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직, 독서뿐
오직 독서뿐
정민 / 김영사
프로필 : 어려서부터 손가락을 움직여 지식을 얻지만 깊은 사유의 힘을 얻는 길은 오직 독서뿐이다. 또한, 책 읽기는 필연적으로 글쓰기와 맞닿는다.
서문 : 삶의 속도는 날로 가파르게 빨라진다. 행복지수도 그러한가?
삶은 본질에서 변한 것이 없는데, 속도만 가파르게 빨라지니 생각할 틈이 없다. 원하는 반응이 즉각 나타나지 않는 그 잠깐을 견디지 못한다. 진득함은 사라지고 경박함이 춤춘다. 떠먹여 주기만 바라고, 스스로 곱씹어 소화할 생각은 없다. 이런 반복 속에서 삶은 공허하고 허황하다. 젊은이는 빨리 가려고만 하지 어디로 갈지는 모른다. 늙은이는 퇴직 후의 수십 년 앞에 막막하고 망망하다. 그러다 문제가 생기면 제 삶을 해쳐 남에게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남긴다.
책을 읽는 까닭 - 교산 1569~1618 허균
책은 마음을 지켜준다 - 배움의 길에 선 학생들은 늘 현재의 위치를 불안해한다. 막막한 표정으로 묻는다. 어떻게 해야 삶의 목표를 정할 수 있나요? 답은 간단하다. 사람은 제 마음의 주인이 되어야지. 제 몸의 노예가 되면 안 된다. 마음을 꽉 붙들어 달아나지 못하게 해야 한다. 성현의 말씀이 담긴 책을 읽으면 된다. 책은 마음을 지켜주는 호신부이다.
책은 밥이고 옷이다 - 안지추가 말했다. “재물을 많이 쌓아 두는 것이 얕은 재주를 몸에 지니는 것만 못하다. 재주 중에 익히기 쉽고 귀한 것은 독서만 한 것이 없다.
독서하기 좋은 때 - 비바람이 길을 막으면 문을 닫고 깨끗이 청소한다. 사람의 왕래도 끊고 서책만 앞에 가득하다. 흥에 따라 뽑아서 뒤적인다. 졸졸졸 물 흐르는 소리가 귀에 들려, 처마에 떨어지는 빗물로 벼루를 씻는다. 읊조려 외우노라면 완연히 좋은 벗과 마주한 것만 같다. (창문에 부딪히는 빗소리 들으며 책 읽을 때의 감흥. 책 내용 속에 내 영혼이 푹 젓는다. 처마 밑에 섬돌은 없어도 가뭄을 없애는 폭염을 식히는 처서 지난 8월 말의 단비, 한 달여 낭만의 프로방스에서 돌아와 내가 선 자리에 일상의 뿌리를 내린다.) 사는 게 바빠 여가가 없다고 투덜거리지 마라. 낮에 바쁘면 밤중에 읽고, 갠 날 바쁘면 흐린 날 읽고, 여름에 바쁘면 겨울에 읽으면 된다. 도대체 책 읽을 시간이 없다는 말은 그저 한 마리의 소시민, 무지렁이 밥벌레로 살겠다는 말과 같다.
한가지 뜻으로 한 책씩 읽어라 - 경전에서는 성현의 ‘마음자리’를 본다. 실용서에서 얻을 것은 정보다. 경전을 실용서 읽듯 해서는 안 되고, 역사책을 경서 읽듯 할 것도 없다. 서로 얻어야 할 내용이 다르고, 목표도 같지 않기 때문이다.
세상에서 가장 듣기 좋은 소리 - 사랑채에서 밤늦게까지 들려오던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책 읽는 가락은 나이가 들어서도 환청처럼 귓가를 맴돈다. 이런 소리가 정서의 물결을 이루고, 마음의 무늬로 새겨졌다.
의문과 메모의 독서법 - 성호 이익 1681~1763
이익은 독서에서 메모와 토론을 가장 중시했다. 생각이 떠오르면 그 즉시 메모한다는 질서(疾書)와, 사제 또는 붕우 간의 서면 토론 및 대면 토론의 중요성을 반복해서 강조했다.
읽으나 마나 한 독서 - 찾는 것이 있어 책을 읽게 되면 읽더라도 얻을 것이 없다. 과거 공부를 하는 자가 입술이 썩고 이가 문드러지도록 읽어 봤자, 읽고 나면 가마득하기가 소경과 다름없다. 이는 흑백을 말하면서도 정작 희고 검은 것을 모르는 것과 같다. 말을 해도 귀로 들어갔다가 입을 나오는 데 불과하므로, 마치 잔뜩 먹고 나서 토하는 것과 한가지이다.
독서는 순수한 몰입이다. 무엇을 위한 것이 아니라 그 자체로 가치 있는 행위다. 학생들은 죽기 살기로 암기하고 공부해서 안 틀리고 다 맞지만, 막상 시험만 끝나면 그 공부한 내용이 내 삶과는 아무 상관도 없었던 딴 일이 되고 만다. 자발적 독서, 무목적의 몰입, 읽지 않을 수 없어서 하는 독서만이 우리 삶을 들어 올린다. 업그레이드시켜준다.
보이지 않는 독서의 힘 - 사람들은 밥을 위해서는 못하는 짓이 없고, 안 하는 일이 없으면서, 책을 위해서는 한 푼도 쓸 생각을 하지 않는다. 배고프면 아무 데나 주둥이를 들이미는 것은 짐승도 다 그렇다.
잊기 전에 메모하가 - (섬광) 장횡거가 妙契疾書, 즉 오묘한 깨달음이 오면 재빨리 적었다고 했다. 묘계 즉 오묘한 깨달음은 잘하기가 어렵지만, 그 즉시 써 두는 질서는 쉬운 일이다.
메모야말로 공부에서 중요한 습관 중 하나다. 깨달음은 섬광처럼 왔다가 간데없이 사라진다. 이 짧은 순간을 붙들어, 이를 잘 확장할 때 큰 공부로 이어질 수가 있다. 메모는 생각의 흔적이다. 공부는 생각 간수를 잘하는 데서 시작된다.
깊이 생각하고 의문을 제기하라 - 깊이 생각하면 잘못이라 하고, 의문을 제기하면 주제넘다 하며, 부연 설명하면 쓸데없는 짓이라 한다. 옛 주석만을 그대로 지키는 것은 마음으로 체득하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의문을 품어라- 이렇게 해야 옳은 줄 안다면 반드시 이렇게 하면 안 된다는 것도 아울러 살펴야 한다.
역사책 속의 성공과 실패 -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다. 이긴 자가 미화되고 진 자는 악하게 그려진다. 그러니 성패의 결과만으로 선악과 시비를 단정해서 판단하면 안 된다.
옛 성현의 독서 아포리즘 - 백수(白水) 양응수 1700~1767
독서의 쓸모 - 책을 읽는 까닭은 삶의 이치를 깨닫고, 실제의 삶에서 이를 체득하는 데 있다. 그런데 사람들은 문장 구문이나 뜯어보고, 과거 시험을 보기 위한 방편으로만 여기며, 글재주 뽐내기 위한 수단으로 읽는다.
문맥을 살펴라 - 책을 읽을 때 유사하다 하여 그 뜻에 빠져서는 안 된다. 마땅히 문장의 기세와 아래위의 뜻을 살펴야 한다.
- 같은 말도 놓인 문맥에 따라 뜻이 다르다. 특히 경전 공부에서는 맥락이 중요하다. 덮어놓고 읽으면 점점 더 미궁에 빠져서 공부가 잡스럽게 된다.
독서에서 기쁠 때 - 일찍이 독서가 사람을 기쁘게 할 때가 있고, 사람으로 하여금 손과 발이 덩실덩실 춤을 추게 할 때가 있음을 알았다.
- 답답해 알고 싶던 것이 속 시원히 해결되었을 때 그렇다. 이럴 때 옛사람과 나 사이에는 아무 간격이 없다. 내가 그다.
줄줄 외워 깊이 생각하라-
- 공부가 공부를 부른다. 책이 책을 부른다. (꼬리가 꼬리를 문다.) 이것을 읽으니 저것이 궁금하고, 저것을 알고 나니 이것이 새로 보인다. 책과 마음은 붙어 다닌다. 책을 손에서 놓으면 마음은 딴 데로 놀러 나간다.
본래의 뜻을 구하려면-
- 책을 읽기 전에 자기의 깐을 먼저 두면 안 된다. 마음을 비우고 기운을 가라앉히는 것이 먼저다. 마음을 비워야 꼼꼼히 읽어진다. 기운을 가라앉혀야 제 생각이 날뛰지 않는다.
마음을 비우고 기운을 가라앉혀야!-
- 선입견을 버리고 마음을 비워야 의미가 드러난다. 생각이 앞서고 의욕이 앞서면 의미가 뒤엉켜, 이치도 숨는다.
덩달아 하지 마라 -
- 공부가 부족한 사람은 자기 판단 없이 남의 생각에 편승한다.
모르면 물어라 -
- 세상일은 저마다 잘하고 잘 아는 일이 있다. 모르는 것은 아는 사람에게 묻는 것이 맞다.
물러서서 살펴보라 -
공연히 잘 알지도 못하면서 고집을 세우는 것, 선입견에 붙들려 한 발짝도 벗어나지 못하는 것, 이 두 가지 문제를 해결해야 독서의 보람과 효과가 있다. 물러서서 살펴보라. 앞서려면 뒤처져라. (대우 받으려면 낮춰라)
스스로 판단하라 - 책을 읽을 때 내가 먼저 들어앉는 것이 늘 문제다. 자신을 버려야 자기만의 생각이 나온다.
잠깐 내려놓기 - 읽어도 무슨 말인지 모르면 억지로 읽지 말고 잠깐 내려놓는 것이 옳다. 모르면서 붙들고 있으면 진력이 나서 역효과가 난다. (나는 내 글을 내가 퇴고할 때 그렇다)
기억력을 높이려면 - 맹자의 한 구절을 읽고 정신이 번쩍 들었다. 공부의 요령은 ‘구방심(求放心)’에 있다는 그 말. 멋대로 돌아다니는 마음부터 붙들어 앉혀야 한다. 멋대로 돌아다니는 마음부터 붙들어 앉혀야 한다. 한 줄 보고 이 생각하고, 한 장 보고 저 생각 하면 백날 읽어도 안 읽은 것과 같다. 열심히 할수록 성정만 나빠진다. (작은 도서관을 내려놓아야지. 구방심이다. 평일 도서관 창가에 불이 켜져 있으면, 마음의 근심이 꺼지지 않는다. 책을 봐도 놀아도 마음이 도서관 불빛 속에 갇혀있다.)
욕심을 버려라 - 덤벙대며 의욕만 앞서는 것도 문제다. 많이 읽는 독서왕이 되려 들지 말고 되새김질하는 소의 독서법을 익히는 것이 낫다.
종이를 벗어나 몸으로 깨달아라 - 독서에도 점검이 필요하다. 점검은 딴 데 가서 할 것 없이 나 자신에게 하면 된다. 내게 울림이 없다면 성인의 말씀이 무슨 소용인가?
의심하는 것이 공부다 - 노력이 거칠고, 정밀한 생각에 힘쓰지 않으면서 단지 의심할 만한 곳이 없다고 한다면, 이해가 부족한 것이다. 와 닿지 않으면 읽지 않은 것과 같다. 제가 뭘 모르는지 모르는 것이다.
거친 마음을 버려라 - 공부가 진력이 난다고. 꼭 이 고생 해 가며 읽어야 하나? 쉽게 가는 길은 없다. 지름길은 빨리 가는 길이 아니라 망하는 길이다. 한 겹 풀고 한 켜 벗겨 내면 끝에 가서 알맹이가 나온다. 알맹이가 나온대서 끝이 아니다. 껍질을 발라내면 살이 나오고, 살을 걷어야 뼈가 나온다. 그 뼛속에는 골수가 들어있다. 골수까지 파내려면 조급함을 버려라. 금방 어찌해 보려 들면 영영 못하게 된다. 진득해야 공부다.
독서와 집구경 - 독서란 비유컨대 집 구경과 같다. 만약 바깥에서 집을 보고 나서 ‘보았다’고 말한다면 알 길이 없다. 모름지기 안으로 들어가서 하나하나 보아, 방는 몇 칸이나 되고, 창문은 몇 개인지 살펴야 한다. 한 차례 보고도 또 자꾸자꾸 보아서 통째로 기억나야 본 것이다. 책을 덮고 나서도 성성하고 생생해야 책 한 권을 온전히 읽었다 할 수가 있다.
자세히 보라 - 성인의 말씀은 천 송이의 꽃과 같다. 멀리서 바라보면 모두 보기가 좋다. 강촌의 온갖 꽃이 먼빛에 더욱 좋은 법이다. 성인의 말씀이라면 다 근사해 보이지만, 정말 내게 꼭 맞는 말씀, 정신이 번쩍 드는 깨우침과 만나야 진짜 꽃구경을 한 것이다. (꺾어야 할까. 사진만 찍어야 할까. 말만 걸어야 할까?)
써먹을 궁리 - 독서는 다른 꿍꿍이가 먼저 들어앉으면, 책 읽기는 고역으로 변한다. 속이 얹힌 것처럼 더부룩해지고, 골치가 지끈지끈 아파진다. 그럴 때는 책을 잠시 덮고 욕심부터 걷어 내는 것이 맞다 그렇다고 생각마저 멈추면 안 된다. 몰두가 있어야 의미와 만난다. 그러면 나는 그 안에서 유영한다. 의미들이 속속들이 내게 와서 체화한다.
긴장과 이완 - 종일 글만 생각해서는 안 된다. 잠시라도 여유롭게 지내면서 정신을 기른 뒤에 또 보아야 한다. 긴장의 몰두도 필요하지만 느긋한 이완도 소중하다. 고무줄은 늘였다 놓았다 해야 탄성이 유지된다. 몰아세우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다.
강약의 조절 - 사람들은 독서는 마땅히 차분하게 완미해야 한다고 말한다. 모름지기 센 불로 달인 뒤에는 불기운을 늦춰서 은근히 달여야 문제가 없다.
종용완미(從容琓味)를 독서의 비결로 내세우곤 한다. ‘읽다 보면 알겠지, 모르면 또 어때’ 이래도 그만 저래도 그만은 안된다. 처음엔 센 불로 시작한다. 그다음에는 서슬을 늦춰야 한다. 은근한 불로 조금씩 졸인다. 안 그러면 약재가 타 버리거나 졸아 붙어 건질 것이 없다. * 의욕만 앞세워도 안 되고, 맥을 아예 놓아서도 안 된다. 중간에 늦춰 주되 방심은 허용되지 않는다.
노소의 차이 - 젊어서는 확산하는 독서가, 나이 들어서는 수렴한 독서가 필요하다. 젊어서 너무 한 가지에만 몰두하면 안목이 좁아지고 균형이 무너진다. 나이 들어 계속 벌이기만 하면 망망대해에서 돌아갈 곳을 잃는다. 열심히 하는 것이 중요하지만, 나이에 맞게 읽어야 한다. 하나의 화두를 들고 찬찬히 오래 들여다보는 것이 맞다. 하나라도 제대로 깊이 보는 것이 맞다.
역량과 나이에 따라 - 중년이 지난 사람은 책을 많이 읽으려 들면 안 된다. 단지 조금씩 음미하고 사색해야 의미가 절로 드러난다. 소화할 수 있을 만큼만 읽되, 거기서 영양을 얻어 원기를 회복할 수 있어야 한다.
꾸준함은 총명을 이긴다 - 쓸데없는 말을 줄이고, 불필요한 만남을 자제해야 공부를 할 수 있다. 반일정좌(半日靜坐) 반일독서(半日讀書)가 답이다. 고요 속에 정신이 길러진다. 그 힘으로 책을 읽을 때 그 맛이 달다.
논어와 맹자의 독법- 논어는 냉정하게 보아야 하고 맹자는 숙독해야 한다. 논어는 구절과 뜻마다 각기 한가지 의리를 담고 있어서 자제하고 고요히 살펴야만 한다. 맹자는 큰 단락으로 되어 있어 처음부터 끝까지 관통해서 숙독해야 글의 뜻이 드러난다. 한 구절 한 글자마다 깨달으려 들어서는 안 된다. 짧은 토막글로 이루어진 논어는 구절마다 담긴 뜻을 차분히 잘 음미해야 한다. 그렇게 부분을 모으면 비로소 큰 맥락이 드러난다. 맹자는 앞뒤의 서술이 길어 맥락을 알려면 높은 데서 바라봐야 한다. 한눈에 봐야 한다. 여러 번 되풀이해 읽어 통째로 살펴야지 쪼개서 나누려 들면 흐름이 사라진다.
욕심은 독이다 - 모르는 것이 없다는 말은 제대로 아는 게 없다는 말과 같다. 쓸데없는 지식까지 다 담아 두려 들으면, 공부는 과부하가 걸려 소화불량 상태가 된다. 공부도 소화할 수 있는 만큼 해야지. 욕심만 부리면 안 된다.
공부하는 사람이 지켜야 할 세 가지- 숙독 반복 몰두, 몰두하되 써먹을 궁리를 버려라. (딱! 걸렸음)
용맹한 장수와 가혹한 재판관처럼 - 글을 볼 때는 용맹한 장수가 군대를 운영하면서 곧장 단번에 끝까지 무찔러 싸우는 것같이 해야 한다. 가혹한 재판관은 옥사를 다스릴 때 인정사정이 없다. 옴짝달싹하지 못하게 한 후 법으로 엄하게 다스린다. 우물쭈물 대충대충 책 읽고 공부하는 것으로는 아무것도 얻을 수가 없다.
두 부류의 병통- 머리가 나쁘면 못 알아들어서 걱정, 머리가 좋으면 대충해서 문제다.
숙독과 정사(靜思), 그리고 의문 - 독서는 우선 숙독해야 한다. 그 말이 모두 내 입에서 나온 것같이 해야 한다. 계속해서 정밀하게 따져보아 그 뜻이 죄다 내 마음에서 나온 것처럼 해야 한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과연 그럴까? 때로 의심하고 의문을 품어, 말을 흔들고 생각을 뒤집어 보는 점검이 뒤집어 보는 점검이 뒤따라야 한다. 앵무새 공부, 원숭이 공부가 안되려면 점검이 필요하다.
바탕을 다지는 자득의 독서
순암 안정복 1712~1791
많이 읽고 널리 보라 - 책이란 옛 성현들의 정신과 심술(心術)의 궤적이다. “책 읽어 1만 권을 독파했더니, 글을 씀에 신기(神氣)가 있는 듯하다.” 옛글은 쓰고 싶어 쓴 글이 아니라 쓰지 않을 수 없어서 쓴 글이다. 제자랑 하자고 쓰지 않고, 이 말을 하지 않고는 세상을 살다간 보람이 없었기에 안타까워서 썼다.
1만 번 독서의 힘 - 임유후도 젊은 시절 역병을 피해 나가 있었다. 머무는 곳에 책이 없고, 다만 왕발의 ‘등왕각서’ 한 편만 있었다. 또한, 1만 번을 읽었는데, 이때부터 변려문이 붓만 잡으면 그 자리에서 이루어졌다. 마음을 모으고 정신을 집중해서 한 번 두 번 읽다 보면 그 글의 기운이 오롯이 내게로 스며든다. 가락이 먼저 젖어들고, 의미는 뒤따라온다.
양천상의 독서기 - 대문과 뜰을 나서지 않은 지 10여 년에 이를 두루 읽었다. 비록 남에게 알려 주기에는 부족하나, 또한, 혼자 알기에는 충분하였다. 예전 한나라 때 상자평은 자식들 혼사가 끝나자 집안일에 완전히 손을 떼고 자유의 유람인이 되었다. 오악을 두루 돌며 삶을 마쳤다.
공부는 머리로 하지 않고 엉덩이로 한다. 진득하니 눌러앉아 미련을 떨고 해야지.
아전인수의 독서 - 독서는 다만 본문의 의리를 추구해야지. 경솔하게 간추려서 별도의 뜻을 찾거나, 부연하여 다른 주장을 펼쳐서는 안 된다. 책의 뜻을 함부로 왜곡하거나, 엉뚱하게 끌어다 쓰면 안 된다. 글쓴이의 본의를 파악해야지, 제논에 물대기 식을 멋대로 끌어다가 제 주장만 펼치면 못쓴다. 잠깐 펼쳐 읽으면서도 어디다 써먹을 궁리뿐이면, 안목이 얄팍해지고 사람이 경박해진다. 큰 공부를 하려면 진득함부터 배워야 한다. 얕은 재주로는 큰 공부를 못한다.
잡서를 경계하라 - 사람은 본 대로 생각하고, 든 애로 행동한다. 이것도 보고 저것도 읽고 나서 스스로 판단하는 것도 좋지만, 아직 주견이 서지 않은 젊은이들이 마땅히 보아야 할 책을 멀리하고, 보아서는 안 될 책을 가까이하면, 심성이 황폐해지고 마음이 거칠어진다.
독서와 의문 - 주자는 “책을 읽을 때 의문이 크면 진보도 크다.” 퇴계 선생은 “책을 읽으면서 굳이 다른 뜻을 깊이 구하면 안 되고, 마땅히 본문 속에서 겉으로 드러난 뜻만 구하라.” 나의 사사로운 뜻을 마음속에 가로질러 놓고 도리어 선유(先儒)의 학설을 자기에게 맞추려 한다면 이는 절대로 안 된다.
처음엔 건성건성 넘어가고, 으레 그러려니 하다가, “이게 뭐지?” “왜 이렇게 말했을까?” 하는 생각이 일어나기 시작한다. 의문은 점점 커져서 마침내 한 줄도 그저 넘어갈 수 없게 된다. 한 걸음마다 족쇄가 채워져서 옴짝달싹할 수가 없다. 그 고비를 조금 넘겨야 미운(迷雲)이 걷히면서 조금씩 앞길이 트인다. 계속 나아가다 보면 모든 것이 명명백백해서 구름 한 점 없다. 발걸음이 경쾌하고 콧노래가 절로 난다. 하지만 공부는 이때를 조심해야 한다. 공부의 중간 단계에서 생겨나는 아집과 아만(我慢)은 대단히 위험하다. 갑자기 선현들이 우습게 보이고, 저만도 못하게 여겨질 때를 조심해야 한다. 자신감이 넘칠 때 더욱 삼가지 않으면 안 된다.
얕게 읽고 낮춰보라 - 주자가 “문자는 차라리 얕게 볼망정 너무 깊어서는 안 되고, 낮춰 볼지언정 지나치게 높으면 안 된다.” 성현의 말씀을 가슴 속에 무 젖어들게 하는 것이 아니다. 섣불리 의욕만 넘쳐 덤벼들면 제 발에 제가 걸려 넘어진다. 공부는 기본기가 중요하다. 마음가짐이 중요하다. 평상심으로 읽어야지 시비를 걸겠다는 마음으로 읽으면 심술일 삐뚤어진다. 낮춰 보는 것은 우습게 보는 것과 다르다. 공부에 호들갑이 심하면 사람이 경박해진다.
스스로 터득하라 - 공부는 폭넓은 섭렵에서 출발한다. 폭넓게 공부하는 것은 자득을 위해서다. 자득으로 이뤄지지 않는 박학은 헛똑똑이 공부다. 공부를 제대로 하면 사람이 무거워지고, 공부를 함부로 하면 사람이 경박해진다. (이래서 내가 논어 에세이를 쓰겠나? 의욕이 절반으로 뚝~ 떨어진다)
독실한 마음, 독실한 공부 - 입으로만 하는 공부, 무슨 소용이 있겠나. 집안 살림 걱정, 먹고 살 궁리를 다 하고 나서 할 수 있는 공부는 어디에도 없네. 괴롭게 공부하고 미친 듯이 몰두해서 숨 쉬고 밥 먹듯이 해서 공부가 일상이 되어야 하네. 그렇게 쌓아 가다 보면 어느 순간 가슴속에서 환한 빛이 쏟아져 나올 걸세. 그때까지 가야 하네. 중단없이 해야 하네. 옛 선인들도 다 이렇게 공부해서 한 소식을 얻은 분들일세. 자네도 그렇게 되길 바라네. (우리 며느리 지혜와 영근에게 주고 싶은 내용)
사견을 눌러라 - 공부가 조금 탄력을 받게 되면, 자꾸 내 안에 있는 ‘나’가 꿈틀거린다. 이것도 아닌 것 같고, 저것도 틀린 것 같다. 성현의 말씀이 차츰 우습게 보인다. 그런 말은 나도 할 수가 있을 것만 같다. 공연히 시비를 가리고 싶고, 제 주장을 펴고 싶다. 공부가 아직 덜 익었다는 증거다. 반대로 제 생각은 전혀 없이 선현의 모든 말씀을 금과옥조로 떠받들어, 그어 놓은 금 밖으로 한 발짝도 나서지 않으려는 사람도 있다. 자신감도 좋지만, 기고만장은 안 된다. 그렇다고 떠먹어주는 밥만 먹으면 공부에 별다른 진전이 없다. 나를 크게 세우려면 나를 눌러라. 내 말을 하려거든 말을 아껴라.
하학상달(下學上達) - 대학에서 격물치지(格物致知) “먼저 하고 나중 할 것을 안다면 도에 가깝다.” 공자께서 “아래에서 배워 위로 도달한다. “여기서 아래란 것은 비근(卑近)한 것을 일컫는다. 비근하여 알기 쉬운 것이 날마다 쓰는 떳떳한 윤리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급선무는 사람으로서 해야 할 도리다. 사물을 대하는 태도, 인간의 윤리, 이런 것들을 바로 닦기 위해 우리는 공부를 하고 책을 읽는다. 이를 착각해서 나는 대단한 공부를 하고 있으니, 이런 것은 소홀히 해도 괜찮다고 한다면, 그는 앞뒤가 바뀐 사람이다. 하학상달은 차근차근 밟아서 올라가는 공부다. 공부는 사람이 되자고 하는 것이지, 사람을 넘자고 하는 것이 아니다.
구양수의 독서분일법- 공부는 단순 무식해야 한다. 사서오경을 다 합치면 478,990자다. 공부는 할수록 가속도가 붙는 법. 공부는 머리도 하지 않고 엉덩이로 한다. 복잡하게 말고 단순하게 하라. 영리하게 말고 미련하게 하라.
독서의 바른 태도와 방법
담헌(湛軒) 홍대용(1731~1783)
초학자들의 책 읽는 방법 - 우선은 외우는 것이 먼저고, 의미를 캐는 것은 그다음이다.
책 읽기의 자세 - 책을 읽을 때 소리를 높여서는 안 된다. 소리를 높이면 기운이 빠진다. 눈을 놀려서도 안 된다. 눈을 이리저리 굴리면 마음이 부산스러워진다. 몸을 흔들어서도 안 된다. 몸을 흔들면 정신이 흩어진다. 공부는 집중이다. 독서는 안으로 의미를 길어 올리는 훈련이다.
뜬 생각과 의문 - 생각에도 종류가 많다. 념(念)은 머릿속에 콕 박혀 떠나지 않는 생각이다. 쓸데없는 생각이 콕 박히면 잡념이요. 떠오는 생각이 떠나지 않으면 상념(想念)이다. 공부의 가장 큰 적은 바로 이 뜬 생각(浮念)이다. 뿌리도 없이 제멋대로 떠다니며 사람 마음을 이랬다저랬다 하게 만든다.
뜬 생각을 다스리게 하는 법 - 해맑게 다스리려는 의지가 있으라 한다. 흙탕물을 오래 가라앉히면 맑은 물이 된다. 처음엔 뿌옇게 흐려 아무것도 보이지 않던 물도 오래 가라앉히면 맑아진다. 해법은 묵좌(黙坐)에 있다. 합안(闔眼), 즉 눈도 감아라. 단전으로 마음을 끌어내려야 한다.
의문의 중요성 - 공부에 끝은 없다. 못난 사람은 조금 이루고 크게 만족한다. 도랑을 벗어나야 강물과 만나고, 강물은 흘러 큰 바다로 든다. 우물 안 개구리의 소견으로 어찌 바다 고래의 배포를 짐작이나 할까? 공부의 적은 자만과 자족이다. 대충 어싯비싯 알면 의문도 없다.
이의역지(以意逆志) - 푸닥거리하던 무당이 접신의 경지에 들면 날이 시퍼런 작두 위를 펄펄 뛰면서 죽은 사람 목소리를 낸다. 책 읽기는 일종의 신 내림의 경지다.
자각해서 노력해야 - 편히 앉아 책을 읽을 수 있는 시간은 인생에서 얼마 되지 않는다. 독서는 없는 시간을 어렵게 쪼개서 하는 것이지, 시간이 남아돌아 하는 것이 아니다.
독서는 깨달음이다
연암(燕巖) 박지원 (1737~1805)
시간을 허비하면 안 되네 - 남 읽는 대로 읽고, 남 따라 생각해서는 읽으마 마나지. 책 읽어 글재주나 기르고, 삶에 아무 보탬이 안 되는 문제나 풀고 있다면 시간이 아깝고 돈도 아깝지 않겠나.
마음을 읽어야지 - 사기를 읽고 있다지? 글을 쓸 때의 그 마음을 읽어야 하네. 그저 문장력에 감탄만 하는 것은 부엌 바닥에 떨어진 숟가락을 집어들고 무슨 대단한 발견이라도 한양 “숟가락 주었다!” 하고 큰소리로 외치는 것과 다를 바 없단 말일세. 가장 중요한 것은 그 글 속에 담긴 사마천의 마음일세. 덮어놓고 읽지 말고 음미하며 읽게. 엉뚱한 데 감동하지 말고, 핵심을 찔러 읽게.
오직 독서뿐 - 일 년 내내 해도 뉘우칠 일이 없고, 일백 사람이 말미암아도 허물이 없다. 명분과 법이 비록 훌륭해도 오래되면 폐단이 생긴다. 많을수록 더욱 유익하고, 오래되어도 폐단이 없는 것은 독서뿐이다.
책을 열심히 읽어야 할 때 - 어린이가 책을 읽으면 요망하게 되지 않는다. 늙은이가 책을 읽으면 노망이 들지 않는다. 귀해졌다 하여 변하지도 않고, 천해졌다 해서 멋대로 굴지도 않는다. 괜찮다 싶을 때 더 책을 읽어라. 이만하면 됐다 싶을 때가 책을 더 열심히 읽어야 할 때다.
능히 잘 읽는 사람 - 선비 아닌 사람이 없지만, 능히 바른 자가 드물다. 누구나 책을 읽지만, 능히 잘하는 자는 드물다. 그저 읽기만 하는 것을 도능독(徒能讀)이라 한다. 이런 독서는 절대로 사람을 바꿔 놓지 못한다. 말만 공부한다고 하고, 행실이 따라 주지 못하면 선비가 아니다. 입으로만 외우는 앵무새 공부와 읽는 시늉만 하는 원숭이 독서로는 삶을 바꿀 수가 없다.
부끄럽지 않은 일 - 우아한 선비란 뜻은 어린아이 같고, 모습은 처녀와 같다. 1년 내내 문을 닫아걸고 책을 읽는다. 어린아이는 약하지만 사모함을 오르지 한다. 처녀는 수줍지만 지킴이 확고하다. 우러러 하늘에 부끄럽지 않고, 굽어 사람에게 거리낄 것이 없음은 오직 문 닫고 책 읽는 것뿐이다. 허우대가 멀쩡해도 행동이 반듯해도 책을 읽지 않으면 헛일이다. 하늘을 우러러 부끄럽지 않고, 사람에 대해 조금도 주눅이 들지 않는다. 그의 눈은 밝고 그의 마음은 환하다. 책이 준 선물이다.
실용이 먼저다 - 책 읽는 보람은 실용에서 먼저 드러남이 마땅하다. 성명이기(性命理氣)의 고담준론만 일삼으면 사람이 망가진다. 토론한다며 제 주장만 되뇌고 남의 얘기에는 귀를 막는다.
독서의 해악 - 이 책 읽어 어디다 써먹어야지. 기껏 제자백가를 섭렵하고, 사서삼경을 줄줄 외워서 써먹을 궁리와 출세할 요량뿐이라면 차라리 책을 덮고 안 읽는 편이 훨씬 낫다. 독서는 그 자체로 합목적적이다. 읽어서 마음이 기쁘고, 생각이 변하며, 삶이 바뀐다. 이보다 더한 보람이 어디 있는가?
하루도 그만둘 수 없는 일 - 사람이 허랑방탕해지는 것은 책을 멀리했기 때문이다. 책을 손에 잡으면 다시 모든 것이 정상으로 되돌아온다.
책의 기운 - 오만하고 방탕해서 찧고 까불다가도 책 읽는 사람이 곁에 있으면 저도 몰래 기가 꺾이고 풀이 죽는다. 슬그머니 꽁무니를 뺀다. 좋은 기운이 옮겨가기 때문이다.
생활의 습관, 독서의 발견
아정(雅亭) 이덕무 (1741~1793)
다만 책을 읽을 뿐 - 군자는 한가롭게 지내며 일이 없을 때 책을 읽지 않고 다시 무엇을 하겠는가?
논어의 위력 - 한겨울 군불도 때지 않은 방에 누워 벌벌 떨며 잠을 못 이루는데 이웃집에서 잔치하여 웃고 떠드는 소리에 미쳐 발광할 것만 같았다. 못 견디고 벌떡 일어나 큰 소리로 논어를 몇 장 읽자 문득 미친 기운이 사라지고 이 정도 시련쯤은 견뎌 낼 수 있겠다는 강개한 기운이 솟구쳤다. 성현의 말씀에는 바른 기운이 깃들어서, 흩어진 마음을 되돌려 세우고, 가눌 길 없는 기분을 다잡아 가라앉혀 준다. 경전의 힘이 여기에 있다. 언어에도 힘이 있다. 기운이 있다. 그런 책을 읽어야 사람이 변한다. (강의준비를 하지 않고 지내도 되는 봄 가을이 되면, 막연한 근심을 하는 날이 있었다. 지금, 문득 떠오른 생각! 남에게 전달해주기 위한 논어 노트가 아니라, 내 마음속에 새기는 논어 본문을 설렁설렁 읽어야겠다는 생각을 하니, 훗날 노후의 걱정이 사라진다. 오히려 그날들이 기다려지기까지 한다. 불경을 읽어야지 하는 생각도 했었다. 그런데 나에게 익숙한 논어가 낫겠다 싶다.)
독서를 귀하게 여기는 까닭 - 젠체하고 잘난 체하기 위해 책을 읽는 것은 차라리 몰라서 무식한 속인만도 못하다. 속인은 해로움이 자신에게 미치지만, 이런 인간은 그 해로움이 꼭 남에게까지 가닿으니 문제다.
소득 없는 독서 - 물가에 발을 담글까 말까 하고 깨작거리지 말고 풍덩 뛰어들어야 한다. 성현의 말씀 속으로 뛰어들어야 한다. 고전의 바다에서 헤엄쳐야 한다. 책을 읽어 소득을 얻고 보람이 있으려면 믿고 따라 실천해야 한다.
독서의 표준 - 강학(講學)하여 배우고, 살펴 성찰하며, 머금어 함양하고, 밟아 실천에 옮긴다. 공부의 으뜸가는 덕목은 강학과 성찰, 함양과 실천이다.
베껴 쓰기의 위력 - 한유가 말했다. 기사(紀事) 찬언(纂言), 무릇 책은 눈으로 보고 입으로 읽는 것이 마침내 손으로 써 보는 것만 못하다. 대개 손이 움직이면 마음이 반드시 따라가게 마련이다. 스무 번을 보고 외운다 해도 한차례 베껴 써보는 효과만 못하다. 목과(目過) 구과(口過) 수과(手過)가 그것이다. 눈으로 읽는 것은 입으로 소리 내서 읽는 것만 못하다. 입으로 소리 내서 읽는 것은 손으로 베껴 써 가면서 읽는 것만 못하다.
모르면 찾아라 - 의심스러운 일이나 의심나는 글자가 있거든 그 즉시 유서(類書)나 자서(字書)를 살펴 점검해 보아라. 이덕무 사소절. 유서는 백과 사전류의 책이고, 자서는 사전이다. 글자는 자서를 뒤져보면 다양한 쓰임을 알 수 있고 주제와 관련된 내용은 유서를 뒤져봐야 앞뒤 맥락을 알 수가 있다. (급하면 인터넷 검색이라도 해야한다.)
좋은 내용은 함께 나눠라 - 좋은 내용을 보면 혼자 알기 아까워 남에게 알려주고, 멋진 책은 남도 나의 이 느낌을 가졌으면 싶어 소개해 준다. (내 사이트에 밑줄 친 것을 옮기는 이유다. 때론, 저자의 항의가 있을까 봐 겁을 먹기도 한다. 내가 친 밑줄이 마음에 들면 책을 사서 보시라고 말하고 싶다.)
규모와 체재를 먼저 살펴라 - 공부는 번지수를 아는 것이 중요하다. 책의 규모와 항목의 배열을 살핀다. 이제 책의 얼개가 가늠된다. 갈래가 짐작된다. 손에 잡히는 대로 읽고 계통 없이 읽으면 많이 읽을수록 사람이 잡박해지고 잡스러워진다. 이런 것은 박학과는 거리가 아예 멀다.
독서만이 능사가 아니다 - 군자는 책 읽는 틈틈이 울타리를 엮거나 담장을 쌓고, 뜨락을 쓸거나 거름을 쳐야 한다. 말을 먹이고 막힌 도랑을 치며, 방아 찧는 일도 때때로 한다면 근골이 단단해지고 뜻이 안정되게 할 수가 있다. 공부는 책만 붙들고 있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책 읽는 틈틈이 집안의 크고 작은 일도 함께 하는 것이 옳다.
안목과 통찰
연천(연(淵泉) 홍석주 (1774~1842)
독서와 학문 - 세상 사람들은 늘 독서가 배움이라고 생각한다. 배움은 진실로 책을 읽지 않고는 안 된다. 하지만 독서란 배움의 한 가지 일일 뿐이다. “옛날부터 문 닫아걸고 혼자 앉아 있었던 성인은 없었다.” 멋있는 말이다.- 주자. 책만 읽으면 공부가 끝났다고 생각하는 것이 문제다. 책은 문자로 된 것만이 책이 아니다. 세상천지 만물이 다 책이요. 스승과 벗이 모두 책이다. 활자로 된 책만 읽지 말고, 살아 숨 쉬는 책을 읽어야 한다.
독서는 그 시대를 고려해야 - ‘용심(用心)’과 ‘방심(放心)’이 키워드다. 공부하는 사람은 마음을 단단해 붙들어 두어야지 제멋대로 돌아다니게 놓아두면 안 된다. 그저 빈둥대는 꼴이 얼마나 못마땅했으면 공자께서 차라리 바둑 장기라도 두는 게 낫다고 하셨겠는가?
마음을 보존하는 방법 - 학문의 방법은 방심, 즉 흐트러진 마음을 구하는 것일 뿐이다. 사람은 사려(思慮)가 깊어야 하지만 염려(念慮)가 깊으면 안 된다. 사념(思念)은 필요해도 상념(想念)은 공부에 방해된다. 헛생각은 마음 위를 떠다니면서 공부를 방해한다. ‘존심(存心)’ 즉 생각의 공격으로부터 마음을 보존해 지켜 내는 것이 공부의 핵심이다.
잠자리의 생각 - 범중엄 “나는 밤에 잠자리에 들 때, 스스로 하루 동안 먹고 마시고 봉양한 비용을 헤아려 본다. 내가 한 일과 걸맞으면 코를 골며 달게 잔다. 그렇지 않으면 저녁 내내 편안할 수가 없다.
사색과 깨달음의 독서
항해(沆瀣) 홍길주 (1786~1841)
논어를 제대로 읽은 사람 - 책을 많이 읽어도 책 따로 나 따로 놀면 안 읽는 것과 같다. 말만 앞세우고 행실이 따라가지 않으면 차라리 책을 덮어라. 독서를 유식한 체하고 젠체하는 빌미로 삼는 것은 교언영색에 가깝다. 현학 취미, 자기 자랑을 위한 독서는 백해(百害)가 있고 일익(一益)이 없다.
내 것으로 만들어야 - 매번 옛사람의 문집이나 다를 사람이 지은 시문을 읽다가, 이따금 격조로 아낄만한 것이 있어 나와는 완전히 다른데도 마음으로 이를 아껴 마치 제 입에서 나온 것 같은 경우가 있다. 대개 그 체제는 비록 달라도 서로 감응하는 것이 있기 때문이다.
옛글을 읽는 자세 - 글 읽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의장(意匠)의 경로다. 글쓴이의 생각과 그 생각을 펼치는 방식에 주목해야지, 수사나 겉으로 드러난 기세에 휘둘리면 안 된다. 좋은 글에는 아우라가 있다. 광채가 있다. 단지 표현에 놀라고 기세에 질려서 놀라기만 하면 결국은 글 따로 나 따러 가 되어 읽은 보람이 없다.
독서와 활용 - 어떤 사람은 조금만 읽고도 핵심 의미를 꿰뚫어 제 것으로 만든다. 되글을 말글로 써먹는 사람이다. 어떤 이는 읽은 책도 많고 공부도 열심히 하는 데 막상 쓴 글을 보면 변죽만 울리다 결국 제소리 한 번도 못 내고 만다. 말글을 고작 되들로 써먹은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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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이 되었다
봄이라고 하기에는 늦었고
여름이라고 하기에는 이른 감이 있다
6월은 비가 잦아 지치기 쉬운 달이다
가을학기보다 한달이 더 있어 학생도 학부형도 직장인도 주부도 백수도 나도 힘들다
정신차리지 않으면 딱! 썪기 쉬운계절이다
썪는 것도 道 닦듯 잘 썪히면 발효된다
6월은 숙성기간이다
집중할만한 것을 시작하기 좋은 달이다
숙성 중에 '독서'만한 것이 없다
지난 여름 읽고 밑줄 그은 내용을 올리며,
6월이 벌써 삼분의 일이나 간것이 아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