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논어에세이 빈빈>을 읽고
류창희
2015. 6. 9. 12:05
논어세세이 빈빈을 읽고
오랜 시간 책에 몰입하는 풍경은 익숙하거나, 지루한 일일지 몰라도 내게는 세상을 읽어가는 신기한 구경거리가 된다. 어떤 책은 제목부터 설렘과 기대가 몽실몽실 부풀어 오른다. 차례를 지나 첫 번째 본문부터 실오라기가 툭툭 풀려지듯 매끄럽게 전개되는 문장을 보면 '아~ 이럴 수도 있겠다' 싶은 게 공감대를 불러온다. 그럴 때면 눈과 마음이 하나 되어 끝까지 책장을 넘기지 않을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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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가 류창희가 지은 『논어에세이 빈빈』이 바로 그렇다. 한순간에 폭풍처럼 마음을 휘어잡는다. 익사할 것 같은 깊은 향기가 숨어 있는 게 예사로운 필력이 아니다. 언젠가 잃어버렸던 따스하고 깊은 향기가 묻어난다. 간결하고 깊이 있는 절제감도 훌륭하지만 소박하면서도 거침없는 문장은 작가의 지적 수준과 대담한 내공을 말해준다.
논어(論語)는 공자와 그 제자들의 대화를 기록한 책이다. 나 역시도 논어라면 어릴 적부터 수없이 눈으로 읽고 귀로 들어온 터이다. 하지만 내게 남은 건 수박 겉핥기의 상식 정도일 뿐, 자~왈로 시작되는 공자의 삶과 사상을 이해하고 실천하며 살기란 쉽지가 않다. 아니 군자의 가르침을 머리로 해독했다 할지라도 급변하는 현실에서 군자의 길을 걷고 산다는 건 절대적 인내를 요한다.
공자님의 말씀은 하늘보다 높은 데 있고 사람들 마음은 하늘 아래 있기 때문이다. 요즘 같은 세상에 그 가르침을 어찌 다 지키고 살 수 있으랴. 더군다나 만사 덜렁대는 나 같은 사람은 지레 겁부터 난다.
작가 류창희 님은 여러 곳에서 논어 강의를 한다고 한다. 18년째라니, 아마도 이쯤 되면 논어에 대해 모르는 것이 없을 듯하다. 내가 생각하고 있는 그 이상 도통해 있을지도. 논어 에세이 빈빈(彬彬)은 우리의 일상, 그저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을 여자 특유의 수다로 풀어놓아 고개를 주억거리게 한다.
작품 하나하나마다 공자님의 말씀을 비유, 가슴 속에 유익한 무게가 들어차는 걸 느낀다. 화자가 표현하려는 주제와 일치되는 가르침을 부담 없는 필체로 연결하여 독자에게 전달하고 있다. 마치 어릴 적 어머니가 들려주시던 감미로운 옛날이야기 같기도 하고, 가르침을 배우듯 깨침을 주기도 하고, 상식 그 이상의 지식을 머릿속에 채워준다. 우리가 책을 읽는다는 것은 단순히 지식의 획득만이 아니라 인간적, 정신적 공감대를 얻기 위함에 있다.
문질빈빈(文質彬彬)의 본문에서도 여과 없이 공자의 말씀을 전한다. 공자, 가라사대, ‘질(質, 본바탕)이 문(文, 아름다운 외관)을 이기면 야(野, 촌스럽고) 하고, 문(외관)이 질(본바탕)을 이기면 사(史, 걸치레만 잘함)하니, 문과 질이 적당히 배합된 뒤에야 군자이다’ -옹야편- 문은 꾸밈을 의미하고 질은 바탕을 가리키는 말이다. 빈이란 안과 밖, 즉 외모와 속의 적절한 조화를 의미한다. 사람에게 있어 안(內)이라 하면 심성을 말하며, 밖(外)은 용모, 행동, 의상을 말함으로서 중용의 법칙을 가르치고 있다. 안과 밖이 달라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즉 안이 밖보다 못해도 문제가 되고 밖이 안보다 못해도 문제가 된다는 말이다.
필자는 성인이 되어가는 아들 이야기를 격조 높고 유연한 문장으로 진실의 마음을 담아놓았다. 희망을 향해 달려가는 아들, 어미로 갖고 있는 애착의 꼬리를 감추고 현실을 차분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뜻하지 않게 아들의 결혼식 날 많은 손님 앞에서 축사를 하게 된다. 모정의 이야기를 잔잔하게 풀어놓고 있지만 거기엔 오랫동안 마음으로 다잡은 어미의 냉담한 결심<분리와 독립>을 선언하기에 이른다. 그것은 실제로 존재할 수도, 아닐 수도 있다. 글을 읽으며 나 또한 자식을 장가보내 멀리 지방으로 제금 낸 어미인지라 작가의 감성을 이해하면서도 정말 그럴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든다.
'분리와 독립은 탯줄을 끊는 것과 같다. 우리 부부는 아이들 결혼식과 동시에 그동안 아이들과 맺었던 SNS 페이스북, 트위터 친구를 끊었다. 결혼이 아이들의 선택이었듯이 아이 낳고 기르는 것도 그들의 몫이다. 이제야 비로소 결혼하는 아들 내외가 스스로 선택한 '빈빈'의 바통을 넘겨준다.'-본문 중에서-
커가는 자식들에게 융통성을 발휘해야 한다고 나 자신 수없이 입버릇처럼 말은 하지만 질긴 모정의 사랑을 아직도 버리지 못하고 산다. 세월이 흘러도 끊이지 않는 자식에 대한 애착은 부모가 짊어져야 할 등짐인 것이다. 그런 반면 언제쯤이나 부모로부터 해방될 수 있을까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는 요즘 자식들 세태의 본성을 우스갯소리로 빗대어 잘 반영해 주는 말이 있다. 아들은 사춘기가 되면 남남이 되고, 군대 가면 손님이 되고, 장가들면 사돈이 된다는 그 말이 왠지 내 귀에는 씁쓸하게 들린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부모는 자식이 목숨 같은 소중한 존재이지만 요즘의 아이들은 부모를 팝콘보다도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 것 같다...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