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섬에 내가 있었네


사진. 글 김영갑
Human&Books 2010


신께서는 희망이라는 물건을 크고 번쩍이는 곳이 아니라 작고 보잘것없는 곳에 숨겨놓으셨다.
누구나 볼 수 있는 곳에 걸려 있는 희망은 선망에 가깝다.
선망은 너무도 쉽게 욕망으로 변질하고 만다.

이젠 끼니를 걱정하지 않는다.
필름 값을 걱정하지 않아도 될 만큼 형편이 좋아졌다.
그런데 카메라 셔터를 누를 수 없다.
병이 깊어지면서 삼 년째 사진을 찍지 못하고 있다.
끼니 걱정 필름 걱정에 우울해하던 그때를, 지금은 다만 그리워할 뿐이다.
온종일 들녘을 헤매다니고, 새벽까지 필름을 현상하고 인화하던 춥고 배고팠던 그때가 간절히 그립다.

끼니는 걸러도 꿍쳐 둔 돈을 톡톡 털어 일 년에 한 번씩 개인전을 가졌다.
누구를 위한 전시회가 아니라 나 자신을 위한 것이었다.



울적한 날에는 바느질을 -
바느질에 열중하다 보면 혼자라는 사실을 잊을 수 있어서 좋다.
불안하고 초조한 마음을 달래야 할 때는 바느질감부터 찾는다.
울적한 날은 바느질이 최고다.



지키지 않아도 좋을 약속 -
섬에 둥지를 튼 순간부터 외톨박이로 지냈다.
서울을 떠나기 전에 맺었던 인연들마저 모질게 끊었다.
섬에서 지내는 동안 알게 된 사람들도 의도적으로 피했다.
작업할 때는 예외였지만, 외박만은 절대 하지 않았다.
생활 리듬이 깨지면 사진 작업에 지장이 생긴다.



오름에서 맞는 오르가슴 -
꿈속에서 모정을 경험하듯 자연 속에서 오르가슴을 경험한다.
신선한 공기, 황홀한 여명, 새들의 지저귐, 풀 냄새, 꽃향기, 실바람….
벌 나비는 꽃향기를 따라 날갯짓한다. 자연이 인간에게 베푸는 축복이다.
오르가슴을 경험한 이는 자연을 떠나지 못한다. 이제는 도회지로 돌아갈 수 없다. 그런 것을 경험할 때마다 점점 자연에 매혹된다.
초원과 오름과 바다를 홀로 거닐면, 나의 영혼과 기억 그리고 자연이 하나가 되어 나의 의식 속으로 스며든다. 그럴 때면 훌륭한 사진을 찍어야 한다는 간절한 바람도 사라진다.
산은 요사스러워서 사람을 홀리는 법이여, 한번 흘리게 되면 절대로 산을 떠나지 못해. 산에 맛붙이고 인생 망치지 않은 놈 못 봤어.



뭍의 것들, 육지 것들 -
십 년을 줄곧 섬에서 생활했어도 나는 여전히 뭍의 것들에 속했다. 섬 것들 속에 포함되려면 삼대가 지난 뒤에라야 자연스레 스며들 수 있단다.
섬사람들은 봄이 되면 울안의 소들을 넓은 초원으로 내몰아 풀어놓고 기른다. 노인은 손자 놈을 동무 삼아 소를 보러 간다. 한라산 저편에 바람꽃이 핀다. 그러면 할아버지는 큰 바람이 몰려 올 것을 알고 소들을 방풍림이 있는 풀밭으로 몬다.
정보를 위한 사진이라면 오히려 동영상이 효과적이다.

난 사진에 제목 붙이는 것을 거부한다.
감상자의 상상력을 제한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설명할 수 있으면 글로 표현했을 것이다. 설명할 수 없기에 사진으로 표현하는 것이다.
사진은 이미지다. 박제된 동물이나 새가 아니다. 숲의 분위기를 사진으로 표현하려 한다.
사진도 보는 사람에 따라 느낌이 달라진다. 나 자신을 위해 찍는 사진이 아니라 보는 사람을 위한 사진이다. (글도 독자를 위한 글이 되어야 한다.)



아름다움은 발견하는 자의 몫 -
시인은 단어 하나로 몇 달을 아파하고, 화가는 선 하나로 몇 년을 아파한다. 그런데도 사진가는 셔터 한번 누르기 위해 며칠 기다리다 이내 운이 나쁘다고 투덜거린다.
사진 장비만 한 짐 챙겨와서 하나같이 기가 막힌 순간이 오기만을 기다렸다. 비싼 카메라를 가졌다고 좋은 사진을 찍는 것이 아닌데도 카메라 자랑에 여념이 없고, 지명도 있는 사진가가 무슨 카메라고 좋은 작품 찍었다면 당장 그 카메라로 관심이 옮겨갔다.
마라도는 바람이 유명한 섬이다. 그 점을 고려하지 않고 대형 카메라를 가지고 오는 사진가들이 있다.
아름다움은 어디에도 존재한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아름다운 곳을 찾아 해외로 나간다고 아우성이다.



떠나보내는 심정 _
나는 늘 떠나는 사람이었기에 떠나보내는 사람의 심정을 헤아리지 못했다.
오붓한 삶을 꾸려갈 수 있는 이상적인 터전이었지만 평화로운 마을에 관광객들의 발길이 이어지면서 불협화음이 잦아졌고, 사람들도 서서히 변해갔다. 관광객들은 섬을 떠나면서 마음의 평화를 한 움큼씩 가슴에 담고 갔다. 그러면서 자신들이 가져왔던 도회지의 스트레스를 몽땅 섬에 남겨놓고 빠져나갔다.
평화롭고 범죄 없던 마을에 인정이 메말라가고, 이웃 간의 살가운 정도 희미해졌다. 배고픈 시절 서로 돕던 이웃들이 등을 돌리고 언성을 높여갔다.



다시 마라도 -
마라도에는 특별한 볼거리는 없다. 마라도는 느낌의 섬이다.
누구도 떠돌이의 넋두리에 귀 기울이지 않았다. 욕망처럼 무서운 것은 없다. 만족할 줄 모르는 것보다 더 큰 어리석음은 없다.
시절이 변하면 사람도 변한다. 사람이 변해도 변하지 않는 것이 무엇인가 건물도 도시도 오래되면 늙기 마련이다. 그리고 늙으면 죽는다.
사람
들은 벼르고 별러 비행기 타고 배 타고 마라도에 온다. 최남단 기념비 앞에서 사진을 찍고 해녀들이 따온 소라나 전복을 먹는다. 보이는 것이라곤 하늘이요 바다다. 섬에서만 느낄 수 있고 생각할 수 있는 것들에 대해서는 관심 밖이다. 한 시간도 안 돼 수평선이 답답해서 유람선 타면 마이크 잡고 노래하고 춤을 출 궁리를 하며 술을 마신다. 마을 한복판에서 흥에 겨워 어깨춤을 춘다. 흥에 겨우면 최고다. 어렵사리 곗돈 모아 떠나온 여행이다. 살아생전 두 번 다시 못 올 여행이기에 본전 뽑기 위해서라도 술 마시고 노래하고 춤춘다. 원 없이 놀아야 직성이 풀린다.



내 삶의 길라잡이 -
노인들은 살아 움직이는 제주도의 역사다.
제주의 노인들은 죽음을 맞이하는 순간까지 자기 몫의 삶에 치열하다. 자식들에게 의지하지 않고 자기 몫의 양식을 스스로 해결하는 노인들을 통해 나는 해답을 찾곤 했다. 온갖 두려움과 불안, 유혹 따위를 극복하고 삶에 열중하는 섬의 노인들은 나의 이정표였다.



동백꽃은 동박새를 유혹하지 않는다. -
사나흘 계속된 세찬 바람에 동백나무 가지들이 부러졌다. 그 꽃이 아주 아름다워 작은 항아리에 물을 채우고 동백꽃 가지들을 꽂아 창가에 놓았다.
아무 일도 하지 않고 며칠을 보냈다. 동백꽃을 바라보며 상념에 젖어들었다. 지난날의 난, 다른 꽃들처럼 서서히 시들지 않고 때가 되면 송이째 뚝 떨어지는 동백꽃처럼, 나도 그렇게 살겠노라 다짐하며 흔들림 없이 한 길만을 걸었다. 돌이켜보면 적당히 시늉만 했을 뿐이다. 열심히 하는 척하며 나 자신에 취해 젊음만 허비했다는 자책감에 우울한 생각마저 들었다. (어느 사진작가의 사진보다 진솔한 이야기 ‘기도문’ 따로 없다. 聖書와 같다.)


남들이 인정할 때까지가 아니라, 나 자신이 만족할 때까지 몰입해보자.
신문과 방송에 몇 번 이름이 오르내리다 보니 서울 나들이할 일들이 계속 이어져 한 해를 정신없이 보냈다. 나도 모르게 한눈을 팔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분명히 딴 짓을 하고 있었다.
며칠 동안 작업을 중단하고 어떻게 해야 할지 궁리하였다. 당장 전화부터 없애버리자. 사람들과의 만남을 줄이고 철저하게 혼자가 되자. 처음에 그랬듯이 외로워지자. 외로워야 작업에만 전념할 수 있다. 시작할 때의 겸손함으로 되돌아가야 한다. 긴장을 풀었던 것이 잘못이었다.

겨울답지 않게 따뜻했다. 미음이 답답해 창문을 열었다. 이 생각 저 생각하디 언뜻 잠이 들었다. 얼굴이 시려 눈을 떴다. 동백꽃 다발에서 뭔가 푸드덕 날아올랐다. 동박새였다. 참새의 반밖에 안 되지만 내겐 너무나 아름다운 새다.
새가 움직일 때마다 느껴지는 체온이 내 심장을 두근거리게 했다. 새의 깃털을 볼에 비비고 머리에 입을 맞추고 손바닥을 폈다. 잠시 망설이는 듯하더니 새는 열린 창문 밖으로 포르르 날아갔다. 안녕, 동박새야.

들판의 야생화들을 한 다발 꺾어 병에 꽂아두면 벌과 나비가 찾아들었다. 내 사진도 그래야 한다. 소란스럽게 떠벌리지 않더라도 말없이 감동을 전해줄 수 있다면 한 사람 두 사람 사진을 보러 찾아올 것이다.
평론가와 큐레이터, 수집가에게만 인정받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에게 감동을 줄 수 있는 사진을 찍어야 한다. ( 수필도 마찬가지)

전화를 반납했다. 어떤 편지에도 답장을 쓰지 않았고 사람들을 만나는 것도 피했다. 외로움 속으로 나 자신을 몰아갔다. 외로움을 잊으려고 온종일 들판을 걸었다. 그러다 문득 감동이 느껴지는 순간이면 사진을 찍었다. 사진찍기 그 자체를 즐기고 싶었다.
최고로 황홀한 순간은 순간에 사라지고 만다. 삽시간의 황홀이다.
동박새는 모른다. 동백꽃을 피우기까지 나무가 견뎌낸 고통의 시간을…. 동박새는 기억하려 하지 않는다. 눈, 비, 바람, 가뭄, 혹한과 무더위를…. 동박새는 꽃이 떨어지면 동백꽃을 기억하지 않는다. 동박새는 다음 해 동백꽃이 피어야 다시 올 것이다.



혼자 부르던 노래마저 그치니 -
사진가는 사진으로 이야기하면 그만이다. (글 쓰는 이는 글로 이야기하면 그만이다) 부족한 부분에 대한 부연 설명을 장황하게 늘어놓게 되기 십상이다. 난 언제나 전시장에서 작품에 대한 설명을 늘어놓지 않았다. (바로 이것, 작품마다 쫓아다니며 설명할 수 없다.)
제주도청에서 작품을 철수한 날 방에도 그러고 싶었다. 우울할 때면 자주 찾는 나만의 비밀 정원에서 그날도 노래를 부르려고 했다. 노래를 부르는데 갑자기 호흡이 힘들었다. 심호흡을 하고 다시 한번 시도했다. 목소리가 기어 들어가고 숨이 찼다. 처음 겪는 일이었다. 평상시처럼 큰소리로 노래할 수 없었다.
그날 이후, 감기도 아닌데 기침이 심해지고 침을 넘기기도 어려웠다.
어떤 때는 침 때문에 기도가 막혀 애를 먹기도 했다.
문제는 그뿐만이 아니었다. 이유없이 허리가 몹시 아팠고, 뒷목이 당기고 목을 움직이기가 불편했다. 의사 말로는 운동부족이라고 했다. 직업이 사진가라 운동량이 많다고 하자 의사가 웃으며 “카메라 메고 걷는 것은 운동이 아니라 노동입니다.”
뜬금없이 손이 떨렸고 잠자는 도중에 종종 다리가 마비되었다.
정확한 병명도 치료법도 모른 채, 내 몸은 그렇게 서서히 굳어가기 시작했다.



어둠 속에서 길을 잃다 -
눈만 뜨면 카메라를 메고 나갔던 그 십수 년간, 나는 지독하게도 가난한 사진가였다.
냉골에서 오래 지내온데다 먹는 것도 시원찮았으니.
생전에 듣도 보도 못한 루게릭병, 치료약도 없이 죽음을 기다리는 고통을 누가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
원인도 알 수 없고, 그래서 치료약도 없는 퇴행성 질환이다.
버려야지 하면서도 버리지 못하는 것이 미련이다.
새로운 치료에 전념하는 동안 그런 설렘 뒤에 기다리고 있을 막막함이 이제는 싫어졌다. 벌써 몇 년째 설렘과 막막함 사이를 맴돌았다.



몰입의 황홀함 -
모두 불가능하다고 만류했지만 사진 갤러리를 만들고야 말겠다는 내 의지를 꺾지는 못했다. 만일 처음부터 완성을 생각했다면 시작도 못 했을 것이다. 그저 오늘 하루만, 한 주만, 한 달만, 내 힘이 닿는 데까지만…
나는 이제 더는 사진을 찍을 수 없다. 손가락 힘이 없어 셔터조차 누를 수 없기 때문이다.
온종일 누워만 지내기에는 하루가 너무 길다. 사진을 찍을 수 없는 하루는 너무 더디 간다.
침대에 누워 우울해해도 하루는 간다. 무언가에 몰입할 수 없는 하루는 슬프다. 나에게 허락된 하루를 절망 속에서 허무하게 떠나보낼 수는 없다.


브레이크 안 밟고 운전하는 것 같은 이 상황,


거동 불편한 몸으로 힘든 노동을 마다치 않는 노인들처럼 움직일 수 있을 때까지는 일해야 한다.
형제들이나 이웃들에게 짐이 되지 않도록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 모든 것을 체념하고 싶었다. 산다는 것이 견딜 수 없는 고통이었다.
나는 거울을 보지 않는다.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이 싫다. 달빛에 드러나는 그림자마저 미이라의 모습이다. 내 몸 어디에도 근육이란 없다. 감출 수 없는 손발과 목, 얼굴은 뼈만 앙상하다.
런 내 모습을 보고 관람객들은 눈물을 글썽인다.
입장료를 받아야 한다며 도청으로 군청으로 방범을 알아봐 주기도 한다. 찻집을 만들어라. 자판기를 들여놓아라. 후원금 함을 설치하라며 관람객들이 더 안타까워한다.
나에게 내일이란 기약할 수 없는 시간이다. 허락된 것은 오늘 하루뿐,

하나에 몰입해 있는 동안은 통증을 의식하지 못한다. 또 다른 하루가 허락되면 또 다른 일을 찾는다. 몰입할 수 있는 일은 끝이 없어서 찾으면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유효시간 -
사람들이 먹을거리에 신경을 쓰면 나는 필름에 온 신경을 집중한다.
김영갑 갤러리 두모악, 두모악은 한라산의 옛 이름이다. 길가에 이정표 하나 세우지 않아도 물어물어 찾아오는 사람들이다. 두세 번 허탕을 친 끝에 간신히 찾았다는 사람도 있다.
돈으로 환산한다면 그동안 제주에서 찍은 사진의 필름 값만 따져도 족히 이삼억은 될 것이다.
병원에서 루게릭병 진단을 받고 내 생의 유효기간이 정해졌을 때, 내가 죽고 나면 그것들을 나만큼 사랑하고 아껴줄 사람이 어디 있을까.
나의 유효 기간은 이제 사오 년밖에 남지 않은 것이다.



기다림은 나의 삶 -
70킬로그램이 넘던 몸무게가 47킬로그램으로 줄었다. 머리카락이 모두 빠져나가 몇 가닥 남지도 않았다.
나는 결단을 내렸다. 어떤 치료도 거부하기로 했다. 나는 내 방식대로 치료하기로 했다. 낮에는 충분히 휴식을 취하고 밤이면 걷기 운동을 했다.
바람이 심하거나 비가 세차게 내려도 걷기 운동은 빼먹지 않았다. 조금은 더 버텨야 한다는 의지로 이를 악물고 걸었다.
병이 깊어갔고 나는 혼자가 되었다. 지인들의 발길도 전화도 뜸해졌다.
건강이 나빠지지 않았다면 밤늦도록 사진 작업에 매달렸을 테지만 이젠 한가로운 일상에 익숙해졌다. 루게릭병이 내게 준 선물이다.



단 한 번도 사랑한다 말하지 못했다 -
이 핑계 저 핑계를 대며 형제들의 갤러리 방문을 거절했다. 중환자로 변해버린 내 몰골을 확인한다면 이것저것 간섭하고 구속하려 들 게 뻔하다.
서먹서먹한 형제들과의 만남은 그만큼 곤혹스러웠다.



누이는 말없이 나를 길들였다 -
형들 모르게 누이는 용돈을 찔러주고 반찬을 날라주고 빨래도 해주었다. 누이만큼은 나를 설득하려 들기보다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그런 어머니 같은 누이에게 나는 단 한 번도 동생 노릇을 해보지 못했다. 그런데도 누이는 원망이나 야속함을 내비치지 않았다.
지낼만하다고 위로 전화를 해도 누이의 눈물은 마르지 않았다.
나는 누이가 부담스러웠다.
그래서 내 방에 있는 전화기를 없앴다. 휴대폰도 밤에는 꺼버렸다.
마음 편히 지내다가도 누이를 생각하면 마음이 우울해진다. 내가 누이 때문에 괴로워하듯, 누이도 나 때문에 괴로워할 것으로 생각하면 늘 마음이 무겁다. 누이를 떠올릴 때마다 결혼하지 않은 것을 다행이라고 여기며 위안한다.
게으름을 피우거나 한눈을 팔다가도 누이를 떠올리면 제자리로 돌아올 수 있었다. 누이는 말없이 나를 길들였다. 전업 작가는 자유롭다. 자유로운 만큼 자기 관리가 힘들고 조금만 방심하면 허송세월을 보내기 십상이다. 그런 나를 누이는 늘 긴장하게 하였다. 고집스럽게 한 길만을 갈 수 있게 늘 일깨워주었다.



여우와 두루미의 식사초대 -
숟가락질이 마음대로 되지 않아 밥을 흘려도 모른 척해주었다. 그래서 선배 부부와 함께하는 저녁 식사는 부담없이 즐거웠다.
세수는 안 해도 견딜 수 있지만, 양치질만은 건너뛸 수 없다. 두 손으로 칫솔을 잡고 무릎에 고정한 다음 고개를 흔든다. 어렵게 칫솔질이 끝나면 그다음 헹궈내는 것이 문제다. 양치컵을 두 손으로 들 수가 없으니 물을 반쯤 채운 컵을 입으로 물고 조심스럽게 두 손으로 받친다. 그렇게 입안을 헹구고 나면 옷이 흠뻑 젖는다.
나는 먹을 복이 없다. 먹을 것이 넘쳐나도 이제는 먹을 수가 없다. 건강할 땐 없어서 못 먹었고 지금은 있어도 먹지 못한다.
식사 못지않게 힘든 일이 화장실을 다녀오는 일이다. 단추를 풀고 채우는 일이 무척이나 곤혹스럽다.



폭풍우 속에서도 태양은 떠오른다. -
이십 대에 자살을 시도하고, 늘 죽음에 대해 생각했었다. 그래서 죽음에 대한 두려움도 불안도 없었다. 내겐 친숙한 단어였으며, 웃으면서 맞을 수 있는 순간일 거로 생각했다.





故 김영갑



시작이 혼자였으니 끝도 혼자다.
울음으로 시작된 세상, 웃음으로 끝내려고 하나에 몰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