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델리 '붉은성
1월 3일
붉은 성
성이 다 붉다
무굴의 황제이자 건축광이었던 샤자한이 1639~1648년에 지었다고 한다.
그러나 샤자한은 자기가 지은 성에서 지내지 못했다.
아들이자 무굴제국의 마지막 황제였던 아우랑제브가 아버지를 폐위시킨뒤,
아그라 성에 가둬버렸기 때문이다
ㅋ
모름지기 천년만년 살거라고
별장짓고 촌집장만하고 ... 생고생 할 필요없다
누릴 사람은 순서를 기다리고 있다
붉은 성을 겉에서만 둘러봤다
내부는 사진을 찍을 수도 없다하고
절차가 까다로웠다
대학쪽으로 가면
인테넷카페가 있다고 했다
찾아헤메는 중이다
릭샤 호객군들을 물리치며
인터넷 카페를 찾기는 찾았는데
내가 상상하던 장면이 아니다
1970년대 말에 소공동 지하에서 빠져나가거나
법원근처에 있던 복사집 수준이다
컴퓨터 두대 놓고
간이 의자에 앉아있는 청년이 인터넷카페 주인이다
우리말이 깔리지 않아
우리말로 예약한 기차표와 호텔예약표 등을
찾을 수도 인쇄할 수도 없다
이메일 확인도 되지않는다
우리 노트북을 들고 가도 마찬가지다
되지 않으니, 돈을 안 받는 것이 아니라
시간당 얼마라고 하며 요금을 깎아줬다
다리는 아프고 배는 고프고
골목골목 남자들만 득실거리고
결국 실패했다
델리역에 근처에 가서 맥러겟먹고 콜라마시니 살것같다
다시, 빠하르간즈 거리를 걷다
'인도방랑기' 한식당에 가서
와이파이 터져 김치찌게 먹으며 놀았다
한국의 젊은 학생들이 모여 정보교환도 하고
여행계획도 짜는 곳이다
우리처럼 물이 조금 바랜 청춘이 머물기에는 눈치가 보인다
배가 부르니 만사가 OK
델리역 후문쪽에 우리가 묶고 있는 진저호텔까지
택시를 탔다
나의 남편 짐은 날마다 2인분이다
저녘, 아니 밤기차로 자이살메르로 넘어갈 것이다
역에 도착하여
짐을 맡기는 곳이다
기차표가 있으면 하루 한화 200원 정도이다
인도는 기차가 상당히 발달한 곳이다
땅이 넓고 인구가 많으니 기차가 없으면
나라가 돌아가지 못한다
기차레일 타는 곳이 10군데가 있다면
수시로 도착하는 지점이 바뀌는 까닭으로
사람들이 레일로 내려가는 입구에 서서
끊임없이 방송을 들으며 집중을 하고 있다
처음에는 그 광경을 보면서 무슨 폭둥이 일어나는가보다
왜들 저렇게 서서있지 여겼는데
몇번 홈에 도착한다는 말이 들리면
해당되는 구멍으로 잽싸게 짐을 들고 뛰어내려가야 한다
기차를 타기전에
기차벽에 붙어있는 탑승자 명단을 확인했다
컴컴하기는 하고 영문으로 된 이름을 찾는 것이 쉽지 않았다
폼 나지 않는가
지금 내가 타고 있는 기차는
'A1'이다
A1이란, 에에컨 1등급 침대칸이다
컴파트먼트라고 하는 작은 방에 침대가 하나씩 마주보고 있다
인도에서 가장 비싼 기차등급이다
우리처럼 부부는 괜찮지만, 혼자 떠나는 여성이라면
그 또한 무법천지 무섭다
엔지니어 남편과 교사 아내와 아들 둘이 여행하는 인도인이다
인도에서 이정도 에이원을 탈 만큼의 사람이라면
아주 아주 상류층이다
이 사람들은 두 부부가 다 '삼성'스마트폰을 쓰고 있다
노트북도 '상성'이다
음식을 먹을 때도, 간식을 먹을 때도
꼭 손 세정제를 칙칙 뿌린다
워낙, 일반인에 비해 잘 살다보니
오히려, 외국여행객 우리를 의심한다
우리 부부 앞에서 한껏 폼을 잡더니
쇠사슬로 가방을 칭칭 동여맨다
그들한테 의심을 안 받으려면
그들보다 먼저 잠을 청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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델리 진저호텔에서 떠나려고 하는 도중 히터를 발견했다. 이틀 동안 추위에 벌벌 떨었는데 히터가 있었다. 아이들처럼 ‘대박’이라고 외치기에는 너무 큰 반전이다. 바보 아닌가!
역에 짐 맡김 (기차표가 있으면 여행객은 짐을 맡길 수가 있다. 가격은 한화 200원 정도. 쉬는 시간을 잘 챙기지 못하고 출발시각이 임박하게 갔다가는 낭패를 볼 수도 있음. 아예 짐보관소를 잠가놓음)
기차 A1. 한의원에서 전신 안마하는 기계처럼 밤새도록 온몸이 흔들리며 두들겨진다. 가족 여행하는 인도가족과 같은 칸에 탔다. 인도남편은 엔지니어 부인은 교사, 초등과 유치원생 쯤 되는 사내아이가 둘이다. 아주 성공한 가족이다. 삼성 컴퓨터와 핸드폰을 부부가 다 가지고 있다. 나의 남편이 폰을 꺼내니 으쓱대며 '삼성' 좋다고 치켜세운다. 그래서 ‘우리나라’ 거라고 자랑스럽게 말하니 우리보고 '일본인'이냐고 묻는다.
인도인들은 하도 땅덩어리도 크고 인구가 많다보니 자신의 나라를 우주의 중심으로 안다. 대국기질이다. 문명에 별로 기죽지 않는다. 후에 힌디대학에 국비 유학하는 여학생을 만났는데 인도인들은 ‘코리아’를 중국의 어느 이름 모를 작은 주라고 여긴다고 한다. 지도상으로 봐도 중국 옆에 조그만 반도이니 어쩜, 당연할지도 모르겠다. 관광지 사람이나 “빨리빨리 코리아?” 알아준다.
음식점에서 만난 한국 사람이 우리 짐을 보더니, 그런 식으로는 기차를 못 탄다고 했다. 굵은 체인으로 칭칭 감아 끄트머리에 쇠 자물통을 채워야 한다며 채울 때, 반드시 ‘액션’이 있어야 한다고 한다. 우선 주위 사람들을 한번 험하게 둘러본 다음, 체인을 감고 자물쇠로 잠그며 ‘이건, 너희는 절대 못 열어!’ 표정을 지으면,겁먹고 절대 손을 안 댄다고 한다.
우리가 예사로 듣고 웃어넘기자 몇 개 여분이 있다며, 쇠 자물통을 선물이라며 하나 줬다. 기차역에 가니 실제로 몸에 체인과 자물통을 칭칭 매달고 파는 체인아저씨들이 많았다. 그런데 웃을 일이 아니다. A! 기차는 한 칸에 위아래 침대가 네 개 있는 고급이다. 우리 일반 대학생들이 이용하는 20시간 앉고 서고 매달려가는 3등 기차가 아니다. 몇 시간 동안 인도인 가족과 영어 콩글리시 힌글리시 바디랭귀지를 총동원하여 통성명 가족관계까지 말하고 과자와 각자 준비한 간이 저녁까지 함께 먹었다.
외국인과 밀폐된 공간에서 서너 시간 얼굴 맞대고 앉아 떠드는 것도 노동이다. 잠을 자러 2층 침대로 올라가는데 인도 아이 아빠가 먼저 선수를 친다. 의자 밑에 큰 여행 가방을 꺼내더니, 우리 부부를 험하게 둘러보며 가방에 체인을 감는다. 순간, 이 사람들이 우리를 의심하는구나! 여기니 갑자기 웃음이 나면서 인도가 흥미진진해지기 시작했다. “잠깐!” 우리는 그 장면을 얼른 사진을 찍었다. 자기들도 웃고 우리도 웃으면서 서로 암암리 협정을 맺었다. 서로 남의 가방 절대 손대지 않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