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방스에서, 느 릿 느 릿
프로방스에서, 느 릿 느 릿
장다혜 지음 / 앨리스
‘과연 짊어질 가치가 있는가?’ 어느 봄날, 프로방스에 도착했다. 프로방스가 가장 찬란하게 빛나는 시기인 5월, 마음도 배낭도 가벼웠던 배낭여행의 끝자락이었다. 빨리 가면 보이지 않는 것들이 있다. 여유롭게 걸으며 느긋하게 들여다보아야만 보이는 프로방스.
풍경이 안정적일수록 감정은 역동적이다. 역설적인 감정, 물속에 물만 있는 것이 아니듯 텅 빈 풍경은 두서없는 기억들로 가득 차 그리움은 오롯해지고 마음이 일렁인다.
집집이 발코니가, 나무 덧문의 색깔이, 그 앞에 내놓은 화분의 모양이 다 다르다. 거리의 건물들이, 그 입구가, 또 그 앞의 가로등이 다 다르다. 똑같은 하나도 없는 다채로운 디자인과 고유의 색감이 현지에 널렸다. 새로운 곳이지만 긴장은커녕 해방감이 가득 밀려온다. 휴대폰을 손에서 내려놓는 순간, 밀려오는 좌절감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대도시의 삶이 이곳에선 다 부질없어진다.
프로방스 사람들은 적극적이면 진취적이고 대화하는 것을 즐긴다. 남들, 특히 동양인이 물어봐 주는 것을 아주 좋아하고, 대충 말해도 찰떡같이 알아듣는다. 혹시 프로방스를 방문하게 된다면 그들과 대화를 통해 좀 더 깊이 다가가길 바란다. 분명, 돌이켜 생각해보면 지나친 풍경들보다 생생하게 마주한 여러 얼굴들이 여름의 조각들을 훨씬 더 빛나게 할테니까.
영국과 독일 아줌마, 할머니들은 단정하게 자른 짧은 머리에 화장기 없는 얼굴, 수수한 베이지색 셔츠에 면바지를 입고, 편안한 단화를 신는다. 액세서리도 눈에 띄지 않는다. 디자인보다 실용성을 중시하는 가방과 신발, 단정하고 깔끔하지만, 개성은 약간 없어 보이는 조신한 옷차림.
프로방스 토박이 어르신들은 한여름의 더운 날씨에도 진한 색조화장은 기본이다. 귀고리 목걸이 반지 할 것 없이 크고 화려한 액세서리로 눈이 부셔야 한다. 머리를 묶거나 올리고 반짝이는 핀을 많이 꼽고, 모자도 화려한 장식이 달린 강렬한 원색을 쓴다. 손톱과 발톱도 길게 길러 원색 매니큐어와 페디큐어를 칠한다. 게다가 7,80대 할머니라도 8센티미터 힐은 기본이다. 색깔도 디자인도 과감한 비키니 차림으로 ‘처진 가슴도 자랑스러운 내 신체의 일부문일 뿐’ 어디서든지 과감하게 노출을 즐긴다.
칸, 더없이 사랑스러운 해변
비키니를 입은 할머니들이 해변에 누워 태닝을 즐긴다. 흑인들이 피부가 탈 새라 열심히 선크림을 바르고 있다. 개들도 바다에서 수영을 즐기고는 자연스럽게 해변 입구에 있는 샤워기 밑으로 달려가 짠물을 씻어낸다. 주차를 하려면 시내를 몇 바퀴 도는 건 예사고 좁은 일방통행 도로가 많아 원치 않게 시내 뒷골목 구경을 두세 번 연달아 하게 된다. 칸은 그 유명세와는 달리 작아서 일단 짐을 풀고 나면 차나 버스를 타지 않아도 된다. 지도도 필요 없다. 작고 길은 단순해서 헤매지 않고도 걸어서 다닐 수 있다.
해변 중 가장 유명한 곳은 콧대 높은 도도한 얼굴을 하고 있는 크루아제트해변이다. 유명브랜드호텔 부티크호텔 고급스러움과 사치스러움이 물씬 풍기는 이곳은 누구나 동경하는 명품 1번지다. 거리를 오가는 사람들은 해변에 어울릴 만한 가벼운 옷들도 세련되게 입어 하얀 바지와 가죽 샌들 하나만으로도 멋스러움을 드러낸다. 한여름의 쇼윈도엔 모피를 입은 마네캉들이 겨울의 마네킹들은 모두 헐벗고있다.
칸의 해변을 즐기려면 개인의 취향에 따라, 그날의 기분에 따라, 동행하는 사람에 따라, 계절과 날씨에 따라 행복한 고민에 빠지게 된다. 오늘은 어떤 해변으로 갈까?
벼룩시장엔 벼룩만 없다더니 정말 천천히 들여다보면 없는 게 없다.
앙티브, 태양은 가득히
곱게 닳은 나무 바닥이 내는 삐걱삐걱 소리도 아늑하게 느껴지는 정겹고 따스한 분위기의 책방. 오래된 나무냄새와 책 먼지가 적당한 비율로 섞인, 다소 생소한 공기를 호흡하면서. 그러나 그것도 잠시, ‘너 거기서 뭐하니?“
니스, 이부 클랭의 그랑 블루
투명에 가까운 블루로 기억되는 화가 이부 클랭. 단조로우면서도 순수한 청색 모노크롬을 발견했고 이 색은 1960년 ‘IKB(International Klein Biue’라는 이름으로 특허를 받는다. 니스의 바다를 바라보면 그의 짧은 일생만큼이나 도발적이고 매력적이며 신비롭기까지 한 푸른색의 향연이 펼쳐진다. 코발트 불루보다는 짙고 울트라 불루보다는 연한 이부 클랭의 모노크롬 블루는 항상 먼바다에 머물러 있어 니스의 풍경을 더욱 매혹적으로 만든다. 칙칙한 날씨의 영국을 떠나 이곳으로 휴양을 왔던 영국 귀족들은 해변을 산책할 때마다 구두에 흙이 묻어 부자자 이곳에 산책로를 닦았다. 1895년에는 빅토리아 여왕이 니스에 머무르면서 이 산책로를 애용했다고 한다. 즐비한 니스의 대표적인 거리로 성장. 미국의 댄서 이사도라 덩컨의 죽음으로 다시 한번 유명세를 탄다. 200년의 짧은 역사에도 수많은 일화를 담고있는 니스의 해변은 완만한 만으로 이뤄져 있다. 이곳의 해변은 워낙 길어 한여름에도 다른 사람과 부대낄 일 없이 자신만의 공간을 확보해 아주 여유로운 시간을 보낼 수 있다. 해변으로 가는 가장 기분 좋은 방법은 해안 절벽을 따라 달리는 기차를 타는 것이다. 2층 기차는 높고 큰 창이 달려 시원한 지중해와 맞닿은 프로방스를 만끽하기에 그만이다.
칸에서 니스까지의 해변도로는 아침 햇살을 느끼기에 더없이 좋은 드라이브코스다. 일출로 일렁이는 고요한 바다와 눈으로 뒤덮인 웅장한 알프스가 차창을 가득 메운다. 멀리 중세와 르네상스, 그리고 현대가 공존하는 니스의 아침 풍경을 바라보며 구시가로 들어선다. 노천시장의 이름이 말해주듯 하이라이트는 단연 꽃시장이다.
프랑스 여자들의 세련미를 일컫는 프렌치 시크는 전 세계 유행을 이끌지만, 오히려 보편적 트렌드를 거부하는 그 아이로니컬함에 매력이 있다. 화려함을 피하면서도 자신의 정체성을 확연히 드러내는 그들의 스타일이 프랑스 패션 아이콘으로 성장시켰다. 패브릭 가게에 들어가 올리브 나무와 매미가 수 놓인 앞치마와 식탁보, 냅킨 등을 구경.
심심한 귀족들의 축제, 니스 카니발
매년 2월 말, 바빌론의 고대 로마인들은 귀족은 노예로 또 노예는 귀족으로 분장해 축제를 즐겼는데 그것이 지금 브라질의 삼바와 니스 카니발 등을 만들어낸 마디그라의 시초다. 니스 카니발은 거대 인형들을 주축으로 하는 축제라서 특히 아이들이 좋아한다. 어떤 아이들은 축제에 심취한 나머지 행진하는 인형들에게 말을 걸거나, 음악에 맞춰서 막춤을 추거나, 알 수 없는 자기만의 언어로 괴성을 지르거나, 꽃종이나 눈 스프레이를 뿌려대면서 각자의 방식으로 ‘매우 신나 있음’을 표현한다.
파이앙스, 앤티크 세상 속으로
열려라 참깨! 육중한 동굴 문이 스르르 열리면 번쩍이는 금화와 은화가 궤짝에 넘쳐나고, 앞다투어 광채를 뿜어대는 알 굵은 반지며 목걸이며 왕관이 있을 것 같다. ‘알리바바와 40인의 도둑’의 보물창고에 한 발짝 들어온 기분이다. 뒤따르는 개들도 이곳이 익숙한지, 윤기가 흐르는 부들부들한 털을 날리며 우아하고 느긋하게 가구들을 둘러본다. 이곳을 방문한 사람들은 세 번 놀란다. 첫째 진열된 귀한 물건, 가격, 그걸 덥석 사는 손님들을 보며 놀란다. 가공할 만한 침묵에 갇힌 예술에만 익숙하던 우리들에게 시장에서 만지고 느끼는 예술은 새롭기만 하다.
투레트쉬르루, 자연을 입은 도자기 시장
소박한 자갈길을 따라 올리브 오일, 와인, 초코릿 등을 파는 작은 상점과 라벤더가 앙증맞게 수 놓인 테이블보와 냅킨, 패브릭 커튼을 파는 상점들. 거친 듯 멋스러운 돌담길을 따라 일요일 오후의 나른함, 유독 마을 광장은 사람들로 북적이다. “가는 날이 장날이다” 라는 말은 우리나라에선 부정적인 의미지만, 차를 타고 낯선 곳을 지나가다가도 장이 선 곳을 발견하면 고맙다.
아를, 바람을 그리는 남자 빈센트 반 고흐
스물일곱 늦은 나이에 화가가 된 남자. 모델을 구할 돈이 없어 거울 속 자신의 모습을 그리며 평생 39점의 자화상을 남긴 화가, 그럼에도 얼굴에 붕대를 감고 있는 유독 초췌한 모습이 떠오르는 불운의 화가 빈센트 반 고흐. 4개 국어에 능통하고 독서광이었던 지식인이자 10년 남짓 그린 그림만으로 21세기 사람들을 열광하게 하는 그는 진정한 천재 화가다.
반 고흐는 규칙을 어겼을 때, 스스로 한겨울의 추위를 나체로 견디는 벌을 내렸을 만큼 자신에게 엄격했다. 그는 자본주의 사회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았고 현실과도 너무나 동떨어진 순진한 예술가였다. 그래서 지극히 현실적이고 셈이 빨랐던 고갱과의 불행한 결말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였을지 모른다.
반 고흐가 죽은 지 6개월 후, 동생 테오도 죽자 테오의 부인은 반 고흐의 그림들이 여러 가지 이유로 유럽 전역에 흩어져 있다는 것을 알고 그의 그림을 모으는 작업을 시작하다. 어떤 집에서는 땔감으로 파괴되고, 어떤 술집에서는 더트 판으로 사용되고, 심지어 반 고흐의 어머니는 그의 그림 여러 점을 닭장의 구멍을 막는 용도로 쓰고 그렇게 그의 사후에도 오랫동안 그이 작품들은 처참한 몰골로 사라졌다. 그은 불운한, 가끔은 행복하기도 했던 삶의 순간들엔 항상 자화상을 그렸다. 현재 아를에는 그가 살던 노란 집과 카페, 그가 감금되었던 병원과 그의 그림에 등장하는 장면들이 모두 남아 있어 그의 그림 한 점 한 점을 온전히 느낄 수 있다.
여름엔 40도를 웃도는 고온 건조한 날씨가 이어지기에 고스란히 햇볕을 견디며 걸어 다니는 것조차 힘들지만, 반 고흐의 그림 속 소용돌이치는 자연과 햇빛을 담은 화려한 색채를 즐기기에 적격이다. 또 이곳에선 낮에는 반 고흐의 표현대로 “창백한 유황빛으로 반짝인다.”는 아를의 태양을, 밤에는 론 강 위에서 환상적으로 빛나는 별들을 직접 대면하는 신기한 경험도 하게 된다. 많은 작가가 프로방스의 바람 미스트랄 탓에 반 고흐 그림 속 자연들이 소용돌이치는 것처럼 그려졌다는 설을 주장하기도 했는데, 실제로도 그렇다. 미스트랄에 부대끼는 별들은 그림 속의 그곳과 너무도 흡사하다.
알퐁스 도데, 퐁비에유
고향의 자연을 사랑했던 도데는 비 온 뒤의 싱그러움과 인적 드문 깊은 산 속 풍경, 별이 쏟아지는 신비한 밤 풍경 등을 그림 그리듯 섬세하게 표현했다.
폴세잔, 액상프로방스
지저분하게 물감이 묻은 폴 세잔의 작업복과 손때묻은 캔버스들, 그리고 조금 전까지 그가 그렸을 것만 같은 과일 바구니가 그대로 놓여 있다. 큰 통창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햇살이 채광 좋은 아뜰리에서 세잔은 정확한 묘사를 위해 사과 하나를 두고 그것이 썩을 때까지 그렸다. 그래서 그는 21세기 사람들까지 매료시킨 예술가로 남았고 나는 역사 속에서 가장 유명한 사과인 이브의 사과, 뉴턴의 사과와 함께 세잔의 사과를 만나는 행운을 누리고 있다.
유명 박물관에서 삼엄한 경비 속에 조명을 받으며 걸린 작품을 구경하는 것보다 세잔이 애착을 두고 만들고, 사랑하고, 살고 그렸으며, 삶을 마쳤던 이 아뜰리야 말로 그를 제대로 만날 수 있는 공간이다. 현재 엑상프로방스에는 세잔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시티투어가 있다, 이 투어로 세잔의 생가와 그의 가족이 살았던 두 채의 집, 미술을 배웠던 학교와 평소 그가 즐겨 갔던 미라보 거리의 카페 데 되 가르송, 그가 결혼식을 올렸던 교회와 그의 장례식이 치러졌던 교회, 세잔 아버지의 소유였고 한때 그도 근무했었던 은행과 세잔의 부인과 아들이 살던 집, 세잔 어머니의 아파트 심지어 세잔 할머니의 집까지 찾아가볼 수 있어 그야말로 세잔의 모는 것을 경험할 수 있다.
파블로 피카소, 앙티브
파리의 몽마르트르에서 가난한 화가로 살면서 자신의 캔버스를 태워 불을 쬐던 시절이었다. 피카소의 본명은 ‘파블로 디에고 호세 프린시스코 데 파울라 우안 네포무세노 마리아 데 로스 메디오스 시프리아노 데 라 산티시마트리니다드 마르티르 파트리시오 클리토 루이스’ 이 피카소로 복잡한 이름만큼이나 혼란의 시대를 거치며 다사다난한 삶을 살았다. 그는 평생 일곱 명의 여성과 염문을 뿌리며 여성 편력을 자랑했다. 아티브의 피카소박물관에서는 30분 거리인 무쟁의 집과 발로리스의 도자기 작업실 그리고 이곳 이틀리에를 오가며 아흔두 살의 나이로 생을 마감할 때까지 프로방스의 태양과 더불어 삶을 즐긴 행복한 피카소를 만날 수 있다. 2층의 아트리에로 올라가는 작은 계단에선 입체파를 연상시키는 피카소의 수만 가지 표정들을 먼저 마주하게 된다. 장난기 가득한 어린아이 같은 얼굴, 짧은 반바지에 슬리퍼를 신고 바다낚시를 하는 어부의 모습, 개를 쓰다듬는 평범한 아저씨의 모습, 마흔두 살 어린 자신의 연인 프랑수아 질로를 꼭 껴안은 남자의 모습, 진지한 눈빛의 예술가의 모습….
사진 속의 피카소가 이보다 더 행복할 수 없는 얼굴 지중해의 햇살이, 미움이 그리고 코발트 빛의 바다가 여러 개의 창으로 밀려들었다 쓸려나가는 작은 공간에서, 유난히 흰 벽과 높은 천장, 많은 창이 피카소의 행복했던 나날들을 명쾌히 보여준다. 이곳은 창작의 고통에 신음하며 머리를 쥐어뜯는 고독한 예술가의 작업실이 아니라고. 이곳은 동심을 간직한 피카소라는 어른의 놀이터였고, 격한 자유로움을 꿈꾸는 예술가의 아지트였으며, 연인과의 키스를 갈망한 한 남자의 밀실이었다고. 한 세대 이상 프로방스는 작가와 화가, 작곡가 그리고 많은 유명인사의 놀이터였다. 그래서 프로방스를 여행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프로방스의 대표 브랜드들을 곳곳에서 만날 수 있다.
작지만 소박한 아름다움 피에르 오귀스트 르누아르, 칸쉬르메르
우리를 행복하게 해주는 거장 피에르 오귀스트 르누아르, 그의 그림 앞에선 항상 마음이 푹 놓인다. 캔버스 속 여인들은 나폴거리는 레이스가 층층이 달린 드레스에 새틴 리본을 달고 피아노를 치거나 느긋하게 목욕을 즐긴다. 또 화려한 화장대 앞에서 정성껏 머리를 빗거나, 여유롭게 왈츠를 즐기고, 나른한 오후 강가에서 뱃놀이하고, 와인을 곁들여 한가로운 점심을 먹는다. 그들은 늘 오동통하고 풍만한 몸매에 생기로 반짝이는 피부, 연한 분홍빛으로 물든 뺨, 그리고 걱정이라곤 전혀 없어 보이는 순수한 모습이고, 때론 철없이 보이기까지 하는 눈동자를 가지고 있다. 풍경들은 또 어떤가? 마른 풀 포기 하나까지 화사한 금빛으로 빛나며, 꽃병에 꽂힌 꽃조차 매혹적으로 만개해 그 향까지 진하게 풍기는 것 같다. 류머티즘성 관절염으로 고생하던 르누아르는 따뜻한 지역에 살라는 의사들의 권유로 1907년, 부인, 세 아이들과 함께 칸쉬르메르로로 이사했다. 2층으로 올라가 제일 먼저 아틀리에를 둘러보니, 모든 것이 100년 전 그대로다. 그가 의지했던 나무 휠체어와 팔레트, 침대, 그리고 바로 이 자리에서 완성한 ‘화가와 그의 모델’까지. 아틀리에서 나오면 집안 곳곳에서 평범한 가장으로서 행복했던 르누아르를 만날 수 있다. 콧수염이 재미있는 모양으로 구부러질 정도로 활짝 웃는 르누아르를 흑백사진으로 마주할 수도 있고, 오귀스트 로댕, 앙리 마티스, 아메데오 모딜리아니 등의 친구들과 나눈 친필 편지들도 볼 수 있다. 어느새 나이를 잊은 화가의 즐거운 일상을 들여다보게 된다. 이제 돌아갈 시간이다. 넉넉한 올리브 나무 그늘 밑에 서로 베고 누운 연인들이, 또 홀로 늦은 점심을 음미하는 백발의 여인이 르누아르의 작품을 감상하는 고즈넉한 풍경 아무런 갈등도 없고 오롯이 감동만이 존재하는 시간의 틈새에서 현실로.
단순하고 명쾌하게 앙리 마티스, 시미에
루브르 박물관의 백미 ‘모나리자’를, 바티칸의 미켈란젤로의 ‘최후의 심판’을 직접보고도 깊은 울림이 없었다면, 꼭 비수기인 겨울에 다시 가보길 바란다. 크고 유명한 미술관이나 박물관일수록 명작의 수는 많을지 몰라도 깊이 감동하기 어려운 이유가 바로 고요함 속에 작품을 감상할 기회를 주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프로방스가 잠잠해지는 겨울이 적기다. 마티스를 만나기에는.
화창한 겨울, 마티스 박물관에 들어서면 대작들을 마주한 숨소리만이 울려 퍼진다. 완벽한 고요 속에 마티스와 독대하는 시간이다. 마음이 싸르르, 단순하고 명쾌하게 색을 펼쳐보이는 ‘꽃과 과일’ 앞에 마련된 소파에 앉아 찬찬히 그리고 충분히 바라보고 일어나도 그 강렬함이 잔상으로 남아 오랫동안 가슴이 뛴다. 1039년, 일흔의 마티스는 아내 아멜라와 헤어지고, 1941년 십이지장암 수술까지 받고 급격히 건강이 악화하여 심장병과 천식까지 도졌다.
그러나 오히려 색종이로 형태를 만들어 붙이는 새로운 기법으로 창작 활동을 계속했다. 특히 그 시기에 가위와 색종이만으로 천재성을 드러낸 작품들이 많아 마티스를 마음껏 만끽할 수 있다. 드디어 “푸른색의 미를 이보다 더는 잘 살릴 수 없다.”라고 극찬받는 색종이 작품 ‘푸른 누드’ 앞에 선다. 조금씩 다른 자세를 취하는 이 ‘푸른 누드’시리즈는 현재 세계 각지에 뿔뿔이 흩어져, 시리즈를 모두 감상하려면 지구를 한 바퀴 돌아야 할 지경. 수없이 그리고 지우기를 반복한 목탄 스케치 자국을 통해 단순함을 이뤄내기 위한 여든네 살 거장의 고뇌를 느낄 수 있다.
마티스는 “색은 단순할수록 내면의 감정에 더 강렬하게 작용한다.”라고 했다. 가끔 위대한 예술작품 앞에서 ‘저 정도는 나로 그리겠다.’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막상 무엇인가를 표현하려고 하면 아는 척도 하고 싶고, 화려하게 꾸미고도 싶고, 뭔가 특별하게 보이고도 싶은 욕심이 있다. 결국, 본질은 사라지고 거추장스럽고 요란한 결과물을 마주하게 된다. 그래서 고심한 흔적이 역력한 마티스의 단순함은 깊은 감동을 준다. (미술 + 디자인-)
한가로이 고요한 겨울, 열린 창으로 니스의 파란 실루엣이 펼쳐진 마티스 박물관, 색종이 뒤에 거침없이 가위질을 하는 마티스의 숨소리가 들려온다.
시대를 앞서간 시인 장 콕토, 망통
시인, 극작가, 연출가, 화가, 삽화가, 포스터 디자이너, 스테인드글라스 디자이너, 융단 제조자, 재즈 뮤지션, 도예가, 소설가, 문학비평가, 배우, 벽화 미술가……. 처녀 시집 ‘알라딘과 램프’로 스무 살에 데뷔한 장 콕토의 이름 앞에는 무수히 많은 수식어가 붙는다. 20세기의 레오나르도 다빈치라 불리는 당대 최고의 지성인임을 의미하는 아카데미 프랑세즈의 회원, 칸 국제 영화제 명예회장으로 황금종려상을 디자인한 장본인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는 늘 자신을 시인이라 말하며 자신의 작품을 분류할 때는 소설은 소설시, 평론은 평론시라고 뒤에 시 자를 붙였다. 넘치는 재능으로 예술의 테두리를 넘나들며 방대한 작업을 했던 그였기에 ‘겉만 번지르르한 사기꾼이자 코미디언’이라는 혹평이 늘 뒤따랐고, 특히 동성애자인 그를 곱지 않을 시선으로 조롱하는 사람이 많았다. 콕토는 아편에 중독된다. 콕토는 화이트 옐로우 핑크 골드가 서로 꼬인 반지를 디자인해 카르티에에게 만들어 달라고 의뢰하여 그것이 바로 트리니티 반지다. 우정 충성 사랑의 상징으로 현재도 카르티에의 아이템으로 사랑받고 있다.
파리 근교의 부유한 가정에서 자란 콕토는 겨울마다 따뜻한 지중해로 내려와 지내곤 했다. 사진 속 콕토는 늘 고급 정장을 차려입은 말쑥한 지성인의 모습이다. 그러나 그는 신비의 세계를 갈망하는 순수한 예술가였다. 밤에 꿈을 꾸는 것으로 모자라 매일 오후, 옷을 차려입은 채 잠을 자기도 했고, 설탕이 꿈을 가져다준다고 믿었기에 매일 몇 봉지씩 설탕을 먹기도 했다.
예술가들의 아틀리에들은 대부분 고즈넉한 외각의 주택가에 있기 때문에 대중교통을 이용하기가 만만치 않아 렌터카로. 3박 4일 일정이면 프로방스에 대표 아틀리에를 모두 둘러볼 수 있다. 숙소는 도심에 가까우면서도 무료 주차가 되는 곳으로 선택해야 경제적이다.
아를은 걷기 좋은 도시로, 안내센터에서 ‘반고흐 워킹투어 지도’를 사면 혼자서도 고흐의 발자취를 따라 모든 곳을 방문할 수 있어 저렴하고 알차다. 론 강의 젖은 놀과 소용돌이치는 별들을 놓치지 않으려면 하룻밤 묵어가는 것도 좋다.
145톤의 레몬에 포위되다. 망통 레몬축제
프랑스에서는 특히 프로방스에서는 큰 빌딩을 보기 어렵다. 이곳 사람들 대부분이 지은 지 100년이 넘는 건물 안에서 생활한다. 사람들의 옷차림만 바뀌었을 뿐, 도심은 100년 전과 크게 다르지 않다. 프랑스 3대 축제 중 하나 망통 레몬축제.
프랑스에서 제일 적응하기 어려웠던 것이 에어컨이 별로 없다. 대낮에 땡볕에 세워뒀던 차를 타야 하는 날엔 유황불 체험이 따로 없다.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다. 햇볕이 닿은 모든 것은 바스락해진다. 그러나 나무 그늘 같은 곳에서 직사광선만 피하면 그 건조함 때문에 매우 상쾌하며 신선한 기분까지도 느낄 수 있다. 대부분의 집이나 건물 들은 대리석 바닥으로 지어져, 건물 안에만 들어가면 시원하다. 테라스의 크기가 집과 같은 곳도, 심지어 테라스의 크기가 집보다 더 큰 곳도 있는데, 이는 프로방스에서만 볼 수 있는 풍경이 아닐까 싶다. 프로방스에서 좋은 집이란 테라스가 넓고 큰 창이 많아 통풍이 시원하게 잘 되는 곳이다. 누가 덥다고 하면 딱 한마디 한다. “벗어!”
아비뇽, 한겨울의 마르셰 드 노엘
프로방스에서 무덥기로 둘째가라면 서러운 아비뇽. 향기인지 악취인지 모를 송로버섯 특유의 향이 코를 찌른다. 송로버섯 슬라이스를 안심스테이크 위에 얹어 무거운 레드와인을 곁들이면 최고로 화려한 겨울의 맛을 느낄 수 있다.
페트라르카 사랑의 독백, 아비뇽 연극제
7월의 아비뇽은 ‘이래도 안 쳐다볼래?’라고 말하는 듯 화려한 색감과 기발한 디자인으로 무장한 포스터들이 아비뇽 전체를 도배하여 사람의 혼을 쏙 빼놓는다. 전통에 따라 개막작은 교황청 광장에서 펼쳐져 그 아름다움과 특별함을 더한다. 아비뇽에서 길게 줄을 서 있는 사람들을 따라가면 십중팔구 티켓을 파는 곳이거나 아이스크림 가게 앞에 도착하게 된다. 자신의 연극을 홍보하기 위해 스포일러에 가깝게 줄거리를 말해주기도 하고, 연극의 한 장면을 길거리에서 시연하기도 하며, 티켓을 싸게 사는 쿠폰을 주기도, 아예 티켓을 주기도 한다. 더운 날씨 탓인지 아비뇽 연극제 기간에 밤에 볼 수 있는 연극들도 꽤 많다. 별이 쏟아지는 야회무대에서 오늘도 수많은 페트라프카가 사람의 독백을 읊조린다.
궁전보다 화려한 교황청, 아비뇽
론 강에 걸쳐진 아비뇽 다리를 지나 성곽 안으로 들어오면, 시청과 오페라 극장을 중심으로 끝없이 이어지는 노천카페와 레스토랑에서 아비뇽 사람들의 세속적인 삶을 구경하게 된다.
스크린 속에 사는 사람들, 칸 국제 영화제
칸 국제영화제는 영화 팬을 위한 영화제라기보다 영화인을 위한 영화제다. 보통 사람들은 영화제 기간에 칸을 찾아도 딱히 할 일이 없다. 모든 영화티켓은 초대권으로 배부되며 영화관계자와 각국의 언론사, 공식기자들, 영화평론가들에게 보내지고, 일부는 칸 시민에게 보내지기에 일반 영화팬은 초대권 구경하기조차 어렵다.
노란 꽃송이에 묻히다, 만델리외라나폴 미모사 축제
시들어 떨어지기 직전, 꽃은 발악하듯 향을 뿜는다. 바야흐로 꽃에 취해 환각상태에 빠진 사람들이 꽃에 열광하는 미모사 축제다. 미모사는 노란 꽃송이와 진한 향기로 유명한 프로방스의 대표적인 겨울나무다. 페스티벌에서 나눠주었던 미모사 꽃가지를 굳이 집에 들고 오지 않더라도, 그 잔향이 온몸에 배여 있어 코끝에서 며칠이나 지속한다.
보랏빛 향기를 따라서, 니뉴레뱅 라벤더 축제
프로방스 여행은 여유로워야 제대로 보인다. 눈도장을 찍느라 끝없이 걸어야 하는 발과 몸보다 큰 배낭을 짊어져 생고생인 어깨, 7개국 10일 정복 같은 무식한 여행, 소화해야 할 유명 관광지, 박물관 등 빡빡한 스케줄로 여행인지 극기훈련인지 헷갈리는 강행군은 이곳엔 없다. 한해 농사인 라벤더가 성공적으로 수확되었음을 주민들이 자축하는 정겨운 마을 축제다. 그래서 느긋하게 아침을 먹고 슬슬 마을을 한 바퀴 돌아보며 라벤더를 구경하고, 그러다가 늦은 오후에 퍼레이드가 시작되면 마을 아무 데나 멈춰 서서 구경하면 되는 속썩이지 않는 착한 축제다.
축제가 8월의 첫 번째 주말을 중심으로 5일 밤낮으로 계속되는데 축제의 하이라이트는 3,40여 개의 팀이 참가하는 거리행진이다. 8월 첫째 주 일요일에 선보이는 거리 행진은 미스 라벤더의 행진을 시작으로 매년 다양한 주제로 진행되며, 프랑스의 다른 도시에서도 참가하여 음악과 춤으로 퍼포먼스를 펼친다.
디뉴에서 라벤더 축제를 즐기는 것만큼이나 즐거운 것 중 하나는, 니스- 디뉴 구간을 운행하는 기차를 타고 여정을 즐기는 것이다. 디뉴에 가까워져 오면 지천으로 진보랏빛의 라벤더 밭과 진노랑의 해바라기 밭이 강렬한 색채의 대비를 이루는 장관이 펼쳐진다. 3시간 동안 16개의 육교, 15개의 다리, 25개의 터널을 정겨운 덜컹거림과 함께 지나면서 프로방스에서 가장 아름다운 알프스를 구경할 수 있다.
낭만 산책, 에스트렐
심호흡을 한 번 크게 하고 정오의 태양을 바라본다. 눈물이 고여 올 때쯤 눈을 감으면 온통 까만 세상에 어여쁜 색색깔 동그라미들이 정신없이 춤을 춘다. 눈을 떠도 눈을 감아도 프리즘을 통과한 화려함이 펼쳐지는 이곳은 칸에서 서쪽 해안 절벽도로로 30분을 달리면 도착하는 곳, 에스트렐이다. 느리게 걷기야말로 이곳의 매력이다. “배가 목적지를 향해서 가는 건 항해지만, 목적지 없이 가는 건 표류다.” 바쁜 현대인들에겐 항해보단 표류가 더 절실한 것 같다. 정복해야 할 산봉우리나 올라서야 할 목적지 없이 기분 내키는 대로, 발길 닿는 대로 걸으면 대자연이 온전히 내 품에 들어와 폭 안긴다. 절벽임을 실감케 하는 것은 바람이다. 심할 땐 허허벌판에서 따귀를 맞는 것 같은 기분마저 든다. 그러나 새하얀 파도가 수평선부터 꾸역꾸역 밀려와 돌산에 장렬히 부딪히며 은색 포말을 일으키는 장관을 볼 수 있기에 그리 나쁘지만은 않다.
가본 적 없어도 왠지 모르게 익숙하고 편안하며 아련한 풍경을 떠올릴 수 있는 그런 곳이 있다. 프로방스가 그렇다.
아우구스투스의 제국, 오랑주
여행이 눈을 넓혀준다고들 한다. 내가 방문했던 나라가 뉴스에 나오면, 관심 밖의 정치나 스포츠 얘기라 할지라도 귀 기우려 듣게 된다. 또 학구적 다큐멘터리도 이미 가본 유적지가 나오면 집중하게 되고 이해하려 노력하게 된다. 여행 책을 봐도, ‘앞으로 가보고 싶은 곳’보다 ‘이미 다녀온 곳’ 에 관한 내용을 더 유심히 읽으며 그래서 어떤 나라나 지방을 여행하고 나면 여행했던 당시보다 다녀오고 더 다양한 지식을 쌓게 된다. 생소한 문화와 낯선 사람들을 점차 이해하게 되고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 그것이 여행의 힘이다. 너무 얕은 사전지식을 가지고 여행을 다녀와서 정작 중요한 포인트를 놓쳤다는 생각에 가슴을 친다.
국가에서 관장하는 ‘무료 문화생활’ 극장에서의 오락은 종일 지속하였다. 또한, 집권층은 그리스의 비극만을 고집하지 않았고, 평민들이 선호하는 가벼운 마임과 팬터마임, 연극, 시, 독서 낭독 등 다양한 공연과 오락거리를 제공했다. 특히 희극은 익살스런 대사와 몸짓으로 대중을 사로잡았다.
진한 커피 향의 시작, 마르세유
프랑스에서 처음으로 커피를 수입해 마시기 시작한 곳, 커피는 한동안 약재로 약국에서만 팔았다. 이런 커피의 대중화가 못마땅한 이들이 있었으니 바로 포도주 양조업자들이었다.
유럽의 캠핑카족은 대부분 은퇴자다. “잘사는 것은 오래 사는 게 아니라 잘 늙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은퇴자들도 남들의 시선이나 자식들 눈치, 체면치레를 떠나 이런 삶을 즐기면 얼마나 좋을까. 어쩌면 ‘노인’이라는 말이 사람을 더 무기력하게 만드는 게 아닌가 싶다. 이곳에서도 예순 살은 그냥 캠핑카 여행을 즐기는 아줌마 아저씨일 뿐이다. “나잇값을 못한다.” 할머니는 미니스커트 화려한 매니큐어로 꾸미면 안 되나.
신의 선물 같은 마을, 라마튀엘
휴식이 가장 필요한 사람은 ‘여행에서 방금 돌아온 사람’ 그만큼 여행의 설렘은 때론 낯선 곳의 긴장과 부담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중세를 산책하는 쉼표 같은 여행이다. 피로는 없다. 오래가는 여운으로 고생할 뿐. 라마튀엘로 가는 길. 수확 철의 포도밭 사이로 좁게 난 국도를 슬렁슬렁 운전하면, 알알이 여물은 보랏빛의 포도 송이들이 달리는 자동차 안에 서도 보인다. 창문을 열자마자 온몸을 휘감아 도는 싱싱한 공기의 무게에 머리는 헝클어지고. 선물 포장지를 벗기듯 하나씩 나타나는 놀라운 풍경. 관광객이 최고조에 달하는 8월에도 이 앙증맞은 마을은 적당히 활기를 띨 뿐, 부대끼거나 북적거리지 않는다. 마을을 한 바퀴 천천히 들러보아도 30분이 채 안 될 정도로 작아, 망설임 없이 좁다란 골목들을 기웃거리며 맘껏 길을 잃어도 좋다.
풍경의 퍼즐을 맞추면, 방돌
프로방스 건축물의 특징인 나무 덧문은 유리 창문 바깥으로 덧댄 나무 창문인데, 겨울에는 매섭게 부는 바람인 미스트랄로부터 유리를 보호하고 여름에는 뜨거운 태양을 조절하는 목적으로 쓰인다. 프로방스 사람들은 덧문의 색깔을 바꾸는 것만으로 새로운 분위기를 낸다. 여러 가지 파스텔톤의 나무 덧문들을 구경하며 주택가를 벗어나면, 나무를 깔아 길을 낸 해변 산책로를 만난다. 해변을 향해 맨발로 질주하는 소년들, 강아지를 데리고 산책하는 아가씨. 긴 파라솔과 편안한 접이 의자. 젊은 연인. 호수같이 잔잔하기만 한 바다 표면에 미동 없이 떠 있는 요트들. 화려한 파라솔 밑으로 낯 뜨거운 표지의 연애소설에 푹 빠져 있는 반라의 여인들, 곱고 흰 모래를 얇게 나눠 덮고 단잠을 청하는 노부부, 앙증맞은 핑크색 모종삽으로 모래성을 만드는 아이들. 바다가 이 퍼줄 조각들을 하나하나 끌어안으며, 비로소 완벽한 하나의 풍경이 완성된다. 그 안에 느린 바람도 한 점. 잔잔한 파도소리도 몇 번 들어 있다. 따가운 햇볕에 몸을 맡기고 그 아름다운 풍경 속에 나도 오롯이 머물러본다.
프로방스의 로제와인, 이상기후가 적어 빈티지가 많이 중요하지 않고 숙성 기간이 길지 않아 사자마자 코르크 마개를 열어 다 마셔버려도 상관없다. 물론, 그만큼 가격 부담도 없다. 방돌의 로제와인은 그 색깔과 맛과 향이 바로 사랑스러운 맛이다.
넘쳐나는 따뜻한 태양과 살랑거리는 지중해 바람의 사랑을 듬뿍 받은, 구김살 없이 그저 해맑게 자란 포도의 맛이 느껴진다. 방돌 로제와인을 한입 머금으면 입안 가득 프로방스의 사랑스런 맛이 배어난다.
미식가의 마을, 미쟁
맛있는 향기로 가득한 자그마한 마을, 해발고도 260미터의 언덕 위. 중세 성벽 안 구시가에는 장 콕토, 이브 클랭, 세자르발다치니, 이부생로랑, 크리스찬디올, 윈스턴처칠, 카트린 드뇌브 그리고 에디트 피아프까지 다 열거하기도 벅찬 예술가들의 흔적이 남아 있다. 파블로 피카소는 이곳에서 생애의 마지막 12년을 보냈으며 이곳에서 죽었다. 360도 파노라마로 즐길 수 있는 무쟁의 풍경을 보면, 왜 수많은 예술가가 이곳을 사랑했는지 알 수 있는데,
칸이나 앙티브 니스 등 프로방스를 대표하는 휴양도시엔 호객행위나 바가지요금이 없다. 물론 호텔은 성수기 요금과 비수기 요금의 차이는 있지만, 음식 가격이나 상품 가격은 1년 내내 같다. 단순히 물가가 비싼 것일 뿐, 바가지를 쓴 게 아닐까. 동양인이라고 가격을 비싸게 부르지 않았을까 하는 의심은 버려도 좋다.
프로방스는 홀로 여행하기에 적합한 곳이다. 프로방스는 겨울에도 해안 지방은 따뜻하고 밤이면 크리스마스 장식이 어디나 화려하게 빛나기 때문에 혼자서도 운치 있는 여행을 할 수 있다. 누가 말을 걸어오는 것이 부담스럽고 불안하다면 먼저 다가가 말을 걸어보는 건 어떨까?
구르동 전망대 바로 앞에는 이 마을에서 가장 멋진 풍경을 마주한 우체국이 있다. 여분의 우표가 남았다면, 이곳의 태양을 엽서 가득 담아 자신에게 보내는 것도 좋겠다. 프로방스에서 돌아와 여행의 긴 여운으로 나에게 큰 위안이 될 테니까.
샤갈의 짝사랑, 생폴 드 방스
호리호리한 진초록의 삼나무들을 따라 자그마한 공동묘지에 들어서면, 세상에 모든 색깔을 하나씩 모아놓은 듯 아리따운 부케들이 여기저기 놓여 있다. ‘지하에 잠들어 있는 음침한 유령’ 따윈 생각할 수도 없다. 그 ‘딱 하나?’의 유혹이 내내 옷자락을 잡아끈다. 사지 않고는 평생 후회할 것만 같은 예술품들이 나를 유혹하지만, 작은 손지갑 하나도, 디자이너의 한정 팔이라 제발 누가 나에게 돈이 열리는 나무를 다오!
요트도 쉬어가는 곳, 빌프랑슈쉬르메르
지도를 손에 들고도 잘 찾을 수 없는 곳이 있다. 도시라기보단 마을이란 단어가 어울린다. 셔터를 누르면 엽서가 되고, 펜을 들면 그림이 되는 자그마한 마을, 이 마을은 지중해에서 가장 깊고 푸른 만을 가지고 있어 요트를 즐기는 사람들에겐 유명한 정박 포인트다. 스타카토 걸음으로 구시가에 들어서니 골목 초입에 싱싱하게 널린 빨래가 바닷바람에 나풀거리며 나를 맞이한다. 이렇게 친근한 일상의 풍경 때문인지 끝없이 구부러지는 낯선 길도 속수무책으로 끌려들어 가게 된다. 사진기를 꺼내어 마음이 가는 대로 셔터를 눌러보지만, 이 감동을 다 담기엔 역부족이다. 가방을 뒤적여 연필과 작은 수첩을 꺼낸다. 곳곳에 널려 있는 아름다운 단어들을 주워담는 것만으로도,
프로방스에서는 어디에 머무르면 좋을까? 샹브르 도트라고 불리는 프로방스의 숙소에서 머물러보길 권한다. 이곳은 호텔이 아닌 일반 집, 우리나라로 치면 민박 같은 곳이다. 대부분 3층짜리 집을 자기고 있는 사람들이 방 5개 정도를 호텔처럼 꾸며 여행객들에게 빌려주는 형식인데, 보통 작은 정원이 딸려 있으며 아침식사가 포함되어 있다.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 로그
고요와 적막만이 흐르는 풍경 사이로 더운 바람만 게으르게 지나간다. 안 그래도 와인 때문에 이미 세상은 빙빙 돌고 있다. 그런데 파트너를 부둥켜안고 빙글빙글 돌아가는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점점 발라드 음악에 맞춰 더 빨리빨리. 그 정신없는 사이사이 파트너까지 바꿔가며 돌아간다. 이렇게 놀았으니 죽어도 여한이 없다고 할 정도로, 오늘이 세상의 마지막 날인 듯이 기를 쓰며 논다. 프로방스의 햄과 치즈를 묶은 세트 메뉴와 간단한 스낵과 커피를 판다. 준비 없이 온 손님이라도. 뜻밖에 많은 사람이 정말 노는 법을 몰랐다느니, 재미없게만 살았다느니, 젊었을 땐 정말 일밖에 몰랐다느니, 그런 푸념을 자주 한다. 놀 줄 몰라서 고민하는 사람들, 못 놀아서 후회하는 사람들, 모두 이곳으로 오라!
사람의 몸은 그 시간을 고스란히 기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