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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종택과 종손들의 근황
바닷가에 사는 것이 강가에 사는 것만 못하고, 강가에 사는 것이 시냇가에 사는 것만 못하다고 했다던가.
퇴계는 말년에 고향 시냇가에 한서암이라는 작은 집을 짓고 후학들과 함께 학문에 몰두하셨다.
그러나 일제시대를 거치면서 일본인들이 정신적 지주역할을 하는 종택을 불질러버렸다고 한다.
지금 종택은 83년 전, 13대 종손이 지은 것으로 솟을 대문과 ㅁ자형 정침이 있는 秋月寒水亭으로 이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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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대 손인 이동은 옹(1909년 기유생)과 16대손 이근필선생(1932년 임신년)
17대 손인 이치억씨(1975년 을유년)와 부인 이주현씨 부부가 아들 이이석(2007년 정해생)을 낳아
4대가 한 집안에서 살고 있다.
세속을 버리고 隱士답게 조용하게 살아간 퇴계의 모습인가.
이동은 옹, 백수를 넘긴 자태 학같이 고우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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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8년도에 부산퇴계학연구원의 여성회 일을 맡아 폐백 드리러 왔었다며,
졸저 '매실의 초례청'을 드렸다.
글 속에 퇴계시를 인용하여 문운이 스몄다고 말씀드렸더니
옹께서는 작은 수첩을 꺼내 화답으로 시한수를 읊으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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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 같은 세월을 100년이나 허비하여 억울한데,
내 맘의 부끄러움은 또 한 해를 더 하는구나
효도하고 자애하는 덕목을 지금부터 시작하고
우리나라 전체가 행하며 만년을 또 만년을 이어가면 얼마나 좋으리‘
꼿꼿하게 앉아 절 받으며 손수 적은 수첩의 작은 글씨를 보고
눈 밝고 귀 밝고 목소리 청아하시니 마주 앉은 사람들 마음도 흐뭇하다.
잘 모시는 자손들의 정성이 옹의 모습에서 보인다.
퇴계의 정신을 오롯이 온몸에 담고 계신 옹의 두 손을 꼭 잡고
오래오래 건강하게 장수하시라는 인사를 드리고 방에서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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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청마루에서 차종손 근필선생이 ‘造福譽人’ 휘호를 써 놓고 기다리신다.
성품이 옥같이 맑고 깨끗하여 어느 때고 남에게 흐트러진 모습을 보이는 일이 없었다는 퇴계의 모습,
차종손어른에게서 고스란히 배어나온다.
대자연과 혼연일체가 되어 서원의 풍경 속에 그림처럼 자연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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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계학연구원에서 할아버지를 높여주는 덕분에
너른 집에서 잘 먹고 잘살고 있어 황송할 따름이다”라고
겸손하게 말씀하신다.
정령, 그렇기만 했을까.
물질문명이 세상을 바꿔 놓고 있는데, 그 속에서 백수의 아버님을 모시며
아들 며느리에게 가르쳐야 하는 책임이 얼마나 막중할까.
우리의 무형 유형의 문화를 보존하고 전수하는 모범으로 보여지는 삶이 고되고 외로우셨을 텐데도
‘愼其獨’ 그 홀로를 삼가는 모습이 바로 崇德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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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채로 들어갔다. 앞 마방에 장항아리 종가집의 상징처럼 그득하다.
여염집의 맏며느리만 해도 하늘이 낸다고 하는데,
퇴계, 어찌 퇴계종손부로 시집을 왔을까.
종손부와 어린 손자와 할아버지의 모습이 정겹다.
종택의 종부역할, 그 이름이 큰데 어떻게 다 치러내느냐는 물음에
“퇴계선생제사만 크게 지낸다”며, 다른 제사가 의미가 덜하다는 것은 아니라고
허세와 낭비를 지향하고자 제관의 수에 맞춰 제수를 준비한다고 한다.
“저는 퇴계종가의 종부라는 막중한 임무가 있습니다만,
그일 만큼 중요한 것이 육아입니다.”
“아이 때문이 아니라면 집안 대소사나 제사에 다 참석을 합니다.” 라고 하는 말속에는
어린종부의 굳건한 의지와 부덕이 배어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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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와 아버님이 잘해주시고 서울에서 공부하고 있는 남편 역시 많은 것을 가르쳐 준다."
이제 서른 남짓한 나이이다.
시어머님이 안 계신 큰살림을 살며 방문객들의 접빈례와 두 어른들을 조석으로 모시고 있다.
“저에게는 네 분의 고모님들과 작은 어머님이 계신데, 그 분들께서 큰 힘이 되어주십니다.
말씀 한마디 행동 하나라도 틀림이 없는 훌륭한 분들이라 잘 받들어 배우고 있습니다”
그래도 친정어머님은 걱정이 많으시겠다고 하니 “제가 큰일을 잘 해낼지 걱정하신다”며
손으로 입을 가리며 웃는 모습이 해맑다.
이 글을 쓰며 종손부와의 소통이 내겐 봄꽃 향기보다 더 향기롭다.
그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큰 배움을 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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