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어심득
논어심득
위단지음 임동석옮김
에버리치홀딩스 출판사
1.天地人의 길
세상 진리는 언제나 소박한 데 있다. 마치 태양이 동쪽에서 떠서 서쪽으로 지고, 봄이 되면 씨를 뿌리고 가을이 되면 거두는 것과 같은 이치다.
논어가 우리에게 주는 가르침 또한 이처럼 간단하다.
논어에서 말하는 핵심은 바로 어떻게 하면 마음의 행복을 꾸준히 영위해 나갈 수 있을까 하는 것뿐이다.
즐거움을 얻는 방법 각 개인이 삶의 좌표를 찾는 방법 등을 가르쳐 준다.
논어는 이천 5백 년 전, 공자와 제자들 사이에 있었던 자질구레한 일들을 제자들이 단편적으로 기록해 전한 ‘어록’이다.
논어는 엄격한 논리성 없이 일이 있으면 그때그때 그 일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논어에는 논리적인 설명을 위한 긴 문장이 거의 없고 짤막한 글들이 주를 이룬다.
논어는 소박하고 따뜻한 생활태도이다.
공자는 사람이란 공경하고 중시할 가치가 있으며, 또한 자신을 존중해야 한다고 여겼다.
논어를 읽다 보면 공자가 제자들을 가르칠 때 심하게 다그치거나 굳은 표정을 짓는 적이 거의 없다. 늘 온화한 얼굴로 순리에 따라 바른길로 가도록 유도했으며 상대방과 생각을 맞춰 가는 어투를 사용했다. 유가의 태도이기도 하다.
이처럼 태연자약한 자세, 겸손한 태도야말로 중국인이 이상으로 삼는 인격이다.
중국 철학에서 숭상하는 것은 온유하고 돈후한 아름다움이다. 논어에 나타난 공자상은 바로 심미적 이상의 화신이다.
공자의 이 이미지 안에는 그의 마음에서부터 뿜어져 나오는 엄청난 힘이 응축되어 있다. 훗날 공자의 사상을 계승할 맹자는 이 힘을 ‘호연지기(浩然之氣)’라고 불렀다.
안빈낙도(安貧樂道)는 현대인의 의식 속에서 진취적이지 못하다는 의미가 있다. 수입이 얼마인지, 어떤 지위에 있는지가 한 개인의 성공 여부를 가늠하는 척도가 돼 버렸다.
‘忠恕’ 내실 하는 동시에 그것이 남에게 미칠 수 있도록 하라는 것이다.
논어는 우리가 어떤 일에 닥쳤을 때, 그것을 내려놓을지 마음에 담아 둘지를 결정하는 데 도움을 준다. 남에게 따뜻한 관심을 두는 여유, 곧 ‘인’이요, 남을 이해해주는 것이 곧 ‘恕’라는 말이다.
진정한 성현(聖賢)은 거만을 떨거나 정색을 하고 말하지 않는다.
2. 마음의 길
논어의 핵심 가운데 하나가 바로 평온한 마음가짐으로 생활 속에서 겪는 수많은 고난을 극복해 나가는 데 있다.
똑같이 이 세상을 살면서 어떤 사람은 기쁨과 따뜻함이 충만하지만, 어떤 사람은 내내 원망을 안고 산다.
누군가와 교류할 때 관건이 되는 것은 바로 ‘열린 마음’이다. ‘坦蕩蕩’ 평탄하고 너그러운 마음의 경지이다.
3. 처세의 길
현대사회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를 친밀하게 해 주지만 소원하게도 만들기로 한다. 논어는 우리에게 다양한 처세방법과 행동규범을 가르쳐준다.
덕으로 원한을 갚는 것도 취할 바가 못 된다. 다시 말해 너무 지나친 은덕이나 자비, 후덕함으로 이미 당신과 반목한 사람을 대하는 것은 일종의 낭비이다.
오늘날 사람들은 자원 낭비에 대해서는 크게 떠들면서도 마음의 황폐함이나 생명에너지의 낭비는 소홀히 하는 경향이 있다. 공자는 너무 소원한 것도, 너무 친밀한 것도 모두 최상의 상태가 아니라고 여겼다. ‘지나침은 모자람과 같은 過猶不及’이다.
어느 정도의 거리를 유지해야 가장 알맞은지 가시 때문에 상처를 입지 않으면서도 무리의 체온을 서로 주고받을 수 있을 만큼. 친한 친구와 돈독한 관계를 유지하려면 절대 오지랖이 넓어서는 안 됨을 명심. 사랑이라는 이름 아래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자신의 생각을 강요하는 부부 연인 모자 부녀 사이 등등.
인간관계에서 어느 정도 여지를 남겨 두라고 가르치고 있다. 이는 禪宗에서 추구하는 ‘꽃이 활짝 피기 전과 달이 아직 차기 전’의 경지
자네 선생님은 어떤 분인가? “너는 왜 이렇게 대답하지 않았느냐?” 그의 사람됨은 일을 이루려고 끼니조차 잊고 노력하며 도를 즐겨 근심을 잊으며 늙음이 닥쳐오는 것도 모르는 그런 사람이라고.
이것이 바로 공자의 이미지일 뿐만 아니라 중국 지식인이 추구하는 이상적인 인격의 모델이기도 하다.
4. 군자의 길,
사람됨의 기준, ‘군자’는 공자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인격의 기준이다. 2만여 자밖에 되지 않는 논어에 군자라는 단어는 100번이 넘게 나온다.
린위탕(林語堂)은 중국인은 누구나 유가(儒家)를 사회적 이상으로 꿈꾸면서도 개인의 이상적인 인격은 도가(道家)를 꼽는다.
파티가 열렸을 때 군자는 친분에 관계없이 편안하게 모든 사람은 대하지만 소인은 친한 친구들끼리 구석자리에 모여 정말 사이가 좋은 것처럼 시시덕거리기 바쁘다. 소인이 서로 결탁하기 좋아하는 이유는 기득권을 보호하고 싶은 꿍꿍이가 있기 때문이다.
논어의 군자(君子)라는 단어는 언제나 소박하고 따뜻하고 조화로우며, 누구나 당장 실현할 수 있다. 군자는 지금 이 자리에 존재하며 모든 사람의 마음속에 존재하고 있다. 우리는 누구나 진정한 군자가 될 수 있다.
5. 교우의 길
친구를 보면 그 사람의 됨됨이를 알 수 있다. 누군가에 대해 알고 싶다면 그가 어떤 친구를 사귀는지 잘 관찰하여라. 그 안에서 그의 가치관과 취향을 볼 수 있다. 이것이 우리가 늘 말하는 “사물은 닮은 것끼리 모이고 사람은 그 무리에 따라 구분된다.”라는 것이다.
공자가 언급한 해로운 친구 ‘아부를 잘 떠는(便辟) 친구, ’겉과 속이 다른(善柔) 친구. ‘말만 번지르르한 (便佞) 친구’이다.
중국 고대의 詩派 가운데 山水田園시파가 있다. 이들의 작품은 은둔의 정취를 표현하고 산수 전원의 즐거운 생활을 노래했다. 그렇다면 진정한 전원은 어디에 있을까? 세상과 담을 쌓은 깊은 산 속이 아니라 바로 우리의 현실 생활 속에 있다. 작은 은거는 초야에 묻히고 큰 은거는 도시에 묻힌다. 수양이 덜 된 은자들이 이 산 저 산 옮겨 다니려 괜히 산사를 짓고 수련하는 척한다. 그러나 진정한 은자는 결코 속세를 떠나지 않는다.
누구나 자랑스럽게 드러내고 싶은 것이 있지만, 감추고 싶은 비밀도 있다. 진정한 친구라면 감추고 싶은 상대방의 비밀을 마구 들춰내서는 안된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갖춰야 할 ‘눈치’이다.
6. 이상의 길
논어를 펼치면 소박한 글귀 뒤로 항상 이상의 빛이 반짝거리는 것을 볼 수 있다.
증석(曾晳)은 나지막이 저의 꿈은 이렇습니다. 봄기운에 대지가 열리고 만물이 소생하는 계절에 새로 지은 봄옷을 입고, 막 성인이 된 몇몇 친구와 아이들을 대동하여 얼음이 풀린 沂水가로 달려갈 것입니다. 기수 물에 몸을 깨끗이 씻은 다음 바로 옆의 무대(舞雩臺)에 올라 봄바람을 실컷 쐬며 바람에 몸을 맡긴 채 천지와 함께 활기 넘치는 시절을 맞고 싶습니다. 이렇게 마음을 정갈히 하는 의식을 끝낸 다음에는 함께 즐겁게 노래 부르며 돌아오는 것입니다. 증점의 이상이 나와 똑같구나 군자불기(君子不器)의 경지 즉 군자는 한 가지 용도로 쓰이는 그릇이 아니다.
증석은 얼어붙었던 대지가 기지개를 켜고 만물이 소생하는 봄날에 자신의 몸을 깨끗이 씻고 자연에 가까이 갈 준비를 했다.
논어에 나오는 모든 원대한 이상은 소박함에서 출발한다. 중국의 지식인들은 결코 물질적인 사치를 바라지 않았다. 다만, 여유로운 마음의 사치를 추구했을 뿐이다.
7, 인생의 길
공자가 냇가에서 말했다. 지나가는 모든 것은 흐르는 물과 같구나! 밤낮없이 멈추지 않도다. (자한)
공부할 때는 먼저 생활 속에서 자신이 잘할 수 있는 일을 능숙하게 해 내도록 노력하라. 절대 다다를 수 없는 아득한 것이나 지나치게 衒學的인 것에 빠져서는 안 된다.
이립(而立)에서 불혹(不惑)의 나이는 인생의 황금기다. 덧셈의 삶을 살아가며 경험, 재물, 사랑, 명예 등. 그러나 물질이 늘어날수록 사람은 미혹함에 빠지기 쉽다. 그러므로 서른 살 이후에는 뺄셈의 삶을 배워야 한다. 마음속에 꼭 필요한 것이 아니라면 버릴 줄 아는 지혜가 필요하다.
뺄셈의 삶, 사귀고 싶지 않은 친구를 포기하고, 하기 싫은 일을 거절하며, 벌고 싶지 않은 돈을 벌지 않는 일이다.
후기: 논어, 마음의 병을 고치는 온천
논어에 대한 내 느낌은 늘 존경. 또 언제나 소박하고 따뜻한 것이었다.
仁者의 눈에는 어진 것만 보이고, 智者의 눈에는 지혜로운 것만 보인다.
역자 후기: 논어는 머리보다 마음으로 읽어라.
세상은 느끼는 자의 것이다. 고전도 이해하려는 자에게는 소득이 낮다. 느낌으로 다가서야만 비로소 자신의 것이 된다. 논어를 ‘온도’라고 표현하는 것은 의미가 깊다. 수천 년간 학자들은 논어 구절의 뜻풀이에 매달려 자료를 모으고 비교하고 분석했다. 단순히 학습대상으로만 여기면 높은 경지의 깨달음을 얻지 못한다.
어떤 사람이 공자가 사는 것을 묻자 이웃 노인은 “아, 동쪽 마을에 사는 그 늙은이? 내 잘 알지!” 이처럼 공자의 논어는 그저 이웃집 할아버지가 편하게 들려준 세상 사는 이치라고 여기고 노력과 고통이 수반되는 학습서로서의 고전이 아니라 콸콸 넘치는 사유의 샘물이라고 여기면서 읽어도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