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인도, 델리

류창희 2013. 1. 1. 23:05

 

 

2013년 1월 1일

인도, 델리

 

 

 

<인도, 가자!>

내가 결정한 건 단지 한마디다.

‘인도’에 가고 싶다.

 

 

 

 

 

 

 

1/1일 새해아침

김해공항에서 아들 내외와 떡국

 

 

 

 

 

 

델리공항에 도착하여

택시기사와 승객과의 거래가 위험하다하여

인도경찰청에서 운영한다는 국립택시 영수증(델리 공항에서 호텔까지)

먼저 가는 곳을 말하고 표를 끊어

배정받은 택시기사에게 줌

 

 

 

 

 

 

 

올드델리 거리에서

 

 

 

 

 

 

 

 

인도인들은 눈을 뜨면

생우유를 끓여 홍차를 넣은 '짜이'를 마신다

 

 

 

 

 

 

 

짜이 아저씨 짜이를 제조하고 있다

 

 

 

 

 

인도사람들이 즐겨 먹는 '짜이'

현지인들한테 보다 나에게 10배정도 비싸게 돈을 받고

미안한지, 작은컵 큰컵 두잔이나 준다

남편은 길거리 짜이라고 절대 안 마신다

 

 

 

 

 

 

 

 

 

 

 

 

 

 

 

 

 

인도는 영화강국이다

헐리우드 영화가 아무리 흥행해도 인도에 가면 망한다고 한다

자기들의 영화가 워낙 재미있다고 한다

영화관 앞에 영화간판을 올리기 직전

한 컷!

 

 

 

 

 

 

내가 서 있는 곳은

처음에 무슨 작은 화장실인줄 알았다

호텔 바로 앞에 있었는데, 빙빙 돌아 다녔다

나중에 알고보니

지하철역이다

 

 

 

 

 

 

 

저런 간판이 보일 때, SIM카드를 샀어야 했다

심카드가 없어 나는 와이파이가 터지는 곳에서도 인터넷이 어려웠다

절차는 까다로워 하루 이틀정도 걸리는데

한국말이 보일 때 해두면 바가지는 안쓴다

 

 

 

 

 

 

 

 

 

지도와 정보

어디를 갈것인가?

매일 매시간 연구해야 한다

 

 

 

 

 

 

 

 

빠하르 간즈,

빠하르 간즈는 우리 나라로 치면

서울의 명동 부산의 광복동 거리다

세계사람들이 델리에 들어가면

반드시 걸어보는 정신없는

아니, 정신 사나운 거리다

 

 

거리에 한글로 '인도방랑기' 현수막이 보이는 곳에서

간만큼 더 가면 '라시'가게가 있다.

라시는 인도의 정통 요구르트다

나란히 세집이 있는데

그중, 가장 알려진 집이다 

인도인들은 사진 찍는 것을 좋아해 포즈도 잘 잡아준다

 

 

 

나중에 여행이 한참 된 뒤에

인도 중산층 사람을 기차 일등칸에서 만났는데

빠하르간즈에서 라시를 먹었다고 자랑을 하니

"더티"하다며 눈살만 찌푸리는 것이 아니라

멀쩡한 자기 손을 손세정제로 씻는다

 

 

그래도 우리 여행객에게는 정말 맛있다

몇시간 발품팔아 찾아가서 사 먹었다

그 다음 날도 또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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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를 가다

2013년 1월 1일~ 1월 23일

 

1/1

차 팔아 인도를 가다

8년동안 나를 태워다니던 마티즈 팔았다

250만원 받았다

남편에게 회비 250만원 냈다

영근 성욱 공항에나와 새해 아침이라며 떡국먹었다

서울은 눈이 왔다

서설이다.

 

 

<인도, 가자!>

 

내가 결정한 건 단지 한마디다. ‘인도’에 가고 싶다. 남편이 인도 가이드북 몇 권을 사왔다. 내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 인도 다큐멘터리, 세계테마기행 인도편과 인도 영화를 다운 받았다. 어쨌든 남편은 내가 인도에 대해 공부하기를 바란다. 나는 장티푸스와 파상풍 독감 예방주사를 한꺼번에 맞아 온몸에 두드러기가 났다. 보름 넘게 정기검진에 브레이크 걸린 부위 때문에 병원에서 치료하느라 바빴다.

 

지난해, 이탈리아를 가면서 ‘그리스 로마신화’를 3권까지 미리 공부하고 갔다. 예습이 오히려 가는 곳마다 느낌이 내 느낌이 아니라 책을 확인하는 기분이었다. 재작년에 프랑스 가면서 그곳에 사전 지식 없이 도착했었다. 나날이 골목마다 미술관마다 경이로웠다. 그리고 머물고 싶었다. 지금도 다시 가고 싶다.

 

 

여행이란? 담아오려고 하면 잃는다. 다 버리고 오면 오히려 채워진다. 그냥, 그대로, 보이는 대로, 느껴지는 대로, 들리는 대로, 마음과 몸이 따르기로 했다.

 

 

<이코노미클래스 증후군>

 

비행기 안에서 꼼짝 못하고 좁은 공간에 꽂히는 자세로 10시간 동안 앉아 있었다. 피가 아래로 다 쏠렸다. 발이 통통 부었다. 압박 스타킹을 신고 온다는 걸 까먹었다. 비행기 타는 것을 선망하듯, 나는 마음이 정착을 못 하고 공중에 떠서 한 자세로 살았다. 나의 삶이 그동안 이코노미클래스 증후군처럼 굳어 있었다.

 

델리공항에 도착하여 황금빛 카펫에 압도당했다. 공항을 빠져나오며 공항 메트로를 찾았다. 두리번 거릴 때마다 사람들이 따라붙는다. 공항 메트로를 찾아 헤맸으나 철 셔터만 내려져 있다. 보름 후쯤 안일이지만, 공항철도가 파업했었다고 한다. 또 공항버스를 기다렸다. 밤은 깊어간다. 요금이 얼마를 하던지 택시를 탔으면 싶은데, 택시기사를 믿을 수 없다며 인도 경찰청에서 운영하는 요금표부터 끊고 지급한 다음 타는 인도국립 택시를 택했다.

 

택시를 금방 찾았느냐고 물으신다면? 초행길 번뜩이는 눈빛, 검은 피부, 우리와 다른 말씨, 친절을 베풀어 따라붙는 사람을 쫓아 공항 밖 지하도를 몇 번 헤맨 끝에 찾았다. 창구에서 델리까지 가는 택시 표를 끊기는 끊었는데, 어디에서 어떻게 타야 하는지…. 인도는 자기들끼리도 가는 방법도 요금이 다 틀리다.

 

그리고 드디어 택시를 탔다. 탔으니 간다. 공항을 빠져나가는데 영수증을 달라고 한다. 두 장의 영수증을 받았는데 기사가 두 장 다 달라고 한다. 그러면 우리는 요금을 냈다는 증거가 없다. 탄 지 5분도 안 되어 남편은 한국말로 기사는 인도말로 언성을 높였다. 그리고 달리기 시작한다.

 

‘교통체증’이라는 단어가 있다. 차선에 차만 다닌다는 생각은 고정관념이다. 오토릭샤, 사이클 릭샤, 소, 개, 사람, 모든 움직이는 것은 소리를 냈다. 한 번씩이 아니라 숨소리 내듯 계속 자기 목소리를 낸다. 그 와중에 나라에서 운영한다는 가장 안전하다는 국립택시는 중간마다 시동이 꺼졌다.

 

기사는 중간지점 컴컴한 어디에 차를 세우더니 내려서 무엇을 사는가 싶더니 밖에서 종이 쪼가리를 찢는다. 순간, “인도에 가면 당한다 하더니 이게 바로 눈 뜨고 당하는 거구나!” 남편이 혼잣말을 하는데, 나는 생각을 다졌다. 호랑이에게 물려가도 정신만 차리면 된다. 택시문의 잠금장치를 열고 뛰어내리는 싯점을 점검했다. 남자보고 내려서 차를 밀라고 하고 여자만 태워 내뺀다는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일부러 끄는지, 저절로 꺼지는지 아수라장 같은 곳에서 시동이 자꾸자꾸 꺼진다. 영수증을 찢은 것은 바늘구멍 같은 점선이 없어서 반쪽은 아무렇게나 찢어 길바닥에 버린 것이다. 박물관이나 사원에 들어갈 때도 그렇게 했다.

 

그래서 제대로 델리의 숙소까지 찾아갔느냐고? 우리가 한국에서 예약해 놓은 델리기차역 근처 호텔 반대편 길에서 헤맸다. 준비해간 호텔명과 지도를 보면 알지 않겠느냐고. 말은 영어를 구사하는 인도인이 많으나 글을 아는 이는 드물다. 그나마 국가가 운영하는 택시이기에 영수증이 있는 것이다. 하루에 몇 번씩 다른 교통수단을 이용했으나 영수증과 미터기는 한 번도 못 봤다. 1950~60년대에 우리나라 사람들이 한글, 한문, 영어를 읽고 구사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되었을까. 마찬가지다. 더구나 하층 사람들이다. 몇 번이나 호텔 이름을 말하며 그곳을 아느냐고 했을 때, ‘노프라범’이라고 외치던 호기는 어디 가고, 기사는 글도 길도 전혀 몰랐다. 기사본인도 차를 대놓고 문을 열어놓은 체 거리에 서서 이 사람 저 사람 붙잡고 물어본다. 일부러 모르는 척하는 것 같지는 않았고 진짜 모르는 것이 확실하다.

 

역을 가로질러 30분 넘어가는 거리에서, 길바닥에 엎어놓은 콩나물시루 같은 광경을 봤다. 아니 우리 부부 또한 콩나물이다. 발길에 차이는 것은 아무렇게나 계단이나 대기실 길바닥에 웅크리고 자는 군중과 우리 짐을 보고 호객행위로 따라붙는 인력거꾼만 있는 것이 아니다. 제복을 입은 경찰인지 군인인지 사복경찰인지 친절한 시민인지 널브러져 있다. 자는 사람 빼고 서 있는 사람들은 모두 우리를 붙잡는다. 그 와중에 짐을 내려서 한 명씩 통과하는 검색대를 몇 번이나 거쳤다. 종교분쟁으로 일어나는 테러를 막기 위함이라 하지만, 지하도 하나 건너거나 쇼핑몰 영화관 지하철 한번을 타려고 해도 작은 가방을 열어 보이고 크다 싶은 손가방은 검색대를 통과하며 양팔을 벌려야 했다. 그냥 순서대로 줄 서서 하면 좀 편안한가. 남편과 나는 머나먼 이국땅에서 개 줄처럼 서로 묶어놔도 잠시도 떨어질 수 없이 불안한데, 언제나 나는 여성통과 줄에 따로 서서 휘장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 여성의 대우인지 여성의 무시인지 고약한 인도 보호법이다.

 

역을 가로질러 호텔의 간판을 보고 들어갔으나 넓고 넓은 수화물창고였다. 철망을 따라 다시 돌아 어렵사리 호텔을 찾았다. 수면제 한 알 먹고 누웠다. 몇 시간이나 지났을까. 잠옷이 있다는 것이 사치다. 춥다. 매우 춥다. 파카 잠바 목도리 장갑 양말 두 켤레로 완전무장을 했다. 온통 흐트러진 무질서 자다 깨다 깨다 자다 비몽사몽 (여행하면서 만난 배낭여행객들도 공항에서 델리로 들어오면서 울었다는 대학생이나 선생님들을 많이 만났다.) 인도는 아무리 추워도 난방이 없다. 책에서 배낭여행자들에게 슬리핑백을 가져오라는 말이 무슨 말인지 몰랐다. 가서 사면되지. 그곳도 사람 사는 곳인데 뭔들 없을라구. 어느 고급 분들은 도저히 못 견뎌 담요도 사고 전기 히터도 샀다는 말도 들었다. 인도 사람들도 아니면서 누가 어떻게 들고 다닐 것인가. 시도 때도 없이 정전되고 고장인데 어디다 꽂아놓고 불을 땔 것인가.

 

인도가 험하다고 듣기는 하였으되 그래도 명색이 이름이 호텔인데 싶어 전기 고데기를 넣어왔다. 헤어드라이어는 기본으로 알았다. 비누 샴푸 치약 스킨로션 따위를 생각한다는 건 생존하고는 아무 상관이 없다. 이쑤시개 하나도 무거운 여행길에 짊어져야 하는 배낭 안에 전기 고데기의 무게는 한 달이 지난 지금도 쳐다보기도 싫다.

 

사방에서 번뜩이는 눈빛, 같이 소리지르고 차와 릭샤 사람 동물의 친밀감은 5cm보다 가깝다. 배낭을 짊어지고 보이게 앞으로 멘 작은 가방, 배에 찬 여권과 현금, 핸드폰과 카메라를 껴안고 절절매지만 그래도 여행자는 돈을 쥐고 있으니 언제나 ‘갑’이다. 어느 사람이 공항에서 하던 말이 떠오른다. ‘인도는 도둑은 없다. 여행자의 부주의만 있다.’

 

나는 꽃 시름에 젖었다.

꽃물 꽃 구름 꽃 바람 꽃향기 꽃씨 꽃 꿈 꽃시계 꽃가지 꽃바구니 꽃받침 꽃봉오리 꽃 구름 꽃 버선 꽃동네 꽃집 꽃 노래 꽃 그네… 웬, 꽃 타령이냐고? 창고 같은 호텔 방안에 이중 삼중 잠금장치를 걸어놓고 남편이 나갔다. 인터넷을 알아본다고 나갔다. 인터넷카페라는 곳을 찾아나선 것이다. 와이파이 잘 터진다는 말은 우리나라 선전문구다. 복사 한 장을 하려고 예약한 사이트 하나를 찾으려고 도시마다 옮기면서 인터넷카페를 찾은 시간과 수고, 그리고 프로그램이 달라 혹은 전기가 나가 하루 이틀을 소모한 날도 따져보면 며칠이 된다. 안 하면 되지. 한국에서 숙소와 기차 편을 예약했으니 그들에게 보여주어야 할 것이 아닌가. 나는 갇혔다. 따뜻한 물에 몸을 헹구고 싶던 욕망도 없어졌다. 일단 정전이니 온 세상이 컴컴하다. 오돌오돌 떨며 수첩을 꺼내 좋은 생각만 쓴다.

다시 꽃 타령이다. 꽃등 꽃길 꽃삽 꽃 그림자 꽃잎 꽃새우 꽃게 꽃신 꽃이불 꽃 베개 꽃 저고리 꽃 치마 꽃담 꽃집 꽃문양 꽃향기 꽃사슴 꽃술 꽃 떡 꽃누루미 꽃 다식 꽃다지 꽃 노래 꽃다발 꽃 그림 꽃 엽서 꽃 편지 꽃 마담 꽃미녀 꽃미남 꽃처녀 꽃 보살 꽃 거지 꽃 당신 꽃 여보 꽃 수녀 꽃 스님 꽃 매듭 꽃 양산 꽃 동무 꽃 수건 꽃 엄마 꽃 언니 꽃 딸 꽃 할머니 꽃마차 타고 꽃놀이 간다. 아침에 피었다가 저녁에 지고 마는 꽃 신세 꽃 노래 꽃봉오리 꽃꽃꽃 아무리 꽃 타령을 해도 남편은 돌아오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