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방스여정에서 집으로, 비행기 안
독일 프랑크 푸르트 공항에
도착하기는 했는데
대기표가 한장 밖에 없다
차라리 두장 다 없으면
마음이 편할 걸
나혼자 텐트와 야영도구가 가득한
짐 두개 50키로를 들고
인천행을 택했다
다시는 못 볼 것처럼
카메라를 들이대
V자 그으며 웃기는 웃어도
제정신이 아니다
나혼자
바이 바이~~~~
자꾸 채워주는 와인만 마셨다
2013년 8월 15일
공항에서 항공권을 받으러 갔는데 비상상황이 벌어졌다.
성수기 막바지라 비행기 티켓이 없다.
차라리 두 장 다 없으면 그 자리에서 포기하고 돌아 나올 텐데….
차도 반납하고 짐도 수하물 처리를 다 했다.
혹시라도 일말의 희망은 있다.
누군가 비행기가 이륙하려는 순간,
취소를 한다든가, 시간안에 탑승구에 도착을 못하는 불상사가 생기면
우리 부부는 그 비행기를 탈 수가 있는 우리는 '대기손님'이다.
또 여의치않아 하루 이틀 지연된다 하더라도
아직 방학기간인데다 돈도 카드도 있으니, 간을 툭 떨어뜨려도 좋으련만,
시동생 생일에 초대한다는 문자 메시지가 날아온다.
더구나 다음 날은 매주 아버님과 식사하는 요일이다.
이럴 때, 누구군가가 '괜찮아, 다 용서해줄께'라며
한 마디 해 주었으면,
아니 간이 조금 크거나 넉살이 좋았다면
형님께 혹은 동서에게 긴급 전화로 양해를 구했을 것이다
출발하기 5분 전, 드디어 탑승을 결정하는 순간이 왔다.
“네가 먼저 갈래?”
“내가 먼저 갈까
“둘 다 갈래?”
“둘 다 안 갈래?” 에 따라
두 사람의 수하물 50킬로가 내려지느냐 그대로 가지느냐 갈림길에 서 있다.
직원은 짐이 무거워도 여자가 먼저 한국으로 돌아가는 것이…
좋다는 귀띔을 해준다.
순간, 우리 부부는 꼭 영원히 헤어질 것처럼 격하게 껴안고,
마지막 모습일 것처럼 탑승구를 빠져나가는 나의 뒷모습을 남편이 바쁘게 카메라에 담는다.
뚱뚱한 독일 직원 남자가
“마담, 그쪽은 일반석입니다. 이쪽으로~”
한국직원이 비행기에 탑승자 명단을 들고 뛰어가 “화이날” 하는 순간,
“OK!”
얼떨결에 좌석배치를 받았다.
혼자 탔다.
잘못한 건 아닌지, 몇 날 며칠이 걸리더라도 함께 했어야했다.
그런데 그렇게 혼자 있어보는 것도 남자에게 색다른 경험인듯싶기도 했다.
떠나는 내가 오히려 불안하고, 남겨준 남편이 자유를 찾은 듯도 했다.
식사가 나오는 순간,
이 정갈함을 혼자만 누려 남편에게 미안하다.
혼자 남은 남편이 오늘 저녁 호텔에서 자야 할 텐데….
남편은 분명히 공항 빈 벤치에서 잘 것이다.
여보! 아이들 20~25세 젊은 여학생들이 옆에 한 명 저 건너편 두 명이 있네.
앞과 뒤는 멀기도 하고 잘 보이지 않게 배치되어 잘 볼 수가 없고.
근데,
아무래도 삼성 딸들인가 봐.
어찌 아느냐고? 모두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며 키득대고 있네.
참~ 그 아이들 눈치를 보며 따라 하니, 자존심 어디다 팔아먹었는지.
비행기 안에서 아침을 맞았다.
어제저녁에는 사기그릇에 일일이 뚜껑까지 세팅된 비빔밥 밥을 먹었는데,
오늘 아침에는 죽 한 그릇을 주문했는데
빳빳한 테이블보에 빳빳한 손수건에 쌓인 수저 세트를 받고
죽전 요리와 죽 후 요리, 황후의 밥상을 받았다.
남편은 어제저녁 어디서 잤을까?
이비스 호텔이라면 속이 편하겠다.
식사는 햄버거나 소시지 힌 줄로 때우지나 않았는지.
어린아이 떼어놓고 온 것처럼 주책도 바가지로 걱정하고 있다.
이참에 잘 되었다 싶게 개학하기전까지 이곳저곳 여행이나 다니다 오면 더 좋겠다.
6X4=24 24명을 위해 4~6명 정도의 승무원이 움직인다. 코로와상 죽...
모두 따끈따끈하다.
궁금한 건 못 참아 질문?
여행객이 먹던 단체 도시락 같은 음식이 아니라 요리가 나오는데,
그것도 주문받자마자. 요리사가 따로 탔을까.
테이블 세팅이 정갈하다. 여러 가지 경험한다.
여태까지 이런 세상이 있는 줄 몰랐다.
한층 올라온 비즈니스 클래스라고 하는데 퍼스트 클래스는 과연 어떨까?
내가 무얼 알겠는가?
내가 아는 것은 빙산의 일각이다.
한 비행기를 탔으면서도 몇 계단 올라오니 이런 차이가 있다.
경제에 따라 다르다.
그런 시각으로 보니 약간 기가 죽는다.
사람들마저 어깨에 힘이 들어간 듯 고개는 조금 바투 든것 같다.
쫙 펴진 당당한 돈은 여러 가지를 지배한다.
나, 혼자만 보고 누리는 것이 아쉽다.
우리가 언제 제 돈내고 이런 비행기 타볼까.
나의 경험은 좋지만, 남편은 수염 깎고 말끔하게 호텔에서 아침식사를 했으면 좋겠다.
만약에 내가 혼자 외국에 떨어지는 경우가 생기면, 나는 반드시 우아하게 누릴 것이다.
우리 그렬려고 돈 모으는 것이 아닌가.
별별 유럽사람들.
영혼이 가난하여 주여진 환경에 제멋대로 적응하는 인도인을 보았다면,
조상 잘 만나 문화 경제적으로 우수한 혜택을 누리는 유럽인들은 타다가 죽어도 좋을 만큼
질주하는 오토바이 형형색색의 오픈카 서서 공중에 떠서 매달려서 앉아서 누워서 나는 기구들.
경비행기 패러글라이딩, 요트, 자전거, 바퀴 달린 날개달린 모든 것.
꼭 죽기 전에 꼭 해봐야 할 것들을 실천하는 마지막 코스처럼 치열하다.
환한 얼굴, 깍듯한 매너로 사람들을 대한다. 물론 우리가 다녔던 곳은 휴양지다.
휴양지 중에서도 유럽에서도 최고라는 남프랑스 프로방스 지역이었다.
은발의 여행객들. 그동안 살아온 모습이 보인다.
목발의 부부도 휠체어의 노부부도 타이타닉만 한 크루즈에서 내리는 부부도
흰 바지와 모자 하나로 잘 살아온 상징이 된다.
조금 기력이 있는 사람은 개가 충직하게 같이 여행을 한다.
아들 손자 며느리는 거의 없고 부부가 나란히다.
어디를 봐도 자식에게 얹혀살며,
눈치 보며,
돈 타 쓰는 눈치는 그들 유럽노인들에서는 보이지 않는다.
나란히 천천히 같은 보폭으로 로렐라이를 아비뇽을 소오마을을 걷는 것이 보기 좋았다.
“그럼, 뭐 하노!” 노세 노세 젊어서 노세이다.
슬로우 비디오의 그림처럼 아무래도 구부정하고
아무래도 쭈글쭈글하고 40페센트 부럽다가 60퍼센느가 서글프다.
여유는 있되 박동감 긴장감은 부족하다.
‘석양이 아름답다.’라는 말은 남은 햇살의 여유가 아니라
얼마 남지않은 절박한 시간이다.
조지장사(鳥之將死)다.
새는 죽으려고 할 때 울음소리가 가장 아름답다는 말이다.
나는 결코 석양에 바쁘고 싶지 않다.
그나저나 내 신랑, 어디서 잤을까?
알프스 계곡을 질주하던 오토바이 족들,
헬멧 벗으니 10~20대 폭주족이 아닌 초로의 장년이듯이
개선장군의 모습으로 돌아왔으면 좋겠다.
혼자 자유 누려보고, 혼자 가장 험준한 산맥을 넘으며 즐겼으면 좋겠다.
서른도 안 된 27세에 결혼하여 젊은 나이부터
자신이 번 돈 한 번 마음대로 써보지 못하고 가장 노릇 하느라고
그동안 애썼다.
25일 간의 프로방스 여정
프랑크푸르트 - 하이델베르그 - 스트라스부르 -콜마르 -바젤-루체른 - 베른- 레만호수 - 앙시 - 샤모니 마조레호수 - 제네바 - 망통 - 에즈- 니스 - 모나코공화국 - 칸 - 앙티브 - 생폴 - 무쟁 - 무스티에 -그라스 - 액상프로방스 - 아를 - 퐁비에뉴 - 고르도 - 아비뇽 - 생폴 드방스 - 소우 - 베르동협곡 - 노라노 - 밀라노 - 꼬모호수 - 토리노 - 보르미오 - 스텔비오 패스 - 프리엘라패스 - 슈방가우 - 뮌헨 - 로렐라이- 프랑크푸르트
막연하게 꿈꾸던 이름조차 생소하던 프로방스,
프로방스라는 이름은 기원전 2세기 경
이 지역을 점령한 로마인들이 프로빈키아 로마나, 즉 로마의 지방이라고 부른 데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현재 행정구역상으로 프로방스, 알프스, 코트다쥐르 등 세 지역을 통틀어 프로방스 지방이라 한다.
프로방스는 유럽 사람들에게 낙원의 이미지로 떠오른다.
5월에서 9월까지 나날이 푸른빛이다.
여름의 강렬한 빛과 뜨거운 열기는 농가의 겉창을 닫게 하지만, 무더위로 사람을 괴롭히는 일은 없다.
양지와 그늘의 체감온도는 한여름과 늦가을이다.
라벤더 백리향 같은 허브는 신산한 바람에 프로방스 스타일
꽃순이 원피스 자락으로 진한 향기가 나폴거린다.
얼마간 프르방스를 회상하며
나폴나폴 충전하며 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