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그녀도 찔레꽃을 보고 있을까

류창희 2013. 5. 21. 11:28

 

 

 

 

그녀도 찔레꽃을 보고 있을까

 

 

 

 

 

 

 

 

 

 

 

 

그녀도 찔레꽃을 보고 있을까?

 

류창희

http://rchessay.com

 

 

 

 

열아홉 살이었다. 아니 스물한 살이었다. 그래, 스물여섯까지였다. 나는 저녁마다 미열에 시달렸다. 여름에 솜이불을 덮고 자도 손과 발이 시렸다. 약을 한 알 한 알 넘기며, 처절한 산조 가락 같은 잔기침 소리로, 이십 대를 맞이하고 보냈다. 그리고 가슴에 훈장 하나 달았다. 엑스레이를 찍으면 결핵균이 침투했던 자리에 동전크기만 한 흉터가 보였다. 마치 간장독 안에 핀 하얀 찔레꽃 같았다.

 

그 시절 나는 수수깡처럼 깡말라 눈만 커다랗게 퀭했다. 엄마가 혼자 어렵게 꾸리는 살림이었기에 집이나 직장에 이야기할 수 없었다. 직장에서 쫓겨나면 동생과 내 학비를 마련할 길이 없었다.

 

주경야독하던 나는 무교동 사무실에서 퇴근해 명륜동 학교까지 가는 동안, 늘 안국동에 있는 병원에 들렀다. 당시 나는 음성환자라 큰기침이나 각혈도 없었건만 사람들은 나를 보면 피하고 겁을 냈다. 학교 앞 내과에서도 집앞 소아과에서도 주사를 놓아주려 하지 않았다.

 

그때 안국동 H병원에 한 달 분의 주사약을 사서 맡겨놓으면 간호사가 알아서 매일 놓아주었다. 처음 몇 년은 매일 맞았으나 증세가 나아지면서 이틀에 한 번, 사흘에 한 번씩 맞으니 일일이 개수를 세기 어려웠다.

 

몇 달이 지나도 주사약이 떨어졌다는 말이 없었다. 나는 간호사에게 “약 떨어질 때가 되지 않았어요?”라고 물었다. 그러자 간호사는 “샘물이 마르는 것 보았어? 나는 네게 샘물이 되고 싶어”라며 계속 나에게 주사를 놓아줬다.

 

나보다 예닐곱 살은 나이가 많았을 것이다. 언제나 시간을 다투며 주사 맞고 병원 문을 바쁘게 나서는 내게 “공부 열심히 해. 졸지 말고.”라며 손을 흔들어 줬다.

 

나는 안국동에서 버스를 타고 명륜동으로 가서 금잔디광장을 쌕쌕대며 걸어가 수업을 받고, 밤 열 시가 넘어 집으로 가는 버스를 탔다. 눈을 부릅뜨고 졸음을 참았지만, 꼬박꼬박 졸다가 꼭 길음동보다 두 정류장 지난 곳에서 깼다. 비몽사몽 중에도 “졸지 말고”라는 말 때문인 것 같아 억울해하며 하루를 마감하곤 했다.

 

언제부터 소식이 끊어졌을까. 이름도 성도 얼굴도 전혀 생각이 나지 않는다. 까마득하다. 이기대 어귀에 찔레꽃만 속절없이 하얗게 피었다. 찔레꽃처럼 환하게 웃던 그녀도 지금쯤 찔레꽃을 보고 있을까.

 

 

 

《좋은생각》2012년 06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