댓돌 위의 흰 고무신

바람에 단풍잎 한 장 날아들 듯 그리움을 모아 편지를 썼다. 그리움은 참으로 가혹하다. 그리움의 대상은 ‘인연’이니 좋은 인연은 소통을 하면서 살아야 한다. 그러나 ‘참 소식이란 원래 일자(一字)도 없는 것, 오히려 연(緣)을 만드는 문자가 없는 것이 좋은 소식이라’고 한다.
무소식이 희소식이라는데. 평소 안부도 묻지 않고 누가 건드릴세라 숨죽여 있다가, 문득 생각나면 전화를 하고 미처 통화하지 못했으면 문자를 보내고, 다시 이메일을 보내고 연말이면 먹을 갈아 연하장을 띄운다.
나를 지키는 힘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한 곳에 머물지 못하는 사람을 객이라 하고 머무는 사람을 주인이라 한다. 그럼 나는 주인인가 객인가. 내 집 작은 사립문은 닫아걸고 남의 집 대문이 활짝 열리기를 기다리며 줏대 없이 날마다 조급해 한다. 작고 궁색한들 어떤가. 내가 먼저 열지 않으면 나는 평생 나그네가 되어 떠돌 수밖에 없다.
누군가 나에게 찾아오면 맛있는 차를 대접하고, 가는 사람은 보내고 오는 사람은 맞이한다. 목이 마르면 물을 마시고 피곤하면 눈 붙이다 곡 한번하고 나면 끝나는 것이 인생이라 한다면 삶이란 참으로 부질없다. 그러나 그 시시때때로 일어나는 일들에 마음가는대로 살 수 있는 삶 또한 꽤 괜찮을 성싶다.
나를 유교의 관습으로 꽁꽁 묶어 놓았던 어머님. 그 어머니 소매 자락을 놓쳐버렸다. 힘들었던 세월을 생각하면 차라리 해방이었다. 창자에서 쓴물이 올라오도록 통곡을 했었다. 그해 가을, 맑고 푸른 가을 하늘을 보지 못하고 시퍼렇게 멍든 하늘만 허망하게 바라보았다. 다시는 누군가를 위해 나를 다 하지 않으리라. 그즈음부터 나는 대붕처럼 날기를 꿈꿨다.
내 마음대로 종교를 넘나들 수 있다면 유년기에는 달콤한 알사탕을 받으러 교회로 가고 싶다. 평생 착하게 살 것 같다. 청년기에는 유교의 질서로 자신을 바로 세울 수 있는 조신한 삶을 살다가, 장년이 되면 이것저것 다 내려놓고 산과 들을 병풍 삼아 전원의 삶을 살고 싶다. 이 시기야말로 화양연화의 꽃다운 시절이 아니겠는가. 그럭저럭 노년기를 맞으면 석양에 국화를 바라보며 극락왕생을 기원하고 싶다. 그때쯤이면 고승들의 선문에 답을 할 수 있을까.
나는 종교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 그러니 기도에 대하여 알 리가 없다. 기도는  부처를 깨닫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한 방편이라고 한다. 그 말에 위안을 받는다. 내 마음이 곧 부처라고 하지 않던가. 하루하루를 기도하는 마음으로 정성껏 살았다면 따로 시간을 내어 기도할 필요가 없다는 말은 의지가 약한 나에게 딱 맞는 처방이다.
어느 날 TV에서 <살다보니>라는 제목의 방송을 하고 있었다. 처음부터 나이를 먹으려고 작정하고 산 것은 아니었는데, 살다보니 어느 날 문득 노년이 왔다는 이야기를 각계각층의 사람들이 나와서 말하고 있었다.
곱게 화장을 한 은발의 우아한 여인은 아침이면 장미 빛 스카프를 목에 두르고   조조영화 한편을 보고 홀로 찻집에 들어가 차를 마신다고 했다. 돌아오는 길에 혹시 소낙비라도 만나면 선 자리에서 빗소리를 핑계 삼아 참았던 외로움을 엉엉 소리 내어 다 토해버린다고 했다.
어느 원로 코미디언은 젊은 시절 하루저녁 지방공연에 집 한 채를 살 정도로 돈을 벌었다고 한다. 그 당시 '배OO' 그의 이름만 말해도 남녀노소가 배를 잡고 웃음보를 터트리는 인기를 누렸다. 지금은 사람들이 북적이는 거리에 나가도 왕년의 그가 누구였는지 알아봐주는 사람도 없고, 아내마저 각방에서 티브이를 보며 아침밥은 먹었는지 오후에 외출을 했었는지 조차도 관심이 없다며 특유의 익살로 껄껄 댄다. 그의 웃음소리에서 억새풀 밭의 바람소리가 들렸다.
그중의 한 장면이다. 산촌 농가의 앞마당에 남루한 영감이 땔감을 장만하고 있다. 얼굴의 주름이 말린 표고버섯처럼 골이 깊다. 그 옆에 영감과 꼭 닮은 마나님이 오누이처럼 앉아 삭정이를 줍고 있다. 어떻게 사는 것이 잘 사는 것이냐는 질문에 “고놈 잘 죽었다.” 소리 안 듣고 가는 것이라고 말한다.
어찌 감히 심안(心眼)으로 세상을 볼 수 있었겠는가.《산사에서 부친 편지》를 읽었다. 글자가 어둠에 묻힐 때는 산사의 사진들을 보았다. 쓸어버리지 못하는 향기가 있듯이 차마 책을 덮지 못하는 아쉬움이 있어 그림 한 장을 첨부한다.
키가 작고 어깨 좁은 보살 하나가 합장하며 산사로 걸어 들어가고 있다. 꼭 산사가 아니라도 좋다. 오두막의 방 한 칸이면 족하다. 그곳에 따뜻한 아랫목과 앉은뱅이책상 하나 놓여있고 책상 위에는 연필과 노트 그리고 강아지풀 한 줄기 꽂아놓았으면 좋겠다. 그녀가 여태까지 어떤 색깔의 옷을 입고 어떤 이력의 신을 신고 왔었는지는 알 수 없다.
혹, 신발 속의 낙엽들은 알고 있을까.
댓돌위의 흰 고무신이 달빛에 곱다.



지난 주 전남 땅끝마음 '대흥사'에 템플스테이 다녀왔습니다.

까만 밤

달빛에 도착했는데 숙소인 '奉香閣'으로 들어가니 툇마루에 달빛이 가득하였습니다.

신통하게도 <댓돌위에 흰고무신>이 두켤레가 나란히 있더라구요.

신발 속에는 노란 은행잎 빨간단풍잎이 가득 들어있었습니다.

낙엽들끼리 소곤거리며 주인을 기다리는 것 같아

한쪽 발을 살풋 넣으니 "바스락"거리며 놀라기에 얼른 뺐습니다.



그날 밤

방다박은 절절 끓어 따뜻했습니다.

창호지 문의 달빛은 은은한데 문풍지가 적막을 간간히 흔들었습니다.

오랫만에 코끝이 시려운 방에서 자보니

아랫목의 이불은 타고 윗목의 물이 얼던 어릴 때의 생각이 났습니다.

절집은 적막강산이었습니다.

산사를 누렸습니다.

혼자만 淸福을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