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노트르 담 주변, 그리고 비가 억수같이 내리다

류창희 2011. 12. 22. 09:57





 



































 








 
















멀쩡하게 둘이 잘 놀다가도...
















































소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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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나기,


한 블록, 한 모퉁이는 쫓아오라는 신호지만, 두 블록 두 모퉁이는 오디 말디,
길거리에 아내를 버리고 싶다는 뜻이다.
까르푸에서 200밀리짜리 우유 하나를 사다 동전 때문에 마음이 상했다.
왜 안 싸우겠는가.
아는 사람 한명도 없는 이국땅에서 24시간 붙어있기를 보름이 넘었다.
‘까르푸’라는 브랜드가 우리나라 해운대에 있었으니 당연히 익숙하다.
뭐든 익숙하면 방심하게 된다.


나는 그것도 모르고 몇 걸음 걸어 문구점으로 들어 갔다.
안내 책자에 프랑스는 메모지 편지지 카드가 예쁘다고 나와 있다.
소로본대학 근처 문구점에 가보니 실제로 많기도 하고 무엇보다 예쁘다.


알록달록, 디자인 천국이다.
바구니에 주섬주섬 담았다.
안으로 들어가 백인 남자 젊은 친구에게 계산을 막 하려는 순간, 남편이 들어왔다.


내 옆에 서더니 “이거 꼭 필요해?”
" ... "
“예! 꼭 필요해요” 라고 해야 하는데
“으~응~ 아니” 긍정도 부정도 아닌 어정쩡한 대답이 자꾸 나왔다.
나는 한국에서도 고운 편지지나 격있는 편지봉투를 
지금 당장 꼭 필요해서 사는 경우는 없다.


나에게 문구류는 보석이다.
나의 존재감을 지키는 악세사리다.
꼭 손가락에 끼고 목에 걸고 귀에 달지 않아도 된다.
그럴 필요도 없다.
그냥 가지고 있으면 마음이 풍요로워진다.
어찌 반드시 실용으로만 마음 전할 카드나 편지지를 구하겠는가.
 

“이게 한국 돈으로 계산하면 십만 원이 넘는다.”라고 꼭 짚어 알려준다.
나는 당당하게 십만 원을 쓸 정도의 경제력이 되는 사람이다.
한국에 가면 은행잔고도 많다.


하나씩 뺐다.
바보같이 종업원을 눈을 쳐다보며 “쏘리~쏘리~” 를 거듭했다.
어깨와 손을 들썩이며 괜찮다는 제스추어에 묘한 미소를 보인다.

동양아줌마 ‘쪽’이 말이 아니다.
죽을 맛이다.
남편은 되레 나를 구제해준 듯한 몸짓으로 먼저 문구점을 휑하니 나선다.

정말 한 블록씩 쫓아가기 싫다.
아무리 내가 돈 계산을 못 하고 현실감각이 없지만,
명품가방도 명품구두도 명품시계도 아니다.
내가 진짜 가지고 싶은 종이들을 두고 나오는 마음이 멍든 색이다.


몇 블록을 한마디 말없이 쫓아가는데,
하늘이 대신 대성통곡을 하고 울어준다.
억수 같이 비가 쏟아진다.

거리 까페들이 서로 마주 보이는 길이다.
차가 한 대씩 지나갈 때마다 '에이구 ~ 바보야"
나무라는 듯 물을 퍼붓듯 끼얹는다.
처마 밑에 비 맞은 생쥐 꼴로 서있는 우리부부에게 계속 으르렁댄다.

이미 마음까지 첨벙 빠져 나오지 못하고 허우적대는데….
이제 한 발자국도 옮길 수 없다.
갑짝스런 소낙비에 도로의 물이 역류해 길 위로 물이 차오른다.


양쪽 까페 안의 사람들은 우리를 쳐다보며 유유히 식사를 하면서 와인 잔을 기울인다.
이미 그들에게 우린 볼만한 구경거리 풍경화다.
처음에는 창피하더니, 우두커니 바라보니... 
자존심도 없이 나도 배가 고프다.

배가 고프니 또 약이 오른다.
이런 때 후다닥 핑계김에 까페에 들어가면 좀 좋은가.
그게 안 된다.



금세 햇볕이 나고 거리는 활기차다.

지나가는 소나기다.
퍼붓는 빗물에 왕 짜증 다 떠내려보내고
우리도 활기차게 걷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