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내가 만약 치매에 걸린다면

류창희 2009. 10. 4. 00:00






작은 강의실이나 큰 강의실이나
열사람이거나 오십명이거나 마찬가지다.
일주일에 딱 한번인 수업,
쌓인 세월 십수년 되어도
남학생들이 주로 많은 수업은 갈수록 어렵다.
내가 기력이 쇠하는 것도 있겠으나, 지독스레 말을 안 듣는다.
뺀돌뺀돌 특히 교장선생님 출신들은 질문도 모범생이다.
몰라서 묻는 것은 절대 없다.
한수 가르쳐 주어야겠다는 師道정신이다.

집에 어머님이 입원해 계실때, 노인병동의 풍속도가 생각난다.
할머니들은 가장 힘 들었던 세월을 몸으로 기억한다.
식판만 들어오면 '저 사람 가고 난 다음 밥먹자'는 사람은,
한끼 끼니가 어렵던 시절, 밥상만 차리면 이웃이 숟가락들고 먼저 앉아 있는 꼴만 본 사람이다.
화장실 갈때, 호미들고 밭매는 시늉으로 걷는 할머니는
아침부터 눈만 뜨면 보리밭이나 콩밭만 매던 사람이다.
일으켜 앉혀만 놓으면 베틀짜는 흉내만 내는 사람은,
분명, 남편은 바람따라 떠돌고 모진 시어머니 모시며
침침하고 습한 방에서 홀로 베만 짰던 사람이다.

논어문장을 두번 읽고 두번 해석하라고 하면,
남학생들은 꼭 한번만 읽고 구경삼아 나만 쳐다보고 계시다.
누구를 탓하랴!
선생인 내가 뒷태까지 예쁜 것이 화근이다.
뒤에서 지켜보는 눈길이 부담스럽다.
칠판 한가득 빠른 속도로 판서하는 손이 KTX 속도로 움직여야 한다.
속도감에 마음이 바쁘고 속에서 멀미가 난다.

오늘, 겁을 주며 나는 말했다.
여러분들은 나와 함께 오래 오래 살아야한다고 ...
그리고 나를 끝까지 지켜봐 달라고.
내가 만약 치매에 걸린다면, 분명 쎄가 빠지게 판서하는 흉내만 낼것이고.
선생님들은 분명, "子 - 曰 學而時習之면 不亦說乎아" 만 외우실거라고 ... 
 
이렇게 세월의 더께를 머리에 하얗게 뒤집어쓰며
검은머리 파뿌리 되어가고 있다.

세월이 간다.
사월도 다 가고 있다.


류창희 < 논어에세이>



까투리   2009-04-30 21:35:14
쌤! 명령에 따라 치매에 걸리지않도록 열심히 출석하며 노력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싸랑해요...^!^...
류창희   2009-04-30 21:57:13
까투리님, 이반이시군요.
남학생이신가요? 참! 남학생들은 점잖은 척 댓글 안 달죠.
오늘 오셨나요?
오늘도 저 혼자 원맨쇼? ㅋㅋㅋ
그래도 정말 뺀돌뺀돌 말 안듣는 반장님을 비롯한 남자 선생님들은
온동네 휴게실 다니시느라 위의 사진 속에도 없어요.
야단쳐도 빙글빙글 웃기만 하고 그러면서 "충성!"은 왜 외치시는지 ...
한 분 한 분 다 귀여워요. 껴 안아주고 싶죠.
콩콩나무   2009-05-05 11:09:45
반장님이 문제인거 같아요 수업 시작할때 차렷 경례도 안시키고 .
다른반 공부시간에는 하거든요.
정말 침해 걸리시지않게 남학생들요 말씀좀 들어이소!!
우리 선생님 힘들어요.
손바닥은 괞찮으시나요.
제가 호 오 하고 불어 드릴께요....()()()
강변학생   2009-05-05 12:57:52
논어반의 두뇌가 명석한 남 학생들을 선발하여
치매예방 특효약을 발명해야겠습니다
아마 연구팀이 구성되어 3개월만 수고하면
훈장님의 치매는 영원히 바다건너 저멀리가고
넓은 강의실에서 子曰 學而時習之..에서
不知言이면 無以知人也니라
시종일관 강의하시고
좋은 작품 많이 창작하시면 인생의 삶이 보람있겠죠
류창희   2009-05-05 22:55:41
콩콩나무님, 반장님 뭐라하지 마세요.
'충성'은 혼자 다 하시잖아요.

ㅎㅎ
어느 남학생이 전화로 "호~오~" 해주던걸요.
호오 입김으로 싸아악 다 낫어요.
류창희   2009-05-05 22:58:38
강변학생님, 그러고 보니
강변학생님도 반장님도 콩콩나무님도 사진 속에 안 계시네요.
착한 학생들은 그날 모두 결석하셨는지.
끝!
항의 하실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