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네치아, 이틀
베네치아 이틀째
날마다 아내 사진을 찍어주기 위해
'살신성인'하는 나의 짝지
베네치아에서 만난
한국 대학생들
피자한판과 파스타 한접시를 나눠먹으며
'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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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미한 연필자국
cafe, 남학생들과 피자 먹음.
부라노섬, 도착하자마자 다시 되돌아옴
15유로의 현란하지만 갖고 싶은 문진의 빛깔을 놓치고 떠나왔다.
베네치아의 빛깔은 그 눈앞에 있던 몇 번이나 들었다가 놓았다가
다시 와서 사야지 망설이다 놓쳐버린 ‘문진 빛깔’이다.
길 골목 상점 맛집, 버스 수상 버스 노선 번호위치 다 찾을 수 있다.
서른 살 아들도 베네치아에서 길을 잃고 3시간을 헤맸다는 데
나의 남편 곳곳에서 10분 20분이면 다 찾는다.
작은 비행장 큰 비행장 5분 10분 간격으로 드나드는 버스배차 시간까지
완전 신의 경지다.
어찌 존경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DNA 속에 베네치아의 상인처럼 대문간마다 표시해 놓았었는지….
훌륭하다. 퍼팩드하다.
그러나 50이 넘으면 먼 길은 보이나 바로 눈앞에 상황은
돋보기에 의존하지 않으면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다.
비행기 좌석표 기차좌석표 10시 45분 기차 9시 20분 버스시간표 앞에서
가방의 돋보기는 쉽게 찾아지지 않는다.
그래서 여행 백 속의 돋보기 바지 주머니 안의 돋보기를
끝도 없이 뒤적거리며 내장을 다 들어내며 찾는다.
목에 걸고 찾고 머리에 얹어놓고 찾고 손에 들고 찾는다.
오른손에 들고 찾다가 발견되면 기쁜 나머지 왼손에 든 핸드폰을 놓아버린다.
그것 또한 예수 사랑의 경지다.
왼손의 베풂을 오른손은 절대 모른다.
눈도 귀도 머리도 절대 모른다. 어쩌면 수상 버스 안에서‘
내 주머니는 열려 있는 금고이니 자 다 함께 공유합시다.’
바람잡이 같던 남미계의 “호르르 깍깍” 어린아이들 달래는 척
바람 잡던 3인조 소매치기 그룹일 수도 있다.
로마에서 들었다.
세계의 표적 1순위는 한국의 50대 남자라고.
카드보다 현금을 믿고 순발력보다 객기를 믿는다.
소매치기 정도는 내가 맨손으로 현장에서 잡을 수 있다는 의협심이 불탄단다.
아직, 한국사회에서 살아남은 현역이니 말년 병장이다.
백인 여자의 푸른 눈에 홀리고 흑인 여자의 엉덩이에 홀리고,
수다스러운 이탈리아 여자의 제스추어와 목소리에 시선을 빼앗긴다.
한국에서 출근시간마다 현관에서 핸드폰 지갑 자동아 키를 챙겨서
20~30년을 잘 길들여 놓았으니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막무가내 ‘샤오황띠’나 다름 없다.
그럼, 여자는 어떤가. 내 수저 내가 식탁에 놓지 않으면
그 누가 내게 밥을 차려줄까.
밥 한 그릇 옆에 놓여 있는 숟가락은 내 손이 내 딸이 아니라 생존이다.
숟가락 정신으로 남편 앞에서도 여권 현금 카드 선크림 핸드폰이 든
핸드백을 끌어안고 있다.
남편보다 더 미더운 존재다.
화가 난다.
싫어하는 눈치를 뻔히 알면서도 세계 속의 한국말로
“여보, 지갑, 핸드폰, 카메라 주머니에 들어 있는 것 다 빼서 가방에 챙겨놓으세요.”를
대한사람 대한으로~ 길이 보존하세~ 후렴구처럼
가방 속에 챙겨서 길이 보전하자고 노래한다.
그 말이 거슬리는 남편 ‘평화사인’하라고 쫓아다니는 집시 여인을 외면하듯이
아내의 말과 시선을 무시한다.
아내는 꽃 노래가 시들해졌다.
귀에 못을 박은 안에서나 밖에서나 귀찮은 마누라쟁이.
펄펄 끓던 압력솥 불 껐다.
이미 다 된 밥이다. 봉투 안의 돈도 주머니 안의 핸드폰도 없다.
차라리 홀가분하다.
“여보, 핸드폰보다 넷 북이 낫겠어요, 노트가 낫겠어요? 한국 들어가면 바꾸세요.”
아내의 안정된 차분한 말투에서 남편은 금세 응원을 얻어 콧소리에 명랑하다.
“그게, 낫겠지!”
게임 아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