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유혹하는 글쓰기

류창희 2011. 9. 19. 08:00

유혹하는 글쓰기

스티븐 킹의 창작론
김영사 2010


작가의 자질은 타고나는 것이다.
나는 사람들이 환경에 의하여 작가가 될 수 있다고 믿지 않는다.


이 세상에 ‘아이디어 창고’나 ‘소설의 보고’나 ‘베스트셀러가 묻힌 보물섬’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아이디어는 찾아내는 것이 아니라 막상 아이디어가 떠올랐을 때, 그것이 좋은 아이디어라는 사실을 알아차리는 것이다.

어떤 이야기를 쓸 때는 자신에게 그 이야기를 들려준다고 생각하라.
그리고 원고를 고칠 때는 그 이야기와 무관한 것들을 찾아 없애는 것이 중요하다.



글을 쓸 때는 문을 닫을 것, 글을 고칠 때는 문을 열어둘 것.
다시 말해서 처음에는 나 자신만을 위한 글이지만 곧 바깥세상으로 나가게 된다.

좋은 글이란 저절로 우러나는 것이므로 감정이 고조될 때 재빨리 낚아채야 한다.



어머니는 내가 작가가 되고 싶어한다는 것을 아시면서도 교사 자격증을 따라고 권하셨다.
"그래야 여차하면 비빌 언덕이라도 있지.“
“너도 언젠가는 결혼하게 될 거다. 그런데 센 강변의 다락방이 낭만적으로 보이는 건 총각일 때뿐이야.”

그후, 나는 가족을 이끌고 다락방에서 다락방으로 전전했다.
다만, 창밖을 내다보면 아름다운 센 강이 아니라 구질구질한 길거리였다. 돈 문제를 놓고 볼 때, 대학 졸업 후 나는 세탁소에서 일하고 아내는 저녁때 던킨도너츠에서 일했다. 그 사이 두 아이가 있었다.



글쓰기는 외로운 작업이다. 나를 믿어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 굳이 믿는다고 떠들지 않아도 그냥 믿어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1981년에 나는 드디어 마음에 드는 책상을 구하여 채광창이 있는 널찍한 서재 한복판에 갖다 놓았다. 그후, 나는 다른 책상을 마련했다. 수제품이고 아름다우며 크기는 공룡 책상의 절반쯤 되는 것으로....  벽 속에서 소란을 피우는 쥐떼도 없고, 아래층에서 누가 빨리 딕에게 꼴을 먹이라고 소리치는 노망 난 외할머니도 없었지만 쓰지 못했다.

그러나 지금도 그 가난했던 바로 그 처마 밑에 앉아 있다. 내 나이 쉰세 살, 시력도 안 좋고 한쪽 다리를 절긴 하지만, 나는 내가 할 줄 아는 글쓰는 일을 하고 있으며 능력이 닿는 한 온 힘을 다하고 있다. 책상은 예술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이다.




글쓰기란 무엇인가?

내 이름은 스티븐 킹이다.

글쓰기라는 것을 시작하면서 불안감을 느낄 수도 있고 흥분이나 희망을 느낄 수도 있다. 심지어는 절망감을 가질 수도 있는데, 그것은 자신의 마음속에 있는 생각들을 결코 완벽하게 종이에 옮겨적을 수는 없을 것이라는 예감 때문이다.

결혼하고 싶은 여자가 있어서 글쓰기를 시작할 수도 있고, 세상을 변화시키고 싶어서 시작할 수도 있다. 어느 쪽이든 상관없다. 그러나 경박한 자세는 곤란하다. ‘경박한 마음으로 원고지를 대해서는 안 된다.’

글쓰기는 인기투표도 아니고 도덕의 올림픽도 아니고 교회도 아니다.

글쓰기에서도 자기가 가진 최선의 능력을 발휘하려면 연장들을 골고루 갖춰놓고 그 연장통을 들고 다닐 수 있도록 팔힘을 기르는 것이 좋다는 것이다.




연장통

자주 쓰는 연장들은 맨 위층에 넣는데, 가장 많이 쓰는 연장은 글쓰기의 원료라고 할 수 있는 '낱말'들이다.

글쓰기에서 정말 심각한 잘못은 낱말을 화려하게 치장하려고 하는 것으로, 쉬운 낱말을 쓰면 어쩐지 좀 창피해서 굳이 어려운 낱말을 찾는 것이다. 그런 짓은 애완 동물에게 야회복을 입히는 것과 마찬가지다.

굳이 천박하게 말하라는 게 아니라 평이하고 직설적인 표현을 쓰라는 것이다.

문법도 연장통 맨 위층에 넣어야 한다.




창작론

일단 어떤 작품을 시작하면 도중에 멈추거나 속도를 늦추는 일이 없다. 날마다 꼬박꼬박 쓰지 않으면 마음속에서 등장인물들이 생기를 잃기 시작한다.

사실 나는 일단 글을 쓰기 시작하면 남들이 얼간이 같은 일벌레라고 부르든 말든 하루도 빠뜨리지 않고 쓴다. 크리스마스와 독립기념일과 내 생일도 예외일 수 없다. 어차피 내 나이쯤 되면 그 지긋지긋한 생일 따위는 싹 무시하고 싶어진다. 나에게 일하지 않는 것이야말로 진짜 중노동이다. 오히려 글을 쓸 때가 놀이터에서 노는 기분이다.



자기만의 장소에서 가장 잘 쓴다.

문을 닫을 용의가 있어야 한다. 문을 닫는다는 것은 글을 쓰겠다는 엄숙한 서약, 무슨 일이 있어도 실천하라. 새로운 집필 장소에 들어가 문을 닫을 때쯤에는 하루의 목표량도 정해 놓았을 것이다. 일단 목표량을 정했으면 그 분량을 끝내기 전에는 절대로 문을 열지 않겠다고 다짐하라.

문은 바깥세상을 차단한다. 가능하다면 전화조차 없는 것이 좋다. 창문이 있는 경우, 바깥에 보이는 것이 담벼락이라면 몰라도, 그렇지 않다면 커튼이나 블라인드를 쳐라. 침실처럼 집필실도 자기만의 공간이고 꿈을 꿀 수 있는 곳이다.

문학성 우수성에 이끌려 책을 사는 사람은 별로 없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재미있는 이야기다.
독자에게 어쩐지 낯익은 것들이어야 한다.

독자들이 이야기 ‘속으로’ 들어온 것처럼 느끼게 하려면 등장인물의 겉모습보다 장소와 분위기를 묘사하라.



글을 쓸 때 나무들을 하나하나 살펴보고 확인하고 일이 다 끝나면 멀찌감치 물러서서 숲을 보아야 한다.

원고를 적어도 두 번은 써야 한다. 한 번은 서재 문을 닫고 써야 하고, 또 한 번은 문을 열어놓고 써야 한다. 문을 닫아걸고 머릿속에 있는 것들을 곧장 지면으로 옮겨놓을 때, 최대한 빨리 쓴다.

긴박감을 계속 유지하여라. 자기 작품을 ‘바깥세상’의 누군가에게 보여주고 그들의 의견을 듣게 되면 긴박감이 줄어든다. 웬만하면 초고를 완성하고 저장하는 것이 좋다, 방금 눈이 내린 들판처럼 작품 속에 오직 자신의 발자국만 찍혀 있을 때 좀 더 생각할 시간을 가져야 한다.

작품을 얼마나 오랫동안 묵히느냐 이것은 빵 반죽을 대충 주무르고 나서 한동안 그대로 놓아두는 것과 비슷하다. 적어도 6주는 필요하다. 서랍 속에 안전하게 모셔두고 잘 익혀 더욱 맛있게 숙성시킨다.

어느 적당한 날(미리 달력에 날짜를 표시해두는 것도 좋다.) 저녁에 비로소 서랍 속에서 원고를 꺼낸다. 이때 그 원고가 어느 고물상에서 산 골동품처럼 낯설어 보인다면 정말 준비가 된 것이다. 손에는 연필 한 자루를 들고, 그리고 원고를 읽기 시작한다. 가능하다면 한자리에서 전체를 다 읽어 보도록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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