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처음 읽는 인도사

류창희 2013. 5. 16. 08:05

 

 

처음 읽는 인도사

(다양함이 공존하는 매혹의 아대륙, 인도)

전국역사교사모임 지음

 

 

 

 

 

 

 

 

 

 

가장 매력적인 존재는 인도이었다. 그들 대다수는 남루한 옷차림에 시간이 멈춘 듯 느릿느릿한 모습이었으나, 언제나 맑은 미소로 맞아 주었다. 어떤 요구나 부탁에도 ‘Yes'라는 의미로 고개를 갸우뚱하거나, “No problem!"으로 화답했다.

 

 

오늘날 인도인들은 인더스 강과 갠지스 강을 그 무엇보다 순결하고 성스러운 존재로 떠받들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더러운 것을 정화하는 신비한 힘을 가지고 있다고 믿기에 일 년 내내 목욕하는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룬다.

 

 

바르나: 산스크리트어로 ‘색깔’이라는 뜻인데, 이는 바르나를 구분하는 기준의 하나가 피부색이었음을 알려준다.

 

 

인도의 신분제도 Caste, 카스트는 포르투갈 상인들이 인도에 들어온 이후, 만들어진 용어. ‘가문’ 또는 ‘혈통’을 뜻하는 ‘까스타’에서 유래됨

 

 

신에 대한 숭배방식은 기도문을 외우고, 제물을 바치는 것. 사람들이 불을 피워놓고 제물을 바치면, 브라만이 그 제물을 받고 신의 이름으로 그들에게 축복을 내렸다. 제물로 동물을 희생시키기도 했으나, 주로 채소, 곡물 등 간소한 것들을 바쳤다. 사람들의 기원 역시 자식의 평안이나 풍요, 건강 등 소박한 것들이었다.

 

 

브라만은 세상의 주인인양 행세했고, 수드라는 힘들고 보잘것없는 이를 도맡았다.

 

 

불가촉천민: 접촉할 수 없는 천민이라는 뜻으로 카스트제도의 4개 계급에 속하지 않는 낮은 신분의 사람들을 일컫는다.

불가촉천민은 마을 바깥의 제한된 곳에서 살았는데, 마을에 들어갈 때에는 소리를 크게 질러서 다른 사람들이 자신들을 피할 수 있도록 해야 했다.

 

 

 

인도 이슬람 문화의 꽃, 타지마할

무굴 제국 시기에는 위대한 건축물들이 많이 지어졌는데 타지마할은 ‘빛의 궁전’이라는 뜻이다. 이것은 실은 궁전이 아니라 사랑하는 아내 뭄타즈 마할이 죽자, 샤 자한이 그녀를 위해 만든 무덤이다. 샤 자한은 첫눈에 반해 16세의 뭄타즈 마할을 아내로 맞이했다. 그녀와 잠시도 떨어지지 않았으며, 심지어 전쟁터에 데리고 갔다. 그녀는 20년 동안 무려14명의 아들을 낳았는데, 전쟁터에서 14번째 아들을 낳다가 죽자, 샤 자한은 그녀의 죽음을 가슴아파하며 타지마할을 만들게 했다. 타지마할을 만들기 위해 세금을 50퍼센트나 올렸고, 그 공사는 무려 22년 동안 이어졌다.

 

 

 

인도는 아편 생산지로도 영국에 소중한 존재였다. 인도인은 가난과 굶주림에 시달렸으며, 극심한 흉년에는 지역 인구의 1/3이 죽기도 했다. 유럽인의 평균수명이 60세였을 때에 인도의 수명은 32세였다.

 

 

 

근대화와 민족운동에 눈뜨다.

산업혁명이 일어나자, 거대한 인도 시장의 매력을 알아차리고는 사회, 문화 전반을 침략하기 쉽게 뜯어고치기 시작했다. 인도를 알아야만 안정적인 지배가 가능했기 때문이다. 영국은 사티 같은 인도의 악습에 주목하고, 자신들이 인도주의자임을 내세워 이를 금지했다. 그리고는 영국의 인도 지배가 인도인에게 근대화라는 축복을 안겨줄 것이라고 선전했다.

 

 

 

영국은 인도인의 정신 개조에도 적극적으로 나섰다. 학교를 세워 유럽의 학문과 영어를 가르쳤다. 이를 통해 인도인을 갈색 피부의 영국인으로 만들고자 했다. 실제로 이러한 정책은 영국의 인도 지배에 필요한 중간 계층을 만드는 데 기여했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변화를 불러왔다. 근대교육을 받고 성장한 인도 지식인들이 언론, 집회 등을 통해 유럽의 문화와 사상을 알려 나가자, 많은 인도인이 민주주의, 민족주의, 반제국주의 등을 접하게 된 것이다. 결국 이는 인도인이 근대화를 고민하고 민족운동을 전개하는 계기가 되었다.

 

 

영국은 인도에 다양한 세력을 이간질해 서로 반목하게 하고, 결국에는 하나로 힘을 합치는 것을 막기 위해 ‘분리통치 정책’을 실시했다. 종교와 카스트 사이의 갈등을 부추기는 것이 대표적인 방법이었다. 인도의 종교에는 관여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하지만 힌두교도나 무슬림을 위한 정책을 내놓으면서 이들의 잠재적인 갈등을 적극적으로 이끌어 냈다.

 

 

 

가장 큰 변화는 1858년 영국령 인도 제국을 만든 것이다. 즉 동인도 회사를 폐지하고, 영국 정부가 인도를 직접 지배하기 시작했다. 영국은 세포이의 항쟁을 진압하는 데 쓴 5천만 파운드라는 천문학적이 비용은 인도인의 빚으로 떠넘겼다. 이로써 영국은 제국의 전성기를 화려하게 누리고 인도는 더욱 빈곤해졌다. 이후 영국은 인도인들을 중간 관리로 키우고, 종교적 대립을 부추기면서 더 많은 이익을 얻었다.

 

 

 

반영(反英) 민족운동을 벌이다

세포이 봉기를 진압한 영국은 인도에 대한 식민 지배를 공식화했다. 영국의 빅토리아 여왕은 인종이나 종교에 관계없이 능력 있는 인도인을 관리로 선발하겠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인도 민중의 생활은 이전보다 훨씬 힘들어졌다. 영국인들이 이들을 노예처럼 부리고, 토지와 지하자원을 마구 빼앗고 착취했다. 견디다 못한 농민, 수공업자, 상인 들이 곳곳에서 들고 일어났다. 영국은 대책을 세우기는커녕 총칼로 무장한 군인들을 앞세워 이들을 무자비하게 진압했다. 인도인들도 여왕의 백성이었으나 보호 대상은 아니었던 것이다. 영국으로서는 인도를 안정적으로 지배하려면 인도인의 도움이 필요했다. 이에 영어를 배운 인도 지식인들을 관리로 채용했다. 이들 역시 영국인과 동등한 권한을 갖지 못했다. 저항은 지식인들로부터 시작되었다.

 

 

 

완전 독립을 주장하다

1914년 인도에는 제1차 세계대전의 바람이 불어왔다. 영국이 자신들을 도우면 자치권을 주겠다는 제안을 해오자, 100만 명이 넘는 인도인이 동원되었는데, 이들 가운데 6만여 명이 희생되었다. 전쟁 비용도 인도가 부담했다. 영국은 인도인의 희생 덕분에 승리를 확정했다. 그러나 인도와의 약속은 지키지 않았다. 오리려 인도인에 대한 통제를 한층 더 강화했다. 이에 인도인이 파업으로 대응하자, 영국은 자신들이 만든 법을 적용했다. 10분 만에 300명이 넘는 사람이 죽음을 당했는데 5명 이상이 모이는데 집회 신고를 하지 않았다는 것이 강경 지압의 이유였다.

 

 

 

이무렵 국민회의의 지도자로 떠오른 간디가 ‘불복종운동(정부의 정책을 변경시키려는 운동으로 ‘비협조운동’)을 시작했다. 이는 영국이 하는 일체의 정치행위에 협조하지 않는 것이었다. 그해 간디는 영국의 소금 독점에 반대하는 행진을 시작했다. 60세가 넘은 노구를 이끌고 388킬로미터를 맨발로 걸어 바다에 도착한 그는 손으로 바닷물을 떠다 햇빛에 말려 한 줌의 소금을 만들었다. 그리고는 인간에게 반드시 필요한 소금을 영국이 독점하는 것은 인도인의 생명을 빼앗는 행위라고 주장했다. 영국은 가정용 소금이라는 조건 아래 인도인의 소금 생산을 인정했다.

 

 

 

다양한 차원의 운동이 발전하다

이무렵 펀자브, 아프간, 카슈미르, 신드의 머리글자에 ‘땅, 나라’를 뜻하는 ‘스탄’을 붙여 ‘파키스탄’이라는 단어가 만들어졌다. 무슬림이 자신들의 나라를 꿈꾸게 된 것이다.

 

 

 

불가촉천민의 아버지, 암베드카르

인도에는 바르나가 없는 사람들이 있다. 접촉해서는 안 되는 오염된 존재로 알려진 불가촉천민. 어부 가축도살업자, 청소부, 세탁부 등. 이들은 사람들이 더럽게 생각하는 일을 도맡으면서도 사회 구성원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힘겨운 삶을 이어왔다.

암베드카르는 불가촉천민었으나 영국군의 세포이였던 아버지 덕분에 학교에 다닐 수 있었다. 그러나 그 역시 불가촉천민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학교에서 화장실을 사용할 수도, 물도 자유롭게 마실 수도 없었던 것이다.

 

 

 

무장 독립 투쟁가, 보스

1897년 법률가 집안에서 태어났다.

“인도에 필요한 것은 비폭력 투쟁이 아니라 근대적인 무기이다.”

“인도가 간디의 비폭력 투쟁으로 독립을 이루면, 독립 인도는 강대국의 먹이가 될 것이다.”

“이 틈에 영국을 공격해 스스로 독립해야 한다.”

 

 

 

위대한 영혼, ‘간디’

1869년 평범한 힌두교 가정에서 태어났다. 행정가였던 아버지 덕분에 18세에 영국 유학을 갔는데, 3년여의 공부 끝에 변호사가 되어 인도로 돌아왔다. 1893년에 인생의 전환점을 맞이했다.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사업을 하던 인도 상인의 소송을 맡아 그곳에 갔다가, 인도의 노동자들이 유색인종이라는 이유로 극심하게 차별받는 모습을 본 것이다. 그 역시 1등 칸의 기차표를 가지고 있었으나 백인에게 쫓겨나는 모욕을 당하기도 했다.

간디, 끝까지 하나의 인도를 외치다.

 

 

인어, 다양하다 못해 복잡하다.

인도는 넓은 영토와 다양한 인종만큼이나 많은 언어를 가지고 있다. 그 수가 1652개에 이른다. 그러나 인도에는 정작 국어가 없다. 공용어만 있을 뿐이다. 학교와 직장에서는 영어를 공용어로 쓰면서 지역마다 서로 다른 언어는 정치, 경제, 종교적인 배경에 또 다른 걸림돌이 되고 있다.

 

 

대중, 사회 변화의 주인공이 되다

불가촉천민도 인간으로서의 기본적인 권리가 있다며 지정 카스트라는 호칭이 주어지고 그들 가운데 엔지니어, 의사 등 전문직 종사자가 늘어났다. 카스트와 더불어 또 하나의 중요한 변화는 여성의 이혼과 재산 상속을 인정하고 유아 결혼과 일부다처제를 금지했으나, 1980년대에도 결혼 지참금을 이유로 남편과 그 가족들이 신부를 살해하는 사건이 매년 최소 1만 건이 넘는다.

 

 

 

인도인의 삶에는 특수성과 보편성이 있다

인도인의 80프로는 힌두교를 믿는다. ‘깨끗함이 무엇보다 중요하지’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용변을 보고 목욕을 하고, 아무리 친하다고 해도 시체가 있는 집을 방문하지 않는다. 채식주의자가 많은 것도 이와 관련이 있다. 육식은 곧 동물의 시체를 먹는 것이기 때문이다 특히 브라만들 가운데 채식주의자가 많은데, 심한 경우에는 파, 마늘 등의 뿌리 식물도 먹지 않는다. 생명의 근원인 뿌리를 머근 것은 생명을 죽이는 육식과 다름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독특한 생활 방식은 소에 특별한 정화의 힘이 있다는 믿음에서 비롯하여. 우유, 버터, 고체요구르트, 똥, 오줌이 그것이다. 그 중 다른 나라 사람들의 가장 큰 관심을 끄는 것은 단연 똥이다.

 

 

인도는 축제의 나라로 불린 정도로 많은 축제가 있다. 가장 화려한 것이 홀리 축제이다. 풍년을 기원하는 제사의 하나로, 봄이 시작도니는 3월 보름날에 열리는데, 수많은 사람이 거리에서 노래하고 음악에 맞추어 춤을 운다. 이날만은 카스트에 따른 제약들이 무시된다.

 

 

 

인도는 영화로도 이름이 높다. 일 년에 1000편이상이 제작된다. 인도 영화의 중심지인 뭄바이는 이 도시의 옛 이름인 봄베이러에 하리우드를 합성해 ‘볼리우드’라고고 불린다. 영화상영시간은 보통 3시간 정도인데, 보통 해피엔딩으로 끝을 맺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