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 호수로 떠난 여행
류시화 / 열림원
먼 여행을 할 수 있도록 지도와 돈과 신발을 빌려준 이들에게. 그리고 나의 여행에 대해 “그만 말하고 이제 글로 쓰라”고 충고해준 아내에게.
차루는 정말로 인생에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처럼 보였다. 자긴 거라곤 홑바지밖에 없으면서도 언제나 밝고 익살맞았다.
“찰로, 찰로!” 빨리 내빼자는 뜻.
여행 가이드북에 40시간밖에 걸리지 않는다고 적힌 거리가 왜 그토록 오래 걸렸는가를 묻는다면 이렇게 대답할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그곳은 인도이나까!”
사팔뜨기 눈을 하고 허공을 바라보며 서 있자 그는 더는 말을 걸 필요가 없다고 느꼈는지 자전거를 타고 가버렸다. 인도 여행 중에 성가신 일이 생길 때마다 나는 이 방법을 쓰곤 했다.
나의 거짓말 금식 수행은 여지없이 깨지고 말았다. 배가 부른 것보다 스무 배 이상으로 마음이 불렀다. 그들이 사막 어진가에서 떠온 우물물은 사막 같은 내 인생을 축축이 적셔주고도 남았다. 밤이 깊어 다 찌그러져 가는 호텔로 돌아왔다. 내가 없는 사이에 주인이 문을 따고 들어와 내 배낭 검사를 끝낸 흔적이 역력했다.
가진 게 없지만, 결코 가난하지 않은 따뜻한 사람들의 토담집 위로 별똥별이 하나 둘 빗금을 그으며 떨어져 내렸다. 지상에서 살아가는 우리 역시 저 하늘 호수로부터 먼 여행을 떠나온 별들이 아닐까.
성자 한 명이 오렌지색 누더기를 걸치고, 성자는 버스에 타자마자 운전사와 심한 입씨름이 붙었다. 눈치를 보니 성자가 차비가 없는 모양. 성자는 설령 돈이 있다 해도 낼 수 없다는 당당한 태도였다. 인도 힌두 탁발승들은 지난 수십 년 동안 기차든 버스든 공짜로 타는 걸 자랑으로 여겨왔다.
당신은 무슨 일로 이것이 당신의 소유라고 생각하는가? 주인이 모자를 벗어 잠시 벽에 걸어 놓는다고 해서 그 모자가 벽의 소유란 말인가?
첼라(제자) 구루(영적 스승) 판(마약 성분의 씹는 담배) 치아가 온통 붉은색으로 변함.
북인도 대륙을 여행할 무렵, 음식이 입에 맞지 않아서 며칠 동안 식사다운 식사를 하지 못했다. 게다가 식당 주인은 바닥을 닦던 걸레로 테이블도 닦고 그릇까지 닦는 것이다. 그렇다고 매번 그걸 나무랄 수도 없었다. 그랬다간 또 무슨 훈계를 들을지 모를 일이었다.
인도인들은 대부분 손으로 밥을 먹는다. 왜 스푼을 사용하지 않고 더러운 손으로 먹느냐고 했다가 나는 된통 설교를 들어야만 했다. 누구의 입에 들어갔었는지도 모르는 스푼으로 먹는 것보다 자기 손으로 먹는 게 훨씬 위생적이지 않느냐는 것.
어린 도둑이긴 했지만, 자존심이 있는 아이였다. 오늘 뭐 좀 건진 게 있느냐고 물으면 “하지만 내일은 뭔가 훔칠 수 있을 거예요.” 비시누는 소매치기할지언정 다른 인도 소년들처럼 구걸은 하지 않았다. 자존심을 잃지 않는 아이였다.
비시누 여인숙은 북인도의 유서 깊은 도시 바라나시에서 가장 전망 좋고 싼 게스트하우스.
형형색색의 인도인들이 작은 거룻배에 올라타고 강을 건너고 있다. 마치 피안으로 향하는 인생의 항해처럼 느껴졌다. 그 뒤쪽 멀리에서는 화장터의 연기가 하늘거리며 피어올랐다.
바라나시 뒷골목은 전 세계에서 미로로 유명하다. 골목은 한 사람이 겨우 지나갈 정도로 폭이 좁고, 길가에 난 문들은 난쟁이가 드나드는 문처럼 성냥갑만 하다. 골목들은 엉킨 실타래처럼 이리저리 엇갈려 있어서 한 달을 그곳에 살아도 방향을 가늠하기 어렵다. 미로처럼 뒤엉킨 뒷골목에서 길을 잃은 덕분에 나는 20년 동안 인생의 출구를 찾지 못하고 헤맸다는 누명을 쓰고 말았다.
약속을 지키지 않은 건 내 잘못이에요. 하지만, 당신은 내 잘못에 대해 자신까지도 잘못된 감정에 휘말리는군요. 그건 어리석은 일 아닌가요?
약속을 지키지 않는 것보다 더 나쁜 건 감정에 휘말려 자신을 잃어버리는 일입니다.
버스 지붕에 올라타고 가다가 간혹 졸다가 떨어져 죽은 사람이 있다는 말을 들은 터라서, 나는 지붕 한가운데의 쌀자루 위에 걸터앉았다.
어디서 왔어요? 모두가 어찌나 호기심이 강한지 단 한 차례도 내게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핼로우, 스와미~!” 스와미는 명상 수행자를 부르는 말이다. 힌두 탁발승 하나가 저만치 강가에 담요를 걸치고 앉아 있었다. 구다리 바바였다. 구다리는 헝겊이란 뜻이고, 바바는 종교적인 아버지란 뜻이다. 누더기를 걸친 탁발승을 인도에선 그렇게 부른다. 통계로는 인도에는 저런 구다리 바바가 어림잡아 백만 명이 넘는다고 한다. 그는 구다리 바바답게 누더기 옷에 누더기 담요를 두르고 있었다.
그는 어디서 주워 모았는지 실 뭉치를 한주먹 꺼내놓고 담요에다 헝겊 쪼가리를 이어 붙이는 중이었다. 전생에 아마도 삯바느질 꾼으로 산 모양이었다. 나는 경멸의 시선을 담아 주머니에서 5루피를 꺼내 구다리 바바에게 내밀었다. 구다리 바바는 히! 하고 웃으며 얼른 돈을 받아 챙겼다. 그런 그를 바라보니 슬픔이 밀려왔다. 삶이란 것이 너무도 초라해 보였다. 히말라야의 성자들이라는 것 역시 커다란 환상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도 대륙을 내 집처럼 돌아다니다가 마침내 병이 나서 호텔방에 쓰러졌다. 이국땅에서 병이 나면 말할 수 없이 두렵고, 외롭고, 아프다. 몸도 아프고 영혼도 아프다.
오염된 물은 먼저 손톱 주위나 항문에 부스럼이 생긴다. 양치질을 한 다음에는 생수로 헹구지 않으면 수돗물 속의 병균이 잇몸을 붓게 한다. 만일 인도 여행을 갔다 온 어떤 사람이 자기는 아무 물이나 마셨어도 괜찮았다고 말한다면 그는 순전히 허풍을 떠는 것이다. 만일 인도 여행을 갔다 온 어떤 사람이 자기는 인도에서 한 달이나 있었지만 운 적이 없다고 말한다면, 그를 경계하라. 그는 이미 가슴을 어딘가에 팔아버렸을지도 모르니까.
그는 내가 차를 올라탄 다음부터 한순간도 내게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커다란 두 눈이 마냥 찌를 듯이 나를 쳐다보았다.
인도인은 얼굴이 아니라 영혼을 바라본다는 말이 있다. 그리고 인도인은 중간에 시선을 돌리는 법도 없이 사람을 끝까지 쳐다보는 것으로 유명하다. 한번은 영화를 보러 극장에 들어갔는데 왼쪽에 앉은 남자가 영화화면은 보지 않고 영화가 끝날 때까지 줄곧 나만 쳐다봤다.
내 마음과는 상관없이 마을에 멈춰선 버스는 도무지 떠날 기미가 안 보였다. 검문을 받는 것도 아니고, 차가 고장 난 것도 아니었다. 버스는 그렇게 그 자리에 30분이 넘도록 마냥 서 있었다. 하지만, 승객들은 아무도 불평하거나 이유를 알려고 하지 않았다. 한 시간이 지날 무렵 나는 그만 인내심을 잃고 말았다. 달리는 만원버스 안에서도 한 시간은 긴 시간인데 찌는 날씨에 이유도 모르는 채 무작정 멈춰 있는 것은 고역이었다.
삶이 정확한 질서에 따라 진행되고 있는데, 자신이 계획한 것보다 한두 시간 늦었다고 해서 불평할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저녁나절에 도착하기로 된 지차가 다섯 시간이나 연착하는 바람에 밤늦게 도착한 나는 무엇보다 숙소를 정하는 일이 급했다. 기차에서 내리자마자 백 명이 넘는 릭샤꾼과 호텔 호객꾼들이 우르르 몰려왔다. 시내에서 멀리 떨어진 싸구려 여인숙으로 데려가서는 턱없이 비싼 방값을 요구하는 게 그들이다. 인간이 만든 가장 뛰어난 건축물로 꼽히는 타지마할 때문에 아그라에는 전 세계 여행자들의 발길이 1년 내내 끊이지 않는다. 그래서 인도에서 호객꾼들의 등쌀이 가장 심한 곳도 바로 아그라이다.
아직 나이가 어리고, 자신감이 빠져 있고, 왠지 서툴러 보이는 릭샤꾼을 찾았다. 그는 감히 고참들을 따라 플랫폼까지 들어가지도 못하고 역 건물 밖에서 혼자 서성대고 있었다. “이다르 아이예(이리 오게)! 컴 희어!” 대뜸 이름부터 물었다. 식민지 시절의 영국 신사처럼 미리부터 제압을 하고 들어가자는 속셈이었다. 건물을 짓는 것을 여러 차례 구경한 적이 있었다. 도구라고는 세숫대야 같은 거로 자갈과 모래를 져 나르는데, 건축과정이 어찌나 허술 한지. (정말, 다들 그렇게 공사를 하고 있었다)
서둘러 짐을 풀고 곧바로 잠이 들었다. 꿈속에서 내가 자고있는 여인숙이 강물에 둥둥 떠내려가는 장면에 기겁하고 일어나니 어느새 아침이었다. (인도통, 류시화도 악몽을 꾸는구나!)
그날 아침나절을 나는 타지마할을 구경하는 것도 집어치우고 인드라를 찾아내 요절을 낼 생각으로 사방팔방을 찾아다녔다. 나중에 알고 보니 아그라에만 ‘인드라’라는 이름을 가진 릭샤꾼이 쉰 명이 넘는다는 사실을 알았다. 우리는 얼마나 자주 자신이 모든 걸 아는 것처럼 잘난 체하는가.
‘인도의 뒷골목’
이 지구의 동식물 중에서 ‘미루는 것’을 발명한 것은 인간뿐이다. 어떤 나무도, 동물도 미루지 않는다. 인간만이 미룬다. <구두가 없어도 인도에 갈 수 있다.> 그때 갔어야 하는 건데! 이미 때는 늦었어! 그들의 말처럼 이미 때는 늦었다. 그들은 고개를 숙인 채 가스실 문으로 끌려들어 갔다. 그리고는 영화가 끝이 났다.
영화내용 줄거리: 폴란드의 한 유태인 마을에 신앙심이 강한 삶들. 그들은 열심히 일했고, 자식을 키웠으며 가축들을 돌봤다. 그들의 공통된 소망은 죽기 전에 성지 순례를 한번 다녀오는 것이다. 올해는 꼭 성지 순례를 다녀와야지. 더 나이 먹기 전에……. 이번에 우리 집 소가 새끼를 낳으면……. 난 신고 갈 구두가 없어. 구두만 사면…. 나는 멋진 노래를 부르면서 가야지. 그런데 내 기타 줄이 끊어져서…. 얼마 후 독일군이 마을에 쳐들어왔다. 마을의 유태인들은 모두 집단 수용소로 끌려가야만 했다. 마을 사람들은 발가벗기온 채 가스실로 향하며…. 우리 집 소가 계속 새끼를 낳았는데…. 고무신을 신고서도 갈 수 있었는데…. 그냥 노래만 부르면서 갈 수도 있었거든. 이미 늦었다. (우리의 인생이라는 것이 지나간다. 이미, 아쉬움만 남은 체 죽음으로 치닫는다.)
영혼의 상실감은 흔히 이국땅에서 새벽 두 시경에 여행자를 방문한다고 하지 않는가.
기차는 떠나고
여행 떠나는 사람은 이불과 매트리스, 냄비, 들통 따위의 세간을 전부 챙겨 들고 기차에 오른다. 혹 백 영화엔 나옴 직한 양철로 된 큼지막한 트렁크도 필수품이다. 어디서 구했는지 커다란 트렁크를 대여섯 개씩 머리에 이고 등장하는 사람도 있다. 그리고 크고 네모진 가방 두세 개, 무엇이 담겼는지 알 수 없는 자루 한두 개, 영국 식민지 시절의 바부(서기)들을 흉내 내는 서류가방 한 개……. 인도에 처음 온 사람이 보면 모두가 빚을 떼어먹고 야반도주를 하는 사람들 같다.
철도청에선 역마다 ‘한 사람에 가방 하나!“ 라는 구호를 내걸었다. 왕복 70시간. 자리를 잡지 못하면 대비해서 바닥에 깔고 잘 매트리스도, 오가며 밥해 먹을 도구도, 인도의 기차에는 의식주가 다 함께 올라탄다.
집 없는 천민들과 거지들은 꾸역꾸역 역으로 몰려와 시원한 바닥에 쓰러져 잔다. 그 사이에 어떤 여행자는 재빨리 빨래를 해서 담장에 말린다. 그리고는 소가 빨래를 걷어 먹을까 봐 작대기를 들고 서 있다. 인도의 소들은 먹을 게 없으니 헝겊 조각이든 비닐봉지든 아무거나 먹어치운다.
누가 먼저 올라타나 내기를 하자는 식이다. 팔을 걷어붙이고 멈추지도 않은 기차를 확 낚아채는 청년, 그 뒤로 휘적대며 걷는 성자, 성자를 밀쳐대는 계집아이, 그 계집아이의 발이 딴죽을 거는 은행 관리, 밀치고 찌르면서 돌진해오는 순례자의 무리. 이들 사이로 소떼 들은 기차를 탈 것도 아니면서 콧김을 내뿜으려 밀려든다. 거기에 빠담(땅콩)과 기름에 튀긴 때묻은 과자들을 광주리에 이고 설쳐대는 장사꾼들, 난데없이 보자기 같은 검은 천을 얼굴에 뒤집어쓰고서 빼꼼이 내민 눈으로 승강구를 찾는 회교도 여자. 빨간 천으로 똬리를 한 쿨리(짐꾼)들이다. 쿨리들은 머리에다 매트리스 뭉치와 트렁크 두 개를 얹은 다음 양팔에 가방 두 개, 겨드랑이에 자루 하나씩을 껴안고서 적진을 향해 돌진한다.
인도의 철도는 전체 길이 6만 킬로미터에 달한다. 날마다 하루 1만 1천 대의 개관차가 다니며, 7천여 개의 역으로 9천만 명의 승객을 실어 나른다. 단일 회사로서 160만 명이라는, 세계에서 가장 많은 고용인을 거느린 것이 바로 인도 철도 회사다.
기차 예악은 1등 칸이나 에어컨 침대칸 2등 칸의 북새통과 아수라장은 멀리 아득한 곳에서 들리는 파리떼의 소음에 지나지 않는다. 또 그렇게 되면 감히 말하건대, 그것은 인도 여행이 아니다.
“여행의 백미는 기차 여행이고, 그중에서도 3등 칸 기차 안에 민중의 삶이 있다.”
인도의 기차는 너무 자주, 그것도 아무 데서나 선다. 그곳이 정거장이든 아니든 상관하지 않는다. 정지하는 이유조차 뚜렷하지 않다. 인도인들은 근처에 자기 집이 있다는 이유로 종종 비상 정지 케이블을 잡아당겨 기차를 세우곤 한다. 그래서 최근에는 비상 정지 케이블을 잡아당기는 사람에게 상당한 액수의 벌금을 물리고 있지만, 워낙 대륙이 넓으니 도망치면 끝이다.
기차가 이유없이 정지해서 한두 시간씩 기다려도 인도인들은 마냥 태평스럽다. 오히려 앞좌석에 앉은 이상한 외국 친구를 한두 시간 더 구경하게 된 것이 즐거운 표정들이다.
그의 부인 역시 기품이 있었다. 무엇을 물어도 미소 짓는 게 전부였으며, 함부로 대화에 끼어들지 않았다.
그들은 여행하러 온 사람들에게 ‘오늘은 뭘 구경했소?’라고 묻지 않고 “오늘은 뭘 배웠소?”라고 묻는다.
어떤 장소에 가거나 누구와 얘기를 하고 있는데, 언젠가도 꼭 한번 이런 상황이 일어난 것 같다는 느낌이 들 때가 있다. 이른바 데자뷔(가시감)현상이다.
바라나시 갠지스 강, 시체 태우는 연기, 물을 공중에 흩뿌리며 요가 목욕을 하는 사람, 뭘 사라고 소리 지르는 사람, 집단으로 몰려와 강물에 뛰어드는 순례자들, 카메라 셔터를 눌러대는 관광객들…….
“어디로 가든지 너무 자신을 이리저리 끌고 다니지 마시오. 한 장소에 앉아서도 많은 걸 볼 수 있으니까요”
인도, 인도인들은 정말로 손으로 음식을 먹을까요? 거리에선 요가 수행자들이 물구나무를 서 있을까요? 소를 숭배하는 나라라서 도심지 한복판에 소떼가 어슬렁거릴까요? 그들에게선 카레 냄새가 날까요? 갠지스강에서 시체와 꽃을 버리고, 또 그 물을 성수라고 마실까요? 이 모든 물음에 대한 답은 “예스”다.
바야흐로 인도 열풍이다. 인도는 더 이상 멀고 신비한 나라가 아니다. 그러나 인도는 결코 다가가기 쉬운 나라가 아니다. 열 번을 여행했지만, 인도는 여전히 내게 불가사의하고 신비한 나라다. 더럽고, 익살맞고, 황당하고, 고귀하고, 기발하고, 화려하다. 인간의 모든 고정관념을 깨부수는 것들이 뒤범벅되어 마술처럼 펼쳐진다.
그들은 먹을 것도 없으면서 아침마다 신에게 바친다며 강물에 우유를 붓고 푸웅부응 소라고동을 불어댄다. 가장 오래된 사원 전체가 남녀의 현란한 성행위 장면으로 조각돼 있는가 하면, 현대식 건물 벽에다 소똥을 말린다고 덕지덕지 발라 놓기 일쑤다.
눈에 눈물이 없으면 그 영혼에도 무지개가 없다.
어느 시각장애인의 자기주장 - “스무 살 때 난 스스로 결심했다. 진리를 깨닫기 전에는 결코 눈을 뜨지 않겠다고. 그래서 지난 40년 동안 한 번도 눈을 뜨지 않았다.
눈과 입 - 인도인들은 사람을 왜 그렇게 끝없이 쳐다보느냐는 질문에 “눈은 입으로 말할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은 걸 말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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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
‘하늘 호수로 떠난 여행’을 두세 번은 읽었던 기억이 난다.
읽으면서 마치 고향의 풍경처럼 편안하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인도에 가고 싶다는 생각은
단 한 번도 하지 않았었다.
막연히 어릴 적 이발소에 걸려 있는 풍경화처럼
마음 한구석에 걸려있는 풍경일 뿐이었다.
지난겨울, 자석에 끌리듯
문득 ‘인도’에 가고 싶었다.
다녀와서 다시 책을 읽으니 낡은 풍경화가 아니다,
인도는 펄펄 살아있는 사진처럼 선명했다.
본문에서 나왔듯이
'구두가 없어도 인도에 갈 수 있다'
즉흥적인 여행지 선택과 실천에
지금 다시 생각해도 잘한 짓이다.
내년에 다시 가라고 하면,
나는 아마 '이러저러하다, 저러이러하다 ... ...'
어떠한 핑계라도 대어 가지 못할 것이다
길지않다
남은 여생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