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아버지

류창희 2009. 10. 4. 00:50

아버지

김해숙(해운대 도서관)


일곱 살 무렵이었다.
아버지는 퇴근해 오시면 늘 문밖에서 “숙아”하며 들어오셨다. 그러면 우리 사남매는 쪼르륵 달려 나가 인사를 했다. “아버지 다녀오십니까?” 나는 사남매 중 맏이도 막내도 그렇다고 엄마가 좋아하는 아들도 아닌데, 아버지는 늘 내 이름만을 부르셨다.
엄마가 저녁준비를 하는 동안 또 한 번 내 이름을 부르신다. “숙아 한 바퀴 돌러 가자” 아버지 손을 잡고 한 손엔 내 머리통만한 토마토를 들고 온 동네를 개선장군 마냥 당당하게 걷던 그 평화로운 저녁산책이 내 유년시절의 첫 기억이다.
그런데 참 이상한 건 아버지는 왜 늘 내 이름을 부르며 들어오셨는지, 또 동네 한 바퀴를 돌아보러 갈 때면 왜 꼭 내 손을 잡고 가셨는지…, 우리 가족 중 그 이유를 그 누구도 묻지 않았다. 동생도 언니도 궁금해 하거나 따지지 않았다. 물론 나도 마찬가지였다.
지금 가만히 생각해보면 아버지는 아마도 둘째의 설음을 짐작하고 계셨었나 보다. 남동생처럼 아들도 아니고, 언니처럼 착하고 예쁘지도 않았고, 귀여운 짓만 골라하는 막내처럼 곰살궂지도 않은, 고집이 세고 눈치라고는 없는 내가 은근히 마음이 쓰이셨나보다.
나는 자라면서 내 위치에 대해 불만을 많이 가졌다. 둘째 특유의 반항이 아닌, 나름대로 이유 있는 반항이었다.
엄마는 항상 편파적인 심판관이었다. 남동생과 내가 싸울라치면 “누나가 참아야지 철없는 동생하고 싸워서 이기려 든다”며 팥쥐 엄마가 콩쥐 대하듯 하셨고, 언니와 싸우게 되면 “고집 세고 버릇없이 언니한테 대든다”고 또 똑같은 이유로 야단을 치셨다.
그래서 형제간에 싸움이 있고나면 나는 항상 억울함을 혼자 구석에 가서 삭혀야 했다. 엄마가 보이는 데서 울고 있으면, 또 눈물이 길다고 야단을 치셨기 때문이다. 언제나 왜 싸웠는지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었던 엄마가 정말 야속했다. 낮에 일어나는 이러한 상황들을 아버지는 보지 않아도 훤히 알고 계셨던 듯하다. 아버지만이 항상 “숙아” 하며 달래주셨던 것이다.
아버지와 동네 한 바퀴를 휑하니 돌고나면 내 마음 속의 모든 슬픔과 억울함이 또 휑하니 달아나버렸다. 아버지는 그렇게 내게 세상을 꿋꿋하게 살아갈 수 있는 심지를 심어주셨다.
조용히 내 안의 나를 들여다보고 있으면, 어렴풋이 보이는 슬픔으로 울고 있는 한 아이와 따뜻한 아버지의 “숙아”하는 목소리가 들린다. 세상에는 부당함도 슬픔도 따뜻함도 평화로움도 모두가 공존하는 곳이며, 그 중 내가 무엇을 취하느냐에 따라 내 삶의 방향이 달라 질 수 있다는 진리도 아버지에게서 배운 셈이다.
나의 아버지, 내년이면 팔순이시다.    


류창희   2009-06-23 07:28:02
해운대도서관(수요일 일상속의 글쓰기) 강좌에서
숙제 내준 첫날 어느 회원의 글이다.
말하듯이 편안하게 써 보라고 했더니
"이렇게 써도 되느냐"며 시키는대로 한번 써 봤다는 것이다.

주일마다 여러분들이 글을 써오신다.
이미 수필가인듯한 상당한 수준이 되는 분들의 글도 많다.
그중 처음 써본다는 분의 글을 올렸다.
공책에 연필로 또박 또박 써 왔다.
인쇄된 활자가 아닌, 손글씨도 오랫만이라 반가웠다.
호수아빠   2009-06-23 10:47:12
..너무 빨리 걷지 마세요. 너무 빨리 걷다보면 들에 핀 들꽃도, 졸고있는 미장원 김씨 아줌마도 볼 수 없고, 더더군다나 너무 빨리 걸으면 숨차잖아요....이 생각 저 생각 하지 말고 그냥 일곱살박이의 걸음으로 천천히 걸으세요. 아버님과 함께....
은하수   2009-06-23 16:23:38
여름이 시작되네요.
항상 바쁘게 사시는 셈께
언제나 즐거운 일이 생기길 ~~~
그리고
건강도 챙기세요.
가끔 안부 보냅니다.
류창희   2009-06-23 16:31:38
호수아빠^^
아버지를 쓰신 분은 글을 읽으면서
전에 내가 그랬던 것처럼,
차마 끝까지 읽지 못하고 우시더군.
옆에 있는 글벗이 대신 읽어주셨지.
우리 남매는 '아버지'하고 소리내 불러볼 수 있는 ...
살아계신 아버지도 부럽구만!
류창희   2009-06-23 16:33:52
은하수님^^
더위 어찌 맞이하세요?
같이 밥한끼 못하고 한학기를 마무리해서 아쉬웠어요.
다른 분들은 두어번 동동주까지 했는데...
한번 날아갈게요. 사하로~
서향   2009-06-24 13:32:11
류선생님, 참 가슴뭉클한 글들이 많네요..
돌아가신 아버지 생각에 잠시 눈시울이 젖었습니다.
그리고, 저
7월1일자로 해운대도서관으로 발령났습니다..^^
해운대에서 뵐게요..
류창희   2009-06-24 15:12:39
아하!
서향님^^
저는 너무 좋습니다.
제가 해운대도서관에서 맡은 과목이 많아 걱정했는데...
서향님의 전폭지지를 기대합니다.
해운대 도서관에서 뵈어요^^
호미   2009-06-24 19:32:08
아~~~
해운대는 너무 멀어요.
부전 도서관이나 시민 도서관에서 쌤과 함께 웃었으면....
글쓰기의 매력이 참....
부러버라.
류창희   2009-06-24 22:35:33
호미님^^
반갑습니다.
글은 호미님이 쓰셔야하는데...
그 감성 고스란히 배여나올텐데요.
위의 김해숙님처럼.
호미님도 차곡차곡 저장고에 적어 놓으세요 ㅎㅎ
김해숙   2009-06-26 11:02:51
선생님, 김해숙입니다. 이런저런일로 차일 피일 미루다 방금 들어와 보고 깜짝 놀랬습니다.
생전 처음 써본 글도 글이지만 마음속에 꼭 꼭 숨어 있는 이야기들을 이렇게 활자화 해서 여러사람과 공유하는 이느낌이
또 참묘하네요, 그때 아버지와 걷던 7살때의 그 마음과 조금 닮아 있는 듯한 그런 기분입니다..
선생님 좋은 경험 갖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류창희   2009-06-27 12:52:39
김해숙님^^
'아버지와 걷던 일곱살때의 그 마음'
이 글이 마중물이 되어
힘껏 펌프질하여
이 사이트에 들어오는 분들에게
시원한 '냉수' 한사발씩 나눠주세요.
능금   2009-06-27 23:23:10
세상에는 '숙'이도 참 많지요. 위에 글 쓰신분은 '해숙' 저는 '?숙'
처음 쓰신 글치고 정말 너무 잘 쓰셨네요.
감탄했어요.
제아버지가 저를 부르는 것 같고
아버지의 체취가 코끝을 스치네요.
콩나무시루에 물을 부으면 물은 그대로 빠지지만
콩나물은 자라게 되는 것과 같이
꾸준히 하다보면 '류창희'작가님처럼
좋은 글 쓰게 될 거에요. 힘내세요.
류창희   2009-06-30 10:21:42
능금님^^
'숙' 이, 참 정겹죠.
처음 쓰기 시작한글 칭찬해주셔서 고맙습니다.
더구나 신춘문예 작가님이 잘 썼다고 칭찬하는 것 만큼의 찬사가 또 어디있겠어요.
분명, 토종 콩나물 잘 키우실겁니다.
감사~ 감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