촐랑생이
임창순
꽃밭을 만들었다.
올 초봄부터 창고를 헐어낸 자리에 만든 서너 평 될 꽃밭이다. 울안이 환하다며 모두들 잘했다고 하였다. 나도 50년 된 체증이 뚫린 것처럼 후련했다.
꽃밭이 스스로 균형을 잡더니, 수선화 개나리 유의 노랑에서 송곳니처럼 솟아난 함박꽃순과 동백꽃 철쭉 유의 빨강을 지나, 이제는 온통 초록이다. 장미 몇 송이가 박혀 있지만, 초록강세에 묻혀 있으나마나다.
그런데, 꽃밭 한가운데에 촐랑 솟아난 꽃나무가 있다.
50센티나 자라버린 줄기 아래쪽으로 풀잎무리가 3단층을 이루고 있다. 가장 아래층에는 9개, 다음에는 7개, 상단에는 8개의 풀잎이 원반처럼 대를 둘러싸고 있다. 불쑥 나타난 궁노루처럼, 문뜩 떠 있는 무지개처럼, 장마에 슬쩍 솟아난 고사리처럼 우뚝 서 있다. 상단의 원반 풀잎 위로는 줄기 따라 잎사귀가 붙었는데, 맨 꼭대기에는 꽃몽올이 달려 있다. 알 수 없는 풀이다. 뽑아 버릴까 하였으나, 잡초 취급하기에는 너무 귀공자답다.
무엇일까? 주변의 백합이며, 박하, 은방울, 창출, 분꽃을 제치고 올곧게 서있는 걸 보면 생명력이 보통 아니다. 바람에 흔들거리는 자태도 늠름하다. 별 생각 없이 혼잣말로 묻는데, 곁에 계시던 노친이 촐랑생이라고 일러준다.
촐랑생이라고?
나는 곧 인터넷 사전을 찾아본다. 없다. 한글학회에서 낸 큰사전을 편다.「촐람성이」가 있는데, 설명은「두여머조자기」에 가 있다.
『두여머 조자기 : 다년생 풀로 그늘진 곳에 저절로 나는데, 잎은 긴 잎대의 복엽으로 넓은 피침(披針)형, 두 세 잎이 전변(全邊)임. 봄에 옆의 잎에서 꽃꼭지가 나와 검은 자줏빛육수화서(肉穗花序)의 꽃이 핌. 열매는 붉고 아름다우나 독이 있어 모르고 따먹으면 입술과 혀가 부르틈.』
사람을 지칭하는「촐랑이」라는 말은 믿음직스럽지 못한 사람을 이른다지만, 식물 촐랑생이는 아주 곱고 듬직하다. 중통외직(中通外直) 하다 하여 주돈이(周敦頤)의 사랑을 받은 연꽃처럼 대가 곧고 아름답다.
도시에서의 모든 일거리를 놓아버린 나는, 이제 촐랑이한테서 배울 차례인 것 같다. 이제는 유랑을 멈추고 촐랑생이처럼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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