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아버지의 화려한 외출

류창희 2010. 9. 10. 09:00



아버지의 화려한 외출 / 윤상기*



  아버지는 나에게 근엄하고 무서운 존재였다. 신문명을 거부하고 한학에만 몰두하셨던 아버지. 서양 것은 하나도 배울 게 없다던 대원군 같았던 아버지. 유교사상이 최고의 종교이자 덕목이었던 아버지. 앉으나 서나 자식들에게 그 근본인 효를 가르치고 따르게 했던 아버지. 곁에 있으면 가시방석에 앉은 것처럼 불편했던 아버지.

  아버지는 우리형제들에게 서당공부만을 강요했다. 작은형은 서울 이모님 댁으로 일찍이 줄행랑을 쳤지만, 난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가업을 이어야한다는 아버지의 명령에 순종할 수밖에 없었다. 농촌에서 지게를 지고 논두렁 밭두렁을 헤매고 다녔다. 중학교에 다니는 친구들이 먼 곳에서 나타나면 호밀밭에 숨었다. 그럴 때마다 내 모습이 너무 초라하게 보였다. 아버지의 독선적인 삶을 위해 내가 희생양이 되긴 싫었다. 어린나이에 농촌에 주저앉은 나는 아버지를 원망하며 한숨과 눈물로 보냈다. 어머니는 이런 나를 무척 안쓰러워했다.

  어머니는 당신께서 책임질 테니 중학교에 갈 준비를 하라고 하셨다. 이십 리 떨어진 중학교에 시험을 보러 가던 날, 아버지 몰래 새벽밥을 지어주셨다. 이 사실을 안 아버지는 대노하시고 어머니를 닦달했다. 어머니도 가만히 계시지 않았다.

  “왜 멀쩡한 자식을 농촌에서 생매장시켜, 내가 행상이라도 해서 가르칠 테니 당신은 걱정하지 말아요.”

  아버지의 말에 늘 순종만 하셨던 어머니가 대드는 모습을 처음으로 보았다.

  고등학교에 갈 때도 우여곡절을 겪었다. 나는 아예 대학을 포기하고 공업계 고등학교를 선택했다. 기술을 배워 지긋지긋한 농촌에서 탈출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고등학교 개방행사에 부모님들을 모신다는 초대장을 학교에서 나누어 주었다. 아버지가 참석하실지 눈치를 살폈다. 신학문을 거부하며 사회와 타협을 거부한 아버지였기 때문이다. 아버지가 학교에 오신다 해도 두려움이 앞섰다. 아버지의 편협한 눈에 기술을 배우는 내 모습이 어떻게 보일지 몰랐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무슨 일인지 흔쾌히 행사에 참석하겠다고 하셨다. 흰 중절모에 모시두루마기를 입고 검은 지팡이를 드셨다. 멋진 풍채에 길게 기른 검은 수염을 날리며 당당히 학교에 오셨다. 오랜만에 보는 아버지의 화려한 외출이었다. 당신 생전 처음으로 고등학교 문턱을 밟아보시는 날이었다. 먼저 담임선생님께 찾아가 정중한 예를 갖추셨다. 행사장을 돌며 각과에서 만든 물건을 보면서 신기해 하셨다. 전기과에서 만든 라디오와 전축·화학과의 화장품·비누·방직과의 속옷과 비단·기계과의 기계공작 주물·건축과의 장롱·생활 공구·토목과의 각종측량기와 설계도 등, 학교에 설치된 실험 실습 기자재를 두루 살피시며 신문명에 충격을 받으신 듯했다. 아버지는 행사 관람을 마치고 담임선생님에게 작별의 예를 갖추고자 하였다.

  “선생님, 시간이 있으신지요. 제 자식을 가르치는 선생님께 약주 한 잔 올릴까 합니다.”

  갑작스런 아버지의 제의에 선생님도 흔쾌히 받으시고 아버지와 약주를 나누셨다. 선생님과 약주를 드신 아버지는 기분이 몹시 좋으셨다.

  다음날 선생님이 나를 불렀다. 전날, 아버지는 선생님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고 한다.

  “선생님, 제가 우물 안의 개구리처럼 세상을 산 것 같습니다, 오늘 학교에 와서 보니 내가 생각지 못했던 새로운 세상을 보았어요. 새로운 기술을 학생들에게 전수하시는 선생님들의 진지한 모습을 보고 큰 감명을 받았습니다. 앞으로 제 생각을 고쳐야 할 것 같습니다. 제 자식을 잘 부탁합니다.”

  그날 아버지는 선생님과 술잔을 나누며 서로존경과 교감을 나누셨다. 선생님은 아버지의 인격과 학식을 말하였고 아버지는 선생님의 노고를 치하 하셨다. 그날 후로 나를 대하는 아버지의 태도가 백 팔십 도로 달라지셨다. 집에 다니러 올 때마다 선생님의 근황을 물었고, 꼭지가 차름히 차도록 담긴 동동주병을 전해드리라며 내놓으셨다.

  학교를 졸업하고 취직하여 건설공사 현장에 근무할 때 일이다. 내가 그린 설계도 청사진 한 장을 들고 집에 내려간 일이 있었다. 설계도를 본 아버지는 이게 실제로 네가 그린 도면이냐고 몇 번이고 되물었다. 도무지 믿기지 않으신 모양이었다. 머리카락보다 가는 도면속의 선들을 어떻게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정밀하게 그릴 수 있느냐며 대견해 하셨다.

  아버지는 당장 그 도면을 들고 동네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모정으로 향하셨다.

  “이게 우리 아들이 그린 서울 삼각지입체교차로 설계도면이라네,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만드는 입체교차로! 차가 쉬지 않고 마음대로 달릴 수 있다네,”
  
아버지의 그 말 한마디가 내 여린 가슴을 뜨겁게 파고들었다. 순간 뭉클한 진동이 울려왔다. 그동안 내 가슴에 한처럼 쌓여있던 아버지에 대한 원망의 응어리가 한 순간에 녹아내리고 있었다.



<한국산문>에 실린 9월의 명 산문

* 작가 윤상기
에세이스트 등단
수필집 <<기린봉 달토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