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든이 되어보렴
두 아들녀석들 혼사시키고
매일 후렴처럼 하는 말
“빨리 70이 넘었으면 좋겠다.”
고희에 만날 첫사랑을 기다리는 시간도 아닌데
어서어서 숙제 끝내듯 돌아가고 싶다.
곁에서 듣는 식구들,
특히 내 짝지를 얼마나 김빠지게 하는 소리인가.
여든이 되어보렴
한계주 시집 / 시학
여는 말 - 장을 접을 나이에 손 바닥만한 멍석을 편다.
어느 어린이날 - 육십 먹은 아들이 보챈다 / “어린이날 뭐 없어?” / 엄마는 엄지손가락 치켜들고 자신을 가리키며 까딱까딱 / “그러게, 엄마가 어린이지” / 엄마와 아들이 낄낄대며 웃었다 / 이마의 주름도 마주 보며 웃었다
여든이 되어보렴 1- 지금까지 살아온 것이 그저 고맙고
여든이 되어보렴 2- 손자 업고 어슬렁거릴 일도 없고 / 고추 다듬고 마늘 깔 일도 없고 / 긴 담뱃대 꼬나물고 허공에 연기 날릴 일도 없지만 … / 노인은 노인다워야 하는데 … / 언제 철들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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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계주 선생님은 어른이시다
2001년 내가 처음 <빗금>이라는 작품으로 완료추천을 받던 겨울,
한참 후배, 한참 변방에 있는 문학의 꼬맹이이게
장문의 세장이나 되는 육필편지를 보내셨다.
'내려놓으라구' 선생님도 그러셨다고 위로를 주셨다
해마다
문학세미나에 서울을 가면,
한 번은 부산에서 개최한 세미나 때도
늘 내 가방을 열어 슬며시
립스틱이나 손수건 작은 핸드크림이라도 슬며시 넣어주셨다
그 어른께서 말년에 쓰신
<여든이 되어보렴> 시집을 다시 꺼내 읽는다
한 줄 한 줄,
한계주 선생님 말씀에서 해 맑은 미소가 보인다
그 모습, 너무도 그립다
위로가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