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경과 바람
서정숙
안동출생
1991년 등단
겨울 이야기
꽁꽁 언 호수
드디어 집 앞에 있는 호수가 꽁꽁 얼었다. 겨울이 시작되면 호수가 금방 얼 것 같은데 그렇지가 않았다. 그 깊은 물이 얼려면 영하10도의 날씨가 열흘 정도는 계속되어야 한다니 한파가 몰아쳐야 된다.
얼음을 밟으며 호수의 중앙으로 가 본다. 얼음 아래로 맑은 물이 비친다. 따라오던 강아지가 발아래 물을 보더니 무서운지 꼼짝 않고 끙끙거리기만 한다. 물이 깨끗하고 날씨가 추운 탓에 얼음이 유난히 미끄럽다. 넘어지니 않으려고 몸을 사리며 간신히 호수의 중간 지점까지 간다. 거기에 서서 주위를 휘둘러본다. 사이다를 마신듯 싸한 바람이 가슴속으로 파고든다.l
호슷가에서 호수를 바라보던 때와는 달리, 이제는 내가 호수의 일부분이 된 기분이다. 지금 누가 호숫가에서 나를 본다면 중간 지점의 점 하나로 보일 것 같다. 집에서 늘 바라보는 호수였는데 호수에서 집을 바라보니 마음이 일렁거린다. 우리 집에서 또 다른 내가 호수 위의 나를 바라보고 손짓하는 것 같은 착각이 든다.
우리 집에서 호수를 내려다 볼 때는 여기가 이렇게 넓게 느껴지지 않았다. 호수에서 집을 바라보니 호수는 한없이 넓고 우리 집은 자그마하게 보였다. 집을 둘러싼 산도 아득하게 느껴졌다. 호수 주위로 겹겹이 펼쳐진 산이, 흐린 날씨 탓인지 너울거리는 듯하다. 상상도 못한 아름다운 풍경이다.
내친 김에 우리 집에서 바라보기만 했던 호수 건너편의 동산까지 가 보았다. 호수가 얼지 않았으면 가 볼 생각도 못 했을 곳이다. 그곳에 서서 반대편에 있는 우리 집을 바라보았다. 성냥갑을 쌓아 놓은 것 같은 모양의 집이 진짜 성냥갑처럼 보였다. 늘 우리 집이 주인공이고 주위의 자연은 우리 집을 아름답게 받쳐주는 것으로 생각했는데, 지금 보니 호수와 산이 주인공이고 우리 집은 소품에 지나지 않았다. 그것도 자연의 흐름을 막는 소품이지 않는가.
다시 호수를 가로질러 걸어오며 생각했다. 내가 몸답고 있는 곳을 떠나서 그곳을 바라보아야 그 실체를 알 수 있다는 사실을.
서정숙 수필집 《풍경과 바람》중에서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