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멍 때려라!

류창희 2013. 9. 9. 14:17

 

 

멍 때려라!

신동원 지음/ 셑추리원

 

 

 

 

로그인으로 시작해 로그아웃으로 끝나는 관계,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접속’이 아니라 ‘접촉’이다

 

와이파이와 커피 중 무엇을 선택하겠습니까?

이제 그 누구도 따뜻한 차 한잔과 함께 사색을 즐기거나, 책을 읽으며 친구를 기다리지 않는다. 창밖의 거리 풍경을 바라보는 세상. 스마트폰 창을 통해 더 많은 사람, 더 큰 세상과의 접속을 선택한다.

 

 

혹시 여백 없는 수묵화를 본 적이 있는가. 쉼표나 마침표가 없는 문장을 본 적이 있는가? 그림에만 여백이 필요하고 글에만 쉼표가 필요한 게 아니다. 우리 머리에도 공백이 필요하다. 한마디로 멍 때리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온라인에서 친구 수는 곧 그 사람의 영향력과 현재 위치를 증명해준다. 일반적으로 관계의 깊이보다 넓이가 더 중요한 공간이므로 상대가 누구인지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문자 메시지가 편해요. 이만 자야겠다. 밥 먹을 시간이다. 약속이 있어 나가봐야 한다. 대화를 시작할 때도 끝낼 때도 단순명쾌하죠.

 

 

남성은 회사의 규모나 해당 직위에 따라 자신의 가치가 결정되고, 여성은 남편의 사회적 위치나 자식의 학벌에 따라 그 가치가 결정된다.

 

 

다른 사람의 글에 댓글을 다는 것보다 내 글에 댓글이 달리는 게 더 중요하고, 방문자 수가 늘면 기분이 좋아지는 것이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접속’이 아니라 ‘접촉’이다.

인간은 직립보행의 대가로 두 손을 얻는 대신 넓은 골반을 잃었다. 골반의 크기에 맞춰 인간의 아기 역시 작아졌다. 태어난 아기가 제대로 걸으려면 최소 일 년이라는 시간이 걸린다. 엄마의 표정을 보고 따라 하는 능력은 선천적으로 타고난다. 아기에게 엄마와의 소통은 생존을 위한 필수조건이다. 이것이 바로 인간이 걷기도 전에 타인의 감정을 읽는 이유다.

 

 

병원에서 생활하면 꼬마 손님들의 선물을 많이 받는다. 자신이 좋아하니까 상대도 좋아하리라 믿고 미술을 좋아하는 아이는 색종이에 그림을 그려 선물하고, 장난감을 좋아하는 아이는 소방차를 들고 오기도 한다.

 

 

진짜 웃음은 눈꼬리 부위에 주름이 생기지만, 인위적은 웃음은 입술만 웃게 되어 눈 주위에 주름이 나타나지 않는다. 눈가 주름을 가리켜 ‘뒤센 스마일’

 

 

의사소통에서 언어가 차지하는 부분은 7퍼센트가량이고 나머지 93퍼센트는 말이 아닌 몸짓, 표정, 말하는 속도 등 다양한 외적 요소. 당신이 언어로 상대에게 의사를 전달하는 사이, 비언어는 상대의 무의식에 호소한다.

 

 

이런저런 이유로 자꾸 사람을 피하면서 편리하고 수월하다는 핑계로 도구에 의존하다 보면 당신이 상대를 피하고 싶은 만큼 상대도 당신을 외면하고 어려워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따뜻한 체온과 공감이 오가던 만남은 사라리고 요점만 전달하는 텍스트 위주의 대화가 중심이 된 지 오래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공허한 위로와 넋두리로 가득한 온라인의 ‘접속’이 아니라, 눈을 마주하고 함께 호흡하며 온기를 나눌 수 있는 따뜻한 ‘접촉’이다.

 

 

다른 사람이 하품하는 모습을 보면 따라서 하품하고, 영화나 드라마 속의 주인공에게 감정 이입되어 눈물을 흘리는 것 역시 거울 세포의 영향이다.

 

 

우리의 눈은 마음의 창이다. 특히 눈빛은 사람의 기분과 관심, 상태에 따라 시시각각 변화한다. 자폐증 환자의 공허한 눈을 보기 전까지 인간의 눈에 실린 그 풍부한 표정과 변화에 감사한 마음을 갖지 못했다.

 

 

우뇌는 감정을 담당한다. 컴퓨터나 스마트폰에는 눈이 없다. 내 언행에 대한 즉각적인 피드백이 없다 보니 상대방이 나의 말에 기분이 상한 것은 아닌지, 오해가 있는 것은 아닌지를 판단하기가 어렵다는 의미다. 상황이 이러니 상대보다 자신의 기분을 우선시한다. 잘못의 원인도 자신이 아닌 상대에게서 찾는다.

 

 

그 사람이 정말 간절히 원하는 것을 찾아준다.

 

 

우리는 너무 쉽게 ‘이해한다.’라고 말한다.

사실 우리는 자신이 직접 겪지 않은 이상 어려움에 부닥친 사람들이 참고 견디는 슬픔을 알지 못한다.

대화 사이에 ‘그 마음 알아요’ ‘안타까워졌네요’ ‘정말 속상하겠어요.’ 등 적절한 교감 추임새를. 단순하고 허점 가득한 대화법에 사람들이 열광한 이유는 ‘어떤 일이 있어도 나는 당신의 마음을 충분히 이해한다.’라는 무한대의 공감능력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21세기 문맹자는 ‘감정 문맹자’

 

시골에 사는 초등학생이 제 몸보다 큰 송아지를 우리에 넣으려고 안간힘을 쓰는 모습, 멀리서 이를 지켜보던 할아버지가 다가와 단 3초 만에 송아지를 우리 안으로 넣었다. 할아버지가 한 일이라고는 송아지 앞에서 자신의 엄지손가락을 내민 것뿐. 송아지는 엄마 젖을 빨 듯, 냉큼 손가락을 입에 넣고 제 발로 할아버지의 뒤를 따라 우리 안으로 들어갔다. 이해할 만한 이유를 주지 않으면 아무리 밀고 끌어당겨도 쉽게 움직이지 않는다.

 

 

“지금 내가 뭐라고 그랬어? 내 말을 듣고 있기나 한 거냐고?!” “듣고 있으니까 말하라고.” “아, 말이 안 통해, 진짜!” 21세기 문맹자는 글이 아닌 사람의 감정과 마음을 읽을 줄 모르는 ‘감정 문맹자’다.

 

 

 

완장을 찬 사람들의 심리

 

인간이라면 누구나 주변 사람들로부터 사랑받고 인정받고 이해받기를 원한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문학작품, 음악, 자동차, 휴대전화 등 모든 것은 ‘인정 욕구’를 통해 탄생했다. 완장의 마력. 누구나 완장을 차게 되면 모든 상황을 자신이 원하는 대로 이끌기 위한 선택권이나 주도권에 대한 욕심이 생긴다.

 

 

자신이 옳다고 인정받을 수만 있다면 목숨을 건 결투와 전쟁도 마다치 않는 게 인간의 심리다. 오죽하면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 중 하나가 자신이 틀렸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

 

 

여자들은 장시간의 대화를 ‘비즈니스’라하고 남자들은 ‘수다.’라고 한다. 서로의 가치관과 성향, 관점이 다를 뿐이다.

 

 

“성욕이나 명예욕 등의 욕구는 극복할 수 있었지만 극복하기 참으로 어려운 욕구가 있었다. 바로 다는 사람들한테 인정받고 싶다는 욕구였다.” -법정스님

 

 

 

멍 때리는 시간이 많아질수록 삶은 풍요로워진다.

 

“여보, 우리 눈 좀 보고 대화하자!” “말해, 지금 듣고 있잖아.” “여보, 미안해. 얼른 메일 하나만 확인할게.” 다음날 아침 6시, 스마트폰 알람 소리에 잠이 깬 정 과장은 또다시 메일과 메시지를 확인, 스마트폰은 오전 시간엔 MP3, DMB, 게임기로 외근이 잦은 오후에는 메일확인, 검색, 내비게이션, 쇼핑, 은행 업무, 무한 변신 중이다. 이렇듯 스마트한 기기가 있는데 왜 우리 생활은 전혀 스마트해지지 않는 것일까?

 

 

지하철, 음식점, 공연장 등 그 어디를 둘러봐도 사람들은 모두가 스마트폰만 들여다보고 있다. 친구들의 모임에서도, 가족과의 식사에서도 스마트폰에서 시선을 떼지 못한다. 부부마저도 잠자리에 누어 각자의 휴대전화를 들여다보며 잠이 드는 상황이니, 같이 있어도 함께 있지 않은 사람들, 스마트폰은 스마트하게 사용하지 못하는 우리의 슬픈 자화상이다. 마치 금단현상을 겪는 사람처럼 불안감을 감추지 못한 채 신경질을 부리기도 했다.

 

 

노모포비아 증후군, 휴대전화가 없는 공포증이라는 의미의 합성어로, 휴대전화가 곁에 없을 때 초조와 불안감을 느끼는 증상을 일컫는다. 정신과 전문의인 나조차도 어느 날 진료 중에도 회의 중에도 이동 중에도 인생의 바이블이라도 되는 양 하염없이 스마트폰만 바라보는 내 모습을 발견. 순간 내가 기술과 정보를 통제하는 게 아니라 기술과 정보가 나를 지배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이 가진 네 가지의 힘

1. 책은 정보의 우선순위를 제공해준다. 웹페이지에는 모든 정보가 무작위로 나와 있다.

2. 쓸모없는 정보를 미리 걸러준다.

3. 불필요한 자극이 없다. 웹 페이지에는 시각적 청각적 자극이 가득한 내용이 돌아다닌다.

4. 독자의 관심사 혹은 지식수준에 따라 취사선택이 가능하다.

 

 

좋은 사람을 만나듯, 책과 지속적인 만남을 유지하라. 그것이 바로 당신의 생각을 살찌우고 건강한 사람을 유지하는 최고의 비결이 될 것이다.

 

 

우리 주위에 있는 사람을 발견하다.

 

“지금 컴퓨터와 휴대전화를 끄고 당신 주위에 있는 소중한 사람들을 발견하자. 잠시만이라도 아날로그적인 삶을 살아봄으로써 무엇이 자신에게 가장 중요한 것인지 찾을 필요가 있다. 그 어떤 것도 손자가 첫걸음을 뗄 때 손을 잡아주는 기쁨을 대신할 수 없기 때문이다.”

 

 

뇌가 좋아하는 추억을 남겨라 : 사람이 다른 사람의 첫인상을 보고 호감도를 결정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3초 남짓이다. 이때 인상을 결정짓는 것은 예쁘고 잘생긴 외모가 아닌 상대의 표정이다. 상대에게 좋은 감정을 전달하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관심을 보이는 것이다. ‘가식적’이다 라고. 의도적으로 타인에 대한 관심을 두다 보면 자연스럽게 인지적 공감능력이 발달한다.

 

 

항상 메모할 준비를 하라, 모든 일은 밤에 이뤄진다. 당신의 신체는 쉬고 있지만, 두뇌는 밤에도 열심히 사유한다. 그러니 잠에서 깬 후 바로 메모할 수 있도록 머리맡에 종이를 준비해놓는다.

 

 

재수 좋은 놈을 이기는 미친놈이 되라.

 

몰입을 잘하는 사람들에게는 대부분 성공의 월계관을 준다. 그래서 일과 몰임을 잘하는 사람들은 성공 뒤에 반드시 피나는 노력이 있었음을 안다. 몰입을 하지 못하는 사람은 “제 필자대로 사는 것이다.”라면서 소주잔을 함께 기울일 사람을 찾는다. “뛰는 놈 위에 나는 놈 있고 나는 놈 위에 재수 좋은 놈 있다.”라고 한다. 그런데 재수 좋은 놈을 이기는 사람은 다름 아닌 ‘미친놈’이다 자기 일에 미친 사람은 그 누구도 당해낼 수가 없다.

 

 

 

칭찬은 뇌를 춤추게 한다.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약점을 보완하려 하지 말고 강점을 더욱 강화하라”

 

 

인간은 타고난 거짓말쟁이다.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스스로 터득해 거짓말을 한다. 6세 미만 어린이의 95퍼센트가 거짓말을 한다. 어린아이들은 상대방이 불쾌하게 여길 말이라면 아예 대답을 하지 않거나, 상대의 기분을 상하지 않는 쪽으로 바꿔 대답하는 요령을 익히게 된다. 이것이 바로 사회화과정이다. 더불어 사는 방법을 익히는 과정이다.

 

 

관계에도 안전거리는 필요하다.

 

근친언팔, 상사블록, 연안불팔. 이는 트위터에서 가족을 포함한 친인척간의 팔로를 끊고, 직장상사는 블록 즉 차단을 통해 접근을 막으며, 연인끼리는 서로 팔로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사적 영역이라고 생각했던 SNS가 공적으로 넘어가 예상치 못한 불편한 문제데 발생하자 서로 적당한 거리를 지키자는 의미다. 투명인간, 잉여인간 취급을 받는다. 감싸주고 덮어줄 수 있는 사소한 실수에도 화를 내고 분노를 표출한 것은 자신의 위치와 권위를 확인하고자 하는 욕망의 표현이다. 안 되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술이든 팔씨름이든 ‘그래도 나는 아직 죽지 않았다’ 면서 아버지와 아들 사이에서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아버지와 아들이 30분간 같은 공간에 있었다고 가정해보자. 훈계를 피하려고 아들은 아버지를 외면하려 하고, 아버지는 아들의 얼굴을 자주 볼 수 없으니 마주칠 때마다 잔소리를 늘어놓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자동차를 운전할 때 안전거리가 필요하듯 인간관계에도 안전벨트와 안전거리는 필수다. (앞차의 뒷바퀴 끝이 보이는 거리는 무슨 일이 있어도 옆으로 빠져나갈 수 있는 거리다) 과유불급이라고 했다. 너무 가까우면 서로에게 상처를 입히고, 너무 멀어지면 소외되고 고립된다.

 

 

영국에서 청소년을 자녀로 둔 학부모 중 50퍼센트 이상이 SNS를 통해 자녀의 사생활을 감시. 학교생활, 취미생활, 이성관계, 가치관. 신석기 구석기 고대 그리스 중세시대에도 ‘요즘 젊은것들’은 언제나 늘 문제였다. 자녀는 비 맞은 대나무처럼 하루가 다르게 성장하지만, 부모의 눈에는 여전히 챙겨주고 보호해줘야 할 어린아이로 보이기 때문이다. 부모와 자식 간에도 예의가 필요하다. 귀할수록 잘 보듬어야 한다. 사랑할수록 예의를 갖추어야 한다. 아이들이 SNS로 부모와 연결되는 것을 거부하는 이유는 자신들만의 세계를 들키고 싶지 않다는 욕구가 더 크다. 그런데 굳이 판도라의 상자를 열 필요가 있을까.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 사람들, 익명성의 또 다른 이름은 뻔뻔함이다.

사회성이 좋고 유한 사람은 상대방의 말과 표정 중에서 가장 호의적인 부분에 주목한다.

 

 

상대가 필요로 하는 것을 제공하자

 

친밀한 관계에 대한 정의. 아무 때나 연락해도 부담없는 사이, 최소한 서로의 집을 한 번 이상 방문한 사이, 소주 한잔 기울이며 서로의 마음을 터놓을 수 있는 사이, 부담 없이 돈거래를 할 수 있는 사이.

 

 

쇼핑 때마다 늘 싸우고 들어오는 모녀, 상대를 위해 베푼다고 생각했지만 고마워하는 사람은 없었다. 직장, 여가, 인간관계 등을 모두 포기하고 아이들 뒷바라지만 했는데 “엄마가 해준 게 뭐가 있어” 엄마는 상처를 입는다. 엄마에게 중요한 것과 아이에게 중요한 것은 분명 다르다. 엄마는 사랑이라고 말하지만, 아이에게는 그저 듣기 싫은 잔소리일 뿐이다. 자신의 노력을 몰라준다고 서운해하기 전에 상대가 필요로 하는 것을 제공했는지 자문해볼 일이다.

 

 

 

윈스턴 처칠 전 수상도 우울증을 앓았는데 ‘블랙독’이라고 불렀다.

 

 

 

마음이 무거운 사람은 생각도 많다.

마치 도도한 마님과 충실한 머슴을 보는 듯했다. 아내는 자신의 남편을 ‘심장이 없는 사람’ 그의 이야기는 언제, 어디서, 누가, 무엇을, 어떻게, 왜 하는 6하 원칙에 따라 팩트중심으로 이어졌다. 마치 텔레비전에서 앵커가 뉴스를 전달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 정도였다. 한마디로 상대의 감정을 전혀 읽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감수성이 예민하고 생각이 많은 아내와 그저 모든 상황을 단순하게 받아들이는 남편, 너무 다른 성향이 문제였다.

 

 

“너도 그래? 나도!” 사람이 사람에게 받는 가장 큰 위안 중 하나가 바로 ‘나만 이렇지 않다’ ‘일반화 과정’ 이라고 하는데, 아무리 어려운 일도 솔직하게 털어놓으면 누구나 겪는 일반화 과정이 되면서 누구나 다 똑같다는 사실에 위안을 얻고 다시 일어설 기운을 낼 수 있다.

 

 

어린 시절부터 부모가 원하는 그림 그리기에서 시작해 부모가 원하는 대학, 부모가 원하는 직장, 부모가 정해주는 여자를 만나 결혼한 사람이다. 30년이 넘도록 부모의 뜻에 따랐을 뿐 단 한 번도 주도적으로 일을 벌여본 적이 없었다. 그러니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어떤 일을 할 때 즐거움을 느끼는지조차 모르고 살았다.

 

 

 

무엇을 하든 하나라도 제대로 하라

“요즘 세상에도 길을 물어보는 사람이 다 있네.” 이제는 사람을 통해 전달되어야 할 생각과 지혜가 오로지 ‘엄지’를 통해 나온다. 서로 얼굴을 마주 보고 앉아 있어도 대화가 겉도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새 구두는 언제나 발이 아프다. 그렇다고 언제까지 헌 신발만 신고 다닐 수는 없다. 우리의 생각도 이와 비슷하다. 언제나 새로운 것보다 익숙한 것에 더 강하게 반응한다. 새로운 기회를 만들 가능성 자체를 차단해 버린다.

 

 

‘멍 때리기’ 하나만이라도 제대로 하자.

머리만 제대로 비워도 우리 삶은 한결 편안해질 것이다.

 

 

 

 

멍 때려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