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승의 옥편
지은이 정민
펴낸 곳 마음산책
발행년도 2007



옛사람과 만나는 일, 그것은 결국 스스로를 돌아보는 일이기도 하다. 그렇게 나는 또 한 영혼을 내 속에 간직한다.




책머리에

책속에는 올해 열다섯이 된 둘째의 다섯 살 때 이야기부터 최근 이야기까지. 아빠가 저와 안 놀고 다시 학교 연구실로 올라 갈까봐 집에 들어서기만 하면 양말부터 벗기던 꼬맹이가 벌써 코밑이 거뭇거뭇한 장정이 다 되었다. 돌아보면 가족에게 미안하고, 또 고맙다.




옛글의 행간

스승의 옥편- 헐어 바스라지고 끝이 말려들어간 사전을 한 장 한 장 다리미로 다려서 폈다, 지금도 사전에 코를 박으면 선생님의 체취가 또렷이 느껴진다. 내 조그만 성취에도 당신의 일처럼 기뻐하시던 어지신 모습도 생전처럼 떠오른다.

학문의 길에 무슨 왕도가 있겠는가? 단순무식한 노력만 있을 뿐이다. 지금도 마음이 스산하면 선생님의 사전을 쓰다듬고 냄새를 맡는다. 많이 힘들 때는 무작정 포천에 있는 산소를 달려가 한참을 혼자 앉아있다 오곤 한다.

빈 산 잎 지고- “넌 사내자식이 왜 이렇게 말이 많으냐?” 다짜고짜 말씀하셨다, “네?" 선생님의 손가락이 원문의 빌 空(공)자를 짚으셨다. "이게 무슨 자야?" 나는 당황했다. "이게 무슨 자냐구?" "빌 공자입니다." "거기에 ‘텅’이 어디 있어?" 그러더니 '텅 빈 산'에 '텅'자를 지우셨다. "'나뭇잎'이나 ‘잎’ 이나. 그놈 참 말 많네. ‘떨어지고’의 ‘떨어’도 떨어내!” 다시 쉴 틈도 없이 “부슬부슬 했으면 됐지 ‘내리는데 가 왜 필요해? 부슬부슬 올라가는 비도 있다더냐?” 하시며 마지막 펀치를 날리셨다.

그 후 글을 쓸 때마다 더 뺄 것은 없나, 군더더기는 없나를 살피는 것이 버릇이 되었다. 말은 줄었는데, 생각은 더 많아지는 신기한 체험이었다. 글 쓰기의 妙理(묘리)다.

과골삼천- 복사뼈가 세 번이나 구멍 났다. 책상다리로 앉아 20년 세월이 가는 동안 바닥에 닿은 복사뼈 자리에 구멍이 세 번 뚫렸다 낙숫물이 돌을 뚫는다는 말을 들었고, 추사가 벼루 여러 개를 먹을 갈아 밑창을 냈다는 말을 들었다.

마음을 헹구는 일- 붓을 꺾으며(絶筆) 이윤영 오동나무 수런수런 저물녘에 시끄럽고/ 비 지나는 연못가에 대자리 잠 해 맑아라/ 이 가운데 꿈 이야기 남에게 얘기 마라/ 봉래산 높은 성에 응당 들어갈 터이니/

삶의 끝자락에서 들려준 그의 맑고 투명한 목소리 속에 젖어 나는 조용히 욕심에 찌든 마음을 헹궈내고 또 헹궈냈다. 옛사람과 만나는 일 그것은 결국 스스로를 돌아보는 일이기도 하다. 그렇게 나는 또 한 영혼을 내 속에 간직한다.

바다 속의 보물- 삶이 아무리 척박하고, 물질이 제 아무리 신통찮아도, 바다 속 어딘가 감춰둔 보물창고를 생각하면 마음 한켠에 등불이 환하게 밝아오는 것이다. 제주 해녀들의 바다 속에는 지상의 공간이 그대로 펼쳐져있다.

심심함의 마술- 예술도 대부분 이런 심심함과 따분함의 산물이다. 하지만 예술 속에서는 일상의 따분함과 답답함이 한 순간에 뒤집히는 마술이 일어난다. 예술가들은 바쁜 생활 속에서 심심함 또는 한가로움을 일부러 찾아서 즐기고, 만들어 즐긴다. 그리고 여기서 활화산 같은 에너지를 발견한다.

한가로움에 대하여- 조선시대 이덕무 <한가로움에 대하여>

사방으로 툭 터진 큰길 옆에도 한가로움은 있다. 마음이 한가롭기만 하다면 굳이 자연을 찾아가고 깊은 산속에 숨어 살 필요가 없다. 내가 사는 집은 저잣거리 바로 옆이다. 해가 뜨면 마을 사람들이 장을 열어 시끌벅적하다가 해가 지면 마을의 개들이 떼를 지어 짖어댄다. 하지만 나만은 책을 읽으며 편안하다. 때때로 문밖을 나서면 달리는 자는 땀을 흘리고, 말을 탄자는 빠르게 지나가고, 수레와 말은 종횡으로 부딪히며 뒤섞인다. 그러나 나만은 한 발 한 발 내디디며 천천히 걷는다. 저들의 소란스러움으로 내 한가로움을 놓치는 일은 한 번도 없다. 왜 그런가? 내 마음이 한가롭기 때문이다.

젊은 날의 한가로움-젊었을 적 한가로움이라야 진정한 한가로움이다. 바쁜 젊은 날에 시간을 쪼개어 찾아서 만든 한가로움이라야 진정한 한가로움이다. 다 늙어 한가로운 것은 할 일이 없는 것이지 한가로운 것이 아니다.

☆마음의 얼룩- 상(想) 사(思) 염(念) 려(慮) 想은 퍼뜩 떠오른 생각이다. 思는 곰곰한 생각이다. 念은 맴돌아 떠나지 않는 생각이다. 慮는 짓누르는 생각이다. 마음은 투명한 거울이다, 그 위로 생각이 먼지처럼 내려앉아 얼룩이 지고 번뇌가 인다. 그래서 우리는 마음 밭을 닦는다. 마음 밭은 곧 생각이다. 마음 밭을 닦는 일은 마음속에서 이런저런 쓸데없는 생각을 걷어내는 일이다. 하루에도 오만가지 생각이  마음속을 들락날락한다. 눈만 감으면 갖은 상념이 떠올라 사념이 끝이 없다. 생각의 노예가 되면 마음은 종이 되어 생각의 부림을 받는다. 질질 끌려 다니게 된다. 마침내 마음이 떠나가 얼이 빠지고 넋이 나간다.

불교에서는 달아난 마음을 잡으려고 참선을 한다. 참선은 제단 앞에 혼자 앉아 있는 것이다. 무념무상(無念無想)이 목표다. 도가에서는 수신(守神)을 한다. 나를 잊고 세계를 잊어야만 외물에 흔들리지 않는다. 평정심을 얻을 수 있다. 참된 나와 만나게 된다. 그리스도교에서는 명상(瞑想)을 한다. 명상이란 말 그대로 마음을 텅 비워 생각을 잠재우고 생각을 눈감게 하는 것이다. 묵상(黙想)은 묵묵히 하는 생각이 아니라, 생각을 침묵하게 만드는 것이다.

생각이 제멋대로 날뛰지 않고 마음의 결을 따라 흘러가면 마음 위에 새겨지는 무

늬가 된다. 고운 마음결이 된다. 얼룩이 아니라 무늬가 되는 그런 생각을 하며 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