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라쿠르아 미술관
햇볕이 부럽다
공간은 좁고
지키는 큐레이터는 엄숙하고
마루바닥은 발자국 마다 삐걱거린다
얇은 운동화를 신은
내 발자국소리가 거슬린다
그림보다 물감에 마음이 갔다
어찌 들라쿠루아 거장을 엿볼수가 있겠는가
중학교 시절,
스케치북과 파렛트가 있는 친구가 부러워
미술반에 들어갔다
1년 내내, 바께스(양동이) 에 물만 퍼 날랐다
사실, 그림을 무지무지 그리고 싶었지만
그림 그리는 친구들을 보는 것으로 만족했다
미술반 친구들은 내가 떠간 말간 물에
붓과 파렛트를 깨끗하게 씻었다
숨통 조이도록 실내가 어두침침하다
그림자체도 무거웠다
루브르에서는 프랑스 혁명을 다룬 최고의 걸작이라 하던데
나는 따뜻한, 그리고 행복한 그림이 좋다
전시실 뒷편의 마당이
오히려 더 편안하다
문고판 하나 들고 휴식하기에 적합하다
아늑한 평화 고요
도시의 숨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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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어디에요?”
“들라크루아! 여기가~”
책에 나오는 곳이야 ‘들라크루아 미술관’
작품 소품 작고 정밀묘사. 종잇값 물감 값이 작게 들었을 것 같다.
매우 지나치게 조용한 분위기다.
마룻바닥만 삐거덕거림.
좁은 방에 두 명씩 큐레이터 관리인 배치,
자기가 관람객을 관람함.
프랑스에는 관람객을 고객이라기 보다
관리대상으로 보는 눈초리가 정말 많다.
썩 흔쾌하지 않다.
“다들 내쫓고 싶다. 그냥 무표정 시선이 거북하다.”
전체적으로 우울모드다.
뒤뜰, 글 한 편 시작하여 끝낼 수 있는 분위기다.
오붓 조붓 편안하고 싱그럽다.
아마 뒷마당이 주는 편안함이 없었다면
들라쿠루아도 잊었을 것이다
들라크루아
들라크루아의 색채사용법은 인상파와 후기인상파 화가들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 그는 주로 과거와 당대의 사건이나 문학에서 영감을 얻었고, 1832년에 모로코를 방문한 뒤로는 좀더 이국적인 주제도 다루게 되었다.
초기생애
들라크루아는 빅투아르 외벤과 샤를 들라크루아 사이의 4번째 아이로 태어났다. 어머니 외벤은 17~18세기에 왕실과 궁정에서 사용할 가구를 만들었던 외벤 리즈너 가문의 후손이며, 아버지는 정부 관리로서 1798년 당시 네덜란드 주재 대사였고, 보르도 지사로 재직하다가 1805년에 세상을 떠났다. 일설에 따르면 들라크루아의 진짜 아버지는 정치가인 샤를 모리스 드 탈레랑 페리고르라고 한다. 그는 어린시절에 자신의 출생에 대한 의혹으로 괴로워한 적이 한번도 없었고 아버지에 대한 사랑과 존경심을 끝내 잃지 않았다. 17세가 될 때까지 고전을 공부하며 예술을 사랑하는 명문 집안에서 음악과 연극에 대한 열정을 키웠다. 1815년 그는 유명한 관학파 화가인 피에르 나르시스 게랭 남작의 제자가 되었다. 그는 역사화가인 앙투안 장 그로를 알고 있었고 젊은 시절에는 왕당파 화가인 프랑수아 제라르 남작의 살롱을 방문했다. 1822년에 이미 그는 정치가이자 역사가인 루이 티에르의 후원을 받게 되었는데 1830년대에 프랑스 내무장관을 지낸 티에르는 건축물의 장식을 들라크루아에게 맡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