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떠한 경우라도
'장금이' 앞치마 입은
세 며느리들의 화합이 없으면
'화목' 이라는 단어는 없을 것이다.

'엄마가 뿔났다'에 나오는 도우미처럼
우리
미스에스孔,
미스에스柳,
미스에스安

3일동안 지지고 볶고 일하느라
머리 손질도 못하고 부시시
급하게 입술만 겨우 칠했지만,
안 보이는 곳에서 모두 일등공신들이다.

우리집 남정네들
특히, 나의 남편!
08 비공식 '평화유지군'이라 명명받은 제 역할에
뽀뽀해줘야 되는 것 아닌가요?
ㅋㅋㅋㅋ

08년 한가위
02년 어머님이 저승 꽃밭으로 가신 후,
우리대소가 가족들의 생활은
10분의 1 수준으로 간소화 되었다.
주말마다 모이던 가족모임도
도포입고 갓쓰는 제사 절차나
가족들의 삼신상차려 모시는 생일행사들도
생략하거나
겨우겨우 흉내만 낸다.

가슴미어지던 추억도
대소가 조율에 힘들었던 관계들도 희석이 되었다.
이제야 비로소,
'어머님'이라는 이름이 나와도 담담하다.
'담제'기간이 조금 길었다.

천만다행으로 감사한 것은
어머님이 안계신 생활을
아버님께서 잘 견디시는 거다.

또 가족사진 찍을 기회를 놓칠것만 같아
(어머님 편찮으실 때 서둘러 가족 사진을 찍었더니 ,,,
마음에 굵은 빗물이 흘러 표정이 모두 무거웠었다)

추석날 새벽,
나는 아이와 남편에게
'긴급제안'을 했다.
아버님 건강하실 때,
가족들의 모습을 사진으로 담자고.

근엄하고 무뚝뚝한 불변의 포옴으로
분위기를 제압하시는 아즈버님
명절에도 제사분위기를 연출하시는
우리집 '영원한 주연'이시다.

하기야,
나도 캐스팅된 배역이 있다.
부엌에서 전과 큰생선 굽는 것
탕국거리 썰고 상에 올리는 것
문어 꽃모양으로 삶는 것
장보는 것에서 부터
"맞습니다. 맞고요" 푼수노릇까지
때려도 웃고, 맞아도 웃는 기쁨조*^^*  등등등 ....  

맏며느리인 형님에 비하면 아주 미미한 것이지만,
가족행사 '전3일 후3일' 동안은
나는 능숙한 '소품'담당이다.

느닷없이
차례상 앞에서
사전 통보없이 무작위로 카메라를 들이댔다.
취재나온 기자처럼 ...

만약, 내가 후레쉬를 터뜨렸다면
'불경'죄에 걸렸겠지만
우리집 큰놈이 들이대니
역대조상님 앞에 기특한 손자가 되었다.
훗날,
이 모습을 꺼내보면서

'아~ 옛날이여~
그리울 날 있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