 

두 시간쯤 걸어서 산을 넘어 박완서 선생님 댁에 갔다. 선생님은 언제든 마당에 와서 쉬라고 말씀하셨다. 그 집은 오래전에 우리 가족이 살던 집이다. 특히 마당에는 내가 심은 풀들과 나무들도 남아 있다.

 

지천명

-쉰 살이 되려고 할 때 나는 ‘지천명’의 경지에 도달할 것이라고 잔뜩 기대를 하고 있었다. 일상생활에서 어떤 느낌만 조금 깊어져도 ‘아! 이건가?’ ‘이것이 하늘의 계시인가?“

 

나는 문화의 변방에서 홀로 책 읽으면서 남의 행적이나 구경하는 꼴뚜기였다. 그 들은 남의 황금을 많이 뺏어서 나라에 쌓아놓은 해적 조상을 둔 부잣집 도령들이었다. 나는 초라하게 눈깔 빠지게 책이나 읽어대는 자신을 바라보았다. 그러면서도 그들의 그 거들먹거림이 그 패기가 부러웠다.

 

생명의 아름다움

- 지난해 초겨울, 친구가 패랭이꽃 한 다발을 내게 주었다. 나는 신비한 아름다움만을 감탄하다가 죽을 운명이라는 것을 느끼게 됐다.

 

나의 유언장

- 나는 아이를 낳고 나서는 이 세상에서 내가 낳은 아이를 제일 무서워하면서 살았다. 혹시 그에게 내가 나쁜 영향을 줄까 봐 평생을 긴장하며 살았다. 아들을 비웃거나 빈정거린 말을 한 기억이 없다. 그런 정신 상태에 잠긴 기억도 없다. 나의 아들은 기억 속의 나를 종종 추억하면서 웃기만 하면 된다.

 

뚱뚱해져서 죽어라! 예술가들이여!

 

- 마티스처럼 지팡이로도 지탱할 수 없는 뚱뚱한 몸. 그래도 그의 마지막 작품은 모든 걸 바쳐도 아깝지 않은 걸작이다. 그렇게 해서라도 걸작을 남겨야 한다. 한 번이라도 예술가라고 불린 자라면 그래야 한다. 무언가를 아끼고 무언가를 조심하느라 주춤거리고 그러면서 좋은 작품이 나오리라고 기대하는 자는 예술가가 아닌 협잡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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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으면서 내내 통쾌했다. 때론 신바람이 나서 남편에게 소리 내 읽어 주었다.

 

부럽다가 존경하다가 상위 1%쯤의 사람에 대한 반감도 가졌다. 그래도 내내 통쾌했다. 혼자 생각해도 멋있다. 나는 결코 '김점선' 그런 배포와 예술성 열정에 근접할 수 없지만, 정욱이를 지혜를 예술하는 사람들을 인정하고 싶다.

 

그리고 폐병에 걸리는 것이 인생(정신적인 삶)에 그렇게 해가 되지 않듯이 특정 질병에 대한 생각도 치매만 아니라면 그렇게 나쁠 것 같지는 않다.

 

한 인간, 한 선배의 열정적인 삶을 숭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