즉 쑤고 있다.
급기야, 터지고 말았다.
5월부터 새로 맡은 프로그램에 강행군을 했다.
차츰 적응하고 익숙해지는데 개강을 하여
본연(한문수업)의 자리까지 몫을 다하자니 똥줄이 탄다.
'一期一會' (평생의 한번의 만남) 정신을 담고
매순간 최선을 다하려고 안깐힘을 쓰다가
드디어 물총을 쏘기 시작했다.
연이틀 한 스무방 정도 쫙!쫙~~~----------
이러면 안 되는데...
이제 가을학기 시작인데...
물에 밥을 말아 억지로 퍼 넣었다.
슬쩍이 시작된 설사가 맹물까지 쏟아놓는다.
난, 힘이 없는 듯 하면 '삼계탕'을 먹으면 보신이 잘 되는 편이다.
남편은 지난 주, 발톱이 살을 파고 들어가 엄지발가락 수술을 하여
붕대로 칭칭 쳐 감고 있다.
집에서는 내가 보호자이다.
아내가 아프다고 누워버리니 절뚝거리며 아파트 단지내 홈플러스에 가
닭한마리를 들고와 자랑스레 내민다.
삼계탕이 힘이 나는 음식임을 알기 때문이다.
이를 어쩐다.
도대체 '누가 끓이느냐'가 문제다.
토요일 일요일 꼼짝도 못하고 내곁에서 손으로 머리를 짚어보며 수발을 한다.
혹시 신종 인풀렌자일까봐 겁이 나는 모양이다.
아는가?
여자가 아플때 남편이 외출하면 얼마나 고마운지 ...
부럽다구~ ㅋㅋ
난 아프면 혼자 있고 싶다.
매 끼마다 있는 반찬 없는 반찬
평소에 안 먹던 밑반찬 마늘 콩잎 매실짱아찌까지 다 꺼내 한정식을 차린다.
다음 식사시간이 되면 또 다시 새 셋트의 그릇을 꺼내 차린다.
난 밥하고 물 밖에는 먹을 수가 없다.
아플때는 '미음'이 최고라고 한마디 했다.
그때서야 상황을 파악하고
생닭 한 마리를 치켜들고 반품하러 마트로 향한다.
난 그 사이 있는 힘을 다해 쌓아놓은 밀린 설거지를 했다.
남편은 미음을 끓이기 시작했다.
빨대로 빨아먹을 정도의 농도다.
또, 잣죽도 뽀얗고 멀겋게 고소하다.
주말 내내 '남편표' 죽을 먹었다.
월요일,
출근하며 식탁위에 죽한그릇을 끓여놓고 나갔다.
조금 된듯 하면서 고소한 맛이 더한 잣죽이다.
아파트 단지내에 남구문화원에 논어수업을 하러갔다.
가을학기 처음 개강을 하여 새 얼굴들이다.
처음부터 약골을 보이면 얕잡아보인다.
아닌척, 열성을 다했더니 목소리가 가려고 한다.
점심시간 막간을 이용해 죽집에 갔다.
녹두죽을 먹는데, 가격도 만만치 않다.
몇 숟가락을 뜨니 남편의 죽맛과 달라 안 넘어간다.
죽을 싸들고 1시부터 시작하는 어진샘 <문학교실>로 갔다.
이미 익숙한 님들이라 양해를 구하고 쉬엄쉬엄 단축수업을 하려고 했다.
사람들의 심리가 그런가보다.
내 꼬라지를 보니 시원치 않은 것이 꼭 오늘이 '마지막수업'이 될것 같은가 보다.
경험상 아플 때는 오히려, 시간을 더 초과하게 된다.
정신을 바짝차리고 운전을 하여 집에 오자마자 벌렁 누웠다.
남편이 쏜살같이 퇴근을 하여 '드르륵~' 쌀과 잣을 갈아 또 죽을 쑨다.
이왕 죽을 쑬 것이면 좀 넉넉하게 두끼정도 먹었으면 좋으련만,
저울로 잰듯 딱 한그릇만 기술적으로 쑨다,
맛 향 농도 모양까지... 죽집차려도 성공할 것 같다.
어둑어둑 찬바람을 막느라 목을 머플러로 동여 매고
단지내 쌈지도서관으로 수업을 하러갔다.
쳐진 눈꼬리는 더 내려앉고 입꼬리마져 쳐진다.
억지로 웃으려고 애를 써 봐도 자꾸 배를 움켜잡고 인상이 찌푸려진다..
"내가 수업을 하다 나가면 그냥 집에 갔는지 알아달라"고 말을 했다.
진작 전화로 알려줬으면 휴강할텐데 모두 민망하여 애가 터진다.
그 중 한분은
"오늘 수업하지 맙시다" 완강하게 말한다.
몸도 안 좋고 피부색도 안 좋다고 무조건 집에 가서 따듯하게 누워쉬라고 한다.
나는 말했다.
"선생님, 선생님은 내과의사도 아니잖아요!"
그 분은 성형외과 의사다.
겉모습만 볼줄알지 내 위속을 어찌 들여다 본만 말인가.
수강료를 받는 수업이라면 받은만큼만 진행하면 된다.
하지만 '나눔'의 수업은 그렇게 할 수가 없다.
무료라서 성의가 없다고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저녁 9시, 30분 수업을 단축하고 집에 오자마자 수면제 한 알 삼키고 잤다.
벌써, 닷새째
남편이 쑤어준 죽 한그릇을 먹고 해운대도서관으로 갔다.
이 사람 저 사람 각자의 전화가 있었으나,
요즘, 목소리 보존차원으로 받지도 걸지도 않는다.
오늘 따라 남편이 자꾸 전화를 한다.
절뚝거리며 죽쑤는 남편,
그 갸륵한 정성을 왜 모르겠는가.
죽쑤는 '생색'이라도 내려나싶어 무시했다.
또 전화가 왔다.
출근하다 보니 내 차가 이상이 있는 것 같다고 우선 가까운 수리점부터 가보란다.
겨우 겨우 힘겹게... 일부러 힘차게
또 시간초과 수업을 끝내고 수리점에 들렸다.
뒷 타이어가 펑크가 났다고 한다.
"이크!"
내 항문의 펑크보다 차의 펑크가 훨씬 무섭다.
위험하다.
낭의 생명까지 위협하다.
이제 막,
펑크 때우고 들어와 식탁위에 놓여진 죽 한그릇 먹고
이 글을 쓴다.
아~ 이제 펑크도 때웠겠다.
일단 지금부터 몇 시간 늘어지게 자보자.
저녁무렵 일어나면
하얀 쌀밥 먹고 싶다.
09. 9.15.
|
|
|
|
|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