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란
<<전북중앙신문>> 신춘문예2003년 수필부문 <나이테>로 당선
<<에세이문학>> 2001년 가을호 등단
<<한국여성문학상>> 1999년 동화부문 당선
<<행복이 가득한 집>> 리포터
<<전북중앙신분>>에 박영란 <북 카페> 집필



참 웃기네

uam1113@hanmail.net
우리 집 봄의 상징은 군자란이다. 꼭 이맘때면 약속을 잘 지키려는 군자답게 어김없이 꽃이 핀다. 그런데 쭉 뻗은 꽃대에 핀 꽃을 보고 있으면 어딘지 모르게 이름 값을 못하는 것 같다.
두툼하고 길쭉한 잎사귀만 있을 때는 꽃에 대해 별 생각이 없다가도 꽃망울이 뚝뚝 불거져 깔때기 같은 오종종한 꽃이 피어나면 군자란은 오히려 품위가 없어 보인다. 기왕이면 꽃송이가 화려하고 색도 주홍보다는 더 선명한 꽃이었으면 싶다. 원래 군자(君子)란 아름다움에 있어서 지나치지 않으려 함인지 그래도 난 군자란을 볼 때마다 이름과 실물이 뭔가 어울리지 않는 느낌을 갖고 있다.
어느 모임에서 '별칭 짓기'라는 것을 해 보았다. 자기 자신에게 붙이고 싶은 별명을 스스로 지어보는 것이었는데, 흔히 별명은 다른 사람의 특징이나 버릇을 딱 꼬집어 주는 그 재치에 재미가 있는 것이다. 그래서일까. 자신의 별명 짓기는 어색하고 좀 쑥스러운 일이었다. 나는 마치 번개같이 지나가는 생각이 있어 '우아미'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우아하고 아름답게 미소짓는 사람이라는 언젠가 지어본 3행시이었다. 사실 이것은 남편이 내게 바라는 희망사항이다. 은연중 그 의미가 그 자리에서 뛰어나올 줄은 나도 몰랐는데, 듣는 쪽에서는 내가 우아하고, 아름답고, 미소를 잘 짓는 사람이라고 자기 자랑하는 것처럼 들렸나보다. 나의 말을 듣고 웃는 그들의 모습이 '참 웃기네' 하는 반응이었다. 내가 군자란을 보고 그 모양에 무슨 군자꽃 하고 느끼는 그런 심사였던 것 같다. 별칭도 이름 못지 않게 제 구실을 하는데, 나는 새삼 별칭 값도 못하는 나의 주제를 떠올리며 쓸데없이 군자란에 시비를 걸고 있다.
이심전심이었을까? 창가에 앉아 군자란을 보고 있으니 꽃은 나를 외면하고 있다. 꽃의 방향은 일제히 창 밖의 세계, 해를 향하고 있다. 군자란은 새침하게 돌아앉은 여인의 뒷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래도 그렇지. 네가 해마다 꽃 피고 열매 맺고 이렇게 보아란듯이 자라는 게 누구 덕인데 싶었다. 물주고 영양제 주고 잎사귀 반질반질 닦아주는 나의 정성도 모르고 마음을 다른 곳에 두다니! 나는 괜히 심술이 발동하여 묵직한 군자란 화분을 홱 돌려 꽃대가 거실로 향하게 돌려놓았다. '무슨 날벼락!' 군자란은 놀란 듯 꽃송이 하나를 뚝 떨군다.
혼자서 저녁을 먹는 아들을 보고 있었다. 이것저것 맛있게 먹는 아들을 보고 있으면 그저 좋다. 자식 입에 밥 들어가는 것과 제 논에 물 들어가는 것을 보면 밥을 먹지 않아도 배가 부르다고 했던가. 아들은 잠시 그렇게 나의 먹이가 되어주는가 싶더니, 갑자기 '왜 보는데'하며 언짢은 듯 얼굴을 찡그린다. 엄마가 보는데 왜 보다니! 난 어이가 없었다. 하지만 그럴 때는 슬그머니 꼬리를 낮추며 독백을 할 수밖에. '참 웃기네'라고. 자식은 꽃이라고 했는데....아들도 이제는 엄마 품을 벗어나려고 고개를 외로 꼬고 자신의 세계로 나아가려는 몸짓을 하고 있다. 몸은 듬직하고 키는 장대같이 커버렸지만, 생각과 행동은 아직 나의 테두리에 있는 미완성이다. 그런 아들을 보고 있으니 내가 가꾼 또 하나의 군자란이 식탁에 앉아있다.
시선을 저 멀리 하고 봄을 본다. 꽃과 나무가 어우러진 풍경은 아련한 정물화 같다. 초록을 풀어 헤쳐놓은 엽록소의 신비, 그것이 바로 봄의 화신이지 싶다. 엽록소는 봄의 정기, 나무의 정기, 꽃의 정기를 뿜어내는 신성한 생명이다. 자연이 아름다운 제 모습을 잃지 않고 해마다 새롭게 태어나는 것도 바로 그 색소 때문인지 모른다. 비록 내가 심드렁하게 보고 있지만, 군자란도 잎사귀와 꽃을 피우기 위해 얼마나 많은 빛과의 투쟁을 하겠는가. 저 길다란 꽃대가 바로 해를 보겠다는 발돋움 아닐까? 나는 일어나서 군자란 화분을 제자리로 돌려놔 준다. 마음껏 해를 마주보라고.
오렌지 와이셔츠에 노란 넥타이, 짙은 초록색 바지에 베이지색 콤비를 입고 출근하는 남편을 본다.
'와! 멋있다. 자기 군자란 같네'
남편에게 감탄사를 보내니 기분이 좋은가 보다. 벙긋 웃더니 회신을 보낸다. 오늘 낮에 밖에서 만나자고. 역시 남편이다. 아직 이런 즉흥성으로 있다는 설렘! 그것은 나른한 봄날 보약 한 사발 먹는 것처럼 생기를 준다. 설레며 특별한 날에나 가는 식당에 두 사람은 화사한 차림을 하고 꽃처럼 앉았다. 창 밖으로 햇살에 반짝이는 바다가 넘실대고 실내에는 잔잔한 교향곡이 흘렀다. 그야말로 분위기가 끝내주는 곳에 그렇게 마주 보고 있으니, 문득 남편이 군자란처럼 보였다. 젊은 날의 홍안은 사라지고 눈가의 주름과 강건해 보이는 얼굴이 왠지 안쓰럽다. 외유내강한 남자, 그는 우리 집 군자다.
그러면서 내심 밥 한 그릇에 너무 아부를 하나 싶기도 하고 본전 생각도 나고 해서 나는 먹는 일에 열중했다. 분위기 있는 곳에서 더 이상 분위기를 느끼지 않는 여자.
스스로 ‘참 웃기네’ 하며 남편을 본다.



<<바람이 데려다주리>> 저자
에세이부산 동인인 박영란님

그녀를 보면
그녀가 내 거울이었음 싶다.

겉으로 보이는 우아함에
품위있는 말씨
속 깊은 정이 뭉실뭉실

멀리서 바라볼수는 있어도 가까히 하기엔 조심스럽다.
그녀를 보면
'香遠益淸'
주돈이의 <애련설>이 떠오른다.

그녀는 은은한 연꽃향과도 닮았다.


   


좋은 글을 올릴 수 있도록 허락해주심
영란씨! 고맙습니다.        


류창희   2008-07-14 07:57:18
참 웃기네.
다시 읽어봐도 또 읽어봐도
해학적인 사유로 곳곳에서 군자란 피우네요.

편안하면서도 재미있게
그러면서도 자신을 돌아볼 수 있게
독자를 끌고 가는 힘
쭉~~~~
끌려가다 '참 웃기네' 로 끝나는 부분에서
저절로 튀어나오는 말
"참 웃기네"
박영란   2008-07-21 20:50:59
창희씨!
'참 웃기네' 글 보고, 또 창희씨가 쓴 댓글 보고
누군가가 '웃기네!!!!' 하면 어쩌지?
그렇지만 늘 나만 보면 예뻐해주는 창희씨가 있어 좋다우.
류창희   2008-07-22 08:20:13
시선에서
자유롭고 싶다우.

돋보기 끼는 '50' 지천명의 나이
언제 다시 우리에게 오겠수.

그냥 더러는
참 웃기게 사는 것도 괜찮지 않은가.

우리 본래 이쁘게 살고 있는데....
오드리   2008-07-23 22:08:28
두 분 다 이뽀요.^^*
류창희   2008-07-24 08:19:44
'이뽀'라고 말해주는 오드리님까지
셋 다 이뽀^^*

공주病?
공주癌?

이뽄것이 죄라면
죄 달게 받겠소^^*
류창희   2008-11-09 08:30:33
우아미
<에세이부산 제7집> 자축행사와 더불어
이른 송년회를 겸했다.
그녀가 돌연 발표했다.
"한나라에서만 너무 오래 사는 것 같아서..."
몇달이 걸릴지 몇년이 걸릴지 ...

처음엔 그녀의 삶이
'아~ 멋지다!'
부럽더니,
11월 8일 추적추적 비맞으며
광안리 바닷가를 길건너 사이두고 걸으면서,
자꾸 풍선에 바람이 새는 듯한...

우아미, 그녀가 내 마음 속에 깊이 자리하고 있었음을,
벗이 저 멀리 있다면
나의 삶도 더 멀리 넓어질 수 있거늘.

벌써, 그리움이란 단어를 떠 올린다.
류창희   2008-11-11 22:27:20
그녀가 사주는 칼국수를 얻어먹으며
그녀에게 아무것도 전하지 못했다.
휴양차 떠나는 이에게 짐이 될것만 같았다.
그녀의 손을 잡고 그녀를 안고
그녀의 눈을 바라보았다.
애써 피하고 싶은 그 눈길
내편하나 잃은듯 허전하다.
많이 의지하고 있었나보다.
류창희   2008-12-31 09:38:24
아!
이 초장, 깻잎 고추...그리고 반가운 얼굴들
갑자기 눈물이 쏟아지려고 합니다.
잠시 인터넷 방에 들러 오랜만에 메일을 여는 순간
이 뜨거운 만찬을 다시 보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모두 모두 안녕하시지요?
전 그냥 잘 지내고 있습니다.
오클랜드 작은 아파트에 있으면서 슈퍼가서 장보고
샌드위치 만들어서 공원에 앉아 먹기도 하고 근교에 훌쩍 다녀오기도 하고.
모든 불편한것들을 감수하면서 이렇게 시간을 보내는 것이
목적이었던 것처럼.

근데~
뉴질랜드의 대자연이나 어딜가나 맑고 깨끗한 물, 하늘, 호수, 그리고 공원들이
참으로 아름다웠지만,
창희씨가 보내 준 우리 에세이부산 사진을 보는 순간만큼 감동스러웠던 적은 없었습니다.
이 곳의 양, 소 덕분인지 버터 빵 치이즈가 얼마나 맛있는지
아직 '빨간' 것에 대한 미련이 없었는데,
이 갑작스런 입맛과 그리움을 어떻게 해야 할지.....
류창희   2009-01-13 08:44:52
꼭 그러한
그녀를 쏙 빼닮은
그 우아하면서도 청신한
이국적인 축하카드를 보고 또 보고.

'상은 당신처럼
사람을 사랑하고,
일을 사랑하고
생에 몰두하는 사람에게 주어진다는 것을...'
과분한 찬사에
내가 목메어 내글을 끝까지 읽어내지 못할 때
우마이 당신이 소리내어 읽어주던 그 마음에
또 한번 감사드리며.

내 책상 유리 속에 장욱진의 <사찰>이 격을 높혀주듯이
내 생활의 격을 높혀주는 그대
그대와 더불어 문화를 누린다오.

이렇게 차가운
컴퓨터 자판 두들기기 말고 답신을 쓰려고
암만 앞뒤 두리번 거려도
'New Zealand Park Yoang Ran'
지구속 그곳이 다 자기 영역인양
세부적인 주소가 없어 이렇게 전한다오

창호지로 스며드는 겨울 햇살
봄 햇살마냥 따뜻하게 여겨지는 오전에
영란씨를 향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