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가 되어 주실래요?
이태석 신부의 아프리카 이야기
생활성서 2011 증보판
여기 수단은 한국에선 볼 수 없는 정말 아름다운 것 두 가지가 있는데, 그중 하나는 너무도 많아 금방 쏟아져 내릴 것 같은 밤하늘의 무수한 별과 다른 하나는 손만 대면 금방 톡 하고 터질 것 같은 투명하고 순수한 이곳 아이들의 눈망울이다.
“청소년들과 함께하는 삶의 여정은 맨발로 장미 덩굴을 걷는 것과 같다.”라는 돈 보스코 성인의 말이 떠오른다. 청소년들과 함께 춤추고 노래하며 사는 삶은 겉으로 보기엔 장미꽃과 같은 화려한 사람처럼 보인다. 그러나 장미꽃에 감추어진 가시들처럼 항상 크고 작은 많은 어려움과 아픔을 그들과 함께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으면, 또 그에 필요한 인내심이 있지 않으면 그들과 함께할 수 없다는 것을 많이 느낀다.
“임신한 지 이삼 년이 지났는데 배도 불러오지 않고 아기도 나오질 않는다.”라고 불평을 하며 병원을 찾아오는 아낙네들, 이들은 폐경기에 있는 아낙네들이다. 폐경에 대한 지식이 없어 월경이 없는 것만 보고 2년이고 3년이고 계속 임신한 거로 착각하며 살아간다. 이렇게 가진 것 없는 단순한 그들이 삶이지만 신기하게도 우리가 쉽게 자질 수 없는 소중한 그 무엇이 이들의 삶에 배어 있음을 느낄 때가 많다. ‘삶의 맛’, 즉 ‘행복’이 그것이다.
10초 정도는 아무 말 없이 환자들의 눈을 물끄러미 들여다본다. 잠깐의 순간이긴 하지만 사살은 많은 대화가 오가는 진실한 순간이다. 눈은 마음의 창이라 했던가.
아픈 곳을 낱낱이 고백하고 싶어 하는 본성을 지닌 환자들이 의사 앞에 앉았을 때 눈이 어찌 진실하지 않을 수 있으랴!
사기꾼이나 강도 또는 살인범들에게도 제일 진실한 순간은 몸이 아파 병원에 가 의사 앞에 앉는 순간이 아닐까 싶다.
수단 아이들은 “기 브 미 어 펜!"하며 연필이나 볼펜을 구걸한다. 이들의 작은 외침은 배움의 권리에 대한 정당한 요구다.
아이의 눈을 보면 직접 이야기를 듣지 않고도 아이의 삶이 어떠했는지, 어떤 일들을 경험했는지, 얼마나 어려웠는지를 알 수가 있었고, 왠지 모를 무서움마저 들었다.
의자에 앉혀 놓자 처음엔 소리 없이 닭똥 같은 눈물만 흘리기 시작하더니 나중엔 주체가 안 되는지 서글프게 엉엉 울어 댔다. 한참을 울더니 묻지도 않은 자기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여러 가지 이유로 말미암아 정신적으로, 심리적으로 아파하는 청소년들이 우리 주위엔 참 많다. 그들에게 물론 심리 치료도 상담치료도 필요하지만 때로는 그냥 편하게 같이 있어주고 도가 넘는 왜곡된 투정도 아무 대꾸없이 받아 줄 수 있는 낙서장 같은 어른도 꼭 필요하지 않나 생각한다. 그냥 생각나는 대로 화가 나는 대로 부담없이 긁적이기도 하고 찢기도 할 수 있는 그런 낙서장 말이다.
우리가 고생할 줄 뻔히 알면서도 웅덩이가 있고 고개가 있어 쉽게 빨리 달리지 못하는 길, 때로는 진흙탕에 빠져 한참을 한곳에 머물러야 하는 길, 먼지가 나고 불편하기 그지없는 험한 흙길을 우리에 주시는 이유는, 좋은 길만 보면 탄탄대로라고 마음껏 달리고 마는 인간의 교만에 제동을 거는 것이 아닌지.
한번은 말라리아에 걸려 제대로 먹지 못하는 내가 안쓰러웠던지 같은 울타리에 사는 수녀님이 어디서 그 귀한 계란을 구해 그것도 두 개씩이나 깨서 프리이를 해 가지고 왔다. 생일도 아닌데 말이다.
고향은 장소보다도 마음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고향을 그리워하는 것이 인간의 본성이라면 천국을 그리워하는 것도 인간의 본성이고 그때가 가장 인간답고 아름다운 모습이 되는 순간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아이의 아버지가 누군지 모를 경우엔 아이가 분만되어 나올 때까지 기다리면 된다. 산통이 시작되고 분만이 시작될 때 산모가 아이 아버지의 이름을 크게 불러야 하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아버지의 이름을 솔직히 말하지 않으면 아이가 죽든지 산모가 죽든지 둘 중 하나가 큰 화를 입는다고 모두가 굳게 믿기 때문이다.
故 이태석
글쓴이 이태석은
살레시오회 수도 사제이자 의사로
아프리카 남 수단의 작은 마를 톤즈에서 그곳 주민들과 함께 지내다
건강 악화로 2010년 1월 14일 선종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