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목련이 지다

류창희 2011. 4. 1. 00:00










너무 늦게 그에게 놀러 간다


(나희덕)

 

우리집에 놀러 와. 목련 그늘이 좋아.

꽃 지기 전에 놀러 와.

봄날 나지막한 목소리로 전화하던 그에게

나는 끝내 놀러가지 못했다.



해 저문 겨울날

너무 늦게 그에게 놀러 간다.


나 왔어.

문을 열고 들어서면

그는 못 들은 척 나오지 않고

이봐. 어서 나와.

목련이 피려면 아직 멀었잖아.

짐짓 큰소리까지 치면서 문을 두드리면

조등(弔燈) 하나

꽃이 질 듯 꽃이 질 듯

흔들리고, 그 불빛 아래서

너무 늦게 놀러 온 이들끼리 술잔을 기울이겠지.

밤새 목련 지는 소리 듣고 있겠지.



너무 늦게 그에게 놀러 간다.

그가 너무 일찍 피워올린 목련 그늘 아래로.









(사하도서관 목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