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고희는 아직 젊다

류창희 2009. 10. 4. 00:48

고희(古稀)는 아직 젊다.

서영환 (어진샘복지관)

고려장(高麗葬)이라는 말이 있다. 고구려 때에 늙은이나 쇠약한 이를 광중에 버려두었다가, 죽은 후에 장사를 지내던 풍습이다. (棄老俗)
옛날 한 사내가 고희가 된 늙고 병든 어머니를 지게에 짊어지고 산골 깊숙한 곳으로 들어갔다. 약간의 음식과 이부자리를 준비하여 드리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다. 어머니를 지고 간 지게를 버리려고 하니, 따라 갔던 어린 아들이 그 지게를 버리지 말라고 했다. 왜냐고 물으니, 먼 훗날 아버지를 지고 내다버릴 지게라는 말을 한다. 그제야 사내는 깜짝 놀라 후회를 하며 늙은 어머니를 다시 모시고 돌아왔다는 이야기다.
요즘은 의학이 발달되고 세상 살기가 좋아져서 장수하는 세상이다. 먼 옛날에 사람들의 평균수명이 54세(오사)를 지나면 살 만큼 살았다고 여기던 시대가 있었다. ‘오사’란? 54세의 뜻도 되고 올 된다는 속어와 죽을 사(死)의 뜻이 포함되어 빨리 죽을 것을 면한 것이라는 뜻도 있다.
회갑(61세) 진갑(62세)을 기준으로 자식들이 잔치를 성대하게 차려드렸다. 부모님을 건강하게 회갑을 맞을 때까지 잘 모셨다는 자랑으로, 진수성찬을 준비하여 일가친척들에게 대접을 해드리는 장수 축하행사였다.
환갑이 지난 어른들은 나라에서 상노인으로 인정하였다. 지금은 만 65세가 넘어야 국가에서 인정하는 공식적인 노인이다. 경로연금인 교통비와 일부 의료비 관람료 등의 혜택을 받는다.
미수(米壽)가 되신 나의 어머니, 고희가 다 된 아들을 오늘도 걱정하신다. 어머니는 슬하에 4남 3녀를 두셨다. 다른 아들네 집에 계시면 아들 손자, 며느리들의 보살핌과 효도를 받으면서 얼마든지 편안하게 지내실 수 있다. 그런데 한사코 그 편안함을 마다하시고 어디 의지할 사람 없이 혼자 외롭게 사는 나에게 오셨다. 같이 늙어가는 큰아들을 도우시겠다는 모성애, 그 순박하신 마음을 말릴 재간이 없다.
그러나 내 처지는 몸이 불편하신 어머님을 모시기가 정말 힘겹다. 어머님은 모든 거동이 나의 손과 발이 아니면 한 가지도 생활이 안 되는 실정이다. 빨래 목욕 대소변까지 뒷바라지한다. 안방에서 거실을 거쳐 식탁까지 나오시는 것만 해도 지팡이를 짚거나 휠체어 식으로 된 히프로라에 앉아, 손으로 밀어 식탁과 의자를 붙잡아야 겨우 일어서실 수 있다.
“귀신이 눈이 썪어서 못 보는지…, 어서 나 좀 데리고 가라”고 애원조로 하소연하신다. 또 어느 때는 “영감은 혼자 호불 귀신으로 있는 것이 좋으냐? 며 “제사 때나 명절에 혼자 절 대접을 받으니 좋으냐?” 고 돌아가신 아버님께 원망과 항의로 한숨을 쉬신다. 그래도 네가 있는 이곳이 제사를 지내 줄 자식이라며 내 눈에 흙이 들어갈 때까지 큰 자식 너를 잊을 수가 없다고 하신다.
늙어도 자식 사랑은 어미 밖에 없다고 못을 박으신다. 어려서는 어미 등에 업어 키우고 커서는 어미 마음속에서 키우는 것이 어미라고 하신다. 그 어머님의 마음을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솔직하게 말하여 병 수발과 모든 제반 수발은 고역이다.
나 혼자 있으면 그래도 편할 때가 많다. 그 대신 혼자 독거하고 있으면 게으름이 생겨서 밥을 굶을 때도 많았다. 그런 것을 생각하면 어머니가 계시기 때문에 덕을 보는 것도 많다. 조금 몸이 불편하여도 일어나서 식사 준비를 하고, 그러다 보면 몸도 차츰 풀어지고 정상으로 돌아 와 건강도 좋아진다. 그런 점은 어머니의 덕택이라고 생각된다.
자식이 어버이를 공경하고 의식(衣食)의 봉양을 하며 부모의 건강과 병을 돌보는 것은 ‘인지상정’이다. 옛 고사에 ‘반포지효’(反哺之孝)라는 말이 있다. 까마귀는 어미가 늙어 날지 못하면 새끼가 어미에게 먹이를 물어다가 효도를 한다. 하물며 금수가 아닌 사람이다. 고희는 아직은 젊다는 마음으로 혼신을 다하여 어머님을 공경할 것이다. 옛 시조 한 구절을 읊조리면서.

어버이 살아 실제 섬기길 다 하여라
지나간 후면 애달프다 어이하리.
평생에 고쳐 못할 일, 이뿐인가 하여라.




류창희   2009-06-22 19:10:54
어진샘복지관에서 삼주째 문학수업을 했다.
오늘(월요일)은 장마 시작으로 장대비가 퍼부었다.
이렇게 비가 오는 날은,
어르신들께 하늘을 대신해 내가 사과를 한다.

한두분도 못 오시면 어쩌나.
기우였다.
빗속을 뚫고 열여섯분들이 함께 자리해 계시셨다.
숙제를 네분이 해 오셨다.
그중의 한편이다.
내면이 들어난 진솔한 글이다.

누가 이런 글을 처음 써보는 글이라고 하겠는가.
콩콩나무   2009-06-23 23:29:11
비온 다고 핑계되면 안되겠지요 ...안선생님과같이 못가서 죄송합니다 선 생님 다음 수욜에나 갈수있을런지요....()
류창희   2009-06-24 07:59:54
콩콩나무님^^
저도 몸둘바를 몰랐습니다.
장대빗속에 그렇게 모두 오실 줄 몰랐습니다.
그 분들의 열정을 존경합니다.
다음 시간에 뵈어요.
서향   2009-06-24 13:27:10 [삭제]
정말 감동적인 글 잘 읽었습니다.
문학수업 받으시는 분들 모두 건강하셔서 가슴 뭉클한 글들 많이 남겨주시기 바랍니다.
류창희   2009-06-24 15:15:04
서향님^^
같이 감동받고 있답니다.
산다는 것, 서로 위로하고 위로받고 ...
어느 분의 삶이든 열심히 살아온 당신!
'감동' 자체입니다.
호미   2009-06-24 19:28:51 [삭제]
글을 읽으며 목구멍이 따가와져서 짐짓 눈알을 굴립니다.
어머니....
저도 제곁에 계신 친정 어머니가 힘들어(?) 요며칠 감기를 핑게하며
진해에 사는 언니 댁으로 피난을 보냈는데....
우리 엄마도 제가 외로울까봐 제곁을 못떠나시나요?
좋은 글을 글을 읽노라니 여러 이웃과 함께
가슴 따뜻한 사랑을 함께 하실 쌤의 능력이 엄청 부러버요.
류창희   2009-06-24 21:49:06
기교보다 진솔한 글을 읽을 때,
뭉쿨하답니다.
반성을 하며 오히려 배운답니다.
속엣 이야기를 할 수 있다는 것.
누구든 무엇이든 이야기하고 싶은 것.
그것이 바로 문학의 역할 '소통' 일겁니다.
저도 친정엄마에 대해, 뭐라 할말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