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속물

류창희 2009. 10. 3. 15:34


올 봄
힘이 없다.
축적된 에너지가 없으니 한끼만 굶어도 허리가 구부러진다.
아니 그보다 보는 이마다 무슨일이 있으냐고 묻었다.

요 며칠은 더 많은 인사를 받았다.
아프냐
고민이 있느냐
사별을 한 어느분이
"나 같은 사람도 웃으며 살아요.
선생님 그냥 다 내려놓으세요"
충고를 한다.

어제 그제 오늘 만나는 이마다  나에게 밥을 사줬다.
먹고 힘내라면서...

지켜보며 눈치를 살피던 남편
오늘 아침 일찍 일어나
아침준비를 하는 나를 뒤에서 껴안으며
"아~ 알았다. 류창희씨 고민~ "

의기양양 털어놓는 이야기 즉은,
cj투신에 넣어준돈 팔지 말라며
오를 날도 있을 것이라 말한다.

"으이구~!
당신은 날 그렇게도 몰라요?"
내가 언제 돈 때문에 고민하는 것 봤어요.
당신께선 나보다 며칠이라도 오래만 살면 돼요.

당신이 없으면
이 다음 아들들에게 구박 받을까봐...
하지만 당신과 함께 한다면
아파도
하루 두끼를 먹어도
걱정같은 것 안해요.

사실 저축통장의 만기 날짜가 지나도
나는 확인을 안한다.
오르고 내리고는 금융권 저희들의 문제지
나는 별반 관심이 없다.
강사료가 들어와도
몇년이고 몇개월이고 쌓여있다.
그러니 맨날 남는 장사다.

고정적인 생활비 말고는 쓸일도 별로 없다.
그렇다고 돈이 많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그저
이자가 많이 붙으면 좋고,
통장에 잔고가 많으면 좋을 뿐이다.
일일이 따지지 않는 것을 누구보다 잘아는 남편이
설레발을 치며 위로하는 꼴이 생소하다.

목요일은 오전 수업만 있다.
남편은 같이 갈곳이 있다며
자기 직장으로 빨리 오라고 한다.

국민연금 공단으로 갔다.
지금으로 부터
한달에 10만원 정도씩 10년을 불입하면
2018년 7월부터는
매달 198,000원을 내가 받을 수 있다는
연금에 가입해 주는 것이 아닌가.

근데,
기분이 묘하다.

한 30년 부적절한 관계로 동거하다
'이제야 혼인신고를 하는 느낌'이다.

푼수가 따로 없다.

"어머! 나 이제야 당신의 정식부인 된것 같아"
발그레 상기되며 온 전신이 다 촉촉해져 온다.

직원은 '두분의 모습이 참 아름답고 좋아보인다'고
무슨 휴머니즘 영화나 보는 듯이
덩달아 촉촉해지더니
급기야는 내 신분증도 챙겨주지 못한채
우리를 보내고 ...
전화하고
차고까지 뛰어내려오고...
야단법석이다.

10후,
198,000원으로
무엇을 할 수 있을지...
또 그때까지
내가 살 수나 있을지....
만기 날짜가 바로 내일이기나 한듯 감격이 물결친다.

남편의 등을 토닥여주고
얼굴을 만져주고
손도 잡아주었다.

어버이날 자축 기념으로
식사하자는 남편의 말을 무시하고
집에 돌아와
두릅을 데치고 전갱이를 굽고
목소리를 한 옥타브 높이고
밀대 걸레를 들고
거실과 부엌바닥을 빡빡 문질렀다.
그래도 힘이 남는다.

정령,
내 자신도 내가
돈 따위에는 관심이 없는 줄 알았다.


2008.05.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