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영희
1952년 9월 14일 출생
2009년 5월 9일 사망
암투병 중 57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초원의 빛

윌리엄 워즈워즈

한때는 그렇게도 밝았던 광채가
이제 영원히 사라진다 해도,
초원의 빛이여, 꽃의 영광이여,
그 시절을 다시 돌이킬 수 없다 해도,
우리 슬퍼하기보다, 차라리
뒤에 남은 것에서 힘을 찾으리.
인간의 고통에서 솟아나오는
마음에 위안을 주는 생각과
사색을 가져오는 세월에서.

장영희의 영미산책 <축복> 139쪽





목련꽃 지던 3월에 '축복'의 그림을 그린
김점선이 가고
모란꽃이 뚝뚝 떨어져 가는 오월에
'축복'을 쓴 장영희도 갔다.
작은 그림들 '축복'이라는 책속의
김점선 그림들이다.





열정적으로 삶을 살았던 두 여인
혼자는 외로워 같이 누워있을 것이다.
초원의 빛을 받으며...
고인의 명복을 빈다.















소아마비로 인해 장애인이 된 장영희는 서강대학교 영미어문 영어문화학부 교수로 활동해오며
2000년 첫 수필집인 ‘내 생애 단 한번’을 비롯해 ‘문학의 숲을 거닐다’등을 냈으며
선친인 고 장왕록 박사와 함께 펄벅의 ‘살아있는 갈대’를 번역하는 등
수필가이자 영미문학자로 활발히 활동해왔다.
특히 5번째 수필집인 ‘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샘터) 발간을
하루 앞두고 운명해 주위사람을 안타깝게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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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는 우리 반이 좀 일찍 끝나서 나는 혼자 집 앞에 앉아 있었다.
그런데 그 때 마침 깨엿 장수가 골목길을 지나고 있었다.
그 아저씨는 가위만 쩔렁이며 내 앞을 지나더니 다시 돌아와 내게 깨엿 두 개를 내밀었다.
순간 그 아저씨와 내 눈이 마주쳤다.
아저씨는 아무 말도 않고 잠깐 미소를 지어보이며 말했다.
“괜찮아” 무엇이 괜찮다는 것인지는 몰랐다.
돈 없이 깨엿을 공짜로 받아도 괜찮다는 것인지,
아니면 목발을 짚고 살아도 괜찮다는 것인지…하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건 내가 그날 마음을 정했다는 것이다.
이 세상은 그런대로 살만한 곳이라고. 좋은 사람들이 있고, 선의와 사랑이 있고,
‘괜찮아’라는 말처럼 용서와 너그러움이 있는 곳이라고 믿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장영희의 '괜찮아' 중에서





류창희   2009-05-12 15:57:38
'축복' 책 선물해준 노현희님 문자보내왔다.
'뉴스보고 알았어요 예슬인들의 죽음이 유난히 아픈 건...'
오늘 '지성과 감성반' 수업,
장영희의 '괜찮아'로 열었다.
모두 마음 쨘~ 했다.
화정   2009-05-13 00:04:47
순간 가슴이 찡하네요
넘-엄 좋아했던 교수님인데
말문이 막히네요 힘들때 많은 힘을 실어주신분인데
글을 통해서 감사하는 마음을 전했는데
목발을 딛고 활짝웃으시는 모습 ----
하늘 가득 그대의 아름다운 미소 영원하리라
내일은 그대의 책을 펼쳐보리

좋은이들이 세상을 떠나며 난 넘엄 마음아파요
호미   2009-05-13 16:43:23
ㅠ - ㅠ
"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 을 읽으며 그의 아름다운 미소를 기억해야지....
"그러나 사랑은 남는것" 이라고 말했던 그의 글이 새롭다.
장 영희!
글도 얼굴도 삶도 미소도 참, 고왔던 용기있는 여자.
그리고 아까운 그의 재능과 시간들....
부디 ....아버지곁에서 행복하시기를!!!
류창희   2009-05-13 21:53:02
"엄마 미안해, 이렇게 엄마를 먼저 떠나게 돼서.
내가 먼저 가서 아버지 찾아서 기다리고 있을게.
엄마 딸로 태어나서 지지리 속도 썪였는데
그래도 난 엄마 딸이라서 참 좋았어.
엄마, 엄마는 이 아름다운 세상 더보고
오래오래 더 기다리면서 나중에 다시 만나."
호미님, 이런 말을 남겼다지요.
부전   2009-05-16 08:43:06
마지막 말로 "엄마" 했다고 합니다
류창희   2009-05-19 16:17:09
"엄마" 듣는 이도 부르는 이도
참 따뜻한 말인데...
엄마노릇 자식노릇 다 어려워요.
에세이스트   2009-05-19 16:38:33 
조정은 - 장영희 선생님의 명복을 빕니다. 어느 한 구석 어두운 빛 없이 밝음을 잃지 않던 그분을 존경하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09.05.14 10:47
류창희 - 우리가 살아가는 '희망'이죠. 절망을 희망으로 바꾸는... '내힘들다'를 거꾸로 하라고 말씀하신 그분 "다들힘내" 09.05.14 18:15

프란체스카 - 이 세상을 그저 아름답게만 살다간 아름다운 장영희교수님 님은 많은 사람들을 행복하게 했습니다. 존경합니다. 사랑합니다. 09.05.14 12:34
류창희 - '괜찮아' 한마디, 아마 우리모두 괜찮을 겁니다. 09.05.14 18:16

전해주 - 신은 인간의 계획을 싫어하시는 모양이다. 올 가을 나는 계획이 참 많았다고 하시더니...신은 다시 일어서는 법을 가르치기 위해 넘어뜨린다고 하셨는데....그러나 우리의 가슴속에 영원히 꺼지지 않는 따뜻한 촛불로 남아 있습니다. 내가 너무나 좋아했던 장교수님의 명복을 빕니다. 09.05.14 14:19
류창희 - 해주 선생님 장영희님 좋아하셨구나. 누군들 그분을 좋아하지 않을 수 있겠어요 ^^ 09.05.14 18:19

전해주 - 2001년 장영희님이 투병중이라는 글을 읽고 그 분이 기적을 원했듯이 저도 간절히 너무나 간절히 눈물을 떨구며 그녀에게 기적이 오길 빌었습니다. 그녀의 고통이 가슴을 에입니다. 아~ 장영희교수님..... 09.05.15 00:43

정호경 - 이 세상에 좋은 글을 남기고 죽은 듯이 죽어간 사람들은 악착같이 남아 우리를 부끄럽게 만드는, 허울 좋은 지도자들에게 그 눈물 나는 단 한 구절이라도 읽어 주고 갔으면 좋았을 것을. 09.05.15 07:09
류창희 - 아마 지금쯤 가슴에 마음에 촉촉하게 스며들고 있을 거에요. 시작하는 법을... 09.05.14 18:21

김지영 - 이승을 떠나기 전 엄마에게 쓴 편지이야기를 수업 시간중에 아이들에게 했더니 아이들이 울더라구요. 정신이 혼미한 마지막 순간에 한 말이 "엄마!" 였다지요. 09.05.14 23:25
류창희 - "엄마 미안해, 이렇게 엄마를 먼저 떠나게 돼서. 내가 먼저 가서 아버지 찾아서 기다리고 있을게. 엄마 딸로 태어나서 지지리 속도 썪였는데 그래도 난 엄마 딸이라서 참 좋았어. 엄마, 엄마는 이 아름다운 세상 더보고 오래오래 더 기다리면서 나중에 다시 만나." 09.05.15 07:52

김지영 - 마지막 이승을 떠나기 전 엄마에게 쓴 편지이야기를 수업 시간중에 아이들에게 했더니 아이들이 울더라구요. 정신이 혼미한 마지막 순간에 한 말이 "엄마!" 였다지요. 09.05.14 23:25
류창희 - "남보다 느리게 걷기에 더 많이 볼 수 있다"고 말했던 그녀 짧은 생애였지만 보통 사람보다 많이 보고 갔을 것이다. "내 힘들다"를 거꾸로 하면 "다들힘내" 를 말해주던 그녀 09.05.15 07:55
아카데미   2009-05-19 16:48:58
길뫼 - 그 분의 삶과 죽음앞에서 숙연해지지 않을 수 없습니다. 09.05.11 19:14
花樣年華 - 그분의 '괜찮아' 라는 수필을 읽고 '참 괜찮다'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09.05.11 21:41

하늘마음 - 다음에 읽자고 미뤄오다가 5월 말에 있을 모임에서 '문학의 숲을 거닐다'를 읽기로 결정하고 보니 마음이 아타깝습니다. 진작에 좀 읽어둘 걸 하는 아쉬움도 있고 말입니다. 09.05.12 23:10
花樣年華 - 장영희님 책고 또 고전이 되었는데요. 16:46

이을규 - 그녀의 마지막 말은 82세의 어머니가 장교수의 수족을 만지자 "엄마"라는 마지막 말을 남겼고, 그 어머니는 지체 부자유한 딸을 업어 등하교 시키던 초등시절 눈이 오면 연탄재를 뿌리면서 등교를 염려했답니다. 장애우의 하늘이었던 장교수님. 장한 삶이었습니다. 류창희님 감사합니다 09.05.13 06:30
花樣年華 - 우리에게 늘 '희망'의 메세지를 주시던 분, 그분의 어머니 아버지 역할이 큽니다. 16:47
에세이   2009-05-19 16:52:
김윤정 - 저도 그런 생각 했네요. 삼월에는 김점선, 오월에는 장영희 선생님이 가시는구나.....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09.05.14 16:54
류창희 - '삼월' '오월' 다 이름이 문학적이지요. 아마도 그곳에서 꽃 그리고 글 쓰고 그렇게 지내실겁니다. 09.05.15 08:08

서장원 - '괜찮아' 그 한마디가 짠하게 울려오네요. 09.05.14 22:47
류창희- 예~ 다 괜찮아. 너그럽죠. 09.05.15 08:08

김경애 - 몇 년 전 인천 중앙도서관에서 "문학의 힘"이란 주제로 강의 하셨습니다. 에리베이터가 공장나서 목발로 2층까지 올라오셌습니다. 그래도 밝은 표정으로.......... 09.05.15 00:25
류창희 - "남보다 느리게 걷기에 더 많이 볼 수 있다"고 말했던 그녀 짧은 생애였지만 보통 사람보다 많이 보고 갔을 것이다. "내 힘들다"를 거꾸로 하면 "다들힘내" 를 말해주던 그녀 09.05.15 08:10
김경애 - 장교수님의 영결식 사신을 올려놓았습니다. 09.05.15 11:12
류창희   2009-05-19 17:00:57
화정님, 우리 아직 건강하게 살아있으니
날마다 아름답게 희망선포하면서
잘 삽니다. 쟈요우!


다시 시작한다는 것

<1984년 여름 뉴욕 주의 수도 올바니에 있는 뉴욕 주립대학에서 6년째 유학 생활을 하던 나는
학위 논문을 거의 마무리짓고 심사만 남겨 놓은 채 행복한 귀국을 꿈꾸고 있었다.
지도 교수 거버 박사가 깐깐하고 정확한 분인데다가 논문 주제가
'물리적 세계와 개념의 세계 사이의 자아 여행'으로 너무나 추상적이라
나는 2년 간 그야말로 각고의 노력 끝에 어느 정도 만족스러운 논문을 완성할 수 있었다.

   그런데 심사를 얼마 안 남기고 당시 LA에 살던 언니가 아프다는 소식이 왔다.
나는 어차피 곧 떠날 것이므로 차제에 기숙사 방을 비우고 LA로 가기로 했다.
짐을 가볍게 하기 위해 그 동안 책상 위에 높이 쌓였던 논문 초고들을 과감하게 다 버리고
당시만 해도 워드프로세서가 시작 단계였고 기계치인 나는 모든 작업을 전동 타자기로 해결했다.
내 전 재산 옷 몇 벌, 책 몇 십권, 그리고 논문 최종본- 을 모조리 트렁크 하나에 집어넣었다.
LA에서 마지막 원고 수정을 한 후 심사 날짜에 맞춰 돌아올 셈이었다.

  그러나 내가 LA에 도착하자마자 언니는 한국에 가서 쉬었다 오기로 결정,
서울로 떠났고 같은 날 나는 다시 뉴욕행 비행기를 탔다.
케네디 공항에서 마중 나와 준 친구는 내가 올바니로 가기 전에 차 한잔 하자고
그린위치 빌리지에 있는 자기 집으로 나를 데리고 갔다.
그 친구 집에 들어가서 10분 후, 막 커피를 마시려는데 이웃이 들어와
도둑이 친구 차 뒤 트렁크를 열고 짐을 훔쳐 달아났다고 전했다.
나는 그 자리에서 기절했다.

   어떻게 올바니로 돌아왔는지 기억이 없다.
친구가 함께 와준다는 것을 뿌리치고 깜깜한 밤에 기차를 타고
어찌어찌 기숙사로 돌아와서 방문을 잠갔다.
전화도 받지 않고, 아무 것도 먹지 않은 채 꼬박 사흘 밤낮을 지냈다.
두꺼운 비닐 커튼은 내가 닫고 간 그대로였고,
8월중순이었으니 무척이나 더웠을 텐데
더위도, 배고픔도 느낄 기력도 없이 그냥 넋이 나간 채 침대에 누워 있었다.

   그 무거운 책가방을 메고 눈비를 맞으며 힘겹게 도서관에 다니던 일,
엉덩이에 종기가 날 정도로 꼼짝않고 책 읽으며 지새웠던 밤들이 너무나 허무해 죽고 싶었다.
무엇보다 사랑하는 가족을 떠나 외롭고 힘들어도 논문을 끝내고
한국으로 돌아가는 일만 희망으로 삼고 살아왔는데,
이제 모든 것이 수포로 돌아간 셈이었다.

   닷새째쯤 되는 날 아침에 눈을 뜨니
커튼 사이로 한 줄기 햇살이 스며들어 어두침침한 벽에 가느다란 선을 긋고 있었다.
그런데 문득 이상한 호기심이 일었다.
잃어버린 논문과는 상관없이 사람이 닷새를 먹지 않고 누워 있으면 어떤 모습이 되는지,
지금의 내가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지 보고 싶었다.
어지러움을 참고 일어나 침대 발치에 있는 거울을 보았다.
헝클어진 머리에 창백한 유령 같은 모습이 나타났다.
가만히 내 눈을 들여다 보았다.
그런데 참으로 신기하게도 내 속 깊숙이에서 어떤 목소리가 속삭이는 것을 느꼈다.
'괜찮아. 다시 시작하면 되잖아. 다시 시작할 수 있어.
기껏해야 논문인데 뭐, 그래, 살아 있잖아...논문 따위쯤이야.'

   이제 선택의 여지가 없으니 본능적 자기 방어인지도 몰랐다.
그러나 그것은 분명 절체절명의 막다른 골목에 선 필사적 몸부림이 아니었다.
조용하고 평화롭게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고 일어서는 순명의 느낌,
아니, 예고 없는 순간에 절망이 왔듯이
어느새 예고 없이 찾아와서 다시 속삭여주는 희망의 목소리였다.

   나는 이제 지구상에 내게 남은 단 한 가지 소유물인 내 손가방을 뒤져보았다.
껌 두 개, 조카에게 주려고 LA 공항에서 샀던 레이더즈 농구팀 티셔츠,
수표책, 20달러 짜리 한 장이 전부였다.
나는 우선 샤워를 하고 레이더즈 티셔츠로 갈아입고 캠퍼스 스낵바에 가서 닭 튀김을 한 열 조각쯤,
거의 토할 지경까지 먹었다. 그리고 나서 거버 박사를 찾아갔다.

   거버 박사는 두 팔 벌려 반갑게 맞아주셨다.
"오늘쯤 올 줄 알았다.
아닌 게 아니라 웨스트부룩 박사와 함께 점심 먹으며
너는 그대로 주저앉을 사람이 아니라고, 곧 올거라고 얘기했었지.
이제 경험이 많으니까 더 좋은 논문을 쓸 수 있을거야."
거버 박사는 올바니로 오는 기차에서 울다가 잃어버린
콘택트 렌즈를 새로 사라고 100달러를 주셨다.

   거버 박사의 주선으로 과에서는 다시 내게 강사 자리를 주었고,
도서관에서는 잃어버린 몇십 권의 책 반납을 면제해주었다.
그리고 그로부터 정확히 1년 후 나는 다시 논문을 끝냈다.

   15년이 흐른 지금 생각해도 다시 가슴이 내려앉을 정도로 힘든 경험이었다.
그러나 그 경험을 통해서 나는 절망과 희망은 늘 가까이에 있다는 것,
넘어가서 주저앉기보다는 차라리 다시 일어나 걷는 것이 편하다는 것을 배웠다.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끝낸 내 논문에서 내가 가장 자랑스러워하는 부분은 맨 첫 페이지이다.
거기에 나는 '내게 생명을 주신 사랑하는 나의 부모님께 이 논문을 바칩니다.
그리고 내 논문 원고를 훔쳐가서 내게 삶에서 가장 중요한 교훈
다시 시작하는 법을 가르쳐준 도둑에게 감사드립니다' 라고 적었다.

  "다시시작하세요. 인생은 짧다지만 "다시 시작하는 법"을 배우는 데
투자하는 1년 아니 그보다 더 긴시간도 아깝지 않습니다."


-살아갈 날들을 위한 기도 중에서-



류창희   2009-05-12 21:34:52
"남보다 느리게 걷기에 더 많이 볼 수 있다"고 말했던 그녀
짧은 생애였지만 보통 사람보다 많이 보고 갔을 것이다.
"내 힘들다"를 거꾸로 하면 "다들힘내"
힘들어도 다들 힘을 내 용기와 인내,
열정의 깃발을 다시 흔들자는 얘기를 했었다.
라체르바   2009-05-12 22:40:07
신문에 실린 장영희교수의 부음 소식을 보고 마음이 시렸습니다
늘 병마와 싸우며 쓰러져도 다시 일어서는 오뚝이같은 삶을 사셨기에 예감은 했으나
막상 맞부딪힌 현실은 뒤통수를 맞은 듯 멍했습니다

정작, 그분 보다 부족함이 없는 우리들은 얼마나 많은것들을 누리면서도 불평하며 주저앉게되는 일들이
허다하지 않습니다 그분은 아마 그분 생애에 주어진 삶에 최선을 다해 불꽃을 피워냈다 해도 과언이 아닐것입니다
"절망과 희망은 늘 가까이 있다"
어떤 상황에서도 또다시 일어설줄 아는 긍정적 사고가 그분의 삶을 더욱 빛나게 만들었을 것입니다
게을러지며 나태하여지던 삶에 다시금 채찍을 가해봅니다

좋은글을 올려주셔서 깨달음을 주신 선생님 고맙습니다
류창희   2009-05-19 16:15:31
라체르바님이 그분이 되셔요.
희망을 늘 가까이 두고 사는 사람이잖아요.
여러 사람에게 '바이러스'처럼 옮겨주세요.
잘 지내시죠?
아카데미   2009-05-19 16:50:22
마녀위니 - 마음이 짠하네요. *괜잖아! 괜찮아! 괜찮아! * 오늘은 이 말이 많이 위로가 되네요. 사는것이 서툴러서일까 ? 부족해서일까? 오늘은 나도 누군가를 향해 *괜찮아!* 라고 웃으며 말해주어야지.... 09.05.12 12:01
花樣年華 - 참 좋은 말이죠? "괜찮아" '괜찮은 사람'이 멋진사람보다 괜찮은 것. "관찮다" 09.05.12 21:39