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승의 옥편
지은이 정민
펴낸 곳 마음산책
발행년도 2007


생활의 발견

빈 병에 물이 차오르듯 - 미술에 대한 지식을 늘리지 않거나 훈련을 쌓지 않고 보내는 날이 하루도 없습니다. 뚜껑 없는 병을 물속에 처박으면 쉽게 물이 차듯이, 로마에서는 감수성이 있고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은 쉽게 내면의 충실을 기할 수 있습니다. 사방팔방에서 예술적인 요소들이 밀려오기 때문입니다 -괴테의 이탈리아 기행 중에서-

언제 또 이렇듯이 한가롭고 유유자적한 심경으로 앉아볼 수 있겠나 싶어 이 시간이 새삼 울렁거리도록 고맙다. 빈 병에 물이 쿨럭쿨럭 차오르듯, 사방에서 밀려드는 사물들과 늘 새롭게 만나 내면을 채워나가는 삶이었으면 싶다.

옷 수선 가게 - 나는 그런 그의 시선이 궁금해서 자꾸만 눈길이 그리로 간다. 늘 생각들이 바쁘게 오가는 내 머리가 그의 저녁노을 같은 무심함을 부러워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다 그가 보이지 않는 날이면 나는 서운해서 한 번 더 안쪽을 기웃거려보곤 한다.

나는 언제 죽어요 - 의사가 남자아이에게 병이 난 여동생을 위해 네 피를 주지 않겠느냐고 물었다. 아이는 주저하지 않고 대답했다. “네, 그러겠어요.” 의사가 필요한 만큼의 피를 뽑고 나서도 아이는 침대 위에 가만히 누워있었다. 조금 있다가 아이가 의사에게 말했다. “의사 선생님! 저는 언제 죽어요?” 의사가 놀라서 물었다. “왜 네가 죽는다고 생각하지?” “제 피를 다 뽑아 동생에게 주지 않았나요?” 아이는 의사의 말을 자신의 피를 전부 준다는 뜻으로 생각했던 것이다.

몰취미와 살풍경- 처음 대만 와서 가장 이상했던 것 중의 하나가 대학교 앞에 맥주 집은커녕 선술집 하나 없다는 사실이었다. 저녁에 집에 돌아가다가 생맥주 한잔에 치킨 한 쪽이 생각나서 눈을 씻고 찾아봐도 찾을 수가 없었다. 학생들에게 그 이야길 했더니, 학교 앞에 왜 술집이 있어야하느냐고 오히려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바라본다.

학교 옆 강변 둑길을 산책할 때였다. 대학생 예닐곱 명이 석양의 붉은 햇살이 비낀 풀밭에 둘러앉아 이야기를 나누며 무언가를 마시고 있었다. 아주 낭만적인 한 폭의 그림이었다. 으레 맥주나 한잔씩 하나보다 했다. 막상 가까이 가서 보니 홍차, 녹두차, 과일 주스 같은 건강음료들을 빨대에 꽂아 빨아먹고 있었다. 그것도 남학생들이. 그 몰취미한 광경이라니.

작년 서울서 축제 때였던가 보다. 밤 12시가 다 되어 연구실에 내려오는데, 인문관 앞은 남녀 할 것 없이 온통 술에 취한 대학생들로 광란의 도가니가 되어 있었다. 건물을 막 나서자니 술에 완전히 취한 녀석 하나가 내 앞으로 불쑥 달려들더니, “너는 뭐야! 18놈아. 콱 죽여버려!” 하며 주먹을 잔뜩 움켜쥐고 다짜고짜 멱살을 잡자고 대든다. 슬쩍 옆으로 비켜서자 몸을 못 가누고 제풀에 힘없이 자빠져버린다. 밤 12시가 다 되도록 그 소음 속에 공부하다 가던 선생은 영문도 모른 채 졸지에 18놈이 되고 말았는데, 그 살풍경한 모습이라니.

대만 학생들은 술 좋아하는 한국 학생들을 도대체 이해할 수 없다고 하고. 한국 선생은 신입생 환영 모꼬지를 가서 몇 시간씩 고기를 구워 먹으면서도 술 한잔할 생각을 아예 않는 대만 학생들을 딱하다고 생각한다. 이것이 누가 옳고 누가 그르고의 문제가 될 수 있을까?

슬픈 일 - 호된 시집살이를 한 며느리가 정작 모진 시어머니가 된다. 처절한 가난을 맛보았던 부자일수록 없는 사람들에게 더 가혹하다. 내가 그 사람을 미워하고 그 삶을 혐오하는 것은 혹시 그 안에서 나를 발견하는 섬뜩함 때문은 아닐까? 한강은 빗살무의 모양을 지으며 고여 있다. 나는 습관처럼, ‘유유히 흘러가는 한강을 바라보았다’고 쓰고 싶었는데, 암만 봐도 그저 고여 있는 것처럼 보였다. 내 삶이 막막히 정체되어 있는 느낌 때문이었을까. 좀체 안 먹던 두통약을 먹고 낮잠을 혼곤히 자고 깨면서도 나는 인생이 참 차고 쓸쓸하다는 생각을 했다.

싱거운 생각 - 다시 엉덩이를 털고 일어나 발길이 잘 닿지 않은 소로로 접어든다. 바위 사이를 더위잡고 올라가, 깊은 숲속 가파른 비탈 사이의 바위를 골라 앉는다. 전에 보지 못한 새로운 경계다. 누가 여기까지 와 보았을까? 스스로 대견하고 흐뭇하다. 잠시 숨을 고르다 고래를 숙여보니, 돌 틈새에 누가 피우다 버린 담배꽁초가 있다. 이럴 때 사람 사는 일은 대체로 참 싱겁다.

대도무문-구내 이발관에 머리를 깎으러 갔다. “사모님이 왼편에서 주무시죠?” 동료교수에게 말했더니 “정선생이 금슬이 되게 좋은 모양이네” 하며 놀린다. 큰 도에 들어가는 문이 따로 있을 리 없겠다. 길은 어디에도 있고 또 어디에도 없다. 불 줄 아는 눈앞에만 길은 보인다. 한 줄 어줍잖은 글을 쓰면서도 요리 재고 조리 재는 터수에 언제나 남의 뒤통수만 보고도 마누라 누운 방향까지 읽는 지혜의 눈이 환히 열릴 것인가.

달개비꽃 잉크 - 호랑이의 줄무늬는 밖에 있고 인간의 줄무늬는 안에 있다고 했다. 무늬 없는 삶 속에는 기쁨이 깃들지 않는다. 생활의 여유는 물질의 풍요와는 상관없어 보인다. 작은 달래비꽃을 으깨 푸른 꽃잎 잉크를 만들어 친구에게 편지를 보냈다던 정지용. 마음의 무늬가 빚어내는 잔잔한 감동을 만나볼 수가 없게 되었다. 살갑고 고맙던 그 마음들은 다 어디로 갔는가? (나는 진정코 가지고 있는데… 누군가는 나 보고 ‘여성호로몬을 끊으라’고 충고한다. 너무 질척거려 탈이다. 정말 세상 사람들 건조하고 슬프다.)

열두 자 편지- 삼천리 밖에서 한 조각구름 사이 밝은 달과 마음으로 친히 지내고 있소 三千里外心親一片雲間明月.

별말 없이도 마음은 마음으로 통하고, 정은 행간에 고여 넘친다. 옛 책갈피에서 우연히 만나는 옛 어른들의 따뜻한 체취, 천근같은 무게에 코끝이 찡할 때가 있다.

목화밭 풍경 - 아름다운 사랑은 언제나 기억 속에만 남아있다. 봄바람에 꽃향기가 일렁이면, 그대로 출렁출렁 눈물이 되어 흐를 것만 같은 사랑은 언제나 기억 속의 용수나무 아래와 목화밭 그늘에 남아 있다. 먼 훗날 되돌아갈 수 없는 희망을 안고 그 사랑을 부르면, 붉은 볼을 한 수줍은 소녀가 그 그늘에서 걸어 나올 것만 같다. (그늘은 그림자가 없다. 확인했다. 하늘에는 그림자가 없다.)

매미에 대한 생각 - 고대 중국에서는 사람이 죽으면 망자의 입 속에 매미 모양의 옥을 넣었다. 저승길의 양식. 매미는 이슬만 먹고 산다. 허물을 벗고 새 생명을 얻는다. 이승의 미련과 집착 훌훌 털고 환골탈태하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