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방스, 칸으로 가는 길
칸으로 넘어가는 길
풍경이 되던 날
70대 80대가 되면
나도 저렇게 여행해야지
모자쓰고 백바지 입고
작은 동네에 스며들어
앞의 개선문 같은 것을 바라보며
햇볕이 잘 스며든 벤치에 앉아 점심 식사를 하는데
사방을 둘러봐도 겁난다
여행객 한 사람도 없고
적선하는 사람만 왔다갔다 한다
이런 동네 주차장 어디쯤에다 차를 세우고
석양에 자체 빛깔고운 동네로 들어섰다
프랑스의 특징은
아니 프로방스의 특징은
건물마다 동네바다 제멋대로 빛깔이 상징이다
우린 지금 칸을 향해 걷고 있다
그런데 이상한 일
어찌 그리 유명한 영화제가 열리는
칸느에 이렇게 시시하게
나이 든 그윽한 노 부부만이 걸을까
내가 앞서거니 걸으니 남편도 쎄가 빠지게 쫓아온다
그랬다, 그곳은 칸느하고는 아무 상관도 없는 거리였다
TV에서 찍은 사진이다
이런 건물을 몇 불록이나 지나니
칸느가 나타나긴 했는데
당최 차에서 내릴 수가 없다
이미 땅거미 내려앉은 밤인데다
대여섯 바퀴를 돌아도
주차장은 한 자리도 없다
프로방스에서 가장 전망좋은 건축과 아팥트라고 소개를 한다
이 짓은
내가 어디가서나 하는 짓이다
누가 오디 말디
배가 고프지 말디
틈과 공간만 있으면
스쳐지가가는 생각을 '희미한 연필자국'을 남기는 순간이다
야영장 환경은 나중에 살펴보자
8월 3일 토요일
칸에서 니스까지의 해변도로는 아침 햇살을 느끼기에 더없이 좋은 드라이브코스다.
오토바이 청소차 아이들 고함. 아침에 일어나 일회용 인스턴트 육개장 끓여 소시지까지 썰어 넣으니 부대찌개 수준으로 밥 먹고 서둘러 짐을 쌌다.
태양은 가득히 앙티브 칸느 생폴 피카소미술관 무쟁 동화적인 마을로 향할 것이다. 아침부터 콧잔등에 땀방울이 송알송알. 더위가 장난이 아니다. 서양놈들도 온통 윗옷은 벗어 던지는 불볕이다. 나는 이런 때일수록 치렁치렁 긴 치마 입고 유도화 꽃그늘 아래에 앉아 여유를 부린다. 천경자 그림의 모델처럼 풍경이 된다. 그림 참조.
생폴, 멋쟁이 노숙녀들. 작은 혜화동 뒷골목 같은 분위기
앙티브 태양은 가득히. 클래식 오픈카 행렬 색깔별 모양별 예쁘다. 피카소미술관 경관 바다 요트 미술관 모양 동양사람 한 사람도 없다. 아니 못 만났다.
칸(밤거리)
아침이슬 영롱, 반짝반짝 순간에 사라질 영화(榮華)
저녁 이술 그윽, 촉촉하게 여유로 젖어들 행복
나는 지금 분명히 오후의 충분한 햇살을 만끽하고 있다. 칸인 줄 알고 해지기 전 달려 바닷가를 갔으나, 엇! 이거 뭐야. 썰렁~ 그곳에는 고즈녘 외에 별 볼거리가 없다. 근데 혼자 흡족하여 낭만에 젖는다.
내비아씨가 잘못 작동되었다. 아니, 단어를 잘못 입력했다. 부랴부랴 남편은 자동차를 가지러 먼 길 주차장으로 뒤돌아 가고, 나는 느긋하게 한산한 프로방스의 풍경 속에 자동차를 기다리며 서성거린다.
돌이켜보면 얼마만의 여유인가. 2~30분 정도의 느닷없는 여유. 내가 바라던 여행의 여유는 바로 이런 시간이다. 아~! 행복하여 죽는 줄 알았다. 나와 반대로 당황하며 뛰어가 또 쎄가 빠지게 남편이 달려와 거리에서 나를 차에 태워 달린다.
네온사인 로터리 빙빙 돌아 30분 만에 칸에 도착했으나, 거리 상점은 셔터를 내리고 시계는 9시를 넘었다. 좁은 골목 카페에는 흥청거리는 유럽 여행객들만 북적댄다. 이런 보도블록 위에 누가 보행신호를 지킬까. 이미 주차장은 만원이고 단 5분 정도의 정차라고 할까 싶어 몇 바퀴를 돌고 돌고 돌고 있다. 정말 머리마저 돌아버릴 것 같다. 어디서 튀어나올지 모르는 무질서한 여행객들, 유럽은 차 갖은 죄인이다. 노랑머리 하얀 머리 왜 이곳에는 흑인도 동양인도 보이지 않을까.
‘그 많던 싱어를 누가 다 먹었을까?’ 지난해 지지난해 파리에서 로마에서 피렌체에서 밀라노에서 베네치아에서 마주쳤던 한국사람들 그들은 다 어디로 간 것일까. 며칠 전 독일 하이델베르크에서 스쳐 지나가던 니홍고와 중꿔런들은 다 들 어디로 갔을까. 이곳 칸에는 한국의 전설처럼 ‘전도연’의 이름만 남았을까. ‘깐마늘 종지상’의 위력만 골목을 메우고 있다.
밤거리 코너 코너 도니 카지노 불빛 화려한 옆에 붉은 카펫이 설핏, 보인다. 아하! 붉은 카펫이 저거로구나! 감동할 몇 초의 찰나도 없이 바로 스쳐 빠져나가는 길목이다. 주차할 공간이 없다. 차라리 나는 우리 거실에 아파트 계단에 붉은 담요나 스카프를 깔겠다. 그런데 그 별것 아닌 것이 세계 사람들을 당기는 마력(魔力), 스타라는 것, 하늘의 샛별이라는 것이다. 샛별, 북극성을 내 마음속에 넣는 행위, 결국, 스타 히로인은 내 마음속의 상징이다. 내일 밝은 날 다시 오자. 흥청거리는 반짝거리는 아침이슬의 영롱함이야 사라지겠지만, 그곳에 분명히 누리는 영화(榮華)로움 뒤의 나른한 피로감이 주는 그윽한 여유가 있을진대.
프랑스 여자들의 보편적 트렌드를 거부하는 거 아이로니컬함에 매력이 있다. 화려함을 피하면서도 자신의 정체성을 확연히 드러내는 그들의 스타일이 프랑스패션 아이콘으로 성장시켰다. 올리브 나무와 매미가 수 놓인 앞치마 식탁보, 냅킨 등
일찍 장보고 스테이크 수육 상추 오이 쌈장 계란 과일 주스 와인 등등 가장 푸짐한 장을 봤다. 뭐처럼 피로도 풀 겸, 일찍 잠들려고 했으나 어제 그제 들리지 않던 소음 옆 텐트는 60평대 아파트에 짐을 옮겨 놓은 듯, 텐트 안팎으로 가득하다. 이사짐센터가 짐을 풀어놓은 것 같다. 밑에 집 아이들 텐트 안에서 장난치는 소리, 비트 음악의 이국적 정취, 낭만이 밀려오는 듯, 하늘에 별도 총총. 밤낮도 못 가리는 매미울음소리 스타카토 딱딱딱딱 끊어 우는소리 (한국 매미는 매앰~매앰~ 끊어질 듯 지루하게 이어진다.) 젊은 청년들 축구응원을 하나 게임을 하나 함성과 박수소리 요란하다. 8시 30분에 먹은 수면제 새벽 1시 30분이 지나도 말똥말똥하다.
또다시 한 토막의 수면제를 넘기고.
2013년 8월 3일 토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