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지상의 아름다운 도서관

류창희 2011. 10. 3. 08:00




지상의 아름다운 도서관

글 사진 최정태
한길사 2007년



도서관은 영원히 지속하리라.

‘도서관’ 하면 많은 사람이 우중충한 회색빛 건물 안에 조락한 서가와 퇴색된 책들이 잠자는 풍경을 떠올린다. 사람들에게 도서관은 저 멀리 있는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도서관은 아름다워야 한다.

한 나라의 역사를 알려면 박물관을 봐야 하고, 미래를 알려면 도서관을 봐야 한다는 말이 있다. 많은 나라가 박물관을 만들어 역사를 알리고, 도서관을 설치해 미래를 준비한다. 도서관이 아름다워야 하는 것은 그곳이 단지 책을 쌓아두는 창고가 아니라 사람과 책이 만나고 지식과 정보를 교류하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뉴욕공공도서관

좋은 책은 영혼에 피를 돌게 한다.

도서관 정문 앞에는 미국에서 매우 유명한 엷은 분홍빛이 감도는 대리석으로 만든 두 마리의 사자 상이 광화문 앞의 해태상처럼 떡 버티고 앉아 있다. 개척정신을 다짐하자는 마음에서 세운 것으로 각각 ‘인내’와 ‘불굴’이라 이름을 지었다.

“도서관 때문에 맨해튼에서 이사할 수가 없다.”라는 팬들이 많을 만하다, 두 사자 상은 단순한 돌덩이가 아니라 살아있는 도서관의 상징이고 뉴욕의 자부심이기도 한 것이다.

카네기- “나는 대중을 향상시키기 위한 가장 좋은 기관으로 도서관을 선택했다. 왜냐하면, 도서관은 이유없이 아무것도 주지 않기 때문이다. 도서관은 오직 스스로 돕는 자만을 도우며, 사람을 결코 빈곤하게 만들지 않는다. 도서관은 큰 뜻을 품은 자에게 책 안에 담겨 있는 귀중한 보물을 안겨주고, 책을 읽는 취미는 이보다 한 단계 더 낮은 수준의 취미를 멀리할 수 있게 한다.”

현재 미국 전역에는 약 1만 5천 개의 공공도서관이 있다. 이 숫자는 맥도날드 햄버거의 전국 점포 수 1만 2천 개를 웃돈다.




좋은 도서관의 조건

1. 도서관 건물이 아름다우며 역사성을 지니고 있는가?
2. 장서는 얼마나 확보하고 있는가?

서양의 도서관은 주로 수도원을 중심으로 수도사들이 만든 필사자료에 의해 지탱되었다. 중세에는 책이라고 하면 당연히 손으로 쓴 필사본을 의미했다.

우리나라 도서관은 아직 제대로 된 도서관 투어 프로그램이 없다. 도서관 자체도 훌륭하지만, 더욱 부러운 것은 바로 도서관에 대한 시민의 애정과 관심이었다.



비블링겐 수도원도서관

영혼의 쉼터, 하늘로 이르는 순례

우리나라의 여행 안내서를 보면 도서관은 아예 미운 오리 새끼 취급을 받는다. 건축기행, 박물관 기행, 사찰과 수도원 기행, 심지어 화장실 여행은 있어도 도서관 기행은 보이지 않는다. 중세 시대 지식인들이 여행에서 가장 먼저 찾는 곳은 도서관이었다. 중세 도서관은 수도원에서 태어났다고 할 수 있다.

필경(筆耕)은 ‘밭갈이’라는 말 그대로 매우 어렵고 힘든 작업이다. 밭을 가는 것은 단지 육체의 배를 불리려는 것이지만, 하느님의 말씀을 책으로 옮기는 것은 영혼을 살찌우는 거룩한 행위이기 때문에 어떠한 어려움도 참고 견뎌야 한다.




규장각

우주와 하나로 합쳐지는 학자의 집
책과 문장을 주관하는 향기나는 집

규장이란 제왕이 지은 시문이나 조칙 등의 글을 가리키는 용어로도 쓰는 말이다. 원래 규장각은 숙종이 종친의 업무를 맡은 종부시(宗簿)에 새운 곳으로 어제와 어필을 보관하던 곳이었다.

서향 각은 봉모당에 봉안된 어진이나 글씨를 포쇄(曝曬: 책을 햇빛에 말리는 것)하는 장소여서 ‘책 향기가 나는 집’으로 불리기도 했다. 우리나라 옛 건축물은 편액만 보아도 건물의 기능과 활동을 대강 알 수 있다. 인정전(仁政殿)은 왕이 어진 정치를 펴는, 즉 왕이 집정하는 장소, 서행각이라 하면 책의 향기가 나는 전각이고, 규장각은 문자를 주관하는 별자리에서 서적과 관련되는 집이 되는 것이다.

아내가 자신의 남편을 서방(書房)님, 즉 ‘글방에 있는 님’으로 부르고, 책의 동의어 권 도 문 본 서 적 전 등이 있고 도서 문적 서적 장적 전적 판적 서권 서전 서책 간책 전책 죽책 책자 등등. 영어에서는 책을 ‘Book' 하나로 통용되지만, 우리는 본(本) 하나만 가지고도 고려본 조선본 목판본 활자본 귀중본 희귀본 관본 사간본 진본 사본 필사본 초간본 재간본 중간분 모사본 저본 지본 수진본 방각본 번역본 영인본 등 100여 개가 넘는다.

이처럼 책과 종이와 관련된 언어가 많은 것은 우리나라의 특징이자 저력이다. 그만큼 우리는 오래전부터 학문을 숭상해 글과 친숙했고 종이와 책을 중시했다.

부용지 동남쪽 모서리를 자세히 보면 잉어 조각이 새겨져 있다. 물에서 힘껏 튀어 오른 잉어는 어수문 즉 등용문(登龍門)을 통과해서 규장각으로 진입할 수 있다.

학자들의 집, 규장각은 정조가 편액을 걸고 새로운 시스템을 갖춘 도서관으로 출발 1778년이다. 지금 규장각 건물을 찬란했던 과거의 영광을 잊은 채, 옛 궁궐 속에서 뜻도 모르는 관광객을 맞으며 쓸쓸히 빈집을 지키고 있다. 소장하고 있던 모든 도서와 기록물들도 그곳을 떠나 지금은 서울대학교 규장각에서 보존관리하고 있다. 규장각 도서 안에는 유네스코가 등재한 세계기록유산인 《승정원일기》《조선왕조실록》을 비롯해 7종(7,078)의 국보와 보물이 있다.

1975년 서울대학교 관악 캠퍼스로 이전한 1990년에 규장각 독립건물을 지어 용의 날, 용띠 총장이 비가 내리는 가운데 개관식을 치렀다.



규장각 안의 편액 중

수교(受敎):왕이 직접 신하에게 하달 하는 명령

객래불기(客來不起): 규장각 각 신은 근무 중에든 손님이 와도 일어나지 않는다.

각신재직대관좌의(閣臣在直戴冠坐椅): 각 신은 근무 중에는 반드시 관을 쓰고 의자에 앉아 업무를 수행한다.

수대관문형비선생무득승당(雖大官文衡非先生毋得升堂): 비록 고관, 대제학이라 할지라도 각 신이 아니면 당 위에 올라오지 못한다. -정조대왕 어명- 학자를 위한, 사서를 위한 왕의 배려가 얼마나 지극했으며 여기서 봉사하는 각 신들의 자부심은 또 얼마나 대단했을지 짐작이 간다.




마지린 도서관

위대한 사서 없이 위대한 도서관은 없다.

위대한 사서 노데의 열정으로 그는 도서관의 장서는 보존을 위한 재산이 아니라 이용을 위한 정보 미디어로 보고 도서관은 당연히 개방되어야 하고 이교도의 문헌도 확보해야 한다고 했다. 나아가 분류가 안 된 도서관은 “조직이 안 된 군중과 같고, 훈련이 안 된 군대와 다르지 않다”

도서관은 많은 장서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며, 동시에 책은 개인이 독점하는 것이 아니라 대중에게 돌려주어야 한다는 것이 그이 신념이었다. 지나친 수집벽 때문에 일각에서는 그를 두고 ‘위대한 책 도둑’이라고 혹평했다.



유럽의 도서관들은 대개 왕이나 재상, 귀족 또는 수도원들이 그들의 재산 가치를 높이려고 또는 개인적 필요에 의해 설립했다. 반면에 독일의 도서관은 한 개인이나 기관이 자기의 목적과 필요로 만든 것이 아니라 출판사와 서적상 조합원들이 모여 조합의 공동이익이라는 목적을 위해 설립한 것이다.

실러의 시 “모든 생각은 기록을 통해 살아나며, 생각은 기록된 내용에 따라 천 년이 지나도 존재할 것이다”
베를린 운터 덴 린덴의 국립도서관 옆 아인슈타인의 말  “나는 타고난 재능은 없지만 새로운 것에 대한 정열은 있다.”


우리나라 국립중앙도서관을 상징하는 내용을 담거나, 이용자들에게 도서관의 이미지가 잘 전달되도록 운치 있고 세련된 언어로 표현하면 좋았을 것을. 대통령은 마당 한가운데에 커다란 바위를 세우고 ‘國民讀書敎育의 殿堂’이라는 밋밋하고 의미 없는 구절을 남겼다.



베네딕트 도서관도 처음에는 불과 12권의 장서로 출발했듯이 수도원이라고 해서 모두 여기처럼 도서관이 크고 책이 많은 것은 아니다. 그들은 “도서관이 없는 수도원은 무기고 없는 요새와 같다.”라고 “책이 없는 수도원은 재산 없는 도시이고 등대 없는 항구임, 군대 없는 성채다. 또한, 그릇 없는 부엌이고, 먹을 것 없는 밥상, 풀 없는 뜰, 꽃 없는 목장, 잎 없는 나무 같은 것”이라고 서슴없이 말한다.



프랑스 국립도서관의 모태가 되는 왕립도서관은 1368년 샤를 5세가 그의 개인장서를 루브르 궁으로 옮기면서 시작되었다. 당시에는 왕이 사망하면 장서도 함께 소각하는 것이 보통이었다. 이런 관습은 루이 11세(1461~83)때 바뀌었다.



아우구스트 공작 볼펜뷔텔 도서관은 아름답다. 그런데 이렇게 아름다운 도서관을 왜 지금껏 세상에 제대로 알리지 않았을까? 그것은 이용보다 자료보존을 우선해왔기 때문이라도 한다. 도서관을 공개해 사람들이 오가면, 이 책들이 없어지리라고 염려하는 것이다. “책은 이용하려고 존재하는 것” “책은 만인을 위해서 있다.



책이 아름다워야 하는 이유는, 이웃나라와의 외교 교섭용이나 국빈과 사절을 위한 선물용으로, 사적으로는 사랑하는 왕비나 연인인 귀부인을 위해, 또는 공주들의 혼수예물로 사용했기 때문이다.



‘영혼의 요양소’ 또는 ‘영혼의 약방’을 자처하는 장크트 갈렌 수도원도서관, 이곳은 책을 통해 인류의 위대한 스승과 문인, 사상가를 만날 수 있는 장소이자 인류의 기록유산뿐만 아니라 옛 성인 또는 역대 제왕의 유물을 소장한 문화유산의 보고다. 나아가 우리의 영혼을 치유하는 요양소이자 휴식처이다.


체코를 비롯해 유럽을 여행하면서 어디를 가든 모든 도서관이 입장료를 받는다.

우리도 한때는 공공도서관에서 운영에 보탬이 된다고 하여 입장료를 받은 적이 있으나 이것이 유네스코 헌장과 도서관 정신에 어긋난다고 해서 없앴다.



미국역사를 살아있는 그대로

대통령도서관이라는 용어 자체는 미국에서 처음 나왔고, 실제 이 이름을 사용하는 도서관도 미국에만 있다. 2003년 2월 25일 아시아에서 처음으로 한국에 ‘김대중 도서관’이 생겼다.

특이한 것은 대통령도서관 설립에 드는 비용은 국고의 지원이 없이 대통령이 개인적으로 모금하거나 독지가들의 후원금으로 조성한다는 것이다. 또한, 대통령이 백악관을 나서는 순간 그의 모든 자료는 연방정부에 귀속되도록 하고 있다. 일종의 특수도서관이다.



기록문화의 종주국, 한국

해인사가 오늘날의 규모와 법보사찰로서의 위용을 갖추게 된 것은 조선 초기 대장경판을 이곳으로 옮기고부터다.

모은 재산은 이미 오래전에 정리했고 현재 가지는 것은 침대 하나와 탁자 그리고 지금도 읽는 몇 권의 책뿐이란다. 탁자에는 네 개의 찻잔만 두며, 손님이 먹고 난 찻잔은 반드시 당신이 설거지해야 한다고 했다.  -같이 여행해준 사람의 95세 어머니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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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 : 프랑스 파리 미테랑도서관

2011년 8월 11일




































 


























미테랑 도서관에 갔다.
선선하고 좋았는데 아~ 더욱더 좋은 것은 지성이 숨 쉬는 곳이다.
어떻게 아느냐고. 내가 지성인이기 때문이다.
거리 곳곳에서 버스 정류소에서 길거리에서
작은 배낭을 짊어지고 지도를 보는 사람이 없다.
관광객이 없다는 이야기다.


아~ 벅차다.
멋지다.
광대하다.
무엇이? 미테랑도서관이? 아니다.
내가 이곳에 지금 있다는 사실이다.
뱃속마저 편안하다.
고프지도 부르지도 않은 안정된 풍요.
앞으로 한두 시간 후면 고파질 것이라는 모자람이 주는 풍요다.
이 적당히 한산하고 넓은 공간,
누가 누구를 쳐다보지도 않는다.
앉아 있거나 누워 있거나 이야기하거나
우두커니 지나가는 사람들을 바라보고 있다.

햇볕이 강하고 따뜻하다.

 귀에는 프랑스 말이 간혹 들리지만
내가 전혀 어느 의미로도 짐작할 수 없는
상관이 없는 언어를 하는 사람들,
나는 선그라스를 벗고
그리고 돋보기를 끼었다.


나는 지금 그들 틈에 끼어 철저히 고립의 경험’을 하고 있다.
스치는 바람 햇살
문득문득, 내가 라이브러리 인이었다는
나의 자긍심을 지켜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