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티스 미술관
1917~1954년까지 '야수파의 거장' 앙리 마티스의 작품을 전시하는 미술관
붉은 벽면이 특징이며 회화 판화 청동 조각등 450여점의 작품들이전시되어 있다
1918년, 파리에서 니스로 이주하면서
인생의 숨표를 찍으려 했던 마흔 아홉 살의 마티스.
36년간 아방가르드와 파격이 아닌,
고전과 자연으로의 회귀였다.
코트다쥐르의 햇살이
그에게 밝음의 미학을 선사한 곳이라 한다.
그는 더는 손에 붓을 들고 그림을 그릴 수 없게 되자
‘가위로 그린 소묘’ 색종이로 표현한다.
사진을 찍지 못하게 되어 있어 실내의 사진이 없다
올리브 숲이 그렇게 아름답다라고 극찬을 하는데
우리 부부는 그곳에서 서로 숨을 참았다
내비게이션이 길안내를 똑바로 안 하는 바람에
찾는데 힘이 들었을 뿐만 아니라
후문 언덕배기에 안내를 해
바로 코 앞에다 두고 몇바퀴를 돌았다
지중해 햇볕이 만들어 놓은 작품이다
날마다 발이 고생이 많다
우리 남편,
이제는 익숙하게 기름도 셀프로 잘 넣는다
마티스 미술관을 꼭 가고 싶었다. 관절염으로 뚱뚱보가 되어 생활했다는 곳.
내비를 켜고 찾느라 애썼지만, 정문을 찾지 못해 언덕배기 개구리 주차를 했다.
나는 보고 싶은 곳이 있으면 지명만 말하고 꼬리를 낮추고, 숨기운을 낮추고 아무 말을 안 하는 버릇이 있다.
내가 꼭 그곳을 보고 싶다는 무언의 메세지다.
나는 작은 목소리로 읊조린다
"마티스 미술관 - 꽃을 보고자 하는 사람들 앞에는 꽃밭이 있다."
남편 왈 “마티스, 싫어”
“니는 내 인생에 도움되는 것이 무엇인데….”
차라리 목소리 높여 삿대질이라도 했다면 혹시 막말이 한번 오갔다면 속이 시원했을지 모르겠다.
들릴 듯 말듯 구시렁거리는데 내 귀에 들렸다.
나, 나는 십장생 개나리 시베리안 베스키…. 막 지껄일 때도 있다.
그러나 항상 대 놓고는 말하지 않는다.
혼자서 하늘을 쳐다보며 혼자 화장실에서 지껄인다.
최소한 상대방에 대한 배려다. 부부에 대한 예의라고 여긴다. 그런데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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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흔의 마티스는 아내 아멜라와 헤어지고,
1941년 십이지장암 수술까지 받고 급격히 건강이 악화하여 심장병과 천식까지 도졌다.
그러나 오히려 색종이로 형태를 만들어 붙이는 새로운 기법으로 창작 활동을 계속했다.
특히 그 시기에 가위와 색종이만으로 천재성을 드러낸 작품들이 많아 마티스를 마음껏 만끽할 수 있다.
드디어 “푸른색의 미를 이보다 더는 잘 살릴 수 없다.”라고 극찬받는 색종이 작품 ‘푸른 누드’ 앞에 선다.
조금씩 다른 자세를 취하는 이 ‘푸른 누드’시리즈는 현재 세계 각지에 뿔뿔이 흩어져,
시리즈를 모두 감상하려면 지구를 한 바퀴 돌아야 할 지경.
수없이 그리고 지우기를 반복한 목탄 스케치 자국을 통해
'단순함'을 이뤄내기 위한 여든네 살 거장의 고뇌를 느낄 수 있다.
한가로이 고요한 겨울, 열린 창으로 니스의 파란 실루엣이 펼쳐진 마티스 박물관,
색종이 뒤에 거침없이 가위질을 하는 마티스의 숨소리가 들려온다.
--프로방스에서 느릿느릿 -- 정다혜
2013년 8월 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