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아그라 이틀째
1/11 금
지도 한 장을 들고 인터넷 카페를 찾았다. 한국에서 기차표를 예매하였으나 웨이팅 번호 7,8에 걸려 있는 기차표가 문제다. 숙소 예약은 해 왔으나 예약했다는 증서가 문제다. 지난해 이탈리아 여행 때는 모든 서류와 여권 등을 스마트폰에 담아 갔으나, 현지에서 스마트폰을 소매치기당하니 황당이 아니라, 세상이 끝난 것 같았다.
숙박에 필요한 서류, 웨이팅을 기다려야 하는 불안한 기차표 등등. 아직 끝나지 않은 미비한 것들을 해결하려면 인터넷이 필요하다. 한국에서는 그랬다. 노트북 컴퓨터 스마트폰 그 속에 입력한 정보들이 있다. 바로 그것이 문제다. 나의 남편은 인도가 얼마나 IT산업이 발달했는데 ... 우기지만, 그건 일부 도시, 일부 층이다. 거리의 한 끼를 해결해야 하는 생존이 관건인 사람들 앞에, 우리가 무슨 외교통상부 파견근무를 나온 나으리 관료도 아니다.
남편은 모든 것을 기계에 의존한다. 의존하는 것은 그의 일이지만, 나는 밥도 못 먹고 잡동사니 짐을 껴안고 불안하다. 우리가 생각하는 커다란 홀 커다란 간판의 인터넷 카페가 아니다. 대학 근처에 있다 하니 물어물어 릭샤를 타고 대학근처를 갔으나 이슬람사원 쪽으로 인파를 헤치며 가본들 복잡한 전선과 힌디어뿐이다. 길 건너 오른쪽 길을 걸으니 재래시장 쪽이라 더 아우성으로 길거리에서 팔며 사며 먹으며 소똥에 개똥에 발만 미끄럽다.
그런데 그 와중에 배에서는 꼬르륵꼬르륵 신호가 온다. 남편의 특징은 한가지 목표에 집중하면 식음전폐하여 굶는다. 평소에 소처럼 우적우적 잘 먹어두었으니 되새김질하는 것도 괜찮지만, 깨작깨작 젓가락질로 우아한 체하는 나는 주저앉을 판이다. 안 쫓아가자니 길을 잃을 판이고, 쫓아가자니 웬수가 따로 없다. 양쪽 길에서 막히니 사거리가 나왔다.
‘나는 왜 여기에 있는가. 도대체 여기는 어디인가. 사람이 걷는 거로 봐서 여기는 분명히 '인도'다.
모든 건 사람에게 물으면 다 된다. 언어의 장벽, 그것이 뭐가 중요한가. 베를린 장벽도 작은 망치하나 두드리는 것으로 무너졌다. 결국은 사람이 하는 일이다. 길에 다니는 인도 사람들은 모른다. 그렇다면 어찌하겠는가. 그들 방식대로 찾고 계산하도록 맡기고, 우리는 여행객, 그들을 관리만 하면 된다. 어쨌든 우리는 ‘갑’이고 그들은 ‘을’이다. 디테일은 그들 몫이다.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되는 곳, 여기는 인도다.
남편은 쉼 없이 빵빵거리는 릭샤꾼과 차의 클랙슨 소리와 기도소리 호객소리의 길거리에서 글로 써진 간판과 책과 스마트폰 속에 들어 있는 지도를 보느라 돋보기를 꼈다 벗었다 들여다본다. 나도 알파벳 정도는 읽지만, 나도 돋보기는 있지만, 맨날 이렇게 동서양 동서남북을 쫓아다니다 보면 눈치가 백 단이다. 꼭 쓰러지기 직전에야 보인다. “여보, 여기가 인터넷카페다.” 간판 지도 아무 소용없다.
나의 능력은 하나다. 어디서 본듯한 아련한 행동이나 풍경이 그것이다. 초가집들이 많아 초가팔리가 있는 나의 고향 포천 사람들의 표정과 말씨와 눈빛이다. 그 눈빛 속에 행동 속에 상대가 무얼 말하려는지 무엇을 하고 싶은지 무엇 때문에 화가 났는지 다 알 수 있다. 새마을 노래가 흘러나오던 시절의 표정, 처음 카피 집을 찾아 시청지하도에서 북창동, 조선호텔, 무교동, 태평로, 종로 방면을 찾아 헤매던 모습이 바로 지금 인터넷카페를 찾는 행위다. 덩어리가 냉장고 만한 기계가 몇 대 있고 사람들이 좁은 골목 계단으로 풍경 하나가 보였다. 간이의자에 앉아 줄서서 기다리며 모니터를 들여다본다. 인도는 인도 위에서의 시간여행이다.
인도에는 서류를 복사해 왔으나 5성급 7성급 고급 시설이라도 소용없는 경우가 발생한다. 카피라는 개념도 없고,우리 60년대처럼 손으로 기록한 것을 더 믿는다. 어제 머물렀던 주소와 내일 머무를 곳과 주소 그리고 우리가 어느 나라에서 왔으며 등등을 일일이 남편이 적었으면, 나는 같은 곳에서 왔으며 같은 곳으로 갈 것이다. 라는 표만 하면 되는데 또 똑같이 반복해서 적으라고 한다. 그때 남편과 게스트하우스나 호텔 매니저의 오가는 눈빛은 이념과 종교가 다른 정부요원들 같다.
짐꾼 심부름하는 아이, 집주인 옆에 어슬렁거리는 멍멍이도 얕잡아 본다. 순간순간 경멸의 눈길이 스친다. 나는 가만히 말 못하고 글 모르는 멍청이 여편네 같은 표정으로 그들을 빤히 쳐다만 본다. 손가락 하나 까딱 않고 못 들은척한다. 위의 반복사항을 남편이 다 적는다. 게스트 하우스나 민박집 주인들은 남편의 압도적인 분위기에 나 같은 건 신경도 안 쓴다. 안중에도 없다. 그들 눈에 남편의 기갈에 눌려 사는 여자가 한심할 것이다.
그 애매모호한 정적의 시간이 흐르면, 남편은 아주 공손하게 나에게 미소를 띠며 크기가 화판만 한 서류철을 내 놓는다. 나는 천천히 그리고 우아하게 엘리자베스 여왕이 된다.
‘류창희’ 내 이름 석 자를 사인한다. 드디어 체크인이 된 것이다.
그때부터 나는 나선다. 그래 그대들, 내 말 좀 들어보시게. 카피 한 장이면 될 일을... 이게 무슨 불편한 짓이냐. 그래, 언제 이런 번거로움을 개선할래? 그건 기계적인 일이니 그렇다 치고, 너희가 손님에게 대하는 태도가 문제다. 우리가 그런 시스템을 가동할 수 없으니 죄송하지만 이렇게 해주십시오, 라고하면 좀 좋아. 꼭 나무라듯 그게 법인 듯, 고자세로 하면 듣는 사람이 기분이 좋으냐? 묻는다. 그리고 알아들었으면 대답해봐라 다그친다. 나는 단락마다 묻고 또 묻고 대답을 요구한다. 또박또박 하나하나 짚어가며 설명을 한다. 한 단락의 설명이 끝날 때마다 후렴으로 내가 한 말 알아들었으면 대답해라. 그럼 젊은 남자 매니저도 꼭 한마디 ”노프라범“ ”예스“ ”OK" 복창한다.
남편은 또 그게 못마땅하다. ”이것들은 손님이 왕인 걸 모르나. OK 는 내가 오케이 해야 하는데, 꼭 지네가 먼저 예스 오케이 한다며, 뭐가 오케이냐고 흥분의 강도를 높인다. 그날부터 종업원들은 슬슬 남편의 눈치를 보며 피해 다니다가 나와 눈이 마주치면 남편 몰래 슬쩍슬쩍 엄지손가락을 치켜들며 응원을 보낸다. 나 혼자 마주치면 패션이 좋다, 웃는 것이 아름답다며 친근한 관심을 표한다. 그리고 하루나 길게는 일주일을 머물다 체크아웃할 때, 남편 옆에 꼭 붙어 있는 나에게는 눈길 한번 안 준다.
사무적인 일이 다 끝나면 종업원까지 서너 명이 둘러선다. 그때야 나를 보고 “굿바이” 하며 내가 하던 말투(나는 영어는 한마디도 안 했다. 프랑스어도 이태리어도 힌디어도 한 적이 없다. 언제나 한국말로 또박또박 한다.) 내가 하던 제스츠워를 고대로 흉내 내며 “오케이! 노프라범” 즐거워한다. 자이살메르에서도 그렇고 카주라호에서도 바라나시에서도 지역과 숙소의 크기와 주인이 달라도 약속이나 한 듯, 내게 한결같이 그렇게들 우정의 악수를 청한다. 나는 흔쾌히 그들의 손을 잡아준다. 남편은 인도남자와의 접촉은 성추행이라며 펄쩍 뛴다. 남편은 통장의 숫자를 지켜야 하고 나는 따뜻한 감성을 지켜야 한다. 우리 부부의 나눠서 진 역할이다. 어쩌랴, 벌써 체크아웃했는데.
사이 홈스테이,
또 시작이다. 손으로 일일이 적고 사인하고 촌스럽다. 불빛이라도 밝던지. 알았다고 너희 마음대로 다하라고 “아이씨, 아이씨~” 어깨 한 번 으쓱하면 긴장하고 겁먹을 걸, 윽박지르고 큰목소리 내는 것은 그들에게 아무 상관없는 메이꽌시 “노프라범”이다. 슬쩍슬쩍 웃으면 같이 손가락 치켜들고 “노프라범”으로 장단 맞추는 것이 차라리 효율적이다.
아~! 그나저나 헐렁하던 나사가 흔들거리더니 드디어 풀려버렸다. 마스크 쓰고 파카 입고 두꺼운 바지 두 개 껴입고 수면제를 삼키고 잤으나, 콧물 재채기 서로 비집고 나오려고 바쁘다. 아스피린 한 알 두 알 삼킨다. 남편은 열도 없는데 아스피린 먹는다고 뭐라한다. 아는 음식 먹듯 어느 부위가 아프거나 한국 약을 하나씩이라도 먹으면 약을 먹었다는 안도감에 마음치료가 되는 것을 나의 남편은 모른다. 그는 나의 처방전을 모른다. 그러나 나의 위는 알고 있다. 나를 50년 넘게 모신 위가 아닌가. 지금 우리 주인은 어디가 불편하여 자기를 선택했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안다. 위도 아스피린도 나를 위해 충실할 것이다. “아이러브 한국 약” 한국 약은 만병통치약이다.
아그라(포토)성
아버지가 말년에 유폐된 곳. 장남에게 승계가 아닌 능력자에서 왕권승계 계속 피를 부름.
아그라에 하루 이상 머물지 마라. “아서라” ‘악질’ 최악의 도시. 하지만, 뭐 사람 사는 곳 다 똑같다. (아그라의 유언비어. 음식에 약을 탄다. 병원에 입원시킨다. 의사와 짜고 여행객 다 털어먹는다. 돈만 뜯기면 다행인데, 어느 사람은 목숨을 빼앗겼다. 그래도 그들이 그랬다는 물증이 없으니 정부에서 잡아넣어도 곧 풀려난다. 아그라에 가면 절대 음식을 나눠 먹지 마라. 친절에 넘어가지 마라) 그래서 음식보다 겁을 훨씬 많이 먹는 도시다.
나는 감기 몸살. 꼼짝 못 하고 벤치에 않아 해바라기. 처음에 허리가 내려앉는 것 같았다. 어제 타지마할의 인파보다 백인이 많다. 백인들은 한 발치 떨어져서 보는 원경을 즐기는 것 같다. 우리는 손으로 만져보고 두드려보고 불상이든 하루방이든 발도 문지르고 코도 떼어내어 가고, 못으로 이름도 새겨봐야 속이 시원한데 서양인들은 규칙과 남의 눈에 소심하여 멀리서 바라본다. 비례(非禮)는 절대 안 한다. 다람쥐 새소리 햇볕 평화롭다. 빨리 햇살이 내 온몸으로 파고들어 어젯밤 몸살 따위 퇴치했으면 좋겠다.
아그라 기차역에 도착하자마자 원숭이가 나한테 덤벼들었다. “가!” 단호하게 소리지르고 만세 자세를 취했더니 일시에 물러났다. 담장 위 나무 위로 쏜살같이 달아나 오렌지를 까먹고 한 놈은 나를 쳐다보며 바나나를 까먹는다. 이 동네는 원숭이는 고급이라고 생각하는데, 내 가방에 매달아 놓았던 과일 봉지가 없다. 삽시간에 그놈들이 채겠다. 아직 이곳의 원숭이 놈들은 학구열이나 지성에 대한 관심은 없나 보다. 내 카메라와 선글라스가 그대로 있다. 아마도 키플링 가방의 장식으로 매달린 원숭이에게 동류 애를 느낀 것 같다. 무엇보다 Memo 해 놓은 수첩을 빼앗아가지 않아서 고맙다. “라마스테”
어느 나라 사람이든 마주치면 핸드폰을 보고 놀란다. “오 ~ 삼성” 그런다음 묻는 말은 “제페니즘?” 묻는다. 인도인들은 삼성을 일본산으로 안다. “사우스코리아”라고 하면 대우 현대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지만, 금방 시들해진다.
한국사람들의 특징은 꼭 손에 핸드폰을 들고 다닌다. 박물관이나 미술관 사원에 들어갈 때는 작품보호나 혹은 사진 찍는 세금을 받으려고 카메라를 맡기거나 아니면 상당한 요금을 내고 카메라에 돈을 냈다는 딱지를 붙여 허락을 맡아야 한다. 우리도 처음에는 두 대 중 한 대는 입구에 맡기고 한 대만 요금을 냈었다. 그러다가 눈치껏 카메라 두 대를 다 맡기고 핸드폰만 들고 들어간다. 어디 가나 핸드폰을 들고 들어가도 된다. 모바일의 특징(기능)은 어디까지나 전화를 받거나 거는 것이다. 전화기로만 분류하니 단속대상이 아니다. 그때 핸드폰을 꺼내어 찍으니, 한국사람은 사진이 아니라 그림과 불상과 시바신과 사두와 교감 중이다. 단속요원을 만나면 얼른 숨기지만 그들이 곁에 다가와 묻는 것은 “그건 얼마 주면 살 수가 있느냐?”라는 호기심이다. 얼마라고 말하면 자기네 몇 년치 월급이라며 오히려 사진을 찍어준다. 한번 만져보는 것만도 영광이라는 뜻인데, 사진은 대부분 잘 나오지 않는다. 핸드폰이 국가의 위상이라는 생각도 들고 12억 인구에 팔아먹으면 상당할 건데 라는 마음도 들지만, 이 선두주자를 안 놓쳐야 할 텐데 라는 마음도 든다.
오토릭사 ‘톡톡’타면 50루피지만 일부러 사이클 릭사 30루피로 후하게 흥정하고 탔다. 그 착하고 순한 아저씨 평지에서도 엉덩이를 치켜들고 헉헉한다. 남편과 나는 너무 안 되었다고 50루피를 주자고 약속을 했다. 어차피 이들은 우리 말을 못 알아들으니 크게 자연스럽게 막말한다. 길도 “노프라범”이라며 큰소리 뻥뻥 치더니 길거리에 서서 오만사람한테 물어본다. 어디서나 다른 기사들도 일단 다 안다고 한다. 지도 글자를 읽는 릭사운전사도 드물다.
그들은 우리 둘을 태우고 가다가 자기 동네 쯤인지 아는 사람 만나면 손님인 우리한테 묻지도 않고 앞에 한 사람 태우고, 또 지나가다 한 사람 더 태우고, 시끄럽게 떠들고 골목골목 제 친구인지 조카인지 다 내려주고, 우리는 맨 나중에 내려준다. 대여섯 군데의 도시를 가도 어찌 네트워크가 되었는지 거의 다 같다. 또 가다가 무슨 상점 같은 곳 앞에 세우며 쇼핑센터라고 소개한다. 그 옆에는 관광버스들이 즐비하게 서 있는 것을 보아 패키지 여행단에 바가지 씌우는 상습지역 같다. 그럴 때마다 그 순한 눈빛으로 힘들다고 한다. 공해환경과 가난한 사람을 더 도와주려고 사이클 릭사을 타야 한다고는 하지만, 가느다란 부러질 것 같은 장작개비 같은 다리를 보면 돈 내고 타면서도 후회를 한다.
마음이 아프다. 내가 그다지 몸이 큰 편도 아닌데도, 살이 팅팅쪄서 이분을 이렇게 고생하게 하는구나 생각하면 몹시 불편하다. 돌고 돌아 낑낑대다 도착하면 30루피 계약하고 와서는 100루피라고 한다. 누가 흥정하는 것을 보기를 했나. 미터기를 꺾기를 했나. 계약서가 있기를 하나. 길에서 실랑이가 벌어진다. 다른 릭사꾼들이 하나 둘 모여 둘러서면 그들 속에 우리 부부는 꼼짝없이 포위된다. 서로 “야!”야 거리며 각자 말 한국어 영어 힌디어가 막상막하 소란하다. 이럴 때 환장을 하겠다. 어떤 때는 막대기를 들고 거리정화를 하는 경찰을 부르기도 하지만, 그놈이 경찰인지 은행 문앞을 지키는 경비인지, 도를 닦는 사두인지 알 수가 없다.
문제는 나의 남편이 10루피 자리를 손에 들고 요금을 계산해야 하는데, 만날 100루피짜리를 쥐고 있으니 ‘견물생심’이다. 어느 때는 한 사람당 받는다고 큰소리치기도 한다. 방망이는 경찰만 가지는 것이 아니라 식당 앞의 경비원도 가지고 있다. 정복 입고 모자 쓰고 그 행색이나 그 행색이나 비슷해도 제복의 효과에 밀려 심판이 끝났다. 결국, 60루피 주려다 매를 든 제복 아저씨 덕분에 50루피 줬다.
마음은 찡하지만, 하루에도 몇 번씩 길거리에서 실랑이를 하는 인도는 릭샤꾼에 의해서 경계하고 마음의 문을 닫는다.
전날 저녁 젊은 릭샤꾼은 20루피에 약속하고 가서 30루피를 주니 눈도 마주치지 못한 체, “땡큐” 땡큐를 몇 번이나 한다. 초보인 것 같다. 많이 받아도 적게 받아도 마음이 찡하기는 마찬가지다. 그래도 택시는 밀폐되어 운전사가 안에서 문을 잠가 버리면 꼼짝없이 당한다고 하니 4~5명이 아닌 한두 명이라면 오픈해서 거리를 달리는 릭샤가 제격이다. 흙먼지 바람 빵빵소리 정신이 사납지만, 누군가의 시선 속에 있어야 안심이다. 사람은 사람과 더불어. 인도인들이 빤하게 끝까지 쳐다보는 눈길이 바로 호신용 호각보다 CCTV보다 효과가 있다.
맥도날드 풍경
이런 사람을 만났다.
맥도날드에 어느 남루한 여인이 옆자리에 앉았다. 남루하기는 하되, 바늘 끝 하나 들어갈 자리가 엿보이지 않는 몸도 표정도 옷매무새도 빈틈이 없다. 햄버거 3개와 종이컵 6개를 시켰다. 앉은자리도 직원을 불러 스프레이 세제를 뿌려 닦게 했다. 무슨 종교의식을 치르듯, 아니면 소꿉놀이하듯, 진지하게 차려 놓는다. 아주 건건한 몸짓과 표정으로 한입 먹을 때마다 냅킨으로 입을 닦는다. 종이 얼굴 손 어디에도 소금 후추 케첩의 흔적조차 일일이 핥아먹는다. 사용한 냅킨을 네모 반듯하게 화툿장만 하게 접어 빈 컵에 한 장 한 장 집어넣는다. 햄버거를 쌌던 포장지도 네모 반듯하게 접어 넣는다. 사실 보기에는 햄버거 한 개가 들어갈 위의 크기도 되지 않을 듯 보였다. 나만 그녀를 희한하게 쳐다보는 것이 아니다. 식당 안에 여자가 드문 인도. 더구나 맥도날드는 퓨전 음식이다. 내가 먼저 그녀를 보고 씽긋 웃었다. 그녀는 아주 친근한 표정을 보이며 묻는다. 당신은 어느 나라에서 여행을 왔느냐? 나는 인디아다. 영어를 구사하는 것으로 보아 학교 교육을 받은 지식인임이 틀림없다.
코믹영화 한 편을 봤다. 날이 춥기도 하고 무엇보다 여행지에서는 기대앉을 자리가 가장 절실하다. 영화관람 표를 끊고 미리 들어가 쉬려고 했으나 시작 몇 분 전이 아니면 들어가지 못한다고 한다. 중간에 쉬는 시간도 있다. 힌디어의 영화였는데 끝났는지 알고 나오려다 마땅히 쉴 곳이 없어 한 번 더 보려고 했더니 영화가 너무 길어 쉬는 시간이다.
인도는 아무리 유명한 할리우드 영화가 들어와도 흥행을 못한다고 한다. 그만큼 자기들 정서에 맞는 영화를 많이 재미있게 만드는 것으로 유명하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지금 현재, 세계를 들썩들썩 하게 하는 한류열풍이나 '싸이'의 '말 춤'은 하나도 안 보인다. 코끼리 신, 원숭이 신, 쥐 신만 해도 거리를 메우고 있는데, 대중문화가 낄 틈이 없다. 핸드폰을 쓸 만큼 진화된 사람들이 영화관에 왔는데 영화를 보는 도중 전화벨은 계속 울리고 “핼로우?” 전화받고 아이들 떠들고, 저희끼리 응원하고 손뼉을 치고 소란스럽다. 힌디어를 알아들을 수는 없었지만, 영화도 영화려니 영화관 풍경이 더 볼만했다.
워낙 땅덩어리가 크다 보니 담요 한 장은 기본으로 가져 다닌다. 언제 어느 상황에서도 한 끼 식사와 깔고 자고 덮어쓰고 멋 내고…. 담요는 곧 자신을 감싸는 집이다. 그들에게 생존을 책임지는 종교다. 우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