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도는 모두의 것

바다 스포츠계의 펑크록, 권위와 권력에 얽매이길 부정하는 서핑의 정신

제1085호
2015.11.04
등록 : 2015-11-04 20:28 수정 : 2015-11-08 11:23  













한겨레 21에 나온 기사를 퍼왔다
















김울프

학창 시절 뭐 그리 해야 할 일은 많고 하지 말아야 할 일은 많은지, 생각할수록 삶이 억울했다. ‘누군가의 간섭이나 통제 없이도 잘 살 수 있는데, 왜 시스템 속에서 평가받고 권위를 인정해야만 하는 것일까?’ 우연히 듣게 된 펑크록 음악의 ‘아나키즘’(Anarchism) 정신에 빠졌다. 아나키즘은 흔히 무정부주의로 번역되지만, 실제의 뜻은 탈권위주의나 반강권주의, 비권력주의라는 표현이 더 적절하다. 개인의 자유를 침해하는 어떠한 권력에 대한 부정을 뜻한다. 그리고 내가 생각하는 서핑은 아나키즘이 통용되는 멋진 장르다.

바다와 파도의 역사는 지구의 역사와 같다. 해수욕은 인류의 역사 내내 바닷가 놀이 문화다. 서핑은 세일링(sailing)과 마찬가지로 바다에 자신을 맞추어야만 겨우 움직일 수 있는데, 그 덕분에 살아 있는 지구와 함께 호흡하는 즐거움을 준다. 그 느낌은 황홀하고 중독적이다. 게다가 자연은 모두에게 입장료를 받지 않는다.

서핑은 오래된 놀이 문화다. 파도를 거슬러 고대로 넘어가야 우리는 그 기원을 찾을 수 있다. 고대 폴리네시아인들은 타히티에서 나무 판자를 타며 놀이를 했다. 이것이 하와이로 전파됐다. 아주 오랜 세월이 흐른 뒤 하와이에서 처음 서핑 클럽을 열었던 듀크 카하나모쿠에 의해 서핑이 대중화됐다. 듀크 카하나모쿠는 지금도 와이키키 해변에 동상으로 남아 있다. 그는 세계기록을 경신한 올림픽 메달리스트 수영 선수였다. 근대 서핑의 역사는 100여 년 정도이지만, 서퍼들은 1천 년 전과 같은 파도를 타고 있다.

많은 서퍼들은 서핑이 경쟁 스포츠로 제정되는 것을 반대한다. 이를테면 지난 10월5일 2020년 도쿄올림픽 시범종목으로 서핑이 추가됐는데, 많은 서퍼들이 여기에 동의하지 않는다. 세계적인 대회에 출전하지 않는 수준급의 서퍼가 많다. 특정 회사의 지원을 받고 활동하는 프로서퍼에 반대되는 개념으로 ‘프리서퍼’ ‘솔(soul)서퍼’라는 단어를 쓰면서 DVD 제작 등의 방식으로 이름을 알리는 서퍼들도 있다.

서핑 관련 행사의 지나친 상업화에 대해서도 염려하고, 대형 브랜드의 시장 진입을 막으려고 한다. 이를테면 ‘나이키 6.0 프로젝트’는 서핑, 스노보드, 스케이트보드, 웨이크보드, 스키, BMX 자전거, 6가지 익스트림 스포츠를 다루는 프로젝트였지만 2012년 프로젝트를 종료했다. 종료 원인에는 미국 내 액션스포츠 시장의 붕괴도 있겠지만 해당 종목 마니아들의 자발적인 활약의 파장이 컸다. 서퍼들은 특정 브랜드, 협회나 연맹의 이익 논리보다 서핑을 서핑답게 즐기는 것이 가장 우선이다.

많은 사람들에게 서핑은 스포츠나 레저 이상의 삶을 살아가는 방식이다. 외부의 기준을 따르기보다 자신의 기준을 따르며 스스로 성장하고, 바다에서 파도를 타는 사람들을 만나 교류하며 바닷사람이 되어가는 과정은 운동 기술을 학습하는 것이라기보다 삶을 대하는 태도를 바꾸게 한다. 가끔씩 만나게 되는 꿈같은 파도는 잊을 수 없는 것이 되어, 내일의 파도를 위해 스스로 노력하게 한다. 그러면서 자발적으로 바닷가를 청소하고, 많은 사람이 함께 즐길 수 있도록 서로 배려하고, 파도를 공유하며 바다를 더욱 멋지고 즐거운 공간으로 만들어나가고 있다. 그것은 처음부터 누군가 시켜서 한 것이 아니었고, 지금도 그 중심에는 보통 사람들이 있을 뿐 어떠한 특정 협회나 단체 같은 곳이 있지 않다.

현재 서핑의 인기는 국내뿐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어느 때보다 뜨거워 보인다. 국내 여러 매체에서 서핑을 주제로 한 프로그램이나 화보가 나오고, 웹사이트를 통해 세계 서핑 정보가 공유되며 전세계 서퍼들이 하나가 되고 있다. ‘보다 빠르게, 보다 높이, 보다 강하게’ 서핑은 진화할 것인가? 나는 서퍼들의 아나키즘, 집단지성을 믿는다.


김울프 프리랜서 사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