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물고기
르 크레지오 장편소설/최수철 옮김
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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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닐곱 살 무렵 나(라훌라)는 유괴 당했다. 그때 일은 잘 기억나지 않는데, 너무 어렸던 데다가 그 후에 살아온 모든 나날이 그 기억을 지워버렸기 때문이다. 그 일은 차라리 꿈이랄까, 아득하면서도 끔찍한 악몽처럼 밤마다 되살아나고 때로는 낮에도 나를 괴롭힌다. 햇살에 눈이 부시고 먼지가 날리는 텅 빈 거리, 푸른 하늘, 고통스런 울음소리, 그때 갑자기 한 남자가 나를 잡아 커다란 자루 속에 던져 넣었다.
나는 내가 곧 죽으리라고 믿었다. 내게는 먹을 것이 없었다. 조라는 약간 누르스름한 흰색의 긴 털을 가진 시추 종의 작은 개를 기르고 있었는데, 나는 그 개를 위해 쌀을 끓여야 했다. 그녀는 그 쌀 위에 닭 국물을 끼얹었고, 그것이 그녀가 내게 주는 전부였다. 나는 그녀의 작은 개보다도 먹을 것이 없었다.
자밀라 아줌마로부터 로즈 부인과 조라에 이르기까지 모두들 하나같이 나를 가두고 문을 잠그려 한다는 게 나는 너무도 이상했다.
변호사나 의사 같은 뭔가 중요한 일을 하는 사람이 되어야지. 남편을 위해 부엌일이나 하는, 그저 하찮은 하녀와도 같은 존재가 아닌 다른 면을 보아준 사람은 그들이 처음이었다.
나는 어렸을 적부터 사람들이 끊임없이 나를 그물로 잡으려 했다고 생각했다. 그들은 나를 끈끈이에 들러붙게 했다. 그들은 그들 자신의 감상과 그들 자신의 약점으로 내게 덫을 놓았다.
파농이 부자들은 가난한 사람들의 살을 먹는다는 것 프랑스인들이 우리 마을에 왔을 때, 그자들은 젊은 남자들을 데려다 밭에서 일을 시켰고, 젊은 여자들은 식탁 시중을 들게 하거나 요리를 만들게 하거나, 아니면 자기들 여자는 프랑스에 두고 왔으니 그 대신 데리고 자곤 했지. 그리고 흑인 아이들에게 겁을 주기 위해 여차하면 자기들이 잡아먹을 거라고 떠벌이곤 했다.
겨울이 왔다. 프랑스의 겨울, 재빛 하늘, 4시에도 가로등이 밝혀진 거리, 눈, 빙판, 헐벗은 채 유령처럼 뒤틀려 있는 나무들 등등
내가 남쪽을 생각하며 태양이 있는 곳으로 돌아가고 싶어하기 시작한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하나의 영상이 눈앞에 떠올라 나를 침잠시킬 뿐이었다. 그것은 세네갈의 커다란 강과 팔레메의 하구, 황토 위로 난 제방, 엘 하즈의 나라였다. 시몬느의 음악이 나를 이끄는 곳이 바로 그곳이었다.
그를 쇠진시킨 것은 추위와 바람과 비, 잿빛 구름으로 덮인 하늘, 창백한 태양이었다.
아침마다 나는 남자애들과 구제소로 달려갔다. 이번에는 무엇을 찾게 될까 하는 기대감에 마음이 설레었다. 광주리들이 커다란 벌레처럼 언덕을 오르내렸다.
그들의 배설물 미세한 먼지가 되어 꽃가루처럼 날마다 그들 위로, 머리 위로, 손위로, 장미 화단위로 떨어지는 것이다.
이 세상에는 그 어디에도 평화로운 장소가 없었다. 한적한 곳이나 시야가 가려진 곳이나 동굴이나 사람들 발길이 뜸한 공원 같은 곳을 발견하면, 그곳에는 어김없이 외설적인 행동을 일삼는 자들, 한마디로 너절한 녀석들, 관음증 환자들이 나타나곤 했다.
그 일이 있고 나서 나는 표류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진정한 힐랄족, 초승달 부족의 여인이다.
검은 가죽 같은 얼굴로 나를 바라보고만 있다. 그러나 그녀의 두 눈은 빛나고 윤기가 흐르며 무척 젊다.
더 이상 멀리 갈 필요가 없다. 이제 나는 마침내 내 여행의 끝에 다다랐음을 안다. 어느 다른 곳이 아니라 바로 이곳이다. 말라붙은 소금처럼 새하얀 거리, 부동의 벽들, 까마귀 울음소리. 십 오년 전에, 영겁의 시간 전에, 물 때문에 생긴 분쟁, 우물을 놓고 벌인 싸움, 누군가가 나를 유괴해간 곳이 바로 이곳이다. 이곳에서 사막 먼지에 손을 올려놓으며, 나는 내가 태어난 땅을 만진다, 내 어머니의 손을 만진다.
떠나기 전에 나는 바닷 속의 돌처럼 매끄럽고 단단한 노파의 손을 만졌다. 단 한 번만, 살짝, 잊지 않기 위하여.
표류, 혹은 근원에로의 항해
조금이라도 틈만 보이면 자신에게 덫을 놓으려 드는 세상 앞에서 그녀는 아무런 대비책도 가지지 못한 채 숨고 달아나는 일을 거듭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듯 그녀는 탁류에 휘말린 한 마리의 연약한 물고기지만, 그러나 그녀는 태어날 때부터 황금빛을 지니고 있었던 물고기였다. 순진무구한 천진성과 더불어 강한 생명력을 타고난 그녀는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몸과 마음으로, 심지어는 스스로 자신의 삶을 방기하는 듯한 태도를 보이기도 하며 거친 세파를 헤쳐 나간다. 남들의 시선 밑으로 몸을 낮추어 수많은 올가미들 사이를 빠져나가 마침내 자신의 기억 밑바닥에 가라앉아 있는 출발의 장소로 돌아간다. 그 표류의 과정은 출발점 혹은 근원에로의 여행이다.
표류하는 다른 모든 이들을 향해 그어진 하나의 작은 성호.
새로운 출발을 위한 근원에로의 회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