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엉덩방아

류창희 2009. 10. 3. 21:17

뭔가 아귀가 잘 맞지 않는 날들이 있다.
이번 주가 그랬다.
물 좋고 공기 좋고 경치 좋은 대운산 휴양림에서 잤다.
새소리 계곡의 물소리를 들으며 텐트에서,
조금 추워서 그랬던지 허리 뒤편부분에 담이 붙었다.
욕조에 뜨거운 물을 받아 소주 반병을 쏟아 붓고 노골노골 반신욕으로 다스렸다.

화요일은 출근하려고 나가니 자동차 시동이 걸리지 않았다.
본넷트를 열어 들여다본들 이제 라디오 주파수 맞추는 거나 겨우 하는 주제에,
자동차 내장을 어찌 알겠는가.
편한 신발을 신고 뛰거나 택시를 타고 다녔다.
출동서비스 기사가 와서 등을 끄지 않아 베터리가 방전되었다고 한다.
그럴 리가 없는 것 같은데, 전혀 기억이 안 난다.
친절하게 충전을 시켜주며, 1시간 가량 시동을 끄면 절대 안 된다고 신신당부를 했다.
어찌 한꺼번에 두 가지 일을 동시에 한단 말인가.
시동에 신경을 쓰느라 자동차 키를 꽂아놓은 체 나와 버려 열쇠쟁이를 불러서 열었다.

금요일, 오늘 아침일이다.
아침 시간이 늘 그렇듯이 5분이 급하다.
출근 시간이 임박하다.
누가 나에게 부탁해 사 달라길 했나.
오지랖 넓은 내가 자랑삼아 KTX 비즈니스 카드가 있다며
일행들의 기차표를 인터넷으로 예매를 하는데,
어정어정 하다 보니 있던 표가 사라지고 또 찾고 겨우 왕복표를 카드 결제했다.
오전에는 도서관에서 수업을 해야 하고 오후에는 중국어회화반에 가야한다.
교재를 찾으려니 어수선한 책상 위, 당체 찾을 수가 없다.
그때 나의 오지랖을 도와주는 남편에게서 전화가 왔다.
급하게 예! 예! 하며 한손으로 전화기를, 한손으로 책을 찾으며, 컴퓨터를 들여다보는데,
네발 달린 바퀴의자가 혼자 미끄러지며 엎어진다.
순간 의자와 책상 밑 사이로 나의 몸이

“꽈당”

눈을 깜빡이는 순간보다 더 짧은 조차의 순간,

나는 ‘知’를 생각했다.
어찌하면 내가 지혜롭게 넘어질 수 있을까?
'뇌진탕'보다는 '엉덩방아'가 낫겠다 싶어 손으로 머리를 감쌌다.
그렇지 않아도 살이 없어 돌출된 엉덩이 꼬리뼈!
앞이 캄캄하더니 머릿속이 하얗다.
어떻게 일어날까.

겨우겨우 엉덩이를 치켜들고 한 시간을 운전하여 도서관으로 갔다.

君子無終食之間 違仁이니 造次에 必於是하며 顚沛에 必於是니라
(논어 이인편 5장 문장)
‘군자는 밥을 먹는 동안이라도 仁을 어김이 없었으니,
황급한 상황에서도 반드시 인에 있어야하며,
넘어지면서도 반드시 仁에 있어야하느니라.

나는 어릴 때부터 정적인 사람으로 仁者에 속한다고 생각하며 살아왔다.
나와 남을 구별하지 않고 내가 다 해야 할 것 같은 仁한(어진) 마음을 가졌으니…
수직으로 위아래 질서나 잘 지키며 조신하게 집안에서 살림이나 살아야 할 성정이,
잘난 체 하며 수평으로 온 동네 싸돌아다니며 기웃거리니,
어찌 마음만 정착을 못하겠는가.
몸도 덩달아 들 떠, 제 자리를 지키지 못하고 의자 밑으로 나뒹구러졌다.
仁한 마음으로 몸이 가는대로 맡겼어야 하는데, 잔머리를 굴렸더니...
촌음을 아껴 쓰려다가 석삼년 골병들게 생겼다.


08년 10월 17일
(18장 미자편 끝내고 19장 자장편 들어가, 책거리 떡 먹은 날)


류창희   2008-10-18 07:51:25
ps : 도서관에 도착하니
우리반 학우들 송편 두되 해 놓고 기다리고 있었다.

예로부터 '똥통'에 빠지면...'
죽을뻔 하다 다시 태어났다고
백설기 떡해먹었는데
내가 엉치뼈 사고친걸 어찌알고 ... ㅎㅎㅎ

떡 먹어도 "마이아파~"
알밤나무   2008-10-19 13:42:01
엉덩이뼈 잘 다스리세요 칼슘제도 드시고요.케토파인 젤 파스도 발르세요.
쌤 님이 다치시면 울들 공부 못하면
재미없어요. 일상이.........
저도 운이 없어서 2주전에 다쳐서
병원에서 맨날맨날 물리치료 받고있어요......ㅎㅎ

담쟁이

담쟁이가타고 오르는 까닭은
저 하늘에
별을 따려 함은 아닐테고
아마 회색 나무 줄기에
초록 옷 입히려 함일것 같애

또한 담쟁이가
담벼락 타고 오르는 까닭은
저 창안 을
엿 보려 함은 더욱 아닐 테고
아마 잿빛 도시에
초록색 되 덮으려 함일것 같애

그런즉 담쟁이는
긴팔 내 밀어 오르는 까닭이
저 목적지를
성급히 정복함도 아닐테니
아마 서두르지 않더라도
다다름을 보이려 함일 거외다.

글 (한올)
류창희   2008-10-20 11:00:48
담쟁이가 담을 타고 오르는 까닭,
그렇게 예쁜 뜻이...

아유~
하필 이고운 계절에
담쟁이빛 상처를 엉치뼈에 ....
앉아 있거나 누워 자는 것이 불편,
서서 수업하는 데는
괜찮습니다.

관심과 사랑 감솨 ~ ^^*
이미자   2008-10-20 11:46:22
ㅋ선생님도 그럴때가 있군요~
아침에 한가한시간이라서 잠시 다녀갑니다
얼굴에 미소를 머금구여...오지랍.....그거 누가시켜서되는게 아니더라구여
아카데미   2008-10-20 13:19:01
아카데미 하우스의 단풍빛깔 많이 담아가시고
엉덩이 꼬리뼈의 희생을 잘 치료해주세요.
또 어디선가 만나집시다.
바람행인   2008-10-20 13:33:31
엉덩이 뼈는 좀 어떠세요?
향기   2008-10-20 15:32:24
꽁지뼈는 잘 다스려야 해요.
호미   2008-10-20 20:47:05
어머나!! 우째 그런일이....
아차! 하는 순간에 일어나는 일이었지만,
머리보호는 참, 잘하셨네요. 부산 시민들을 위해서
- 이 대목에서 크게 웃으시고 행복한 엔돌핀 쏟으셔야 빨리 낫습니다요.

병원엔 들리셨나요?
저도 오래전에 인라인 스케이트 배우다가
서울 올림픽 공원에서 넘어져 그 곳을 다쳤는데
가끔은 요즘도 허리가 ....

다쳤을 임시에는 얼음 찜질이
24시간 이후엔 뜨거운 찜질이 좋다더군요.
허리 강화를 위한 운동도 많이 하시고
케켈운동도....

쌤의 빠른 회복을 위해 이 밤엔 엄청 큰 기도를 할랍니다.
쌤, 건강 하이소!!!!
김옥경   2008-10-21 10:02:26
선생님~~
이날 하루는 머피의법칙에
걸리셨네요^^
꼭 그런날이 있는것같아요
그러나 샐리의 법칙의 날이
더많은것같아요
매일매일 샐리의법칙이
죽~~ 이어지세요
쟈우요!!
푸른바다   2008-10-21 15:28:47
꽁지뼈 어찌 되었나 궁금해서...
잘 다스려야 하는데요.
빨리 쾌유하세요.
풍경   2008-10-21 18:17:22
아이구 세상에나 그 아픈 꽁지뼈.
그거 무지 아픈데.
지금은 좀 나았나 궁금해서 ....
빠른 쾌유를 빕니다.
류창희   2008-10-21 18:48:00
이미자님,
아카데미님,
바람행인님,
향기님,
호미님,
김옥경님,
푸른바다님,
풍경님,

아휴~
하두 까불고 돌아 다니니,
좀 자중하고 쉬라고 신의 계시가 있었나봐요.

조금 돌출되어
아프지요.
"마이아파"

근데, 뼈는 안 다쳤어요.
사진에는 멀쩡하여
매일 물리치료받고 주사맞고 약먹고 조리하고 있어요.
다행히 서서 하는 것은 할 수 있어
'신상품'으로 사는데는 지장없어요.
걱정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사람이 워낙 진화가 덜되어
덜 떨어지다보니
하필이면 꽁지뼈가 희생을 당했네요.
모두 '꽁지뼈' 소중하게 보호하세요^^*
각시꽃   2008-10-22 08:02:00 
엉덩이 치료는 잘하고 있는지 빨리 낳아라
멋진하루 되길 ... 엄마가
류창희   2008-10-23 07:53:49
각시꽃 울엄마
누구 딸인데 ...
거뜬 하다우^^*
잔물결   2008-10-26 11:47:46
중2때 영어선생님댁에 친구들과 놀러갔었는데 따뜻한 밥상이 들어와 맛있게 먹고있었다
처음본 찬들이 너무 많아 정신없이 먹고 있는 나에게 사모님이 참 인자하게 생겼다 하셨습니다
인자가 무엇인지 몰라도 나쁜소리가 아닌지는 알았습니다 집에와서 아버지에게 물었더니 좋은소리라고만 말쓰하셨지요 이제 선생님에게 仁을 배우게 되었는데 仁은 좋은것입니까? ..........
선생님 람사르 잘 다녀오세요 건강한 모습으로 뵙겠습니다.
류창희   2008-10-26 15:41:59
'仁 & 知'
저에게 한학을 전수하신 서당선생님께서는
제 호를 仁義禮智 의'仁智'라고 지어주셨습니다.

저와 같이 동문수학을 한 분들은 저를
아직도 '인지선생'이라고 부릅니다.

거실에도 '인의예지'라는 액자가 중앙에 자리잡고 있고요.

'仁'
인은 참 좋은 거죠.

그런데 어느날 부터
유학적인 본성이
감히 따라갈 수 없음에...
실천할 수 없음에 ...
부담스럽게 여겨지기 시작했어요.

그래서 '꽃처럼 아름다운 시절'로 자유롭게
'화양연화'로 불리기를 바라지요.

'인'은 제 고향과도 같이
늘 내 마음속에 자리잡고
제가 착해져서 돌아오기를 기다린답니다.

말하자면 '기준' 하면서 외치고 있습니다.
종국에는
저도 선배님처럼 '인자한 사람'이 되는 것이
삶의 완성일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