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여행자

류창희 2012. 7. 21. 00:00

여행자

하이델베르크

김영하

 

 

 

밀회

그녀는 내 눈두덩을 혀로 핥았습니다. 그것은 눈을 감으라는 우리 둘만의 약속된 신호입니다. 오래된 연인들은 자기들만 아는 몸과 마음의 암호를 갖고 있기 마련입니다.

 

 

눈을 감으면 육신 깊숙한 곳의 문이 열리고 청각과 후각, 촉각이 더 민감해집니다. 극한의 순간까지 함께 치닫는 것. 아, 그것은 살아 있는 존재가 누릴 수 있는 가장 멋진 순간일 것입니다.

 

 

내가 만난 하이델베르크

사람들은 햇빛을 따라 자리를 옮겨다닙니다. 웨이트리스들이 분주히 오가며 카푸치노를 나르고….

죽음을 생각하기에 좋은 곳은 바로 이런 곳입니다.

무엇을 하든 시간은 흘러갑니다.

일곱 번의 밀회, 일곱 번의 섹스, 일곱 번의 헤어짐, 일곱 번의 다짐, 일곱 번의 체크아웃, 일곱 번의 거짓말.

누군가

다른 사람의 인생에서 몰래 빌려온 것만 같은,

그런 시간.

해마다 우리는 이게 마지막이라고,

다시는 보지 못할 거라고

파리에서 백업해둔 뇌를

암스테르담에서 다운로드 받는 기분이다.

 

 

나는 다시 태어난다면

나무가 되고 싶고 나무로 생을 마친 후에는 계단이 되고 싶습니다.

 

 

“한 번 간 곳을 또 가는 것이야말로 여행의 묘미다.”

산천은 의구한데 오는 ‘나’만 바뀌어 있다는 것, 내가 늙어간다는 것, 그런 달콤한 멜랑콜리에 젖어드는 것, 그것이야말로 ‘다시 가는 여행’에서만 느낄 수 있는 정조라는 뜻일 것이다.

 

 

내가 도시를 사랑하는 만큼 도시도 나를 사랑하기를, 너그럽게 이 철없는 여행자를 품어주기를 기원한다.

 

 

 

여행자(하이델베르크)

 

 

김영하의 여행자를 읽으면서

책표지의 자갈길과 노천카페를 꿈꿨다

그 길을 걷고 싶고

그곳에서 쉬고 싶었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